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tsfiction/84555635 3화


“뭐냐, 날 잡으러 온 녀석이야? 뭐··· 이번에는 실력이 있는데, 도사 혼자?”


고고했다. 


건물이 무너져 콘크리트의 언덕 위에 있던 여자의 모습은 너무나 고고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았기에 그런 것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하늘과 위화감이 없다. 몸에서 흐르는 은은한 마기는 분명 검지만 위화감이 넘칠 정도로 푸른 하늘과 어울렸다.


하지만 넋을 놓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은 남자이기에 여자를 계속 보는 것은 오해를 산다.


“잡으러 왔다기보다는 치료야.”


“···개소리, 심마의 치료는 자기 자신이 하는 거야.”


“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지금은 심마가 아니구나?”


호재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말이 통한다.


도박이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 여정에 현경의 힘이 있다면, 불가능이 아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게 가능해. 그렇기에, 거래하자.”


“방금은 치료라더니.”


“병원비랑 약값은 내야지.”


“말하는 걸 보면 강매하는 방문판매 사람 같은데?”


하도현이 웃으며 내 옆으로 안착했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그 상황을, 저 꼭대기에서 내 옆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막말로, 목이 날아갈 뻔했다.


“흐음, 눈에서 음심이 없는 걸 보니 마음에 들어. 자, 이야기해 봐.”


그렇게 나와 도현이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마치 비단의 품질을 확인하듯이 부드럽게 흘리며 뒤로 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치맛자락을 흘기며 부드럽게 회전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회전.


마치 선녀의 춤사위를 보는 듯한 예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느린데··· 어째서.’


어째서, 아니 어떻게 산군의 공격을 피하는 것일까?


산군의 앞발은 인간의 팔뚝보다 더 크고 두꺼운 손톱을 세우며 눈을 깜빡이는 순간 다음 공격이 들어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잡을 수 있는 쾌속은, 역설적으로 바로 닿을 듯한 도현을 잡지 못했다.


예은은 손을 도현에게 뻗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닿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둔하게 손을 뻗었다. 


저 감동을 잡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였을 뿐이었고 저것과 비슷한 개념이 생각날 듯 말 듯 했다.


마치···.


“마치 하늘 같지? 천익유보라고 하는 보법이야.”


“아.”


예은은 그 개념의 정체를 알고 탄식을 흘렸다. 눈앞에 고수에게서 하늘의 고고함이 보였다는 것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온, 척호갑사인 자신이 무려 산군을 앞에 두고 멍을 때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만물이 하늘 아래 살아가는데 그런 하늘을 자처하다니! 오만방자하구나!”


산군의 호통의 도현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오만하기에 마공이며 하늘이 두려워한 것이 아닌 하늘이 되고자 했다.


도현이 약간의 상념에 잠긴 사이 산군은 앞발로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그 거체를 이용해 하늘을 덮으며 검과 같은 이빨이 박힌 아가리를 벌리며 도현을 덮쳤다.


안다. 산군도 이것이 무리수라는 것을. 하지만 눈앞에 인간을 잡을 방법이 없다.


이렇게 빈틈을 보이면 반격당한다. 하지만 산군은 도검조차 튕겨내는 자신의 방어력을 믿었다.


“하핫! 오만을 빼면 인간이 아니지!”


도현은 자신에게 덮쳐오는 막대한 면적의 질량 앞에서도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살포시 진각을 밟자, 한없이 청명하고 푸르스름한 기가 도현의 발끝을 감쌌다.


‘응?’


쐐애액!


“커허어어어엉!”


그리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기로 이루어진 화살 하나가 산군의 눈을 관통했고 그것을 본 도현은 공격을 멈추고 산군에게 달려가 가뿐히 넘어섰다.


짝 짝 짝!


쿠웅!


소소한 박수 세 번이 울린 뒤 땅을 흔드는 진동이 일어났다.


“격하게 움직이는데도 정확히 눈을 노리고 꿰뚫었구나?”


“방심했고, 표적이 크고, 스승님이라면 두 발을  쏴서 동시에 맞췄어요.”


도현의 칭찬에 예은은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방심하면 죽는 거 알지?”


“네? 산군은···.”


콰앙!!!


땅을 뒤흔든 추락보다 더욱 강한 도약은 땅을 부수며 산군의 신형은 흐릿할 정도로 가속했다.


그리고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뇌까지 화살이 닿았지만 산군이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삼도천에서 되돌아온 산군.


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이예은.


그리고 그 상황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도현이 있었다..


‘종합적 평가는 아직 보조에 적합하고··· 경각심은, 이 정도면 됐나?’


그렇게 생각한 도현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모두가 느린 세계에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검을 뽑았다.


검집과 검강의 마찰로 인해 불꽃이 일어난다. 하지만 불꽃은 그저 일어나기만 했을 뿐이며 만개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봄 하늘의 푸른 검강.


하지만 도현은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속도에는 문제가 없다. 단지 예은을 위기에서 구할 만큼의 위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현은 다시 눈을 감았고 자신 안에 있던 것을 끄집어냈다.


그러자 그림자를 넘어서 어둠 그 자체가 검강을 타고 오르며 밀려난 푸른색을 검 끝으로 몰려난 끝에 일말의 맑은 빛을 남기고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역천.


창천신공을 대성하면 이룰 수 있는 신기.


탁한 마기를 정순한 푸른 내공으로 바꾸었던 것을 다시 마기로 전환한다. 돌고 돌아 결국에는 원점.


길을 나서고 반대편에 도달해서 다시 걸어 도달한 곳은 원점. 무엇보다 깨끗하고 성숙하다.


그렇기에 창천신공은 마공인 동시에 신공이다.


시작에 있기에 가장 순수했으며 탁기가 없는 마기를 머금은 검강이 베지 못하는 것은···.


“없지.”


서걱—!


느릿한 세계에서 서늘한 절삭음과 함께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의 풍경이 산군을 훑고 갔다.


그리고 검강이 지나간 산군의 육체는 아주 깨끗이 잘려 나가 예은을 지나갔다.


쿠구궁!


둘로 나누어졌다고는 해도 가속도를 받은 산군의 시체라는 질량은 숲을 부쉈지만 예은에게는 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았다.


“하아?”


예은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죽음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은 살았으며 뒤를 돌아보자 반으로 갈라진 산군이 있었다.


집채만 한 산군이, 일순간에 썰린 것이다.


“뭐, 방심하면 안 되는 교훈도 얻었으니까··· 좋은 체험이 됐니?”


그리고 이 엄청난 짓을 한 장본인은 달빛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안위를 물었다.


그리고 그 배려와는 상반되는, 아득히 고차원에 있는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


“···고맙네, 덕분에 예은이가 다른 사람과 산군을 보는 경험을 했어. 아무래도 내가 있으면··· 결국에는 나한테 의지할 것 같아서 말이지.”


명수 아저씨는 예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뭘 이 정도로. 그나저나 농땡이 피우는 서진이 상대하느라 안 피곤해?”


“왜 그런 걱정을 하는데, 우리도 일했거든?”


서진이 투덜투덜 거린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놀려봤다.


“뭐, 상관없지. 보상금은 아저씨네가 가져 우리는 얻을 거 얻었으니까 갈게.”


“아저씨, 예은아. 그럼 연이 된다면 다음에 보자.”


나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고 서진이는 멀어지는 사제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리가 멀어지나 나는 살며시 물었다.


“어땠어?”


“···심마로 발전했어. 다행히 실력이 조금 녹슬어서 별 탈 없었어.”


역시라고 해야 할지. 예상대로 그 아저씨, 심마에 시달렸다.


무공은 힘과 정신의 학문이다.


둘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고 이는 갑작스럽게 힘을 각성한 선두주자들에게 자주 나타났다.


“아마, 이를 악물고 심마를 감추면서 우리를 추적했겠지?”


“그래, 나랑 둘만 남으니까 미안하다면서 활 쏘더라. 가족들이 다 잡아먹히고 몇 년 동안 폐인으로 산 사람이니까.”


“역시 내가 아저씨를 상대할걸 그랬나?”


“환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소리하네. 그보다, 호골장도는 구했지?”


“응.”


나는 내 품에 있는 호골장도를 떠올렸다. 무기로써의 기능은 없지만, 무려 산군의 호골장도이기 때문에 주술적인 가치가 높다.


하지만 부족했다. 숫자도 질도. 이 세계의 연쇄를 끊어내기에는 부족했다.


“아직 반도 안 모았어.”


“누가 들으면 4할은 한 줄 알겠다?”


키킥거리며 웃는 서진을 버리고 떠날까 했지만 버려봤자 날아서 올 것이 뻔했기에 놔두었다.


3할 정도면 그럴 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다음 목표는···.”


“장산범의 목청.”


목적지는 부산. 


그렇게 우리는 균열이 일어나 황량한 도로를 달리며 화려한 자연을 지나치는 여정길에 올랐다.


“그런데 아저씨도 평정심 유지 핑계로 가슴 주무를 거냐?”


“······남자는, 남자 전용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