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는 욕설을 애써 삼키며 눈을 떴다.

짙은 피로가 몸을 묵직하게 짓눌렀지만, 할 일이 있었기에 더 나태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던 그녀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몇 번의 발걸음 이후 몸에 들러붙은 수마를 대강 떼어낸 그녀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딸깍, 하고 전등이 켜졌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그녀의 모습은 축복받은 그대로였다.

퇴폐적이면서도 추레한 인상이긴 했지만, 고양이상의 미녀.

구태여 꾸미지 않을 뿐이지 꾸미고 나간다면 남성들의 시선을 끌 만한 몸매기도 했다.


“...다행이네.”


그렇게 중얼거린 이예지가 세면대에 물을 받으며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 끝에서 이는 아릿한 통증과 함께 그녀는 여기가 현실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세수하며 잠을 깨우고 난 뒤, 마지막으로 신분증의 사진을 살폈다.

신분증의 사진 속에는 최대한 정갈하게 입은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예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게 정상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간밤에 꾸었던 악몽은 진실이 아닌 셈이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화상 자국과 흉터가 남아 추악한 몰골의 작고 약한 남성이 아니었다.

알이 두꺼운 안경을 끼고 말을 더듬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조차 못 하는 얼간이도 아니었다.

비록 그 속은 같겠지만, 껍데기가 변한 만큼 그녀는 확고하게 아니라며 선을 그을 수 있었다.


그 사실에 재차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예지는 쓰게 웃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록 껍데기가 미녀의 그것으로 변했다고 한들 그 속이 사회 부적응자인 이상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친구인 연시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평생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테니 더더욱 그랬다.


“...며칠 뒤에 온다고 했나.”


그렇게 중얼거린 이예지가 손가락을 구부렸다.

연시우는 그녀가 여자로 변한 이후, 동거를 그만두고 자취방으로 온전히 그녀에게 넘겼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상태를 살피겠다면서 찾아와 검사하는 통에 신경 쓸 게 상당히 많았다.


지금도 그랬다.

연시우는 그녀가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걸 모두 검사했다.

그 근간이 걱정과 죄책감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종종 귀찮을 때가 있었다.


“...쯧.”


혀를 찬 이예지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원래라면 식욕이 거의 없다며 에너지음료와 커피로 때우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연시우는 그녀가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를 원했고 매번 반찬까지 싸 오는 정성을 보였다.


그러니 이예지는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을 하나둘 꺼냈다.

자그마한 그릇을 꺼내서 반찬을 소분하고 어제 만든 찌개와 밥을 적정량 담았다.

마지막으로 마감을 위해 마실 커피를 꺼낸 그녀가 식사를 시작했다.


누가 보면 타박할 정도의 깨작깨작한 식사가 이어졌다.

적당히 맛있는 고형물을 적당히 씹어 삼키는 귀찮은 행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예지는 마지막 남은 밥을 찌개 국물에 적셔 먹고 나서 커피를 꺼냈다.

연시우는 카페인을 너무 많이 먹지 말라며 잔소리했지만, 이예지는 늘 그의 말을 묵살하곤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페인을 먹지 않으면 마감할 수 없었다.

마감할 수 없다는 건 그녀가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건 그녀가 사회에서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했다.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에 스스로 성별이 바뀌었노라 신청한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이예지는 뚜껑을 열고 커피를 마셨다.

갈색빛의 생명수가 자연스러운 목 넘김과 함께 꿀꺽꿀꺽 넘어갔다.


“...아?”


그 직후, 이예지는 속이 울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몸 전체가 그걸 거부한다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감각과 함께, 그녀가 냅다 화장실로 향했다.

이건 꼭 토하기 직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언가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우욱, 우웨에엑....”


변기에 얼굴을 가져다 대자마자 직전에 먹었던 음식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이예지는 어느덧 붉게 물든 변기의 안을 살피며 숨을 헐떡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묘한 불안함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문득 생리를 안 한 지 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예지는 그 직후, 반사적으로 여동생이 신신당부했던 걸 떠올렸다.

시우 오빠가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피임은 철저히 하라고.

그래, 여자로 변했을 때 여동생이 그녀에게 몰래 전해줬던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아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이예지가 황급히 뒤처리를 끝내고 찬장을 뒤져 검사기를 꺼냈다.

비록 한 번도 쓴 적 없지만, 그녀는 검사기를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었다.


마침 요의는 있었다.

그녀는 곧장 검사기를 사용했고 그 결과 나타난 건 선명한 두 줄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걸 본 이예지는 곧장 절규했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치냐는 생각도 잠시.

그녀는 머릿속에 있는 여러 피임 방법을 떠올리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진작 알고 있었다.

학교 폭력과 절망으로 얼룩진 고등학교 졸업 이후, 폐급이 된 그녀를 보듬어 준 건 유일했던 친구 연시우였다.

연시우는 그녀를 위해 자취방을 제공했고 그녀가 여자가 되기 전까지 계속 보살펴 줬다.


그건 여자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시우는 성심성의껏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여러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

갑작스럽게 여자가 되어버린 자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가족을 설득하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였다.

잔뜩 술에 취했을 때, 어차피 줘버릴 첫 경험이라면 가장 좋은 사람한테 줘버리자고.

그렇게 생각한 채 분위기에 취해 관계를 했던 때가 있었다.


두 사람 다 첫 경험이었고 술기운에 그랬기에 피임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다시 관계를 한 적도 없었으니 아마 그때 임신한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예지는 이를 꽉 악물었다.


연시우는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고작해야 짐 덩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그녀를 끝까지 챙겨주는 무골호인이기도 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진작 연인을 사귀며 인생을 즐겼을 승리자기도 했고.

한창 캠퍼스에서 인생을 즐겨야 할 그가 통학을 고수하는 건 모두 그녀가 기생충처럼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기생충은 새끼를 품었다.


“우욱...”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느껴졌다.

이예지는 입을 막은 채 식은땀을 흘렸다.


차라리 이런 경험이 많다면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몸이 변했을 뿐이었다.


여자로 살아온 건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이 몸뚱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외출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갓 20살이 된 사회초년생 둘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지워... 지워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이예지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른 건 다 좋았다.

사회초년생 둘이라지만, 양가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대학에 가지 않았지만, 작품 활동을 통해 나름 돈을 벌고 있었다.

어차피 대학 생활 같은 걸 즐길 용기 따위도 없었기에 집에서 맨날 가사만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폐급이었다.

문자 그대로 인간으로서 상종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에 가까웠다.

학창 시절에 겪었던 학교 폭력으로 이미 그녀라는 존재는 무너져 내린 뒤였다.


단순히 연시우에게 들키지 않았을 뿐 당장 어제도 자해했었다.

진작 약을 먹어야 할 수준임에도 애써 약을 타 먹지 않은 건 덤이었다.

용기가 있었다면 진작 마약에 손대거나 스스로 숨을 끊었을 게 뻔했다.

고작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매력적으로 보이는 몸뚱이밖에 없는 멍청한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당연히 어머니 같은 게 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지워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예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사기 사진을 찍고 연시우에게 문자로 그걸 보냈다.

연시우는 곧장 전화를 걸었고 이예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뱉으려고 했다.


시우야, 지우자.


그 두 마디만 한다면 그녀는 다시 편해질 수 있었다.

어차피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학생 둘이 무얼 하겠냐고.

그녀는 그 짧은 사이에 수없이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 너... 임신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연시우의 목소리에서는 당혹과 기쁨이 같이 느껴졌다.

차라리 그가 먼저 낙태라는 단어를 꺼내주길 원했던 이예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응.”

- 미, 미안. 조금 떨리네. 아니, 그... 솔직히 무섭긴 했는데...

“...무서워?”

- ...지금은 기뻐. 살짝,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딱 잘라 설명하긴 힘드네.

“그래...?”

- 일단 끊을게!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장바구니 가득 식료품을 가지고 온 연시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예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떠도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는 거였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라는 인간은 훨씬 평균 이하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예지는 말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앞으로 달려온 연시우가 양팔을 벌려 그녀를 꼭 껴안았다.


“미안, 미안해.”

“...갑자기?”

“이, 일단... 임신시킨 건 나니까...”

“...그렇네.”


행동 하나하나에서 부정적인 감정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인생에 찾아온 축복을 즐기려는 듯한 태도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이예지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연시우가 이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키, 키우면 안 될까...?”


연시우는 마치 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예지는 이미 연시우가 마음을 굳혔다는 걸 알고 있었다.

20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했으니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연시우의 기대를 배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인불명의 눈물이 흘렀다.

이예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늘 하던 것처럼.

늘 누군가에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연시우에게 앞으로도 할 일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말을 하기 위해.


“...다 너 때문이야.”

“응.”

“앞으로 무슨 문제 생기기만 해봐, 다 너 때문이라고 할 거야.”

“그래도 돼. 책임을 진다는 건, 그런 거니까.”

“...너 때문이라고 했어.”


그렇게 말한 이예지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남은 커피를 버리려다가 아깝다며 연시우가 그걸 마시는 걸 봤다.

임신했을 때의 주의점이라며 인터넷을 찾을 때도 그냥 어울려 줬다.

그냥 모든 책임을 연시우의 탓으로 돌린 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이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생각을 그만둘 순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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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