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로 작별이네, 우리.” 



그렇게 말하고, 마리아는 살짝 웃어 보였다. 

분명 기쁜 일일 텐데, 어딘가 슬퍼 보이는 입가의 모양은 그녀가 강한 척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 그러네.” 



이런 결말은 몇 번이나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쓴웃음으로 대답할 수밖에.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이별 연습은 꼭 박하맛 사탕 같아서, 침을 삼키면 씁쓸한 맛 밖에 나지 않았다. 


이 3년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진 게임과, 최종 보스를 토벌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현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한 결과, 수많은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어쩌면 이 가상현실 속에서 만족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이대로 현실 세계에 돌아가도 출발선에 다다를 수 있을 뿐. 

3년 이란 세월 동안 현실의 나는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었고, 세상은 나를 두고 달아나 버렸으니까. 


그런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이 바로 동료들이었다. 


이 거짓 덩어리 세상에 미래는 없다. 

조금 뒤처지는 게 어때서? 조금 아픈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견디고 견뎌 얻어낸 현실이야 말로 진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희망을 받은 것이다. 



“또 만날 수 있겠지?” 



게임에서 현실 세계를 언급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진 시점부터 생겨난 특별한 규칙. 

그걸 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진짜 모습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사룡을 토벌한 지금이야 말로 ‘진짜’ 이별의 시간. 

게임에서 로그아웃 하는 순간, 서로를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게 돼버린다. 


가상 세계에서 더 이상의 관계는 없다. 

그런 결말이 정해진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딱 하나밖에 없겠지. 


울보에다 늘 겁쟁이 었지만, 파티의 리더인 이상 그곳에 발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사 클래스의 숙명이자 뒤에서 나를 받쳐준 동료들에 대한 예의니까.



“뭔가 좀 실망스럽네. 분명 마지막은 세계수의 나뭇가지 위에서, 산뜻한 바람을 맞으며 찾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색이 옅은 단발머리에 챙이 넓은 마법사 모자를 쓴 마리아가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전히 쓸쓸한 향기가 나는 미소.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뭐라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후후, 그러게요. 악취 나는 도마뱀의 시체 위에서 이별이라니···. 뭐, 그래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겠지만요.” 



시선의 아래. 제법 지쳤는지 사룡의 시체에 기대어 한숨을 돌리는 앨리스가 보였다. 

파티의 유지력을 책임지는 성직자 클래스지만, 존댓말로 하는 독설은 꽤나 마음이 아팠었지. 



“정말 현실 세계의 정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거야? 사룡도 토벌했는데, 이제 와서 망설일 게 더 있나?’ 


“그러다 죽어버리면? 지금에야 말하는 건데, 넌 마지막에 방심하는 게 너무 심해.” 



항상 투덜대며 싸우기 바빴던 루시와 이리스는 마지막까지 말다툼을 멈추지 않았지만, 눈가가 붉어진 것이 울음을 참기 위해 억지로 말을 꺼내는 듯했다. 



“바보 같은 파티장이라 정말 미안했어.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마지막 이별만큼은 깔끔하게, 그렇게 결심한 나는 가방 속에서 작은 반지를 꺼냈다. 


‘영원한 약속의 반지’ 


서로의 HP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자, 커플들이 자주 애용하던 값비싼 반지였다. 

지금까지 함께한 우정의 증표로 이 정도 사치는 괜찮겠지. 

어차피 로그아웃이 진행되면 가상 세계의 돈 따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 정말, 마지막까지 매력 없는 남자네.” 


“시우다워서 좋잖아요? 겁 많은 울보 주제에, 이 정도면 나름 발전도 했고.” 


“아아,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건가.” 


“너, 너 따위랑 커플 반지라니! 절대 거절이지만, 우정의 반지라면야 뭐···.” 



마침 로그아웃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쓰러진 사룡과 함께 점점 붕괴되어가는 이 가상현실. 이 상황에서 반지 따위를 건네는 내 모습은 아마 무척이나 바보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로 돌아가도 절대 잊지 않을게.” 



세상의 중심에 선 우리들은 애매하게 웃으며 시스템 창을 활성화시켰다. 


게임을 시작한 날은 모두 다르지만,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함께. 

이제 30초만 지나면 로그아웃을 알리는 시스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우리들의 모험은 그 끝을 고할 것이다. 



“사랑 같은 거, 결국 이루어질 수 없었구나.” 



로그아웃은 이미 진행되었다. 

그 때문인지 동료들의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변해 누가 누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우야. 나 있지··· 너를 엄청 사랑했어. 하지만 거절당하면 더 버틸 자신이 없어서, 결국 이렇게 비겁한 방식으로 고백을 하네.” 



나를 사랑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의문의 목소리. 

그녀의 말투는 억지로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고백이라니···. 

이별이 확정된 이 순간에 너무나도 대답하기 곤란했지만, 나 역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함께 모험을 하고,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을 넘기며 내 버팀목이 되어준 그녀. 

울보에다 겁쟁이에 불과한 나를 한 명의 전사로 만들어준 그녀.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끝내 용기를 낼 수 없어 포기해야 했던 그녀. 


설령 이 세상이 끝이 나더라도,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그녀에게 고백해야 했다. 


비겁한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내가 생각하는 그녀가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마지막에 진심이 통했다는 가능성만 챙길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그녀를 찾을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스템 : 로그아웃을 시작합니다. 5, 4, 3···.]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실없는 대화도, 가까이서 지켜보던 그녀의 얼굴도, 모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되겠지. 

그전에 꼭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나도 너를 사랑했어! 항상 내 옆에 있어준 네가 아니었다면, 난 분명 실패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시간은 야박하기만 했다. 언제나 나를 남겨두고, 혼자 저 멀리 가버리니까. 

내가 미처 그녀의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깜깜해진 시야. 

모든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로그아웃이 시작돼버린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내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한 것이다. 


이게 울보에 겁쟁이인 나에게 딱 맞는 결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서 환한 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 가상현실 게임을 시작할 때, 로그인 과정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장면이니까. 

분명 로그아웃에 성공했을 게임은 내 눈앞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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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시오.] 


- 세상을 구한 용사에게 내리는 여신의 선물입니다. 

그대가 간절히 바라고 있던 것,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 책의 결말은 다시 쓰여질 테니까요. 


마리아, 앨리스, 루시, 이리스. 

당신의 파티에 있을 여성을 찾아,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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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대체···!” 



갑작스럽게 나타난 퀘스트 창. 그와 동시에 침대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아직도 쿵쿵 울리고 있는 심장 소리와, 가쁜 호흡을 반복하는 숨소리. 식은땀 때문에 축축해진 옷이 내 몸에 달라붙고 있었다. 



“설마···.”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서야 상태창을 열어볼 수 있었다. 

분명 사룡을 쓰러트렸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임 시스템들. 

이름이나 스탯, 직업과 스킬창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딱 하나 추가된 것이 있었다.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시오. 

동료들 중에 딱 한 명, 여성이 있다는 그 퀘스트 창이 내 시선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꿈이다. 그래, 아주 나쁜 꿈을 꾼 거야. 

나는 사룡을 토벌한 적도 없고, 이 가상현실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거지. 


하하,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동료들 중에 여성이 딱 한 명 존재한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뭐 하는 거야! 오늘은 고블린 소굴을 토벌하기로 했잖아! 얼른 일어나지 못해?” 



머릿속을 헤집는 나쁜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상을 겨우 진정시키고 침대에서 일어나자 보이는 익숙한 풍경들. 

그 전부를 파악하기도 전에 방의 문이 열렸다. 



“또 늦잠인가요. 하아, 저런 바보 같은 남자와 같은 파티라니.” 


“어서 준비해. 전사인 네가 제일 늦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번에도 도망치면 진짜 가만히 안 둔다?” 



마리아, 앨리스, 루시, 그리고 이리스까지.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이 보였다. 


사룡을 토벌할 때 입었던 장비는 어디로 가고, 모두 낡아빠진 초보자용 옷을 입은 모습. 혹시 장난이라도 치려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재미없는 장난이라고, 그렇게 말하기 위해 나는 몸을 돌렸다.



“저기, 얘들아? 고블린 소굴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하잖아.” 


“···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정신 안 차리면 진짜 화낼 거야.” 



마리아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질책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이 게임 속,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 세계의 죽음과 같았다. 

하지만 고작 고블린 따위에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이건 마치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를 보는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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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 퀘스트가 변경되었습니다.] 


- 삭제된 퀘스트 : 사룡 토벌 


- 변경된 퀘스트 :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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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오죽 답답했는지 친절하게 시스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파티의 화력을 책임지고,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챙겨준 마법사 클래스의 마리아. 


뒤에서 다양한 치료 마법과 축복을 내려주던 수녀 클래스의 앨리스. 


조금 허술한 점도 많고, 말은 거칠게 하지만 속은 다정하던 궁수 클래스의 루시. 


털털하고 두려움이 없어서 꼭 친한 친구 같았던 도적 클래스의 이리스. 


이 4명 중에 3명은 넷카마고, 오직 한 명이 진짜 여성. 

그녀를 찾아 고백하라고, 그러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금 상황을 요약하면 딱 이 정도였다.



라는 내용의 TS물


대충 틋녀들 입장에서는 시우의 사랑을 쟁취해야 암컷 타락한 채로 현실에 복귀 한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