시리즈 애정결핍 늑대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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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건배!”


유리잔 두 개가 맞붙는 소리와 함께 옅은 진동이 손을 올렸다.


물론 건배를 한다고 해서 잔을 비운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술을 즐긴다는 암묵적인 메세지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애시당초 그렇게 양주를 거리낌 없이 들이킬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이볼이 아니라 스트레이트로 마셨겠지.

그런 생각으로 얼음이 든 잔을 빙빙 돌리다 한 모금을 입에 흘렸다.


씁쓸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바닐라 향, 그리고 뒤늦게 찾아오는 오크 향.

그리고 위스키의 알콜이 씁쓸함을 넘어 목을 태운다 싶을 때 느껴지는 탄산.


샷으로 먹는 것보다는 확실히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특유의 위스키 향은 충분히 느껴졌다.


“크~! 좋다!”


유서아는 내 감상에서 더 나아가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곤 냉큼 스테이크 한 점을 집어 먹는 게 정말 아저씨 같다고나 할까.


알콜이 들어가면서 곧바로 찾아오는 약간의 고양감에 살짝 몸이 뜨거워졌다.


이런 기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알콜을 갈망하고 있겠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취하기 위해서 먹는 수단으로 삼을 정도로.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약간의 심리적인 벽이 허물어진 나는 아까부터 들었던 생각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응?”


“갑자기 이런 걸 준비한 이유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아, 이거?”


내 질문에 유서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정말 당연하다는 듯 턱을 괴고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챙겨주고 싶어서.”


“…”


유서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평소의 어딘가 신이 난듯한 차분하고 진정된 듯한 목소리라 조금 신선했다.


“너 평소에 제대로 안 먹고 다니잖아.”


“그래도 아침을 제외하곤 규칙적으로 먹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들도 결국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거 같던데. 임무 도중에도 거의 배만 채우면 된다는 식으로 있는 거 봤고, 이 집에도 아무것도 없이 맥주만 있더만.”


…이럴 때만 이상하게 눈치가 좋다니까.

평소에는 오히려 막무가내로 자신을 들이미는 경우가 더 많은 사람이면서 이럴 때만 꼭 예리한지 모르겠다.


“자, 아 해봐.”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서아는 대뜸 내 앞으로 포크를 내밀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스테이크 조각이었다.


이건 대체.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나는 멍하니 유서아를 바라봤지만 유서아는 고개를 기울이고 포크를 흔들어 댔다.


“제가 알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안 먹어?”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가.

임무를 할 때는 그래도 내 지시에 바로 따랐던 것 같은데.


거절의사를 밝혀도 유서아는 여전히 나를 유혹하듯이 내 앞의 스테이크 조각을 미끼처럼 흔들었다.


기름진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별로 의미는 없었다.

이렇게 죽치고 있어봐야 유서아는 저 포크를 내 입에 집어넣을 때까지 저러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도리어 이렇게 시간을 끌어봐야 눈앞의 음식들만 식을 뿐인데.



결국 나는 유서아의 바람대로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어때? 괜찮아?”


맛있다.

정말 맛있었다.


분명 그렇게 특별한 재료를 쓰지도 않았을 텐데 평소에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확실히, 직접 해먹는 음식은 뭐가 다르긴 다르구나.


“풋, 말을 안 해도 어떤지 잘 알겠네.”


내가 먹는 것에 집중하자 유서아가 갑작스레 쿡쿡 웃기 시작했다.

입을 가리고 있지만, 도저히 미소를 숨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묘한 위화감에 유서아를 노려보다 그녀의 시선이 내 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스레 의미심장한 행동을 보이니 괜스레 불안해진다.


뭘 저렇게 보고 있는 거지.


내 뒤에 뭐가 있었나?


혹시나 싶어 뒤를 슬쩍 쳐다봐도 보이는 건 하얀 벽과 내 꼬리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풉.”


유서아는 내 행동을 보고 더욱 격하게 웃음을 참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행동은 굉장히 신경 쓰이니 그만둬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의미를 담아 그녀를 지긋이 노려봤지만, 유서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내서 웃어 버렸다.


정말.


피곤한 사람이다.



++++++++++



“아, 하랑이 왔구나!”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노란색과 팔을 마구 흔들어 대는 분홍색 머리가 보였다.

강소연과 홍연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왔습니까.”


“응, 아직은 우리 둘뿐이야. 뭐 어차피 5분 정도 남았으니까 나머지도 제때 오겠지.”


글세.


나머지 둘은 제시간에 올지 모르겠는데.

평소에도 항상 굼뜬 성격이었던 김예지나 어제 내 집에서 그렇게 술을 먹어댄 유서아는 제때 올 거란 보장이 없었다.


특히나 꽤 늦게까지 내 집에 있었던 유서아는 오늘 제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것이다.


“둘이 안 온다면 직접 찾아가지 뭐. 분명 퍼질러 자고 있을 테니까.”


“…정말로 제시간에 안 온다면 곤란합니다만.”


태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말하는 강소연에게 약간의 푸념 섞인 말을 하며 나는 눈가를 매만졌다.


오늘 임무는 최근 차원 균열이 발생했다는 B 구역의 수색.

당연히 위험 지역이니만큼 구역 전체가 폐쇄되어 구역을 넘어가는 입구를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거기서 우릴 보내줄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앞으로도 언제든 볼 수 있는 사이인데 그런 민폐를 끼치면 팀장인 나로서는 여러모로 곤란하다.


“아, 저기!”


심란해진 속을 달래며 있으려니 홍연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홍연은 옆을 보고 팔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다행스럽게도 홍연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곳에는 김예지와 유서아가 있었다.

왜 둘이 같이 다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때 도착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우리 왔어.”


김예지는 예나 지금이나 느긋한 표정 그대로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옆에 유서아를 끼고 있다는 점일까.


“흐으… 안녕…”


“…괜찮으십니까?”


“아하하… 숙취 인가 봐.”


그럴만 했다.

어제 그렇게 술을 먹어댔으니까.


먹는 양을 적당히 조절했던 나와는 다르게 정말 있는 것들을 전부 털어 넣겠다는 듯 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오늘 임무는 가능하십니까.”


“으응, 괜찮아. 싸울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으니까.”


정말 괜찮은 건가.


어떻게든 안심시키려 하는 건지 미소를 짓고 있긴 했지만,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이따금 중심을 못 잡는 건지 약간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상태로는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워 보입니다만 오늘은 먼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냐 아냐, 할 수 있어. 히어로가 이 정도로 내빼면 안 되지. 거기다 내가 빠지면 팀에 벌금도 먹이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정말로 괜찮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적어도 맨정신이긴 한 것 같긴 한데, 여러모로 불안한 것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몇 년째 이 일을 같이 해왔으니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이야기할 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은 안에 들어가자.

당장은 어렵지만, 안에 들어가고 나면 일은 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테니.



…..

….

..

.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히어로 신분증을 보여준다.

소속을 밝힌 후 여기로 온 목적을 설명한다.


나와 우리 팀이 폐쇄구역 입구에서 한 일은 그게 전부였다.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해당 구역 담당자와 이야기를 한 정도일까.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다른 히어로들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간단하다면 간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절차지만 그런 일에 불만을 나타내는 팀원도 있었다.


“어차피 다 아는 사람들이잖아. 그냥 넘겨주면 안되나아...”


김예지는 하품하면서 귀찮다는 투로 불평을 내뱉었다.

이해는 된다. 제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는 것치곤 거의 5분 정도 만에 용건이 끝나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는 형식적이고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것들은 있을 때는 체감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효과를 내는 것 중의 하나니까.


“방식은 간단하지만, 그것만으로 대부분 범죄자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개조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요.”


“우음… 그런가…”


김예지는 내 말에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더는 말을 하는 건 귀찮았는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다 같이 돌아다니면 돼?”


“아뇨, 일단은 수색 임무이니만큼 2개의 조를 지어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차원 균열이 나타났다는 건 그곳에서 계속 몬스터가 나올 거라는 이야기다.

시간을 오래 소모할수록 몬스터의 수가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이래저래 곤란해진다.


그러니 빨리 수색을 하는 게 중요하다.


“1조, 2조로 나뉘어 각자 영역을 정해 수색을 하고 차원 균열이 발견되거나 위험하다 판단되었을 때 다른 조에 연락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조는 어떻게 짤 건데?”


조 편성이라.


평소였다면 균형을 생각하면서 적당히 배분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시선을 옆으로 돌려 유서아를 바라봤다.

저 상태의 유서아를 그냥 보내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지.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강소연, 김에지, 홍연이 1조, 그리고 근접전에 특화된 저 이하랑과 유서아가 2조로 나뉘어 탐색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나와 유서아가 같이 가는 것이었다.

적어도 위험할 때 구해줄 정도의 자신은 있었으니까.


내 말이 끝나자 유서아는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끔까지 숙취로 흐물흐물해졌던 건 어디로 갔는지 안색까지 밝아진 느낌이다.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어? 아니, 아무것도.”


유서아는 왠지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