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진학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도 모른 채 그렇게 말했다. 한 가지는 알았다. 이 말을 하면 교수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걸.


예상대로 교수님은 활짝, 아주 화알짝 웃으며 대답했다. 


씹과금 모바일겜에서 가챠를 돌려 SSS급 캐릭터를 뽑았을 때의 미소와도 같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교수님이 날 SSS급 학부생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니까.


"우리 연구실에 온 걸 환영한다."


그렇게 대학원생이 됐다.


그리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진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진해서 노예가 된 거다. 교수님의 노예. 그것도 교수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하는 SSS급 레어 노예.


연구실 청소, 커피 심부름, 시험지 채점, 프로젝트 준비까지 일년 365일 내내 개처럼 일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이 대학원생일 적에도 나처럼 굴렀을 것이며, 그렇다면 나도 박사학위를 딴 이후 교수님처럼 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아니, 교수님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끔찍한 대학원 생활을 악착같이 버텼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변명을 해보자면, 물리가 재밌었으니까.


과학고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포O공대 물리학과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물리를 공부하면서 남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끙끙거릴 때 슥슥 문제를 풀어나갔으니까.


게다가 나는 머리도 좋았다. 어떻게든 박사 학위를 따 교수로 임용된 다음 연구를 계속한다면 노벨상도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위인전에 내 이름 한 줄 남겨보겠다는 욕심은 가져야 않겠는가.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을 때 느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학사는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석사는 자기가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되고.


박사는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마찬가지임을 깨닫고.


교수는 어차피 모르는 거 끝까지 모르는척 우겨야겠다고 다짐한다고.


그래, 나는 머리가 좋기만 했다. 위인전에 이름을 남기려면 '압도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했다. 


그것도 물리학자로 노벨상을 타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도 될까말까였다.


그렇게 내 한계를 깨닫게 되고 얌전히 취직이나 할걸, 괜히 대학원에 왔다고 자조하는 나날들이 늘어갔다.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미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면 죽도 밥도 안 됐다. 


그저 한 가지 다짐만을 했다. 


언젠가 죽기 직전 침대에서 자식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면 이렇게 말하기로 다짐했다. 대학원은 가지 말라고. 


자식들한테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남길 자식도 없이 죽어버릴 줄은 몰랐다. 


—빠앙!


범인은 트럭이었다.


28년 인생을 죽도록 공부만 했는데, 진짜로 죽어버렸다. 


박사디펜스를 준비하느라 도서관에서 밤을 새고 집으로 가던 중 트럭에 치여 죽었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와중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궁금했다.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 


그렇다면 난 뭘 잘못했길래 스스로 대학원에 가겠다고 한 걸까. 


이번 생에 저지른 죄가 아니라면 전생에 엄청난 사고라도 친 모양이겠지. 


그렇게 내 죽음에 대해 합리화를 했다. 운이 없어서 죽은 게 아니라 전생에 저지른 죗값을 지금 받는거다——생각하면서 나름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어쩌면 진짜로 전생에 지구를 멸망시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생이 있다면 말이지.


그런데 진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음생이.



***



사실 이걸 다음생으로 불러야 할 지 조금 의문이긴 하다.


어째서인지 나는 과거로 환생했다. 그러면 전생인가? 


하지만 28세 모쏠아다 대학원생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환생이라 해야겠지. 아무튼.


이안 빌헬름 라이프니츠, 1872년생. 그게 나다.


나는 프로이센 왕국 작센 주 라이프치히에서 융커 귀족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참고로 미분기호 d와 적분기호 ∫를 고안한 그 사람,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후손이다. 사후 150년이나 지나 우리 가문과 연관은 거의 없지만.


내 두 번째 아버지인 프란츠는 체면치레로 예비역 장교 지위만 획득한 흔한 지주였다.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가문이었다는 소리다.


내가 전생, 그러니까 28세 모쏠아다대학원생의 기억을 자각한 시점은 일곱 살 무렵이었다.


당연히 기억을 자각한 직후 행동거지가 180도 변화하였고, 가족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지만 나는 그저 고민에 잠겼다.


'미래 지식을 알고 있으니 뭘 해야 할까.'


퇴역군인인 아버지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제국의 철혈 재상을 우상으로 삼으셨기에, 내가 사관학교를 졸업해 육군 장교가 되길 바라셨다. 


하지만 나는 전생을 자각하기 전에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군인은 되기 싫었는데, 자각한 이후에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육군 장교가 되는 것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서른두 살이 될 무렵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이 진다. 


질 게 뻔한 군대에 입대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미래 지식을 활용해 독일이 승리하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래야 하는가? 


역사의 큰 흐름은 바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독일 제국이 유럽을 통일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면 사업은 어떨까.'


처음에는 질소 비료나 제조해 판매하는 사업을 벌여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프란츠 하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직 그가 질소고정법을 발견하기 전이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도 마찬가지로 전쟁이 발목을 잡는다. 기껏 공장 세우고 기반시설 갖춰도 전쟁 나면 국가에 뺏겨버리지 않나. 


게다가 독일이 진다. 


차라리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싶었지만 별 수 있나. 두 번째 삶을 살게 해 준 것으로 만족해야지.


결국 내가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보자.'


28년, 전생의 끔찍한 기억은 다 이 두 번째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얌체같은 말이긴 하다. 미래의 지식을 뺏어와 과거에 뿌린다면 과학자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질타할 수도 있다.


그게 내가 연구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양심에 찔리긴 하나, 인생이 그런 걸 어쩌겠어. 


어차피 남들은 이걸 내가 연구한건지, 아니면 미래에서 가져온건지 모른다. 


'꼬우면 니들도 과거로 환생하던지.'


하여튼 나는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꼭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아인슈타인이 한 명 더 있었다면 인류의 과학은 압도적으로 진보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미리 아인슈타인의 연구 결과물들을 다 발표해버린다면, 그는 그걸 토대로 아예 새로운 연구를 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재밌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나에겐 물리학이였다.


그렇게 나는 일곱 살 무렵부터 죽기살기로 공부해 천재 소리를 들어가며 자랐고, 열여섯 살에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참고로 나름 유명한 대학이다. 


앞서 말한 미적분을 고안한 조상님 라이프니츠 뿐만 아니라 불확정성 원리의 하이젠베르크, 파우스트의 괴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도 라이프치히 졸업생이다.


그리고 이안 빌헬름 라이프니츠.


나는 꽤 유명한 신동이었던지라 어느 대학에 가는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사실 대학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교수 자리였다. 


1891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학사 학위를 받을 때쯤 해서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아인슈타인을 제자로 받아보자.'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는 1895년, 열여섯 살에 스위스에 있는 취리히 연방공대 입학 시험에 응시한다. 


그러나 김나지움—중등 교육 비슷하다—을 자퇴한 까닭에 1년 동안 검정고시 비슷한 행위를 거쳐 1896년, 열일곱의 나이로 입학한다. 


그러니까 1896년까지 취리히 연방공대에 교수직을 따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기한이 1896년이지, 기왕이면 일년 더 빨리 따내고 싶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바로 입학할 수 있도록 학장을 설득해볼 계획을 가졌다.


나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공부했다.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 전생의 지식들로 프리패스를 한 것이기 때문에, 갈수록 공부는 어려워졌다.


비유하자면 RPG 게임에서 초반에만 쓸 수 있는 성장 패키지로 도배를 한 셈이다. 


내 머리가 SSS급이 아니기 때문에, 후반으로 가면 아무리 비싼 아이템을 둘러도 다른 SSS급 캐릭터에게 밀리고 만다. 


물론 그렇다고 빡대가리란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범주에서 머리가 좋다는 뜻이다.


나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로 대학원을 두 번 다닌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한 끝에 1895년, 마침내 스물세 살의 나이로 취리히 연방공대 물리학과 교수 자리를 따 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그리 빠른 건 아니다. 원래 역사에서는 하이젠베르크도 스물세 살에, 리처드 파인만은 스물네 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까.


아무튼. 나는 그 해 9월부터 교수직을 수행하기로 된 상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미권 국가는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므로, 입학 시험은 여름에 열린다.


'설마 역사가 바뀌어서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거나······떨어졌다거나 하진 않았겠지?'


1895년 8월 5일,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죽은 여름날, 나는 대학 입학처에서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금년도 입학 시험 결과(석차순)


1. ㅇㅇ(차석)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수석)


···


다행히 아인슈타인은 시험에 합격한 것은 물론 차석이었다. 수석이 아닌 건 물리와 수학 외에는 성적이 별로였기 때문이겠지.


이제 계획대로 그가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바로 입학하도록 학장을 설득하러 가야 한다. 


마침 아인슈타인이 학장실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들었던지라, 실물도 볼 겸 옷을 챙겨입고 학장실로 향했다. 학장에게는 수석 학생도 볼 겸 미리 찾아간다고 연락한 터였다.


나는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그렇지 않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만난다면, 특히나 이쪽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라도 흥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장실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정돈하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문을 두드렸다.


"학장님. 물리학과 이안 교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들어와라."


이상하게도, 항상 차분하던 학장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다는 점에서 위화감을 느꼈지만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학장실에는, 희끗한 머리의 중년 남자와 은발의 미소녀가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아 있을 뿐, 아인슈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학장님? 금년도 입학시험 수석이라는 학생은 어디에······?"


"이, 이안. 이쪽이 아인슈타인 양이라네···."


학장의 지목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은발의 미소녀도 내 쪽을 바라봤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한동안 나를 관찰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선을 훑었다. 


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학장이 아인슈타인 양이라고 지칭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학장님, 분명 최고의 교수님을 붙여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렇게 하찮은 분이 제 지도교수인가요?"


그녀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추가로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학장은 듣지 못했겠지만 그녀의 입모양은 '허접···'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아인슈타인?




***

옛날에 써뒀던 거 투척

히로인이 틋녀긴 한데 삼국지연희처럼

더 쓸진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