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일은 내 목을 옥죄었다.


잠이 덜 깬 몸을 겨우 일으켜 회사에 도착하면 끝 없이 쌓인 일감이 맞이하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견뎌내고나면,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이 맞이해온다.

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고생을 마친 사람들을 담아내기엔 너무나도 비좁았고, 사람들은 그저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내릴 역을 기다릴 뿐이었다.

나 또한 열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었지만, 최근의 과로때문인걸까, 이유 모를 현기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았던 어지러움은, 열차에서 내릴때는 술에 취한듯이 눈 앞이 흔들리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초점을 겨우 바로잡으며 집에 도착하면, 순간 엄청난 졸음이 쏟아지며, 그 자리에서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전화소리가 어지럽게 고막을 때려온다. 따르릉 거리는 소리가 커져오면서 온몸에 지끈거리는 듯한 아픔이 느껴져온다.

눈이 아프게 비춰오는 햇빛이 낮이라는걸 알리고 있었고, 회사에서 온 전화라는 생각에 어지러움을 견디며 전화를 받으려하자,

온몸이 불타는듯한 느낌과 함께 다시 한번 의식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면 한밤중이 되어있었다. 그 사이에 흘린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셔 축축해져 있었다.

회사에 땡땡이를 치다니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핸드폰을 들어보면 수많은 부재중 이력과 함께 5일이나 지난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5일?

지쳐 쓰러졌다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아파왔다.

  꿈을 꾸고있는걸까? 핸드폰이 드디어 고장난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회사는 짤렸을게 분명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됐다. 닥쳐오는 위기감에 몸을 추스려 일어서보자, 언제나 입고있던ㅡ그러나 평소보다 너무나도 커다란ㅡ바지가 흘러내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인걸까? 다시 보면 와이셔츠도 커다래져 어깨가 헐렁해졌고, 책상마저도 높아져있었다.

"어?"

목에서 나오는 얼빠진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고, 나는 완전히 이것이 꿈임을 확신하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다시 일어나보면 아무렇게나 벗겨진 바지가 방구석에 있었다. 이제서야 상황 판단이 되기 시작했고, 바지 옆에서 굴러다니는 팬티를 본 나는 와이셔츠의 아래를 들춰봤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지?


그저 피곤해서 쓰러졌을 뿐인데, 다섯밤이 지나있고, 회사는 짤렸고, 나는 소녀가 되어있었다.

거울으로 본 나는 남친의 옷을 걸친 미소녀와 같아 보였고, 굴곡없는 가슴은 지금 내 상황을 더 초라하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

흰백색이 되어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는 흰색 와이셔츠와 함께 창백하게 질린듯 보이게하는데 일조했고, 뽀얘진 피부는 지금 이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회사에 다시 연락하면 믿어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턱도 없다. 백발의 조그만한 소녀가 내가 그 사원이오 하고 나타나서 믿어줄 회사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놀지 못하고 일만 해왔기에 당분간 돈 문제는 괜찮았다. 몇 달 정도는 무리없이 집세도 낼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몇달이나 갈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머리아픈 일만 한 가득이었기에 다시 이불에 누워버렸다. 그제서야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올라왔고,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느껴져왔다.

복잡했던 머리는 배고프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가득찼고, 밥솥을 열어봤지만 5일이나 묵혀진 밥에선 신 냄새가 올라왔고, 나는 단념하고 핸드폰 화면을 켜 빠르게 어플을 통해 치킨을 주문했다.



배고픔에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바로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배달왔습니다..아?!"


배달원의 얼굴에는 당혹함이 가득차보였고 나는 내 상황을 돌아보았다.

알몸에 남자의 와이셔츠를 걸치고있는 조그만한 소녀가 문을 열고 나온다면 그 누구라도 당황할 것이었다. 물론 맞는 옷이 없었기에 미리 알았다해도 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그게 도움이 되는건 아니었다.


"아.. 감사합...니다.."


난 그저 얼굴을 붉히며 치킨을 낚아채고 도망치듯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배달원은 눈을 깜빡이며 문앞에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