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습작. 더 쓸지는 모름. 프롤로거라서 매우 유감적..



어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그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려다, 억지로 눈을 감았을 뿐이다. 오늘도 그럴지 난 모른다.

내 기분에 대해 내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혹은 뭘 원하는지. 한가지에 지쳐 너무 많은 걸 잊어버린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며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미래에 대해서 안 좋은 소식이라면 나는 여전히 무기력하고, 바뀌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끔 누워있다 보면 세상과 내가 괴리되는 기분이 드는데, 방향감각, 시간감각, 공간감각이 현실감을 상실하고 마구 헛돈다.

내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헷갈리고, 창문 바깥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 나는 그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정확힌 해결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다.



나는 어딘가에서 눈을 떴다. 흑백의, 배경의 색이 무엇인지 모를 공간에 흑백의, 어느 색인지 모를 선들이 끝없이 위아래 양 모서리를 타고 움직였다.

내 앞에 갑작스레 선이 모여들었다. 아래서 솟아오른 열 몇 개의 선은 굽어지며 한 점으로 모이더니, 다시 펴지고, 모이며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여러 마름모를 만들었다.

한 눈에 보자면, 반으로 자른 타원 위에 마름모의 머리가 얹혀져 있었다.

흑백의 무늬는 여전했고, 그것은 투명색이 아니라 어지럽게 움직이는 배경을 가렸다.

검은색 실선이 하얀 배경 위로 늘어진 모습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

그것에게서 정중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매우 중후했으나, 말투는 끝없이 정중해 말로만 들어오던 과거 영국의 어느 한 신사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의문을 느껴야만 했다. 어제 잠들었던 나의 침대와 아늑한 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라면 나를 어떻게 옮긴 건지.

그래도 일단 인사는 할 생각이었다. 내 본능이 그에게 인사를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질문은 그 뒤에 붙이기로.

" 아, 안녕하세요. 혹시.. "

" 오랜만입니다. "

문득 말을 끊었다. 그것은 나에게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오래 전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전혀 그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척ㅡ

그것이 갑작스레 배경에서 흑백으로 이루어진 팔 한 쪽을 꺼내더니, 나를 향해 들었다. 느껴지는 기묘한 위화감 속에 실낱같은 위협감을 감지하곤 열려던 입을 닫았다.

" 저는 당신의 유전담당관입니다. 현재 무의식위원회는 당신의 번식 가능성에 큰 의심을 품었습니다. "

유전담당관? 무의식위원회? 번식 가능성? 이해할 수 없는 말 투성이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딱ㅡ!

내가 어지러워 비틀거리자, 그것이 보이지 않던 손가락을 배경에서 꺼내 와 큰 소리를 냈다. 무슨 방법인지는 몰라도 흐릿해지던 시야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 이런, 한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빨리 전달해야겠군요. "

" 아니, 그 전에.. 잠깐만. 다른 설며, "

그것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에겐 눈이 없었으나, 점점 작아지는 수없는 마름모의 중앙, 그 시커먼 모습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배경이 붉어졌다. 검은 선들이 여전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방의 배경색은 흰색이었던 것 같다. 이젠 아니지만.

검은 선들이 마구잡이로 구부러거나, 넘어지며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이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 심도 있는 불규칙적 현상은 앞의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말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젠 다 포기하고 그것을 노려보기로 했다. 그런 것 쯤이야 할 수 있잖아?

" 전달사항 첫 번째. 삼 일 내로 여자친구를 만드십시오.
전달사항 두 번째. 일주일 내로 성관계를 가지십시오.
위 전달사항을 숙지하시ㅂ시오. 무의식우ㅣ원회가 직ㅈㅓㅂ 내리는 ㅁㅕㅇㄹㅕㅇ입ㄴ다. 당신ㅇ 이 사ㅎㅏㅇ을 ㅈ키지 않을 경ㅇ, 무ㅇ식위ㅇㅎ는 번ㅅㄱ을 위ㅐ 일ㅂ 불ㅣ익을 ㅍ함ㅎㅏㄴ 극다ㄴ적 변ㅎ.. "

점점 목소리가 희미해지더니, 결국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의 중후한 목소리는 웅얼거림이 되어 무의미한 소음으로 울렸다.

붉어졌던 배경은 다시 희게 변했고, 선들도 점점 희게 변했다. 경계가 사라지고, 눈부신 빛이 나를 채웠다.

낯선 천장이다.

눈 앞에 낯선 언덕도 하나 보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