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이기겠지만."


이 대목이던가.

그는 한차례 말을 끊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너희를 이길 것이다."

"헛소리를!"


마법사는 마왕의 말에 발끈하였다.

상시 냉정 침착하던 그에게도, 동료들의 죽음은 뼈아픈 것이었다.

십수명을 넘기던 동료들이 나와 마법사, 단 2명으로 줄어들었으니 지당한 결과였을 테다.


"죽음은 승리를 부르지만 승리가 죽음에게만 불러지는 것은 아니다."

"입을 닫아라 마왕."


동료들로부터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던 나도

그 순간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못 알아듣는다니 아쉽군. 그대들의 승리를 축하는 선물이라도 줄 심산이었거늘."

"너한테서 받을 선물은 네 목 뿐이다 마왕."

"하나만 더 알아두어라. 5백년간, 마족이 중간계 최강의 종족으로 군림하던 것은 폼이 아니다."

"혓바닥이 길다."

'서걱'


더는 역겨운 주둥이의,

동료들을 속이고, 내분을 일으키고, 망자를 희롱하던,

그 역겨운 주둥이의 상하운동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나의 칼은 마왕을 잘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더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


"아으윽...!"


그랬으면 이렇게

걸어다니는 돼지 새끼한테 두들겨 맞을 일도 없었을 텐데.


"아으윽은 개뿔이. 내 말이 우습냐?"


돼지가 내 목을 들어올렸다.

저 놈에게 내 목은 손잡이인 것일까.


"아 아니에, 아니에요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분명히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는데!"


부힛-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녀석은 오크이지, 진짜 돼지는 아니였기에 그럴 리가 없지만.


"인간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거냐? 근성을 보여봐라 근성을!"

"아 아니에요 주인님... 죄송, 죄송합니다...!"


거의 이성이 날아가던 상태였기에

뒤로 갈수록 내 말은 기어들어갔다.


"용사도 너희 종족 출신이었잖냐. 보고 배워보란 말이야."


그 용사가 나다.

마왕을 쓰러뜨린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중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그런 어느 날 눈을 뜨자 남자에서 여자로 변해버렸다.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이 기현상은

나로선 그저 마왕의 저주가 아닐까하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에잉...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오크는 혀를 차며 나를 내던졌다.

용사 시절이었다면 단박에 놈을 두동강 냈을 테지만

여자가 되어 연약해진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콜록거리며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켁, 콜록콜록!"

"야 계집, 네 상황을 아직도 모르냐?"

"알, 콜록! 알고 있어요 주... 인님."

"다른 마족들이 괴롭히지 못하게 특별히 내가 '보호' 를 해준다. 그게 네 상황 아니냐?"


방금도 말했듯이

나는 시름시름 앓다가 여자가 되었다.


문제는,

너무 오래 앓았다는 것이다.


"이번 마왕님은 운이 참 좋으셨지. 용사 같은 방해물도 없었고."


나와 마법사에 의해 마왕은 죽었다.

하나, 마왕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마족의 왕이라는 뜻일 뿐.

마족도 왕이 죽으면 새로운 왕이 취임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던 것이다.


'침공, 승전, 지배'


새 마왕이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왕은 문자 그대로의 짓을 행했다.

인간을 비롯한 항마연합군의 전종족은 마족의 지배 하에 있고

대다수의 인간들은 마족을 주인으로 섬기며 노예 생활을 했다.


이 기똥찬 절망을 저지할 용사는 당시에 한창 몸져누운 상태였고

한 마법사가 단신으로 항거했다는 소식만 들릴 뿐이었다.

지금까지도 후일담이 들려오지 않는 마법사의 이야기는 다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이 마족 우위의 세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죽었을 테지 하고 추측할 뿐이다.


"마족이 주도하는 세상. 인간은 하위 계층인 세상. 인간 여자 혼자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응?"

"마족에는 이, 이상성욕자분들도 많으니까 팔다리가 잘리거나..."

"그걸 안다는 놈이-."


오크가 발을 들어올렸다.

분풀이의 신호탄이었다.


"손님, 한테, 그따구로, 접객을, 해?!"

"잘못... 했어요, 잘모태... 써요!"


아팠다. 갈비뼈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음 소릴 내면 또 난리를 칠 게 뻔했기에 어금니를 물고 용서를 빌었다.


"네가, 정녕, 우리 창관, 파산시킬, 생각, 이냐?"


오크는 창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소의 BDSM이 허용되는 창관이었다.


폭행의 현장으로 사장의 측근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끼익'

"저... 사장님."

"뭐냐. 내가 '교육' 중엔 들어오지 말라고 했었을텐데."

"새로운 손님이 오셨는데..."

"그럼 알아서 처리하면 될 거 아니야."

"인간 창부가 아니면 싫다고 하셨습니다."

"쯧. 또 어떤 인간박이가..."


가게의 유일한 인간 창녀.

그것이 바로 나였다.

원체 가게가 작기도 했지만

인간과의 성교를 원하는 마족은 적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들에게 인간과의 성행위는 사람으로 치자면 수간을 하는 느낌인 게 아닐까.


"한번만 더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내다버릴 거다. 알아들어?"

"네에..."


그 불만, 날 상대로 식인을 하려고 하길래 도망쳐서 들어온 불만이지만

말대꾸했다간 화만 돋울 뿐이겠지.


"가 봐."


새로운 손님이래봤자 기대도 안 된다.

매일매일 이 모양이다.

맞고 때리고.

목을 조르고 배를 두들기고.


"하기는 이런 곳에 오는 것부터가 정상일 리 없지."


다리를 절며 복도를 짚었다.

주인의 '교육' 의 흔적이 아직도 쓰라렸다.

어차피 내일이나 해서 치유 마법 쓰면 깔끔해진다 이건가.


"집에 가고 싶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혼잣말.

다른 창녀들로부터도 인간 출신이라며 외톨이 취급 받는 이 곳에서,

혼잣말은 유용한 친구였다.

나는 때로 손님에게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친구와의 대화를 즐겼다.


"집에 가서 어쩔 거야."


혼잣말의 응용구로 '자문자답' 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 역시, 현재의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이다.


"고향도 상황은 똑같을 거야. 마족에게 지배 받고 있을 테고 인간은 노예 취급이나 받을 걸."


또다른 나의 물음에

또다른 내가 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쩐지 가슴이 아렸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어."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여기선 적어도 사지가 잘려서 팔려나가진 않잖아."

"집에 가고 싶어."

"고집불통아. 세 끼니 밥도 나오고 잠도 재워주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아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밥 한끼도 못 먹고 죽어간다. 아주 배가 불렀구나."

"너무 아파."

"엄살하고는. 마왕하고 싸울 때는 더한 고통도 참았잖아."

"마음이 아파. 매일 옷이 찢겨지고 남자를 받고. 그냥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남자는 좀 받을 수도 있지. 창관인데."

"여기 온 이래로 마음 속에 항상 비명만 떠돌잖아. 울고 싶다는 비명... 화 내고 싶다는 비명..."

"그럼 너는 밥은 얻어먹으면서 일은 하기 싫은 거냐 이 게으름뱅이야?"

"싫어. 이젠 고통 뿐이야.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맞고 찔리고... 이젠 싫어."


나는 나를 배가 불렀다며 욕했고

나는 나를 향해 눈물을 호소했다.


미친 놈.

아니 미친련.

제 3자인 누군가가 봤다면 그리 생각했을 테지.

부정은 못하겠다.

최근에는 이 '혼잣말의 시간' 이 실존하는 인물과의 대화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무서웠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만 둘 수 없었다.

나는 이 혼잣말을 멈춘 다음의 내가,

더는 혼잣말조차 하지 않게 된 이후의 내가 더 무서웠다.


내가 어떻게 미칠 것인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고향에 돌아갔다고 해도, 뭐할 건데. 검술이라도 가르칠 거야? 그 몸으로?"

"... 동생 보고 싶어."

"시우? 시우도 죽었을 거야."

"안 죽었을 거야. 그 애는 영특하고 재능 있었으니까 안 죽였을 거야."

"오히려 그랬으니까 죽였겠지. 차기 용사의 새싹을 짓밟아두어야 하잖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이 있었다.

마왕을 잡으러 떠나는 당시, 동생은 10살이었다.

이름은 시우. 형이 제일 멋지다며 자랑스레 떠들던 남동생이었다.


"마왕을 토벌하는 데 걸린 시간 5년, 마왕이 죽은 후 새로운 마왕이 인간계를 정벌한 이후로 5년.

10년이 지났어.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냉혈한."


'냉혈한' 인 나는 멈추지 않고 힐난했다.

'게으름뱅이' 인 나의 희망을 짓밟았다.


"시우는 죽었어. 넌 답도 없는 창녀고. 이제 그만 받아들여."

"..."

"애초에 동생은 핑계인 거 아니야? 넌 그냥 일하는 게 싫을 뿐인 거 아니냐고."


'게으름뱅이' 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아려서였다.

마음이 너무 아려서였다.


'끼익'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손님이 있는 방의 문을 밀었다.

'나' 와의 대화는 늘상 이런 식이었다.

'나' 의 불만이 터져나갈 성 싶으면 '나' 는 그것을 질책했다.

비난과 호소 사이에서 남는 것은 상처 뿐이었다.

상처에 지친 '내가' 입을 닫으면 대화는 끝났다.


"안녕하세요 손님! 가게 유일한 인간, 틋순이에요!"


아프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



"난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냐..."


머리에 뿔이 난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가벼운 의미의 자조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또한 무거운 의미의 자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양심을 팔아먹고 동족들의 피 위에 서고..."


남자가 이마를 싸매었다.

남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이미 몇인가 있지만 일찍이 남자만큼 괴로워하는 이는 드물었다.

어쩌면 남자에게 남은 양심의 조각은 남들보다 큰 것일지도 모른다.


"이딴 거에 의존해서... 다른 이들은 고통의 수렁텅이인데 홀로 편하게 놀고 먹고..."


남자가 자신의 두 뿔을 움켜쥐었다.

뿔은 남자의 손을 따라 탄력있게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펴졌다.


'마족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비열한 배신자'


고향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해 싸우는 건 못할 망정

마족의 아들이 되어 마족처럼 살아가는 그에게 붙은

명예롭지 못한 이명이었다.


'가슴을 펴라 아들아. 너는 지금부터는 이 마계 공작의 아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을 못 피는 겁니다 아버지..."


새아버지의 입버릇을 회상하는 인간 양아들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께서 지금의 날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청년은 펜던트를 쓸쓸히 바라보았다.

펜던트 속에는 청년의 친형이 어릴 적의 그를 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손님! 가게 유일한 인간, 틋순이에요!"

"들어와라."


끼익- 하며 낡은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은발벽안의 인간이었다.


"어...?"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 아니에요. 손님이 제 아는 사람을 닮아서 잠깐 놀랐네요."


여성, 틋순은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죠. 헤헤."

"난 만난 기억이 없는데."

"그렇죠? 제 기분탓이었나봐요."


틋순이 부끄러운 듯 화제를 바꾸었다.


"손님은 처음 오셨다고 들었어요. 어째, 경험도 처음이세요?"


일부러 명랑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려는 여자의 발버둥은

청년에게는 동정이냐고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청년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이다. 가주가 되기 전에 동정딱지 좀 떼고 오라고 하셔서 온 거다."

"그렇구나... 듣고 보니 아직 젊으신 티가 나네요. 괜찮아요! 틋순이는 미숙하신 분들도 잘 다루니까요!"

"그건 다행이지만-."


청년은 잠시 뜸을 들였다.

틋순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만 것처럼.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안 드는군."

"네?"

"그냥 고민이나 좀 들어주게. 요새 머리가 아프네."

"그것도 괜찮긴 하지만 금액은 똑같은데요?"

"상관 없네. 오늘은 어차피 하루 종일 빌리는 것이니."

"손님 부자셨군요! 틋순이는 돈이 많으신 분들의 얘기 좋아한답니다!"


틋순은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였다.

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라는 재촉을 하듯이.


청년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선에서

말을 늘어뜨렸다.



*



"... 시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시우는 죽었어. 죽었을 거야.

방금 한 이야기도 미묘하게 달랐... 지만...


혹시 이 청년은...


"그럼 이 뿔 혹시..."

"만, 만지지 마라!"


바로 내쳐졌지만 그 촉감, 틀림없었다.

푹신푹신하고 적당히 탄력있는 느낌.

가게에서 다른 마족 손님들의 뿔을 만져볼 기회가 있어서 안다.

그것은 가짜였다. 그것은 가짜 뿔이었다.


"시우, 너 시우구나...?"

"무어냐, 내 이름을 어떻게 안 거냐."


너구나.

진짜로 너구나.

살아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못난 형의 예상을 엎고

너는 살아주었구나.


"당연히 알지. 내가, 내가..."


시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야 시우야. 나 틋붕이야, 네 형 틋붕이야..."

"... 뭐?"

"떠나서 미안해, 사정이 있었어. 마왕을 쓰러뜨려야 했-."

"뭐라고 주절대는 거야?"


촉촉해지는 눈가를 가리고자 숙였던 고개가

황당한 질책에 들어올려졌다.


시우는 놀란 얼굴이었다.

놀랐지만, 반가워하지는 않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약간의 노기가 서린 얼굴이었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네가 내 형이라고?"

"그래 시우야. 나 틋붕이야. 용사 틋붕이야."

"헛소리 마. 형은 죽었어!"


내가 무언가 스위치를 건드린 것일까.

시우가 목청을 키우며 핏대를 세웠다.

시우가 내 멱살을 잡아챘다.


"아니야 나 살아있잖아 시우야. 내가 마법사랑 같이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그런 건 동네 꼬맹이들도 알아. 네깟 ㄴ 말을 뭐가 좋아 믿으란 말이야!"

"진짜야. 나 네 형 틋붕이... 틋붕이인데..."


아까 전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났다.

안도의 눈물이 아니었다.


"나, 나 흑. 틋붕이 맞는... 데 왜 안, 믿어... 주는 거야 흑!"

"안 믿냐고? 왜 안 믿냐고?"


까드득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시우가 이를 가는 소리였다.


"네까짓 창녀가 나 전에 용사였수다 하는데 그걸 믿으란 말이야?"


어금니를 고이 물고 시우가 분노를 표했다.


"네가 형님에 대해 뭘 안다고..."


시우는 내 옷을 잡아뜯어버렸다.

옷의 두터운 압박에서 해방된 가슴이 팔딱거리며 튀어나왔다.


"싫어... 하지, 하지 마!"

"네 어디가 용사라는 건데! 이 누더기 같은 옷이 용사라는 거냐? 아니면 이 더러운 몸뚱이가 용사란 거냐?"

"이건... 사정이 있어서-."

"형님은! 우리 같은 인간을 위해 희생한 용사다. 우릴 위해 희생한 사람이다!"


시우가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시우마저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너 같은 더러운 련이... 더러운 련 따위가 사칭하고 다녀도 되는 부류가 아니란 말이야!"

"컥! 아니 나 지, 진짜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형은 손이 커서 칼 잡기 편하겠다며 부러워하던 시우의 그 고사리 같던 손과

커서는 꼭 형처럼 되고 싶다며 보내던 그 존경의 눈빛이

지금은 내 목을 으스러뜨리려는 우악스러운 손과

나를 죽일 듯 째려보는 경멸의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시, 시우야 나 검술... 너 검술 알려준, 거 기억 나... 지?"

"용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마족도 알고 있다 창녀야."

"우리 옆집, 소꿉친구 있... 었잖아. 네가 좋, 아했던..."

"그 무친련이 지금은 마왕군 간부인데 모르는 사람이 있겠나?"

"너 어렸... 을 때, 기저귀... 도 내, 내, 내가 갈아줬..."

"그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나 정, 말 정말 틋붕... 맞는-."

"개소리 집어쳐!"


어렴풋해지는 의식 속에

탕- 하는 소리가 내다꽂혔다.

곧이어 후두부에 통증이 몰려왔다.


시우가 날 내던진 것이었다.


"창녀. 넌 창녀다. 갈보련아."


시우가 자세를 낮추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흔히 보던 자세였다.

익히 잘 아는, 잘 알게 되고만 자세였다.

시우의 허리춤에는 벨트가 풀려있었다.


"싫어... 싫어! 하지 마 싫어!!"

"몸으로 깨달아라 계집. 네가 얼마나 더럽고 불결한 여자인지."

"안 돼 하지마! 하지마아, 아으, 아... 아흐으읏!"


결과만 놓고 보면 여느 때와 같은 일이었음에도

여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자극이 셌다.


시우에 의해 하복부를 열어재낀 상태로

소문자 n자를 그리며 나는 허리를 휘게 했다.


"이 멀겋게 상기된 면상 어디가 인간의 희망이라고 불리던 자냐! 이 쏟아지는 물 어디가 용기의 상징이라고 불리던 자란 말이야!"

"그만, 그만 해애애! 싫, 읏, 싫어 제발 그마... 앗, 해..."


물어뜯은 입술이 넝마가 되어서도

시우는 나를 용서치 않았다.


시우는 나를

알아주지 못했다.

시우는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종국에 이르러서 나는

그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잘... 잘모오옷 해햇, 어, 내, 가 잘못... 해으읏 햇, 서..."


아팠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