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초반, 첫 등장하는 악역 집단의 중간 보스로 주인공을 끊임없이 위기로 몰아넣지만 끝내 패배하고 마는.


 악당이지만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소위 말하는 '세탁' 과정을 거치고 주인공 일행에 합류해 에피소드 최종전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하지만 에피소드를 거듭할 수록 파워 인플레를 따라가지 못해 '아군이 되면 약해지는'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며 인기도, 분량도 줄어 종국에는 아주 가끔, 얼굴만 비치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그런 흔한,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나는 거울을 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이는 금발, 바다를 담은 것 같은 푸른 눈동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매. 아름답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곳이 창작물의 세계임을 감안하면 특출날 것이 없는 외모였다. 다른 히로인들은 동물 귀부터 뿔이나 꼬리, 날개, 헤일로 같은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아......"


 한숨을 쉰 뒤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2049년 5월 17일. 기억이 맞다면 내가, 그러니까 이 '캐릭터'가 악역으로 활약하는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얼마 전 시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폰이 울리더니 발신자 불명의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


[ 3번 폴더의 7번 파일을 확인할 것. ]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내용이었지만 이건 일종의 암호였다. 지급된 서류의 3장 7번째 인물을 제거하라는.


 처음 봤을 당시에는 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참 허술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기사, 12년을 연재한 작품이다. 그때 나는 아직 중학생이었으니 당시 감수성이라면 뭘 보든 멋있고 신기하게 느꼈겠지.


 작품에 나왔던 대로 문자 메세지를 삭제한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목표 대상이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한참 동안 천장과 눈싸움을 하던 나는 갈증이 나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냉장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위쪽의 냉장실 문이 벌컥-열리더니 가장 아래있는 도어 바스켓에 세워져 있던 1.5L짜리 제로-콜라 페트병이 날아와 내 손에 잡혔다.


 생긴 건 귀족 영애면서 좋아하는 음료는 서민 음료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그래서 좋아했던 거지만.


 뚜껑을 열어 두어 모금 들이켰다. 차갑게 식은 탄산이 식도를 넘어 위장에 내려가니 저도 모르게 트름이 나왔다. 무의식 중에 한 행동이라 달라진 내 트름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맞아. 지금은 여자아이였지. 이런 건 주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


 쯧, 혀를 찬 나는 콜라 뚜껑을 닫은 뒤 냉장고로 되돌려 놨다. 물론 염동력을 이용해서.


 다시 침대에 누운 나는 처음에 했던 고민을 다시 떠올렸다. 솔직히 얘기해 지금의 주인공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초반 주인공의 약점은 물론 '내'가 어떻게 파워 업을 하는지 모두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편법을 쓰면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도 통째로 밀어버릴 수 있다. 문제는.


'그래도 되나?'


 작품 세계관은 언뜻 보기에는 밝고 희망 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초반부의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외계 괴물을 쏟아내는 게이트와 외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중반 초입부터는 급격한 파워 인플레와 함께 암울하기 짝이 없는 전개가 이어진다. 비중 없는 조연들이 픽픽 죽어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일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주연급 인물들도 거침없이 썰려 나간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전투력도 최하위인 얘가 작품 최후반부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을 비트는 일에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따라가기만 해도 목숨은 보장되니까. 그러나......


'나는,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


 나는 내가, 그러니까 이 '캐릭터'가 다시 한번 활약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당장 파워 인플레에 밀려 엑스트라만도 못한 조연 자리까지 밀려났지만, 작품 초반 인기투표에서 3위 안에도 여러 번 든 만큼 언젠가 기연 에피소드를 받아 다시금 주연으로 합류할 것이라 믿었다.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따라갔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희망과 달리 작가는 작품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캐릭터'는 주인공이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하지 못했다. 단순히 작가가 잊어버린 것 일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나(캐릭터)는, 주인공에게 동료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건, 싫다. 또 다시 내(캐릭터)가 주인공에 잊혀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훈련을 하자. 강해지자. 편법을 쓰던 기연을 빼 먹던 할 수 있는 일은 전부하자.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외신을 쓰러트리고 세계를 구하는 그날까지 주인공의 라이벌로 남자.


 주인공이 내게 기연을 빼앗겨 강해지지 못했다면 내가 그 기연이 돼주자.


 이번에는, 절대 잊을 수 없게 하자.


 설령, 내가 그 외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라는 내용으로 암타물 써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