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처럼 흐릿하게 비춰지고 있는 거울속에 내 모습은 나 자신이 아니였던 동시에 본인이기도 하였다. 검은색의 짙은 머리카락은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한채로 길게 어깨너머에 걸쳐질 정도록 늘어뜨려져 있었고, 얼굴의 이목구비 부터 골격 하나까지 익숙하면서도 스스로 낯설게 느껴지는 어느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로 변해있었다. 실제 처럼 느껴지는 생생함에 당황하고 있을때, 여동생이 투덜거리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좁은 거실에서 들려왔다.


"오빠, 일찍 나간다. 늦게 올지도 몰라, 전화줄게"


동생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한 켤레 꺼내드는 소리뒤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다시 한번 거울을 이리저리 닦아보며 얼굴을 확인했다. 여자아이,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하지만 분명 여자. 거칠게 살짝 매번 자리나던 수염들은 사라지고 매끈한 턱라인을 따라서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졌다. 목주변으로는 선명하게 보였던 울대뼈는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의 피부에 감춰져 사라져 있었고... 잠깐 그럼?


나는 그렇게 얼굴 하나 하나 확인하다가 가장 중요한것을 기억해냈다는 듯 급하게 손을 바지 아래쪽을 더듬거리며 넣었다. 없다, 느껴지지 않는다. 거울속에 소녀가 당황하며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얼굴과 똑같은 공포와 혼란을 느꼈다. 다시 한번 손을 팬티 안쪽으로 집어넣고 확인 해봐도 소용 없었다.


아래 느껴지는것은 약간의 잔털만 남아있는.. 그러니까 남자라면 가져야 하는 중요한 부위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꿈인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게 정말로 하룻밤사이 일어날리가 없지 않는가. 이제서야 당혹감 보다는 공포감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뒷걸음치다, 차갑게 느껴지는 화장실 벽타일이 느껴지면, 변해버린 내 전신이 모두 한눈에 보였다. 키가 어릴때부터 작아왔고, 운동 역시 그리 열심히 해오진 않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것은 골격부터 가슴 그리고 엉덩이 아래까지 변함없이 여자라고 보일수 밖에 없는 모습이였다.


가슴은 꽤나 두손으로 만지면 살짝 손에 삐져나올 정도였고, 헐렁하게 입혀진 티셔츠 넘어로 가슴골이 그대로 들어났다. 내가 여자가 된것이다. 꿈이 아닌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여자아이로 변해버린것이다. 그 순간 어젯밤에 만났던 소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알수 없었던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버렸던 그 현상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지? 동생에게는 뭐라고 말해야지 고민에 빠졌을때, 현관문 너머로 노크소리와 함께 익숙하며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아직 자냐? 문 열어봐"


현우의 목소리였다, 타이밍도 최악인 상태로 말이다. 나는 대답하고 싶어도 지금 이런 모습에 꼴로 목소리 하나라도 낸다면 무슨꼴을 당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장 친한 친구 일지라도, 한 순간에 여자가 되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한다고 믿을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은 그 바보에게는 별게 아닌것처럼 느껴지는지, 곧이어 내방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방 너머로부터 현관문 바깥너머 까지 들려왔다.


"이 현진, 일어나 이새끼야! 또 올라오기 귀찮다고"


다시 한번 크게 소리지르며, 문을 크게 두들기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알았어! 10분만 기다려!"


지금의 내 목소리는 마치 필터없이 목구멍에서 그대로 전달 되어 내려오는듯 한 청량한 목소리였고, 당연하게도 이 목소리는 원래라면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목소리와 180° 완전히 달라진 소리였다. 그건 누구라도 확실하게 알아들을수 있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말투는 분명히 내 말투였는지, 현우는 이상하다는 듯 현관문 너머로 대답했다.


"목 쉬었냐? 목소리 왜 이래? 동생 없으면 들어간다."


덜컥, 화장실 너머로 현관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급하게 뛰어나와 막아보려 했지만. 내가 이미 신발장에 도착했을때는 문이 활짝열리고, 커다란 현우가 나를 당황한 눈빛으로 위 아래로 스캔하듯 살펴보며, 한손에는 유리로된 그릇에 담겨져 있는 불고기 접시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손잡이에 손을 집은채로 그대로 얼어붙어서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입조차도 얼어붙어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현우도 역시 이 상황을 잠깐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듯 머리를 굴리는듯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바보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문을 닫으려고 하자, 나는 미친짓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현우를 붙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나라고 이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