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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부와 명예, 그 모든 게 젊은 나이의 내게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운까지 따라주는 덕에 평범하게 해서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데까지 올라갈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다른 이들을 제치고 지휘관의 자리까지 탐낼 수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인 것 같으면서도 그게 이루어지려고 하니 설레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집에 들어가면 금방 식었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형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실은 전사가 된 것도 형이 바랐기에, 그런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 삼으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건만, 내 마음에 드는 일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기에 허탈한 마음만이 짙게 남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형은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형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건만, 형은 그럼에도 모자란다는 듯 불평을 입에 담고 살았다.

 

처음에는 형도 힘들 거라며 버텼다.

의미 없이 날아오는 욕설에도 조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몸이 아프니까 정신도 덩달아 아파진 걸지도 모른다며, 감정을 삭였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으니, 결국 형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쇠약사했을 때, 나는 조금 후련한 감정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이, 겨우 해방되었다는 감정을 앞서기는 어려웠다.

 

형은 끝까지 내게 잘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수고했다는 말까지도 한 번 하지 않았다.

 

모두 자기를 위한, 자기를 향한 말이었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건강했더라면 꿈을 이루었을 텐데. 라는 세상을 향한 저주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옆에서 삶을 바치다시피 한 내게 돌아오는 말은 그저, 한 남자의 끝나지 않는 불평뿐이었다.

 

“헤엑, 끄윽, 흐윽, 아으…”

 

하지만, 그것도 이젠 보상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여기까지 오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꺼려졌지만, 그저 여자애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가볍게 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형이라는 존재는 꼭,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고, 내 인생 또한 자신의 것으로 복속시키려고 할 뿐이니까.

 

떨어지거나, 입을 다물게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는 나였고, 후자를 택했다.

리라가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리라, 조용히 있어.”

 

“아프, 아파앗…!”

 

리라로서 살겠다고 한다면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어차피 다른 남자들 아래 깔려, 창녀나 다름없는 발키리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데 그 정도도 도와주지 않고서야 어찌 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었는데.

 

겉모습만 봐서는 가족인지 모르겠으나, 가족이라고 한다면 창녀처럼 몸을 굴리고 다니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꼭, 그렇게까지 애원한다면야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스승으로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이 정도 일은 해줘야 나도 리라를 버리지 않지.”

 

“알았, 알았으니까… 제발, 천천, 천천히…!”

 

푹푹 안을 깊게 찌를 때마다 교성이 터져 나왔다.

 

앙앙 울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으로 내 가족이 맞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이젠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가족이라고 해 봤자, 이제는 아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 손을 잡고 주례를 받을 뿐인 그런 부부가 아니라, 신이 직접 이어준 부부.

진정한 의미의 부부가 뭔지는 몰라도, 평생을 반려로써 둘 수는 있을 것이다.

 

라그나로크가 오기 그전까지. 두 번째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이렇게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조차도 하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더 조여야지.”

 

“끄윽, 끅…”

 

처음 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고들은 게 있으니 금방 감을 찾았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했다.

 

“엄살은, 이 정도 봉사는 해주어야 수지가 맞지.”

 

침대에 앉아 책이나 조금 읽고 스승 노릇을 하려고 했다니 우습다. 아무리 그런 걸로 발키리가 되었다고 해도, 그런 걸로 진정으로 싸웠던 이들에게 도움이 될 리가 만무했다.

 

애초, 리라는 처음부터 이러려고 불려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쾌락으로 절여진 세계. 사람들 사이에 껴서 죽고 죽이는 발할라 속에서, 발키리라는 새로운 쾌락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가족이었다는 그 말도 흐려지고, 남자였는지도 의미 없이 내 앞에는 교성을 터뜨리는 아름다운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괴로워하면서도 성감대가 건드려진 탓에 얼굴을 붉혔다. 어찌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렸다.

잘록한 허리를 붙잡고 짓눌러 제압한 뒤엔 다시금 허리를 밀어 넣었다.

 

부르륵…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정.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고 그저 사정감에 부르륵 싸고 나니 뭔가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와닿을 것 같았는데, 쾌락을 살짝 건드리고 만 듯한 심심한 감각에 아쉬움이 먼저 찾아왔다.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던 다른 전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뭔가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한두 번 더 해보면 알 것 같아서 리라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흐윽, 아, 아앗…”

 

“한 번 더 하자.”

 

“아니, 아, 그, 쉬고, 쉬고…”

 

“반신이라 죽지도 않잖아?”

 

이 정도는 해주어야지.

이승에 있었을 때 내가 얼마나 당신의 억지에 많이 휘둘렸는데.

 

이번에는 네 차례야.

 

 

*

 

 

“더, 더…”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거칠게 내쉬어지는 숨은, 내가 평생 이렇게까지 숨이 찰 수 있었던가 의문이 들게 했다.

 

이전에 이런 감각이 찾아올 때면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괴롭지 않은 건 아니어서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 정도도 못 하면, 뭘 하려고 그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인상이 찌푸려지고, 감정이 요동쳤다.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감정이 상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승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무시할 뿐이면서, 억지로 아내의 역할을 시킬 뿐이면서.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발할라에서의 부인은, 결국 이렇게 성처리 용도로 쓰이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속이 뒤틀렸다는 게 진실인 듯했다.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엘리엇은 이제 숨 쉬듯이 협박해 댔다.

 

사람들 아래 깔려 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니, 그것을 들이밀고, 다리를 벌리길 종용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시절을 상기시키며 더 잘해보라고 이르기까지 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대들 수가 없었다.

 

“…왜 가만히 있어? 리라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

 

“싫으면 오늘까지만 할까? 내일부터는 광장에서 봐도 상관은 없는데.”

 

조금이라도 반항한다 싶으면, 이렇게 무섭게 돌변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사는 주제에 뭐가 더 고파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그렇게 버려지는 건 끔찍한 일이라서 그러라고 둘 수가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뭘 더 지키겠다고 발악할까.

 

침대 위에서 아양을 떠는 여자의 삶. 싫어도 어쩔 수 없다.

광장에서 어느 남자에게 범해질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금이 좋았다.

 

어차피, 여기서는 신들도 남매든 뭐든 간에.

가족이어도 이어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니까.

 

“아냐, 아니, 좋아. 좋으니까…”

 

“말하는 것도 서툴러?”

 

“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당황해서 눈을 내리깔았다.

이게 혼날 일인가 싶으면서도, 어차피 여기서는 엘리엇을 탓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쪽이 주눅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입술을 짓씹고 처지를 비관할 틈도 없이, 엘리엇의 웃음이 전해졌다.

 

“괜찮아. 어차피 할 줄 아는 건 예전부터 없었잖아.”

 

“으…”

 

“이제 몸도 잘 움직이고 하니까,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천천히 알려줄게. 하나씩 배워가자.”

 

친절한 목소리로 사람 속을 긁어대는 말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엘리엇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것만 하고 끝낼까…”

 

“끝, 이야…?”

 

“맞아. 그러니까 청소해 줘. 또 씻으러 가고 싶지는 않아서.”

 

“청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아내니까.”

 

아내니까,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버린다…?

버리면, 버리면 나는.

 

“어떻게…”

 

“입으로 청소해 줘. 아니면 오늘은 이렇게 끼우고 잘까? 그래도 침대가 지저분해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아침에 하나 저녁에 하나 똑같을 테니까 지금 하자.”

 

엘리엇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옳지, 잘한다.”

 

“…으읍. 음… 우욱…”

 

“그래도 잘하는 게 생겨서 다행이네.”

 

그 말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꿀렁거리는 속이 역류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잘하는 게 생긴 걸까. 이게…?

이걸, 잘하고 있다고 봐도 괜찮은 걸까.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지금으로선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엘리엇이 조금이라도 질리기를 바라며 비위를 맞춰주는 수밖에.

 

“삼켜.”

 

“이, 이어으…?”

 

“응.”

 

하지만, 역시 힘든 건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래도 막상 또 하고 나면, 칭찬해 주는 엘리엇이 있었다.

 

동생에게서 이런 걸로 칭찬받는다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건 또 아니었다.

미친 건지, 뭐라도 좀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살짝이나마 눈이 휘둥그레지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무것도 못 했던 몸이라, 뭐라도 하면 잘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게 문제인 건지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휘둘리기 일쑤였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봐도, 엘리엇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가족이어도 이젠 그 선이 옅어졌으니, 의미가 없다.

부부라고 해도 역할의 분담이 희미하기만 하니 결국은 이런 관계일 뿐이다.

 

그래서, 칭찬받을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단순히 이야기를 시작하면 괴로운 과거 이야기만이 회상되어서, 결국엔 나도 엘리엇에게 안기기를 택했다.

잠시나마 힘들었던 기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나에게 있어 유일한 쾌락이었기에.

 

“삼켰, 어.”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머리가 쓰다듬어졌다.

 

“그러면 내일도 잘 부탁해.”

 

“…응.”

 

이 삶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마 종말의 날이 오기 전까지 계속 이어지겠지.

 

엘리엇에게 속해버린 삶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악을 피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엘리엇의 취향을 알게 될까.

그것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그럼에도 엘리엇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니 그저 얌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