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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네크로멘서, 라구요?”
질문에는 묘하게 지루한 기색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태연히 대답했다.
“뭐어, 너희들의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해두지.”
담당관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명백한 하대는 그렇다치더라도 모호한 답변은 서류 작성 및 추후 행정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는게 아닌 만큼, 담당관은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구체적인 능력 심사는 다른 부서에서 알아서 하겠지. 자기의 고민을 타 부서로 이관시킨 담당관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게 되었나요?”
사무직 특유의 딱딱한 질문에도, 본인을 네크로맨서라 밝힌 인물은 느긋하게 두개골 – 아티팩트라고 소개했다 –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무슨 일로 오시게 되었나요.”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건 누구라도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별의 별 차원에서 넘어와 가지각색의 개성을 선보이는 귀환자 선별과 지원 작업을 실시하는 담당관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담당관은 인내심이 넓은 편이었다. 속으로 하나, 둘, 셋. 그리고 셋에서 다시 하나까지 센 다음에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을 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말투가 경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담당관의 배려를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어허.”
담당관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내가 왕림한 의중을 캐묻다니. 네 년의 배짱이 꽤나 크구나.”
기록용 패드를 잡은 손에 힘줄이 불거졌다. 담당관의 입술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일부러 다리를 크게 꼬으며 말했다.
“하잘 것 없는 필멸자에게 밝힐 용의는 없으니. 절차가 끝났다면 그만 나를…….”
담당관은 결심했다. 이 오만한 네크로맨서에게 자신의 직위와 능력을 보여줘야겠다고.
다만 좀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아이 씨, 진짜!”
콰직.
쿠당탕.
책상 위에 내려친 패드가 두 동강이 났다. 거칠게 당겨진 의자가 바닥에 굴렀다.
담당관의 태도가 급작스럽게 변하자, 네크로맨서는 경박한 비명과 함께 들고 있던 아티팩트 – 두개골을 떨어뜨렸다.
“히익-?!”
“야, 네가 뭔데? 아까부터 반말 찍찍거리는 거냐? 어?”
부서진 패드의 모서리는 날카로웠다. 네크로맨서는 놀란 눈이 되어 얼떨떨하게 있었다.
“대답 안 해? 확, 씨.”
“……하, 할게요! 할게요!”
담당관의 태도만큼이나, 네크로맨서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아까의 오만불손함은 오간데 없이,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하지만 담당관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뭐, 네가 반신이라도 되냐? 어? 용인이냐? 네크로맨서고 나발이고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라고!”
“할게요! 할게요! 할, 아니, 하겠습니다!”
좁은 면담실에서, 한 여자는 소리를 빽뺵 지르고 다른 여자는 몇 번이고 사죄를 반복했다. 담당관은 밖에서 새로운 패드를 찾아올 때까지 씩씩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 다시 처음부터. 이름.”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방안에 비산한 패드 파편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저,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내가 똑같은 말 한 번 더하게 하면 당신을 저 파편처럼 만들어드릴게요. 이름.”
“지, 지아……! 에요…….”
패드에 옮겨적던 담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는 달랐잖아. '아르겔리우나' 어쩌고저쩌고.”
“……그, 그건 네크로맨서끼리 부를 때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지아에요……”
확연히 의기소침해진 지아지만, 담당관에게는 지금의 협조적인 태도가 더 기꺼웠다.
“직업은, 네크로맨서 맞아요? 좀비 만들고 시체 부리는 거?”
“……네크로맨서는 맞는데…… 저는 영혼 다루는 쪽에 좀 더……”
“네네, 네크로맨서 맞지?”
네크로맨서의 세부적인 분파에 관심 없던 담당관은 웅얼거림을 일축했다.
그렇게 존대와 하대가 다양하게 분포하는 질문에, 지아는 소심하지만 성의껏 대답했다.
마지막 직전까지.
“여기는 왜 왔어요.”
“……저, 그게…….”
담당관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지아는 어깨를 움츠렀지만, 핏기 없는 입술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빨리 말 안해요? 뭐, 지구정복? 세계정복?”
“……찾는 사람이 있어서…….”
앞서 말한 이유보다 맥빠지는 사유였다. 왜 망설이는 건가 싶었지만, 굳이 더 캐어묻고 싶지는 않았다.
담당관은 한숨을 삼키며 패드에 기록을 마쳤다.
“선별 절차 끝났구요. 다른 부서 가서 능력 검증 비롯해서 하라는 거 따라하시면 됩니다. 이건 제 명함이구요. 지원 담당자 붙기 전에 무슨 일 생기면 제게 연락줘요.”
담당관은 퉁명스럽게 한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네크로맨서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면서 우물쭈물했다.
“……저어. 혹시.”
“질문 있어요?”
“사람 찾아주실 수 있는지…… 분명, 여기로 왔는데…….”
촉촉한 눈가로 호소했지만. 담당관은 자기 일에 충실했다.
“우리 사람 찾아주는 곳 아니에요. 그렇게 이어주는 곳도 아니구요.”
“그, 그치만…….”
“아 그리고, 그 옷 좀 제대로 입어요. 복장이 그게…….”
담당관은 뒷말을 삼켰다. 괜한 트집을 잡는 건 아니었다. 귀환자와 다른 차원이 이어지며 아무리 다양한 복장이 용인된다지만, 낡아서 살결이 비치는 원피스며, 뼈 장식이 달린 목걸이, 산발한 머리칼, 맨발차림은 자기로서 봐주기 어려웠다.
“그 뼈다귀도 시민들이 보면 신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좀 감추고요.”
“……아티팩트인데…….”
“그럼 가방에 들고 다니시던가. 먼저 갑니다.”
풀죽고 시무룩해진 네크로맨서를 두고 담당관은 먼저 일어섰다. 원래 귀환자 최초 면담이 쉽지 않은 일이라지만, 왜인지 유독 짜증나는 오늘이었다.
그리고, 면담실을 나가자마자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직원을 보며 담당관은 더욱 얼굴을 구겼다.
“시아 담당관님! 지금 끝나셨습니까?”
“야, 저 면담실 청소 좀. 패드 하나 새로 사달라고 보고도 하고.”
“……또 한바탕 하셨습니까?”
“적당히 해야지. 거지꼴을 하고는 자꾸 말대답하잖아. 그리고, 왜.”
“아, 그 담당관님께서 단독으로 맡고 계시는 분 있지 않습니까? 그…….”
시아는 얼굴을 굳혔다. 대명사로 에둘러 말해도, 직원이 가리키는 대상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용인이? 왜? 무슨 사고라도 났어?”
“저, 그게, 술집에서…….”
“……주소 내 단말기로 찍어. 바로 갈 테니까.”
시아는 들고 있던 패드를 던지듯 맡겼다. 직원에게 패드 처리를 말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
선명하게 붉은 입술에서 더운 숨이 흘러나왔다.
“푸후우……. 헤에…….”
긴 숨을 뱉은 입으로 웃음을 한가득 지었다. 보는 사람도 따라 웃을 만큼 순수한 웃움이었다.
“헤, 헤헤……, 흐읍.”
하지만 그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되려 멀쩍이 거리를 두고, 찡그리거나 인상을 쓰며, 나직히 욕지기를 삼키기도 했다.
이토록 분위기가 냉랭한 까닭은, 실없이 터지는 웃음과 발그레한 두 뺨의 원인 때문이기도 했고.
“끄윽, 후우. 흐끅. 헤, 헤헤…….”
동시에 그렇게 웃음 짓고 홍조를 물들인 인물의 정체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멀리하려는 인물이었지만, 성큼성큼 다가가는 걸음이 생겼다.
“그만 마시시죠.”
“우으, 어으……?”
잔뜩 풀린 눈이 억지로 초점을 잡았다. 그런 반응과 더불어 숨결에 섞인 알콜 내음으로 얼마나 마셨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어? 어어?! 다. 담당관니임?!”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세요.”
“헤헤헤, 미이안, 헤헤헤헤.”
시아 담당관은 짙은 한숨을 쉬었다.
시아가 담당하는 귀환자, 지구에 유일한 용인은 그 권위에 맞지 않게 뭐가 좋은지 웃음을 흘렸다.
“다, 담당관님. 오셨으니까아. 사, 사장님! 한 병 더…….”
“그만 마시라고 했죠.”
매몰찬 거절. 그럼에도 용인은 몇 번이고 사장을 불렀지만, 사장은 취한 용인보다 멀쩡한 담당관의 말을 듣기로 했다.
수군거리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용인을 돌아봤다. 게슴츠레하게 풀린 눈. 꾸부정한 자세. 그렇지만 한 손에 언더락을 꼭 쥐고 있었다.
“왜, 왜애. 나랑 가치. 나랑 같이, 마시자. 응?”
“저 내일도 출근해요. 그리고 그만 마시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까의 네크로맨서에게 미안할 정도의 인내심이었다.
반대로 보면, 여기에 인내력을 모두 쏟아버리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참을성이 없어지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용인은 풀린 발음으로 더듬었다.
“그, 그치, 그치만. 담당관님. 우리 예쁜, 응.”
“그렇게 예뻐하실거면 제 말 좀 들어주시죠. 당신 때문에 다크서클이 얼마나 짙어졌는데.”
“……다, 담당관님은. 예쁜데. 못됐어. 응. 내가 사랑햇더언. 사람하, 흐끅. 하고 비이교하면……”
“또, 또 그 소리.”
내가 사랑했던 저쪽 차원의 애인은 어쨌네, 저쩄네. 시아가 담당관으로서 그동안 지겨울만치 들은 소리였다.
시아가 끊임없이 이어지려는 말꼬리를 끊었다.
“숙소에 한 짝씩 놓았을 텐데 바깥은 왜 나온 거에요. 허락도 없이.”
“……다, 다 마셧. 없던데?”
“가관이네, 진짜.”
결국 본심이 튀어나왔다. 시아는 피식 웃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째려보았다.
시아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술을 마시는 거에요?”
“술를, 왜, 마셔어?”
정말 취한 상태에서 이러는 거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지금 시아가 어처구니 없어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마셔도 용인은 안 취하잖아요. 네?”
용인의 휘청거림이 멎었다.
“왜 취하지도 않는 술을 이렇게 마시는 거냐구요.”
“……맞아. 이렇게 마셔도 나는 안취해.”
방금까지 포식당한 주류가 들으면 속상할 말이지만, 용인은 내리깔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 정도로 취하지 않아. 인간이었을 때, 남자였을 때도 지금처럼 마셨으면 취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안 취해…….”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일어.”
“왜 나는 안취하는거야아아!”
술집을 울릴만큼의 큰소리에 시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용인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아프니까! 매번 생각나니까! 그래서 술이라도 마셔서, 잊으려고. 어? 술이라도 마셔서 잊어버리려고! 그러면 무뎌질까봐! 잊을 수 있을까봐! 근데 왜 안취하는 거야, 왜, 왜! 왜!”
감성적이고 침착한 사람이라면 용인의 울부짖음에서 지난 세월의 고통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감히 위로를 해줄 순 없더라도 병을 기울여 용인의 잔을 대신 채워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아는 근래 지나친 격무에 시달렸고,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 원치않은 야근을 하는 처지였고, 지금의 모습 또한 새삼스럽지 않았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은 ‘짜증’이었다.
“당신이 이 꼬라지인 거 그 사람이 알면 어떻겠어요!”
용인 귀환자가 자신의 담당자를 바라봤다.
“맨날 이렇게 술 퍼마시는 거 알면, 어떻겠냐구요! 네? 퍽이나 좋아하겠네요!”
시아는 그런 용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언성을 더욱 높였다.
“옆에 있는 사람도 생각해달라구요! 쪼오옴! 당신 곁에서 뒤치다꺼리해온 게 누군데!”
용인은 험악한 얼굴로 그동안 자기를 맡아온 담당자를 바라봤다.
“입이 있으면 아무 말이라도 해봐요! 하나도 안취했으면서!”
그 담당자가 자기를 다그쳤다.
그리고 취하지 않았던 용인은, 그동안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흐으으…….”
한껏 내려간 입꼬리와, 눈에 맺히는 물기.
“흐으아아아앙……!”
그리고, 용인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어?”
용인이 물처럼 마셨버린 술병들. 수위가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언더락. 용인이 앉아있던 의자.
모든 게 그대로인데 용인은 없었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지금까의 광태를 가만 보고 있던 다른 손님들, 주점 사장과 종업원들. 그들도 수군거리고 웅성거렸다.
가만히 굳어있던 시아는, 퍼뜩 단말기를 들고.
“코드 블랙, 코드 블랙! 광역급 A급 기억소거기 준비! 즉시 모든 인력 가용해서 개체식별번호-D 포착할 것!”
반사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제발 쓸 일이 없기를 바랐던 지시 사항. 하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매뉴얼을 작성한 사항.
저렇게 술에 쩔어있고 허튼 소리만 해댔지만, 어쨌든 상대는 용인이었다. 지구에 단 하나 뿐인 용인.
일개 담당자였던 시아가 지금의 직위와 권한을 맡게 된 이유기도 했다. 용인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래서 시아는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말한다! 코드 블ㅡ”
<지아야아ㅡㅡ!!>
고막을 뚫고 뇌리를 찌르는 듯한 비명이 건물을 울렸다.
<어딨어어ㅡㅡ!! 지아야아아ㅡㅡㅡ!!>
인간라고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인간의 말로 외치고 있었다.
<지아야아아ㅡㅡ!!>
시아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손을 억누르며, 단말기에 다시 지시했다.
“코드 블랙 해제. 대신 B급 기억소거기 가동 준비시켜. 범위는…… 좌표 보내줄테니까 근방……”
<지아야ㅡㅡ!! 나 여깄어어ㅡㅡ!! 제발 여기로 와 줘ㅡㅡ!!>
“……잠시 대기. 이따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
용의 외침이 전파를 왜곡시키지 않더라도, 음성 전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시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어잡았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
“지아, 지아…….”
분명 들어본 이름.
그것도 최근에.
특히 오늘에…….
아.
“……조졌네.”
시아는 이제 인상을 한가득 구겼다. 탁상 위에 남은 잔을 들이키고 싶은 기분이 됐다.
<지아야아ㅡㅡ!!>
담당자의 마음을 아는지, 용인은 땅을 울리는 외침으로 이전 차원에서의 애인을 부르짖었다.
== == == ==
바구니는 좋아보이는데 매번 만질 때마다 괜찮은 건가.. 조심스럽네.
그래도 읽을만한 글이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