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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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더라지.


환경이 얼마나 척박하고 잔혹하든, 결국에는 적응하고 적응해 끈질기게 살아남고야 마는.


그런 동물이랬더라지.


“...”


그랬더라면, 그래. 나는 뭘까.


피가 철철거리던 어느날 풍토처럼 돋아난 '부적응자'라는 혹을. 일평생 달고 지내는 나는 도대체 뭘까. 사람일까?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걸까, 적응의 동물이 사람이라는 걸까.


시답잖은 말장난이나 하며, 나는 대답을 무르고 있었다. 


사실은 무엇이 정답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하아.”


슬슬 날씨가 풀리고 있었다. 4월인지라.


한숨처럼 길게 불어낸 호흡은 입김을 내기는커녕 후덥지근한 공기에 흔적도 없이 삼켜졌다.


양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제목은- ‘친구따위 필요없어 죽어’.


일본 노래.

특히 좋아하는 밴드가 부른.


“...”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을 비교했다.


백주대낮에 후드티 한 장 걸친 백수 여자애. 듣는 건 저명한 일본 노래. 이것까지만 봐도 아주- 예상이 가는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마른 옆구리를 바늘처럼 찌르는 애탄이 느껴졌다. 뽑아낼 수조차 없는 바늘이 살을 천천히 꿰어드는 감촉을, 내 예민한 촉수는 일 초씩 잘라 맛보게 만들었다.


“...”


견디기 힘들었다. 지뢰 오타쿠 평균보다는 높을 것이라 생각되는 내 외모만이 나름의 위안거리였다.


한심했다. 충동이 몰아쳤다.


이대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죽는다면 자살이겠지. 자살은 범죄다. 그러나 나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 사람 시체 위에 범법자라는 딱지 하나 붙는다고 변할 건 없었다.


등등의 생각을, 나는 음악 가사 위에다 토하고 있었다.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옷을 입거나. 말을 하거나. 몸짓을 하거나. 


그러나 쇼핑을 다닐 체력도. 말을 터 놓을 사람도. 몸짓을 홰저을 깜냥도 없던 나는. 이런 플라스틱 용기 같은 완제품에 스스로를 뉘이기만 하는 것이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편리했다. 만족했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소매로 훔치듯.


아직 공장 냄새가 빠지지 않은 반투명한 포장 안에서 나는 기뻐했다. 



다시.



공원이었고, 나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듣는 노래는, ‘친구따위 필요없어 죽어’.


내게 어울리는 노래.



4월 15일 금요일 4시 34분 13초의 낮은 화창했다. 그 날씨에 이끌려 평일 낮임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물론 내 또래는 보이지 않았다. 전부 40대는 가볍게 넘는 가정주부들이나,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생김새의 머리를 한 할머니들 뿐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내 존재는 아주 어색했다.


검은 후드티 하나만 뒤집어쓴 채,


하반신이 허전해 검은 츄리닝 한 벌을 걸친 채,


하지만 그것도 사이즈가 커 허리를 잔뜩 조른 채,


편의점에서 산 제로 슈거 에너지 드링크, 


하얀 색상,


가격 2000원,


그리고 컵라면 하나.


가 든 봉지를.


 손에 든 채.


나는 쩝쩝거리는 노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하.”


슬리퍼를 바닥에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림자도 덩달아 길게 늘어져 아스팔트에 눌러붙었다.


그러나 길고 긴 길과 그림자에 비하여 나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돌겠네.”


내 키가 하루아침에, 그것도 20cm가량 줄어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눈대중이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는 될 것이었다.

허리를 조일 수 있는 옷을 찾아, 외출을 준비하는 데도 한세월이 걸렸으니.


그래, 나는.


하루아침에.


여자가 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스스로에 적응했고, 또 내 삶에 적응했다.


물론 그런 내가, 이차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말이다.


나는 부족한 게 없었지만, 그런데도 제대로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비유하자면 질소로 가득 채운 과자 봉지 같았다. 무언가 들어있는 것 같고, 실제로 들어있기는 하지만. 기대만큼 깊지는 않은 그런. 


그렇기에 더욱 비참한.


차라리 없었다면 미련이 남지 않고, 가득 들었다면 더할 것 없이 행복했을 텐데.


그러니까 나는 그런. 4할 정도 찬 과자 봉지 같은 인간이었다.


다시.


다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나는.


극악의 확률로 등장하는 불량품이었다.




띠리리-


작은 점자가 붙은 다이얼을 순서에 맞춰 누르자, 마감이 거칠거칠한 도어락이 열렸다. 작은 다섯 손가락이 녹슨 문고리를 쥐어 비틀었다.


경기도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오피스텔 단지. 202동 302호.

이제는 연락을 끊은 엄마의 손을 빌려 얻어낸 이 초라한 집이, 지금의 내가 가진 전부였다.


끼릭.


집에 들아온 나는 슬리퍼를 걷어차 현관 구석에 처박았다. 하다 보니 이것도 능숙해진 참이었다. 


이곳은 적막했기에, 나 이외의 인물은 없었기에. 슬리퍼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았다고 한소리 들을 걱정은 없었다.


“...”


집 안을 둘러보았다.


화장실 하나, 부엌을 겸한 방 하나. 그것이 이 좁은 집의 구성의 전부였다. 공기에서는 먼지 섞인 새 집 냄새가 났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배치해 둔 가구도 딱히 없고 말이다.


한편 바닥에는 내가 신으려다 실패한 양말과 속옷, 그리고 온갖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부 사이즈가 커서 입지 못한 것들이었다. 


“...”


저걸 다 버려야 하나. 나는 난장판이 된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니지. 언제 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만일을 생각하며, 나는 그것들을 대충 쓸어담아 옷장에 처박았다. 조금 무거웠지만 할 만 했다.

물론 한아름에 전부 들어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두 번에 걸쳐 옮겨야 했지만.


얼굴을 스치는 옷가지의 감촉이 부슬부슬 간지러웠다.


드르륵, 탁.


옷을 쑤셔넣고 옷장 문을 닫은 나는, 그 앞에 붙은 전신거울 앞에 섰다.


평소에는 부스스한 스스로의 모습이 보기 싫어 잘 서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


거울은 닦아낸 지 조금 되어서 먼지가 묻어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월등히 좋아진 내 시력은, 먼지 따위가 거울 너머의 풍경을 희석하게 두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는 틀림없이 보고 있었다.


거울 너머의 인영을.


두 갈래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을. 

옷장의 반절을 겨우 넘는 자그마한 신장을.

거대한 후드티에 가려진 채, 겨우 존재감을 피력하는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그리고 무엇보다.


“...하.”


그 모든 것을 일괄시하며,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앳된 이목구비를.


그래, 어떻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내 두 눈이 이르되, 이것이 나라는데.




3시간 전, 나는 여자로 변했다.

정확히는 자다가 일어나니 여자가 되어 있었고, 그것이 3시간 전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유는 몰랐다.

따지고 보면 아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인터넷 등지에서 보이는 암컷타락 희망자라거나, TS 기원글을 꾸준히 쓰는 커뮤 유저라거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의로 내 몸을 이런 꼴로 바꿔버릴 깜냥 따위 더더욱 없었으며.


‘환각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유력한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새아. 나이 만 19세.  그녀가 되어버린 그가, ‘가벼운 조현 증세를 곁들인 우울증을 동반한 조울증을 포함한 불안장애 및 adhd’를 진단받았을지라도.

환각과 현실을 나눌 수 있는 분별력 정도는 남아있었다.

환각은 원래 희미하고, 정신을 쏟아야만 선명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어느 부위를 골라 만지고 그 만족스러운 감촉에 감상을 바쳐도. 전혀 흐려지지 않았으니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자란 체중 때문에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도 않았다.


책상의 높이는 또 어떠한가. 한참이나 높았던 탓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겨우 잡은 나는- 그래.

명절날 삼촌 컴퓨터를 빼앗아 두들기는 악독한 조카의 꼴이 되었다.


“...”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올려 앉았다. 조금 덜 불편했다.


슬슬 저녁이 되고 있었기에, 나는 소설 사이트에 접속했다. 

제대로 된 글을 연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일기처럼 매일 남기던 글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털어놓을 곳 하나 없는 신세이기에. 나는 이렇게 인터넷 구석에 그것들을 토하듯 뱉고는 도망치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쓰는 것이었지만, 가끔은 댓글도 달렸다. 꼴에 열심히 써 보겠다고 퇴고도 여러 번 거친 글이었던지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별 것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꽤나 소중한 그것이었다.


소중한 그것이었기에.



“...뭐야.”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스크롤을 박박 닦듯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심지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훑어보아도, 모니터가 비추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작성된 글 없음’


그렇구나.


확실해. 이쯤 되면 누군가 나를 의도적으로 죽여버린 게 틀림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내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


그제서야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는 모든 걸 잃었다. 자신의 신분, 그리고 정체성. 심지어는 내가 남겼던 모든 흔적들까지도. 누군가 고의적으로 그런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약통을 집어들었다. 라벨을 떼어낸 자리에 마커로 쓰인 ‘레피졸’이라는 글씨가 검게 빛났다.


그것의 뚜껑을 따, 손바닥에 쏟았다. 세 알. 총 15mg.

환각과 조현 억제를 위한 약물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기를 바라며 그것을 하나하나 집어삼켰다.


한 알.


두 알.


세 알이 네 알이 되고, 다섯 번째 알까지.


지금껏- 어떻게 적응한 삶인데. 그것마저 앗아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


방법으로써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목이었다. 병원은 몸에 이상이 있으면 가는 곳이며, 지금 내게 발생한 것은 분명한 이상이었기에.

내일까지는 기다려본다 해도, 그 이상은 안 될 것이었다. 내일 눈 뜨는 대로 출발해야겠지.


그리고 지금으로써.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적자.”


다시 내가 사라지지 않게.


최소한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 뿐이었다.


‘새 회차 작성하기’


초록빛으로 강조된 그 버튼을 클릭했다.


“...”


나는 의자를 당겨 앉고, 키보드를 잡았다. 커다란 자판이 손가락 끝에서 찰칵거렸다. 

타이핑 한 번을 치는 데도 배의 노력이 들었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하.”


...아니. 아니지.


언제는 어디에 적응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몸이 바뀐 것 하나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 전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울 것이며, 손목을 그을 것이며, 상습적으로 약을 과용하며 밤마다 죽을 듯이 울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게 사라졌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닌 것 같아 말이다.


흘깃 웃으며, 나는 자판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내게 숙제가 주어졌다.


적응이라는.


필수의 꼬리표를 단. 끔찍한 숙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