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뭔가 시리즈처럼 쓰게 되서 제목을 이렇게 했습니다. 


 이전글을 읽지 않으셔도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혹시 보고싶은 분은 아래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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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쌀먹충 아닌데요'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https://novelpia.com/novel/107192


 

 사실 제 리뷰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분석글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번처럼 줄거리는 생략하고, 오늘은 현대 인방물 장르에서 쌀먹충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전에, 현대 ts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작품을 굳이 언급하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ts물의 근대(조아라 시대)의 현대물을 두갈래로 나눠버린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설원과 그살입니다. 


 미래의 ts물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 문학이 카프카와 보르헤스로 구분지어졌던 것처럼. 

 Ts물의 근대 이후 ts현대물은 설원식의 진지하고 엄격한 현대물과, 그살식의 나데나데 인방물로 나눠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정확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고, 이런 분류로 놓치게 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이 리뷰에서는 편의를 위해 이렇게 나눠보겠습니다. 


 

 일단 그살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ts인방물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인방물의 클리셰가 그살에서 생겨났죠.


 그러나 이러한 클리셰들과 과도한 나데나데는 다양한 문제점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저는 현실성과 당위성이라고 봅니다. 


 Ts부터가 판타지인데 현실성을 왜 논하냐 할 수 있지만, 당위성은 그냥 넘어가기 힘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ts미소녀는 게임을 핵을 쓰는 것 만큼 잘한다.' 라는 이 대명제, 클리셰는. 

 

 인방물에서 주인공의 나데나데를 위해 쓰이는 편리한 장치입니다.


 이러한 편리한 장치들은 이후에 나오는 인방물들의 전개를 일률적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현재의 ts인방물은 이러한 문제를 크게 2가지로 해결했습니다. 


 하나는 요즘 뜨고 있는 귀환물에 인방물을 섞은 것으로, 장르가 현대물에서 현대판타지가 되기는 했지만 주인공의 나데나데에 더욱 당위성을 부여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이세계에서 살다 왔는데 똑같은 게임을 잘하는 건 확실한 당위성이 부여되지요.


 두번째 방법이 바로 쌀먹충이 선택한 방법입니다. 게임을 잘한다는 클리셰를 없애고, 그럼으로서 현실성을 높인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나데나데를 넣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쌀먹충은 아에 나데나데 자체를 거의 포기하고, 약피폐 태그를 답니다. 


 이것은 그살식 인방물의 클리셰 중 하나인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시청자' 를 때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쌀먹충은 그살식 인방물의 고질적 문제였던 과잉 긍정의 세계관에서 벗어납니다.


 오히려 그살보다는 설원에 가까운, 인방물이면서 진지하고 엄격한 현대물의 특징을 띄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쌀먹충은 인방이 주가 되는 인방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방을 통해서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현대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대물로서의 쌀먹충은 설원의 한계를 주인공의 조형 방식으로 극복했습니다. 


 쓰다보니 설원을 계속 패는거 같긴 한데, 암튼 설원에서 주인공 조형의 장점과 단점을 뽑자면.


 심리 상태를 세밀하며 밀도있게 묘사하는 필력이 장점이겠고, 주인공을 정의 내리는 것에 있어서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 단점으로 뽑히겠습니다. 


 이중 단점으로 주체성의 상실이 뽑히게 된 이유는 설원이 주인공의 비극과 문제를 외부의 사건이나 환경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작품을 보면 그러한 이유로 비극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죠.


 쌀먹충의 주인공, 윤홍의 정신적 어려움, 즉 약피폐 태그의 피폐함은 그러한 외부적 요소가 아닌 윤홍 그 자체에 있습니다. 


 윤홍 스스로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어떤 외부의 고난이나 환경 때문이 아닌 자신의 미옥함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쌀먹충에서의 윤홍은, 스스로를 학대하며 빨갛게 물들이는 윤홍은. 


 역설적이지만,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므로 주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뮬라크르, 실존주의 등 연계해서 설명하고 싶은게 많지만 이 글은 ts문학만으로 쌀먹충을 설명하고자 하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정리하자면, 쌀먹충은 주인공 윤홍의 조형 방식을 통해 주인공의 주체성을 확보하므로 설원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이 주체성을 띄고 배경이 되는 인방에 현실성을 부여했으니, 당연히 사건의 전개에 있어서 편의주의적 전개 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이 쌀먹충의 진지하고 엄격한 인방물로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이 유명한 '그 단어' 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 페미니즘은 현실에서도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고, 그렇기에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데도 이를 통해 현실적인 고난을 만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종합해서 감히 평가하자면


 쌀먹충은 설원과 그살로 대표되는 근대 ts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현대 ts물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리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