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록!"


우으, 거친 기침과 함께 옷이 축축해 지는게 느껴졌다. 


"아침에 빤 옷인데..."


솔직히 아침에 빨았든, 점심에 빨았든, 어제 빨았든 크게 상관할 건 아니었다. 그저 다시 세탁소에 가는게 귀찮았을 뿐이었다.


"엄마! 옷 좀 빨아 주실수 있으세요? 엄마?"


부엌에 있어야 할 엄마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다시 한번 엄마를 불러 보았지만 돌아 오는 것은 메아리 뿐이었다.


엄마가 이 시간에 밖에 나가셨을 리가 없는데? 언제나 가정에 충실한 엄마는 저녁에도 아침밥을 준비해 주시는 분이셨다. 벌써 11시가 되어가는 이 야밤에,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질 분은 아니셨다.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쇼파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아빠를 불러 보았다.


"아빠, 엄마 어디있어요?"


"....."


"아빠?"


아빠에게서 돌아 와야 할 커다란 목소리의 답변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빠는 유쾌하고 다정한 분이셨다. 살짝 엉뚱한 면도 있었지만 아빠만큼 우리 가족 중에 재미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아빠는 퇴근은 늦게 하셨지만 집이 왔을 때는 언제나 집에 틀어 박혀 있던 집돌이였다.


이 야밤에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끼익 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 앞으로 갔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덜그럭 거리며 요동치는 손잡이는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점차 심장은 두근 거려 왔고 내 눈 앞에 있는 손잡이는 그 무엇 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엄마....."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손잡이를 잡자 어지럼증이 머리를 강타하며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흐억! 허억, 허억...."


죽을 것만 같았던 심장의 요동침이 잠잠해 지자 후덜 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방 밖으로 나왔다.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그런 장소는 두려웠다.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았가.


"무, 무섭네... 하하."


뒷 걸음질 치며 읖조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는 애써 두려움을 참는 듯해 보였다. 제발 뒤에서 유령이 덥치지 않기만 바랄 뿐이였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꼭 감은채로 방을 향해 뒷걸음질 치던 와중 무엇인가 날 건드리는게 느껴졌다.



"어?"


와르르르!!!


이네 무엇인가 나를 덥쳤고 난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으악!!! 하, 하지마! 귀신아, 꺼져! 꺼지라고오!!!"


손을 휘휘 휘두르며 귀신을 맞추려던 내 손에 닿는 거는 없었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있던 나는 두려움에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한참을 난동을 피웠을까? 어디선가 찰칵이라는 소리가 들리며 눈에 갑자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을 이리 저리 휘두르다 불 키는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내, 귀신은 밝은 곳에 없으니 말이다. 


"후..."


안도의 한숨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떠 보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길죽한 팔다리는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니 벽에 이리저리 많이 박아 버려 곳곳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으으....."


손으로 다리를 쓰러내리며 집안을 둘러 보았다.


불이 켜진 집은 적막했다. 고소한 냄새가 나야 할 것만 같았던 주방에는 배달음식이 쌓여 있었고, 분주히 전화가 울렸어야 할 아빠의 폰에서는 그저 들을 이가 없는 알람만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시끄러운 키보드 소리가 나야 했던 동생의 방에서는 하염 없는 고요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난 알 수 있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은 이곳에 없었다.


* * *


거기서 의식은 끊어졌다. 이후 생각나는 것은 모두 거먼 연기에 가려져 떠올릴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귓가에서 울리는 얇은 신음 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눈을 얇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다 거울을 발견했다.


거실에 세워져 있던 거울 속에는 사방에 널려 있는 쓰레기 집구석 속에 여자 한명이 쓰러져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거울 속의 그 여자의 고개도 돌아갔고 팔을 올려 보자 그 여자의 팔도 같이 올라갔다.


거울 속에서 비치는 그 여자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다크 서클과 떡진 기다란 흑발 속에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미녀가 있었다. 


오똑한 코와 얇은 입술 기다란 흑발과 커다란 눈은 엄마를 생각나게 했고 각지고 날카로운 눈매는 아빠를 연상캐 했다.


땀이 어찌나 많이 났는지 여자에게 헐렁해 보이는 커다란 흰 티는 몸의 굴곡에 딱 달라 붙어 심장의 오르내림과 함께 천장에 붙은 전구의 빛을 반사하며 그 살결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바라보고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생각했다.


정말 별일이었다.




우리 집은 부유했다. 돈이 부족해 음식을 가린 적도 없었고 학비가 부족해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적도 없다. 아빠는 개인 사업을 했고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재산까지 물려 받았을 때, 이 집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도하자 남은 금액만 100억 가까이 됐었다. 하루 아침에 100억을 손에 쥐게 된 나는 고작 100억을 위해 100조의 상실을 경험했다. 


나에게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알량한 돈 따위로 위로할 순 없었다.


그리고 별일이 생겼는지 내 과거부터 현재의 성별이 바뀌어 한 평생 여자로 살아온게 된 지금, 나는 100억을 가지고 있는 백수 미녀가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돈 많은 백수 그 자체였다.


“하아…..”


거울 앞에 앉아서 쓸데 없이 예쁜 얼굴을 몇번 쓰다듬어 보던 나는 어기적 거리며 일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검은 핸드폰 뒷면에는 고등학생 때 붙여 놓았던 포켓몬 스티커들이 보였다. 


나는 포켓몬빵을 정날 좋아했다. 많이 먹을 땐 하루에 한개씩도 먹었는데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게 내 취미가 될 정도였다. 정말 여러가지 예쁘고 멋있는 포켓몬들을 모았는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포켓몬은 단데기 였다. 힘들 때마다 단데기를 보고 단단해지기를 외치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단단해지기!“


시발, 수치심이 얼굴 끝까지 올라왔다. 창백했던 피부가 붉게 물들어 땀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고딩때는 이걸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남자여서 할 수 있던 걸까? 그래도 가슴속에서 미미하게 차오르는 듯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수치사할게 기정 사실이니 얼른 휴대폰을 켜 청소 업체를 불르고 소파에 누워 버렸다.


“하…..“


소파에 쓰러지듯 눕자 졸음이 몰려 왔다. 이 귀차니즘은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변함 없는 모양이었다. 땀에 절어 질척 거리는 티셔츠에서 올라오는 묘한 냄새를 맡다보니 씻어야 한다는게 절실히 느껴졌다. 냄새가 나쁜 건 아닌데, 움직일 때 마다 묘한 소리가 나는게 썩 좋진 않았다. 찝찝하기도 했고.


“귀찮은데…..”


씻어라~,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엄마는 내가 귀찮음과 식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던게 기억났다. 그때마다 엄마한테 투정 부렸는데 그러면 엄마는 씻어라~하고 무시해 버렸었다.


“네…..”


들을 사람 없는 대답을 하고 화장실에 폰을 들고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유튜브 뮤직에 들어가 매일 듣는 노래를 틀었다. Chopin Waltz Op.69 No.1. 샤워 부스 속에서 흘러 나오는 클래식 노래를 부르는 단데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침울하게, 슬프게, 비관적으로 지나갔어야 할 하루였다. 근데,


ㅂㄹㅋ

[야이 시1발 새끼야 넌 죽이고 간다]

ㅂㄹㅈㅋ

[아 시발 좀!!!!]

ㅈㅂㅋ

[…..쾅쾅ㅋ ㅗㅇ-]


“하하;;”


-개못하쥬?

-ㅈㅂ이쥬?

=벌래캇

-꼴받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래쉑 ㅋㅋㅋㅋ

-넌 나가라

-ㅋㅋㅋ


…..인터넷 세상 속에서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