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느껴지는 건, 극심한 고통 뿐. 제가 서 있던 곳과 멀리 떨어진 나무에 머리라도 박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고통이 느껴지는 곳은 더 있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

사지가 날려나가 그곳에서 대량의 피가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떡하죠. 엄청 아프네요.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날아가면서 목도 다친 건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중요한건 엄청 아프다는 것 뿐. 

이대로 죽는걸까. 여신님이 전생 시켜준 이세계란 곳의 땅을 밟자마자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나저나, 몸이 생각보다 가벼운데요? 아니지. 사지가 잘려나갔으니 가벼운건 당연한 얘기군요.

하아.

이제, 어찌돼도 좋네요. 어차피 죽을테니까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맑은 하늘이 참 예쁘네요. 죽기 딱 좋은 날입니다.

웃으며 눈을 감자-.


-쿵! 하고, 제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등장했습니다.


‘치킨….’


네. 제가 생각해도 멍청한 생각이었습니다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닭이, 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발에 피가 묻어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치킨한테 차인 것 같네요. 저만한 덩치가 발로 찼는데 사지가 잘린 걸로 끝나다니.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녀석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절 몇 분동안 내려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무나도 섬뜩한 미소.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는 미소였습니다. 그러고는, 발을 들어올렸습니다. 

차라리 이게 나을 것 같네요.

이런 고통은 싫습니다. 여신님에겐 죄송하게도, 전생하자마자 3분도 안 돼서 포기해버렸습니다.

만일 죽어서 다시 만난다면, 꼭 사죄를 드려야겠네요.


그렇게 생각하자, 녀석은 발을 휘둘러 몸만 남아있던 절 다진고기로 만듭니다.


죽었다.

분명 죽었어야 합니다.


“어라…?”


하지만, 전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 몸의 이변을 알아챘습니다. 하얀 피부와 작은 손. 팔과 다리도 가느다란게 남자였던 제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그리고 머리카락. 분명 예전에는 어깨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이젠 날개뼈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고 염색한 것처럼 은발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목소리도, 원래 목소리보다 확실히 작고 예뻤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만 더 중요한게 남아있습니다.

전 어째서 멀쩡히 살아있는가. 분명 치킨의 발차기로 인해서 다진 고기가 됐을 터. 회복 가능성은 꿈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그런데 마치 꿈에서 일어난 일 마냥, 제 몸은 멀쩡했습니다.

그 순간 ‘설마’하고 스쳐지나가는 한 가지 가능성. 곧바로 근처에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주 높은 게 죽기 적당한 높이네요. 괜찮아요. 여기서 죽으면 죽는거고, 죽지 않으면 제 가설이 맞는 거니까.

망설임 없이 뛰어내립니다. 머리부터 부딪쳐 즉사는 확정. 


하지만.


“하하….”


아니나 다를까, 분명 머리부터 떨어져 목이 꺾여 죽었을 터인 저는.

-다시 멀쩡히 ‘부활’했습니다.



천천히, 현재 제 상황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난 죽어서, 여신님이랑 만났고.’


여신님은 절 이세계에 전생시켜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세계에 새로운 몸으로 전생한 순간, 치킨에게 걷어차여 다시 죽었습니다.

음. 지금은 이게 다네요.


확실한건, 지금 이곳은 이세계.

전 영문도 모른채 여자가 됐고.

거기다, ‘불사’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말고 온갖 방법을 써서 확인했습니다.

바위에 머리를 박는다거나.

나뭇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몸을 찌른다거나 하면서. 그 정도 고통은 익숙하니 금방 적응 됐습니다.


그 덕에 제 몸이 불사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고요.

그럼 다음 문제는 무엇일까요. 네. 여기서 어떻게 지내냐네요.


“마을이라도, 찾아볼까?”

이세계라고하지만 마을 하나 없을까요. 거기다 원래 이세계 전생이라 하면 근처에 초보자 마을이 있는 건 기본 상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찾아봅시다, 마을!


주먹을 쥐며 자신을 고무시킨 뒤, 마을을 찾아 나섰습니다, 만….


‘아, 안 나와…!’


이상해요. 10분은 걸은 것 같은데 마을에 ‘마’자도 안 보입니다. 설마 마을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나싶어 뒤를 돌아봤습니다만, 이대로 돌아갔다가 또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불안감 때문에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걸어간 끝에 마을이 있기를 기도하며, 하염없이 다리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10분동안.

30분동안.

한 시간동안.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걸었습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네요. 체감 상 거의 다섯 시간은 걸은 듯 합니다. 중간중간 쉬기도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이대로 마을을 찾지 못한다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평야에서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건 싫어요.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다시 걸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겐 미안하지만,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하니까요. 아니, 죽지는 않겠습니다만 부활한다는 걸 들킨다거나, 이상한 곳에서 부활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니까요.

그렇게 계속 걸은 결과.


“차, 찾았다…!”


드디어.

드디어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듯한 모습이지만, 마을이 확실합니다. 너무나도 반가워 지팡이를 집어던지며 지친 몸도 잊고 달렸습니다.

마을은 점점 가까워졌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

그런 안심감 때문일까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도달하자, 경비원 두 명이 창을 들이밀었습니다.


“누구지?”

“ㅇ, 아! 저, 전 말이죠. 그러니까….”


어라?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전생자? 믿어주기나 할까요? 미친 년 취급해서 감옥에 넣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면, 으음. 아!


“여, 여행자에요! 이곳저곳 여행을 하는 사람입니다만, 중간에 괴물한테 습격당해서….”

에헤헤.

멋쩍게 웃자, 경비원들은 ‘여행자인가.’하고 중얼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환영해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쇼!”

“저희 ‘디스보우 마을’에!”

아아…. 어찌 이리 감동스러울까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수고하라는 인사와 함께 두 명 사이를 지나갑니다.

마을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까요. 우선 돈도 없으니 여관은 무리입니다. 그러니 골목에서 지내야겠죠?

흐음. 떨어진 비닐이나 쓰레기가 많이 있으려-.


“-잠깐. 어디 가지?”

어라?

경비원 분이 제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어, 어째서?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ㄴ, 네?”

놀라서 되묻자, 경비원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신분증’ 말이다. 그걸 보이지 않으면 마을 출입은 금지야.”

그, 그럴 수가….

시, 신분증? 그런 거 없는데…!


“없는건가?”

“죄, 죄송합니다….”

이걸로 끝인걸까 싶은 찰나.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셔야죠. 신분증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있는 카드란 말입니다.”

어라라?

“그래도 카드니까요. 신분증을 잃어버리시는 분은 많습니다.”

설마! 그냥 들여보내주려는-!


“-그러니! 은화 한 장이면 됩니다.”

저, 돈 없는데요….



땡전 한 푼 없다는 걸 알아채자, 경비원은 소녀를 마을 밖으로 내쫓았다. 소녀는 훌쩍이면서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들은 법을 지켰을 뿐일테니까. 그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한건 자신이라며.

소녀는 자신을 탓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위험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평야에서 잠을 취하는 것도 자살 행위기 때문이다.


어두운 탓에 나뭇가지에 베이고, 뿌리에 걸려 넘어져 상처가 남았지만 계속 나뭇잎을 모았다.

어느정도 나뭇잎을 모으자 소녀는 평야로 돌아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위험은 없는지 확인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은 소녀는 나뭇잎을 깔고 그 위에 누워, 다시 나뭇잎을 이불 삼아 몸 위에 덮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세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지금 자신이 어디있는지도. 디스보우라는 마을은 어떤 곳인지. 또, 처음에 자신을 죽인 괴물의 정체도.

하지만, 소녀는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빠르게 적응했고 마지막엔 ‘미소’를 띠우며 편안하다는 듯 잠에 들었다.


그런 소녀가 다시 눈을 뜬 장소는, 새하얀 곳이었다.


‘여긴….’


익숙한 장소에 소녀가 눈을 깜박거리자, 눈부신 빛과 함께 아름다운 미인이 등장했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백발.

그와 반대로 매우 빨간 눈동자.


아름다운 미인은 소녀를 알아보고는 미소 지으며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ㅇ, 아, ‘여신’님! 안녕하세요!”

소녀가 절하자, 여신은 그럴 필요 없다며 쓴웃음을 뱉었다.


“자, 이세계 전생한 소감은 어떤가요?”

“그, 그게 말이죠….”


소녀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전생하자마자 한 번 죽은 것.

자신이 불사라는 것.

또 돈과 신분증이 없어 마을에 들어가지 못해 평야에서 잠을 청한 것.

모두 말하자, 여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요, 그 정도.”

“네? 아, 설마!”


여신님이 준비해주시는 걸까싶어 소녀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무슨 기대를 하시는 거죠? 괜찮다고요. 참으라고요, 그 정도는.”

소녀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자, 여신은 뭘 기대했냐며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당신 재밌네요! 전 전생을 담당하는 여신! 그 이상이하도 아닙니다. 아이고, 배야. 당신한테 간섭할 이유도, 권한도 없다고요, 전. 그리고 불사는 제가 설정했습니다. 기껏 힘들게 전생시켜줬는데 쉽게 죽어버리면 일이 많아져서 귀찮잖아요?”

여신도 모든 걸 털어놓았다. 소녀의 눈에선 이미 생기가 사라졌고 절망만이 감돌았다.


“뭐, 그래도. 절 웃게 만들었으니 조금 도와드리죠. 이얍, 퐁!”


우스꽝스러운 주문을 외자, 소녀의 앞에 목검이 나타났다. 소녀가 목검을 손에 쥐자, 여신이 손가락을 가로로 휘둘렀고 그 궤적을 따라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은 당신이 막 전생한 곳 근처에 ‘고블린’이 무리를 지었습니다. 분명, 고블린의 귀 한쌍이  동화 2개 가치였으니, 무려 열 마리만 잡아도 은화 한 장!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답니다~!”

“고블, 린…?”


생소한 단어는 아니었다. 고블린이라면, 작고 초록색 피부를 가진 괴물 아닌가. 무리를 짓고 흉포한 성격이라고도 한다.

그런 괴물을,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에게 목검만 쥐여주며 열 마리를 잡으라는 여신도 분명 미쳐있었다.


“그래도 좀 딱하니, 다음에 눈을 떴을 땐 처음 전생하고 밟은 땅일 겁니다. 좋아~! 파이팅, 파이팅! 열심히 고블린 사냥, 하자고요~!”


마치 놀리는 듯한 분위기를 조정하며 여신이 응원하자, 소녀는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봤다. 반응이 없자, 여신은 흥이 식었다며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소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전생자를 놀리는게 참 재밌다니까요~! 이번 녀석은 얼마나 버티려나~ 가 아니라. 생각해보니 저 녀석 불사였죠, 참. 에잉, 재미없게.”



“헉!”


눈을 뜨자 익숙한 장소가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치킨에게 다진 고기가 됐던 그 장소. 여신님이 그러셨죠. 처음 밟은 땅으로 이동시켜준다고.

설마 진짜일줄은…. 이게 여신의 힘? 그리고 옆에는 목검도 나란히 떨어져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들어올려 가볍게 휘둘렀습니다만, 역시 목검이라 그런지 이거에 맞는다고 아플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목표는 고블린 열 마리! 오오! 힘내자, 나!


결심했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법. 노을이 지기 전에 숲으로 들어가 고블린을 찾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분명 키도 작고 초록색 피부를 가진 괴물이죠. 여신님도 이 근처에 있다고 하셨으니 금방 나오겠죠.


한 5분동안 숲을 헤매자, 고블린으로 추정되는 작은 괴물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절 눈치 못 챈 것 같으니 살금살금 뒤로 돌아 기습을 할 겁니다.

운 좋게 뒤를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에잇!”


-기합과 함께 검을 세로로 휘둘렀지만, ‘퍽’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고블린은 정수리만 쓰다듬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분노를 내비쳤습니다. 그러고는 들고있던 몽둥이를 휘둘러 옆구리를 때립니다.


“케흑…!’


역시 목검이라 대미지가 없는 걸까요. 나름 온 힘을 다해 가한 일격이었는데, 고블린에겐 꿀밤 정도였나 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때리고 피하고, 때리고 피하고!

하지만, 말이 쉽죠.


“으럇!”

기습할 때와 달리 고블린은 제 공격을 빠르게 피해냈지만,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고블린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속수무책으로 맞을 뿐이었죠.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계속….


“헉….”

상처는 제 몸에만 가득 났습니다. 고블린에게 준 피해라고는 처음 기습할 때의 꿀밤 뿐. 작다고 얕본 게 흠이었습니다. 작은만큼 속도가 너무 빨라…!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요…!”


고블린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건 접니다. 마을에는 발도 들이지 못한채로 생을 마감, 어라?


‘나, 안 죽잖아.’


이 중요한걸 잊고 있었다니. 전 정말 멍청한 것 같네요. 이제, 무서운건 없어요!


“으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고블린을 덮쳤습니다. 작은만큼 속도는 빠르지만, 힘은 저보다 약하죠. 고블린이 절 떨어뜨리기 위해 계속 몽둥이로 옆구리를 쳐댔지만, 애써 무시하며 저도 목검으로 녀석의 목을 계속 쳤습니다.

퍽! 퍽!

고블린이 옆구리를 때릴때마다 피를 토할정도가 됐지만, 녀석은 아직 쌩쌩해 보입니다.


퍽!

드디어 고블린도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좀 승산이-.


-퍽!


“흣…!”


고블린이 몽둥이로 때리는 건 소용없다고 판단했는지 다리를 휘둘렀습니다. 문제는, 이 녀석이 발로 찬 게 제 가랑이라는 점.

찌릿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힘이 빠졌고 고블린은 그 틈을 타 박치기로 절 떨어뜨리며 일어났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가랑이에 손을 끼운채 다리를 흔드는 저에게 고블린이 다가옵니다. 아, 공격을 막아야 해요.

막아야-.


-퍽!


“웃….”

고블린이 면상을 강하게 때립니다.


“자, 잠깐….”


제 말은 무시하며, 계속 때립니다.


“ㄱ, 그만….”

계속.

계속 때립니다. 이미 시야는 피에 가려졌고, 저항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몸에 힘은 풀렸고, 고블린이 몽둥이로 때릴때마다 팔다리가 움찔하는 정도.

이대로 또 죽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집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요. 오늘의 실수를 발판삼아 다시 고블린과 싸우면 되니까.


죽고난 후의 일을 상상하던 중, 무언가가 손에 걸렸습니다.

목검.

여신님이 주신, 목검이었습니다.


아아, 그래요. 이대로 당하기만 하면, 너무 분하잖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한 대. 한 방만큼은, 제대로!


“크헥….”


고블린이 짧은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납니다. 얼굴에 가득한 피를 닦아내자, 제 목검이 고블린의 배를 관통한 모양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고블린 배에 박혀있는 목검을 비틀어 가로로 베자, 내장이 흘러나오며 붉은 피를 뿜어댑니다.

마치, 사람처럼.


“웁….”


대량으로 뿜어져나온 피와 비릿한 냄새.

바닥에 흩뿌려진 내장. 너무나 역겨운 광경에 이물질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괜찮아요….

고블린의 귀.

귀 한 쌍이, 분명 동화 두 개. 열 마리가 은화 한 개. 그렇다는 말은, 고블린의 귀 스무개가 곧 은화 한 장이라는 말이겠죠.

이 짓을, 아홉번 더….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라.

썩 달갑진 않았지만, 고블린은 괴물입니다. 나쁜 놈입니다. 죽여도, 괜찮은 거겠죠. 네. 괜찮을게, 분명해요….


고블린의 귀를 제대로 챙긴 뒤 이불로 돌아갑니다. 벌써 노을이 지고 있네요. 고작, 고블린 한 마리 잡은 걸로요.

아아, 이불에 도착하자마자 안심이 됩니다. 절로 몸에서 힘이 빠지고…. 눈이, 감기고….


그렇게.

전 한 번 더 죽었습니다.



부활한 뒤, 전 망설임 없이 고블린 사냥을 계속했습니다. 네 마리 째까진 힘들었지만, 다섯 마리부턴 저도 요령이 생겨 나름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름’이지 고블린 사냥 자체는 어려웠습니다. 그야 전생엔 싸움과는 별로 연도 없었고 검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검을 휘두를 뿐입니다.


“후우….”

여섯 마리 째를 잡고 귀를 챙겼습니다. 이제 슬슬 고블린 사냥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후훗.

뭐, 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그나저나 평야가 근처라 그런지 잡초가 많아서 좋네요. 잡초는 별다른 가공없이 흙만 씻어내면 바로 먹을 수 있어서 가성비 최강의 식량입니다.

그날도 고블린 사냥도 끝났겠다 잡초를 뜯으며 돌아가려했지만.


“어…?”

고블린의 무리가 절 포위했습니다. 고블린 한 마리를 잡았다고 너무 긴장을 푼 탓일까요. 너무나 쉽게 포위당했습니다.


결사의 각오를 하며 검을 들어올린 순간-.


“-악!”


무언가 해 보기도 전에 뒤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몽둥이를 휘둘러 뒤통수를 갈겼습니다. 앞으로 넘어지자, 모든 고블린이 달려들어 절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합니다. 분명 죽이려면 몽둥이로 다지는게 효율이 좋을텐데. 이 녀석들은 밟기만 합니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절 대충 밟던 고블린들이, 힘을 합쳐 절 들어올리더니 어딘가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빠져 저항할 새도 없이 끌려가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앗…!”


“읏….!’


‘ㅁ, 뭐야, 이거….’


수많은 여자들이, 밧줄에 묶여 고블린들에게 범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고블린은 작고 흉포하기도 하지만, 성욕도 왕성하다고. 그래서 가끔 여자를 납치해 성노예로 부려먹는다고.

그, 그럼 여기까지 끌려온 저도…?

“으아아!”


너무나 무서워 소리를 지르자 고블린 한 마리가 닥치라는 듯 소리지르며 몽둥이로 머리를 때립니다. 

그 탓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나약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긴장을 풀지 않았더라면.

포위당한 거에 굳지 말고 바로 강행돌파를 시도했다면.


고블린은 제가 입고 있던 옷까지 벗기며 밧줄로 묶었습니다. 깨끗한 피부가 드러나자 고블린들이 모여들어 몸 곳곳을 핥기 시작합니다.


“흑….”

눈물만 흘렸습니다. 팔다리가 묶여 저항하지도 못하니,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여신님이 주신 목검도 포위 당했던 곳에 흘리고 말았으니 무기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딱딱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습니다.

감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남자였으니까요.


“으, 아….”


단단하고 두꺼운 초록색 무언가를 들이미는 고블린. 눈물을 머금으며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 회피해봤지만, 고블린은 제 머리를 붙잡더니.


강제로 입 안에 자신의 것을 물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였다.


“읍….”


고블린의 자지를 뿌리까지 삼킨 소녀. 심지어 다른 한 마리는 소녀의 아랫입을 탐하며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어두운 동굴 안을 가득 채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고블린들의 흥분 시켰고 그들이 더욱 힘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얼마나, 지났지…?’


어두워서 시간 감각조차 옅어졌다. 대체 얼마나 범해지고 있었을까. 1분? 5분? 그것도 아니라면 몇 십 분?

소녀의 체감만 이러지 실상은 몇 시간일 수 있었다. 이미 소녀의 눈에선 생기가 사라졌고 그저 고블린의 생식기를 탐하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쾌락에 절여졌다기 보다는, ‘순응’했다.


그저 고블린이 들이밀 때마다 물어주고, 받아주고. 신음조차 내뱉지 않으며 그저 기계처럼 정해진대로 움직이기만 했다.

그래. 장난감처럼.


하지만 고블린은 그런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신음과 함께 타락해 육변기가 되어 자지만 원하는 상태여야 했는데 말이다.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봐도 돌아오는 건 기계같은 행동과 변화없는 표정.

흥미를 잃자, 고블린들은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퍽! 퍽!

고블린 열 마리가 자비없이 소녀를 몽둥이로 때렸고, 어느샌가 그녀는 인간의 형태가 아니게 되었다.

어두운 탓에 소녀의 시체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 유추는 가능했기에 주변에서 범해지던 여성은 다음에 죽는 건 자신이 아닐까하며 더욱 격렬하게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분이 좀 풀렸는지 키히힉거리며 다음 여자를 선택하는 고블린들. 계속 여자를 범하며, 때로는 밖에 나가 다른 여자를 납치하고.

또 그 여자를 내킬 때까지 범하고. 이 짓으로만 한 시간.

고블린들은 거점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괴물’ 한 마리가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로.


먼저 위화감을 느낀 고블린은 방금 막 납치해온 여성 마법사의 뺨을 때린 뒤 어두운 동굴을 해쳐나갔다.

그러자, 누군가가 고블린의 뒤에서 그를 습격했다. 바위로 강하게 뒤통수를 맞은 탓에 즉사한 고블린. 

소리 없이 죽은 걸 확인한 소녀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계속 고블린을 죽여나갔다. 그렇게 세 마리 정도 죽인 찰나-.


“-아, 들켰네.”


결국 동굴 안에 있던 모든 고블린이 소녀를 둘러싸고 말았다. 하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으며, 주먹만한 돌을 집었다.

고블린이 먼저 돌격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소녀는 고개만 갸웃한 뒤 아무렇지 않게 그의 머리를 돌로 때렸다.

모든 고블린들이 돌격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넘쳐나는 광기 때문인지 소녀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고블린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돌을 휘둘렀다. 팔이 부러져도.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러도. 온 몸에 멍이 들어도. 다리에 구멍이 뚫려도. 호흡이 힘들어져도.

계속 돌을 휘둘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소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죽어 부활한 참이었는지 상처로 가득했던 몸은 깨끗했다.

주변에는 고블린들의 시체로 가득. 소녀는 미소와 함께 최대한 뾰족한 돌을 찾아 고블린들의 귀를 챙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체가 된 모든 고블린들의 귀를 챙기며 동굴 출구를 찾아헤맸다. 


출구를 찾았지만, 그 광경은 처참했다.


“나 때문, 이려나.”


납치당해 고블린들에게 강간당하던 모든 여성들이 배가 갈린채 시체가 되어 출구 앞에 널부러져있었다.

소녀는 자책하면서도 그녀들의 시체를 넘어 동굴을 뒤로 했다. 오랜만에 맡는 향기로운 공기. 바깥 공기가 이렇게나 향기로웠나?

소녀는 웃으며 고블린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떨어뜨린 목검을 찾아 나뭇잎 이불로 걸어갔다.

고블린 귀를 제대로 챙겼음을 확인하자, 안심감이 몰려왔고 소녀의 눈은 저절로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뭐냐. 마을에 출입하기 위해선 신분증이나 은화 한 장이-!”


-툭.

준비해두었던 고블린 귀 열 쌍을 집어던지자, 경비원 분들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습니다. 두 분은 고블린의 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이 준비하다니.”

“준비성이 철저한 녀석이구만!”


이렇게 많이? 뭐, 상관 없습니다. 남은 고블린 귀는 아직 60개나 있으니까요. 다 해서 30쌍이나 됩니다.

귀 스무 개에 은화 한 장이니 이걸로 벌써 은화 두 장! 보자~. 계산해보면~ 모르겠네요! 이런 어려운 셈은 잘 못하니까 말이죠.

그래도 한 쌍이 두 개라는 것쯤은 압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블린 귀를 팔 수 있는데는 없는지 물어보자, 다들 ‘길드’라는 곳을 소개해주더군요.

전 바로 길드에 가 모아두었던 고블린 귀 60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와~ 많아라. 잠깐. 이 수는, 서, 설마 고블린 기지에 들어가신 겁니까?”

들어갔다기보단 끌려갔지만요. 그래도 기지에 들어간건 사실이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접수원 분은 절 걱정해주셨습니다.


“저기, 그…. 위험한 질문인 건 압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되서 물어보는데요. 그…. 혹시….”


아, 그런 건가요.

웃으며 고개를 젓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처녀’에요.”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접수원 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블린 귀를 정산해주셨습니다.


“네. 고블린 귀 30쌍, 총 60개죠?”


“네, 네. 그럼, 어…. 은화 세 장인가?”


고블린 귀 스무 개가 은화 한 장일테니…. 어, 맞겠, 죠? 하지만 접수원 분은 고개를 갸웃하시며 상냥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에이, 설마요. 고블린 귀 열 개로 은화 한 장이라고요. 아, 들어오시면서 혹시 은화로 내셨나요? 그러니까~ 다섯 마리만 잡아도 은화 한 장! 여기요! 은화 여섯장입니다!”


그 순간, 제 안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가만히 있자, 접수원 분이 걱정하셨습니다.


“어, 어디 아프세요?”

“괜찮, 아요….”

속았습니다. 그걸 깨달았지만, 이상하게 화는 나지 않네요. 이미 익숙해서일까요. 오히려 이 정도면 괜찮지하고 생각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은화를 받자, 접수원 분이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로 와서 정하질 않았네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이브.’ 네. 이브라고 해요.”


아무래도, 제 이세계 생활은 평탄치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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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전생인데 먼치킨? 어림도 없죠. 차기작으로 생각 중인 소설 중 하나인데, 이대로 '쓰고 싶다' 욕망을 참기만 해선 진짜 미쳐서 다작 시도할 것 같아 분풀이 겸 대충 써 봅니다.


이브의 본래 목표로 해야했던 건 고블린 '다섯마리.' 하지만 '여섯마리'째를 잡자 함정에 걸린다.

가끔은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이 정도면 그리 강한 피폐같지도 않으니까요. 물론 이 다음은 모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