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TS근친3] 대충 형이었던 것을 깔아뭉개는 소설

“...일어났어?”

깨질 것 같은 두통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묘한 구속감에 눈을 크게 떴다가 욕을 내뱉었다.


아니, 욕을 내뱉으려고 했다.


“재갈을 물렸어.”


이예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팔을 뒤로 묶었고. 다리도 좀 묶었어.”

“...”

“너 이 새끼, 라고 눈빛으로 말하지 마. 지금 많이 봐주고 있는 건 나니까.”

“으븝.”


여성은 재갈을 악물었다.

그렇게 해서 재갈이 풀릴 리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시위일 뿐이었다.

이 상태에서 풀려나는 순간 네가 어떻게 될 줄 아냐는 일종의 경고.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그답지 않게 무덤덤하게 그 눈빛을 넘겼다.

잠시 이마에 붙인 거즈를 매만진 그가 말을 이었다.


“성별 정정 신청이라는 것, 알아?”

“...”

“모를 것 같았어. 좋아, 넌 지금 신분이 없어.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분이 없다는 건 거지보다 못한 걸 의미하지.”


여성은 그게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어떻게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벌 구멍이 있긴 했다.

그리고 신분이 없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나, 싶기도 했다.


“원래라면 내가 성별 정정 신청을 도와줬을 거야.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예준이 서류 몇 개를 그녀의 앞에 내던졌다.

여성은 말없이 그 서류를 읽었다.


“넌 죽었어. 이미 화장해서 매장까지 했거든.”

“...”

“그런 눈으로 봐도 어쩔 수 없어. 이미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성별 정정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성은 눈을 사납게 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있어도.

이미 화장해 재가 된 사람이 살아 돌아와 성별을 정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으븝.”

“생각이 복잡해 보이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예준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당분간 널 키울 테니까.”


여성은 그 말에서 묘한 공포를 느꼈다.

원래라면 한동안 몸 기댈 곳이 생겼으니 좋아해야 할 테지만, 뭐랄까.


키운다기보다는 사육하는 느낌에 가까운 어투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예준이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들이밀었다.

무언가 죽어버린 눈동자로 여성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집은 넓어. 사람 한 명 정도는 데리고 있을 수 있겠지. 받은 것도 되돌려 줄 수 있을 테고.”

“으븝...”

“미친 것 같다고?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이미 미쳐 있었어. 넌 몰랐지? 내가 몇 년 동안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이라고 속으로 생각한 이예준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말도 안 했어. 말해봤자 속만 벅벅 긁어댔을 테니까.”

“...푸핫!”


이예준은 재갈을 풀었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여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살짝 차가운. 묘하게 묵직한 전기충격기가 느껴졌다.


“이 씨발 새끼가!”

“안 닥쳐?”

“꺄아아아아악!!!!”


거칠게 여성의 등에 전기충격기를 쑤셔 넣은 이예준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규칙 하나. 집에서는 조용히 해.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까.”

“흐윽... 으흐윽... 이 씨, 씨발...”

“규칙 둘. 집에서는 욕 쓰지 마. 입에 걸레라도 물었어?”

“아아아아아악!!!”

“시끄럽게 하지 말랬지.”

“자, 잠깐!!! 이 개새끼가...!”

“욕 쓰지 말랬지.”

“꺄아아아악!!!”

“시끄럽게 하지 말랬잖아. 힘들어? 안 맞아봐서 이런 것도 못 버티나 봐? 맷집이라도 올려줄까?”

“이... 빌어먹을...”


이예준은 대답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 구석에 놓아둔 야구방망이를 집었다.


이 동네는 치안이 좋지 않았다.

밤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건 안 좋은 선택이기도 했다.

그럴 때 사둔 물건을 오늘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쁘진 않았다.


“규칙 셋. 내 말에 거스르지 마. 반항하지도 말고.”


이예준은 그렇게 말하며 야구방망이 끝으로 여성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서늘하고 묵직한 감촉이 뺨을 타고 느껴졌다.

여성은 그 사실에 기겁하며 고개를 아래로 내리깔았지만, 이미 미래를 알고 있었다.


지금 이예준이 말하는 규칙은 부모가 만들었던 것들이었다.

집에서 지키는 사람이 이예준 한 사람밖에 없던, 사실상 그를 괴롭히기 위할 뿐인 악법.


그러니 다음 규칙이 무엇이 될지는 뻔했다.


“규칙 넷. 눈치껏 지내.”

“으, 으응...”

“기분 나쁘게 하면 알지?”


이예준은 그렇게 말하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묘한 역겨움과 희열이 반쯤 섞인, 상당히 더럽고 질척거리는 감정이 느껴졌다.


차라리 혀를 콱 깨물어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가 이런 위치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만큼, 더더욱.


‘생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이예준이 방망이를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방망이가 기분 나쁜 소음을 냈다.

이예준은 그 소음에 겁먹은 여성의 표정을 즐기려고 노력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름, 이예지. 어때.”

“...이예지?”

“이제 형 같은 것도 아니잖아. 그 모습을 누가 손윗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이예지 말고 다른 좋은 이름 있어? 어디, 한 번 어떤 이름을 내나 들어볼까?”


싸늘한 시선이 내려왔다.

이예지는 이예준이 저런 눈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이예지... 괜찮은 것 같아.”

“좋아.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성질 죽이는 게 좋을 거야.”


이예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대한민국은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안이 좋았다.


이예준이 맨날 집 안에 처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집을 비웠을 때 목이 쉬어라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했다.


설령 어떻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예지가 일단은 넘어가자며 생각한 순간이었다.


“네, 형님. 저예요.”


갑자기 어디론가로 전화를 건 이예준이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라는 듯 바닥에 내려놓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건 아니고, 알려드릴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 왜, 또 그 새끼들이 돈 빌리고 잠수 탔냐?

“아뇨. 죽었어요.”

- 아. 그, 그렇구나... 고인의 명복을 빈다...

“괜찮아요. 호상이었거든요. 술 처마시고 셋이서 사이좋게 갔어요. 더 다친 사람도 없고.”


이예준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음주 운전으로 세상을 떠난 주제에 다른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비참한 일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다가 죽는 삶이라니.

장례식장까지 누군가에게 질타받다가 끝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한테 호상이라니...

“적어도 저는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형님도 아시겠지만.”

- 뭐, 그렇지. 그 새끼들이 빌린 돈을 네가 갚는다고 고생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형님. 만약 이자까지 받아낼 생각이 있으셨다면 어떻게 하셨을 거예요?”

- 너 술 마셨구나. 안 하던 소리를 하는 것 보니까.

“그러니까... 만약. IF인 거예요. 이예형 그 새끼가 살아났다거나. 아니면 어떤 미친 여자가 자기가 이예형이라면서 나타나거나.”


침음이 길게 이어졌다.

이예준은 잠시 가만히 앉아서 이예지의 표정을 살폈다.

공포와 절망으로 범벅이 된 혈육의 모습을 보는 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재밌었다.


하지만 이내 역겨움만 찾아왔다.

덕분에 그도 이 빌어먹을 가족의 일원이라는 걸 재차 자각할 수 있었으니까.


“...역시 헛소리긴 하죠? 바쁘실 텐데 실례했어요.”

- 아냐, 괜찮아. 나도 종종 술 마시고 헛소리하니까. 근데 조금 전에 말한 것 있잖아.

“네.”

- 난 적어도 어떤 미친년이 그렇게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예준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예지는 모르고 있을 게 뻔하니까 구태여 질문을 던졌다.


“왜요?”

- 몸이라도 팔게 할 것 아냐. 대충 다리만 몇백 번 벌리면 빚은 다 갚겠다.

“하긴.”

- 그래... 고생 많았다. 나중에 밥이라도 사줄 테니까 놀러 와.

“감사합니다.”

- 이만 끊는다. 지금 손님이랑 얘기하고 있었거든.


이내 전화가 끊어졌다.

이예준은 핸드폰을 들어 올려 주머니에 넣었다.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아둔한 그의 형이라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리는 없었으니까.


-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