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빙/환이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회/빙/환을 쓰기 전에, 웹소설에서 왜 이렇게 회/빙/환이 반복해서 쓰이는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많은 웹소설의 기본 서사가 무엇인가? 별 볼 일 없던 주인공이, 혹은 재능은 타고났지만 여러 이유로 꿈을 펼치지 못하던 주인공이, 새로운 기회나 힘을 얻는 것이다. 주인공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부와 명예를 얻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마음껏 복수도 한다. 재능이 있다면 예전의 실수를 피하면서 시행착오 없이 못 이룬 꿈을 향해 나아간다.


자, 이런 서사에서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내가 왜 회귀했지 고민하면서, 새롭게 주어진 기회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며, 예전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모습일까? 결단코 아니다. 웹소설 독자는 그럴 기미만 보여도 왜 했던 실수를 또 하고 앉아 있느냐며, 고구마라며 소설 읽기를 그만둘 것이다. 독자에게 인간이라면 회귀했을 때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며, 인간은 본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라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착각하지 말자.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독자도 작가가 아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이 진짜 회귀한다면 아마 패닉에 빠질 것이고, 회귀했다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안다. 그렇지만 우리는 판타지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리얼리티가 최우선인 논픽션을 쓰려는 게 아니다. 독자는 회귀한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이뤄 나가는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 과거의 고통은 과거로 남기고, 이번 생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독자는 목표를 이루면서 힘과 영향력을 키우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독자는 처음부터 그걸 원하고 소설을 읽는 것이다.

웹소설에서 회/빙/환은 작가와 독자 간의 약속이고, 협약이다. ‘주인공 인생에 회/빙/환이라는 치트 키를 쓰겠다고? 오케이! 좋아. 대신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난 인생에서 후회했던 일들 빠르게 정리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서 성장하는 모습 보여 줘. 알았지?’ 이런 보이지 않는 약속을 한 셈이다. 이미 수많은 회/빙/환 작품을 읽은 웹소설 독자에게 회귀 후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차피 독자는 주인공이 고민을 떨쳐 내고 자기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뻔한’ 과정을 리얼하게 표현하겠다고 몇 회에 걸쳐 심리 묘사를 하면서 적응 과정을 보여 주면 독자는 짜증만 날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웹소설에서 회/빙/환은 왜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회/빙/환은 주인공이 소설 속 세계에서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독자를 설득하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되고, 주인공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전개되다가,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며 마무리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건-전개-해결(그리고 보상)이 이야기의 기본 흐름이다. 웹소설은 이런 구조가 끊임없이 앞뒤로 맞물리면서 이어진다.

회/빙/환이 웹소설에서 계속 나오는 이유는 그저 독자가 회/빙/환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회/빙/환은 주인공이 그만큼 강력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갈 것이며, 설령 위기에 처하더라도 별 탈 없이 이겨 낼 것이라는 강력한 암시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주도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고,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독자는 안심하고 소설을 읽는다.

독자는 100원을 그냥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작가도 회/빙/환을 그냥 써서는 안 된다. 회/빙/환이 왜 필요한지, 주인공의 힘에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를 마련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기업 때려치우고 웹소설> (Guybrush)








2.

웹소설을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주인공이다. 웹소설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스토리 콘텐츠에서 주인공은 핵심이다. 특히 판타지, 무협 웹소설은 성장형 영웅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이기에 주인공의 중요도가 가장 큰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판무 웹소설의 핵심은 바로 ‘대리만족’이다.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마치 내가 소설에 들어간 것과 같은 간접 경험으로 스토리를 즐긴다는 의미다.


고전적인 성장형 영웅 서사 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각성하는 과정이 상당히 길게 잡혀 있다. 3막 구조로 치자면 이 부분이 거의 전체 스토리의 3분의 1을 할애한다. 만약 웹소설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가 300화라면 100화 동안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웹소설은 같은 서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 주인공의 자각과 각성 과정이 극단적으로 짧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존 영웅들은 자신이 지닌 특별한 힘에 대해 고뇌하고 이를 통해 초인적인 힘과 그에 걸맞은 마음을 갖추는 것이 각성의 조건이었다. 신화 속 영웅이나, 마블의 히어로들을 보면 주인공이 영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웹소설은 콘텐츠의 특성상 이런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르게 전개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웹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특이점이 바로 회귀, 빙의, 환생, 줄여서 ‘회빙환’이다. 각 개념을 풀어서 설명하면 회귀는 주인공이 죽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고, 빙의는 작품 에 들어가 특정 캐릭터가 되는 것, 환생은 죽었다가 깨어나니 다른 누군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귀환과 천재 키워드도 추가로 붙게 되는데, 귀환은 주인공이 이세계로 가서 절대자가 된 뒤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와 먼치킨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고, 천재는 원래부터 그냥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설정을 뜻한다.


웹소설에서 이런 회빙환과 귀환, 천재와 같은 키워드가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의 영웅적 각성을 극단적으로 축약하기 위함이다. 웹소설은 초반 부분에서 독자층을 유입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앞부분에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면 독자들이 쉽게 이탈한다. 그러니 이런 기타 배경 설명들을 축약하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부터 치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회빙환의 설정을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초반에 하이라이트를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회귀, 빙의, 환생, 귀환, 천재. 이 키워드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주인공이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고난과 역경을 해결할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귀의 경우에는 이전 삶에서 이룬 것이 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 훨씬 쉽게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어려운 문제 역시 피하거나 해결할 방법을 갖추고 있다. 빙의 역시 작품을 읽어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지 해답을 갖고 있다. 환생은 전생에서 내가 이뤄온 성취를 새로운 삶에서 펼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용이하다. 귀환도 절대자로서의 능력을 갖춘 뒤 다시 원래 세상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천재는 천재라는 말 자체로 모든 것이 용인된다.


웹소설의 주요 키워드의 특징은 주인공이 다른 이들보다 특출나게 빨리 성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치트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건데, 이런 설정들은 주인공이 빠르게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초반 부분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배치하여 독자들을 확 끌어당기고 유입을 높이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다.


판무 웹소설을 쓸 때 반드시 이 회빙환의 설정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설정이 많이 쓰이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기계적으로 이 회빙환의 설정을 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설정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써야 효과적으로 적절히 서사에 녹여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 <백전백승 웹소설 스토리 디자인> (김선민 지음)








3.

“잘 봐. 회귀를 보통 어떤 상황에서 하디?”
“절망적인 상황이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전생의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회귀를 하지.”
“아.”
“그 말은 곧 독자들이 주인공의 이루지 못했던 욕망이 무엇인지 회귀하는 순간 바로 알게 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능력을 각성했다? 그럼 독자들은 아 이 새끼가 이 능력으로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구나! 전개가 이렇게 되겠구나! 딱 알게 돼. 아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생기는 거야.”

-<웹소설의 신> (한산이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