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턴가 지구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창작물 속 등장인물들과 장소가 임의로 현실과 연결되고, 그들은 사람의 진실된 사랑 없이는 존재를 유지할 수 없기에 인간들에게 호의를 보내며 공생하는 세상이 되어있었다.


창문 너머로 마법소녀와 마녀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고, 축제 날이 되면 화려한 폭죽과도 같은 탄막이 하늘을 수놓으며, 거대한 갈등이 일어나면 인간이 최대한 많아야 하는 그들의 작은 연합체에 의해 제압되는, 그런 새로운 세상.



'저 새끼 이 근처 사냐?'

'병신. 봐준줄 알아라.'

'며칠만 더 버텨봐. 응?'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씨발!!"



...그런 세상에, 나는 오늘도 숨을 헐떡이며 깨어난다.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건 내 방의 벽지.

방금 전까지 휘몰아치던 학교의 전경은 사라지고, 현실만이 눈에 들어찬다.



"-서야, 현서야! 무슨 일이야!"


"...아, 미안해요 어머니. 꿈 꿔서 그랬어요."


"아휴... 놀래라. 꿈 꿔서 그런거 맞지?"


"네."


"아이구, 우리 현서, 힘들었겠네..."



나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쓰다듬.


벌써 20대의 후반을 향하고 있는 나이지만, 내 정신의 성장은 초등학교 시절에서 멈춰버렸다.

지독한 괴롭힘, 선천적인 사회성 결여, 어른들의 무관심.


부모님께선 그 시절엔 그저 잘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 매번 내가 고통스러워 할때마다 나를 안아주신다.

우린 이제 집도 있고, 밥을 굶지 않아도 되지만.

나에겐 모든게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어느샌가 서로를 안고 울기 시작한 나와 어머니는, 아주 작은 사회의 일부분일 뿐인지라, 결코 그들에게 구원받지 못했다.






아침부터 서로 눈물 쏙 뺀 채로 나는 잠시 시내에 나왔다.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무언가의 목적 없이 시내로, 그냥 나왔다.

인간이 날 때 가진 지독한 궁핍함은 나에겐 전혀 채워지지 않았기에 나는 시내에서도 끔찍하게 고독했다.


사거리의 한가운데에 그저 선채로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딘가로 바쁘게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가끔 달려있는 동물 귀와 꼬리, 그런게 없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


저 사람들처럼 특별함이 있었다면 나는 그런 짓을 당했을까? 당했겠지?

내 행동거지가 어눌하고 장애인같다고 당한 폭력들. 그건 명백하게 내가 특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잖아.


그리고 내 머릿속에선 그걸 부정했다.

네 특별함은 부정적인 특색이라 사람들이 싫어했고, 저 사람들처럼 긍정적인 특별함은 그저 호감요소일 뿐이라고 속삭였다.

넌 눈치가 없지만 똑똑하고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냐며 조롱했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환청이 들린다.

주변의 사람들이 전부 날 쳐다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이성으로는 그 모든게 가짜인 걸 알지만, 본능은 그것들이 너무 무섭다.

구석에 숨어든다. 시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을 웅크린다. 비난은 계속해서 나에게 쏟아진다.

눈을 감는다. 모두가 나를 해하려 한다.

싫어, 싫어, 싫어-



"안녕? 여기서 뭐해?"


"-싫어, 다가오지마, 안돼, 하지마-"


"...너, 괜찮니?"


"-제발, 살려주... 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서 붉은 두 눈과 마주했다.




"눈물 자국 봐. 많이 울었던거야? 누가 괴롭혔니?"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명백하게 안 괜찮아보여, 바보야."


"..."


"잠깐 우리 집에서 쉬다 갈래?"



나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그녀가 내밀었던 손은, 왜인지 모르게 포근해보여서, 나도 모르게 홀린듯이 손을 잡았다.


...

..

.


그날 저녁.

어딘가 기세에 휩쓸려서 저녁까지 같이 먹게 되었고, 그녀가 흡혈귀 자매의 언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녀의 집(저택이었다)에 사는 사람중에 같이 지내는 마법사가 있다는 것까지.



"발렌틴, 이번엔 생각보다 괜찮은 실험체를 데려왔네."


"아니, 실험체 아니거든! 아, 시, 신경 쓰지 마, 현서!"


"아뇨, 뭐, 라일라 씨의 성격이 그런건 아니까요."



내가 아는 작품이었다. 처음 보고 못 알아본게 신기할 정도로.

흡혈귀를 죽여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가문에서 태어난, 인간임에도 인간을 싫어해 인간을 그만 둔 마법사 라일라 벨무스.

그런 그녀를 온갖 괴물과 용병들로 맞이해주는, 흡혈귀이지만 인간을 좋아하는 저택의 주인 발렌틴 드라큘리나.

앙숙 아닌 앙숙인 그 둘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 노스페라투 시리즈.



"아, 맞다. 너희들은 우리가 뭔지 다 아는구나..."


"애초에 그거 때문에 밖에 나간거잖아. 발레니 너 바보야?"


"바, 바보 아냐."


"뭐, 됐어. 현서라고 했나? 사과할게. 우리 바보 발레니가 분명 당당하게 저택의 인지도를 개선할 인재를 찾아온다고 했는데, 데려온게 당신이거든."


"아니, 잠깐만 라이, 애초에 인재랑 실험체가 같은 의미가 아니잖아!"



...그리고 본편인 넘버링 시리즈를 제외한 무수히 많은 외전작과 팬 창작 게임들에서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저택에서 동거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 점 까지도 창작물과 닮게 되는걸까.



"...하아.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이가 말하는게 사실이야."


"언니, 그거 반쯤은 라일라 언니가 사람을 싫어해서잖아!"



또한 여동생인 바이올렛 드라큘리나. 분명 저택을 관리하는 건 다 동생인 바이올렛의 역할이라고 했었지.

왈가닥인 언니가 못 미덥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도 언니 대신 본질을 찔러준 듯 하다.



"부정은 안 하겠어. 그거 때문에 우리가 여러모로 위험에 처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현서, 너의 영혼은 정말 재밌어보여."


"네?"



그 말을 들은 라일라가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어른의 신체에, 어린아이의 영혼. 발레니의 경우와는 정 반대거든."


"..."


"아까 실험체라고 말한건, 솔직히 조금 실례되는 말이었어. 사과할게. 그렇지만 정말로 가지고 놀아보고 싶어. 성인의 육신에 갇힌 아동의 영혼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라이!"


"...푸흐. 뭐, 네가 봐도 알겠지? 나같은 성격을 가진 존재들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은 이유."



...그녀의 말이, 왜인지 모르게 공감됐다.


보통은 '이반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대부분 미형의 외모에 친절한 성격, 평화를 사랑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분명 못생긴 사람이 컨셉인 창작물도 있을거고, 매몰찬 사람이 컨셉인 창작물도 있을거고, 전쟁을 일으켜대는 사람이 컨셉인 창작물도 있을건데, 왜 그럴까.

그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라졌겠지.

미움받았으니.



"...같네요."


"응?"


"인재, 아니, 실험체, 할게요. 도와드릴 수 있는거라면, 뭐든, 도와드릴게요."



난 왜 이렇게 말했을까. 신중하지 못하게, 충동적으로 내질렀을까.

그건, 그냥, 나같은 사람을 보기 싫다는, 위선과 자기혐오에서 비롯된거겠지.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진심이고 싶다. 아니, 진심이다.



"...제정신인거, 맞지?"


"네. 확실해요. 방금은 솔직히 좀 막 뱉었는데, 확신이 섰어요. 도와드리고 싶어요. 아니, 도와드릴거에요. 오늘의 발렌틴 씨 처럼."


"어머, 후후. 조금 반할 것 같네. 그치만 힘들거야. 라이는 인간과 같이 있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해서, 너도 금방 질릴걸."


"그럼 절 흡혈귀로 만드시면 되는 거잖아요!"



내 선언에 모두가, 우리의 대화엔 신경도 안 쓰는 것 처럼 스테이크를 썰어먹던 바이올렛 마저도 손을 멈춘 채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제정신인거, 맞지? 벌써 두 번째 물음이야."


"아, 아니, 내가 암만 진조라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낮에 돌아다니기 엄청 힘들어질거야."


"네. 괜찮아요. 애초에 낮에는 잘 안 돌아다녔거든요."


"낮에 돌아다니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잖아 언니. 너 말이야, 자칫하면 우리처럼 될 수도 있어. 영원히 인간들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살아야 되는 삶."


"힘들면 까짓거 죽고 말죠 뭐."


"...말이 안 통하네."



모두가 나에게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다. 날 말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던가. 학교에서 날 칭하길, 고집불통인 새끼, 인간의 마음이란게 머릿속에 없는 새끼, 그거 빼고는 똑똑해서 더 재수없는 새끼 아니었던가.



"언니? 솔직히 난 찬성이야."


"바이올렛?"


"나도. 단, 실험에 어울려준다는 가정 하에. 오히려 육체의 제약이 사라지면 험하게 다룰 수 있어서 좋겠네. 현재진행형으로 어른의 몸에 들어가있다는 이점은 사라지겠지만."


"라이 너까지..."



나머지 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발렌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한숨을 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좋아. 그렇지만-"


"와아, 그럼 내가 먼저 먹어도 되지? 솔직히 요즘 사용인이 필요했거든!"



그녀의 허가가 떨어짐과 동시에 바이올렛이 내 등 뒤에 달라붙었고, 상냥하게 해달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그대로 목덜미에 얼굴을 박은 채-


콰득-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내 의식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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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오늘 꿈 내용

이 뒤에 복수극도 있고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