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벌써 한 달.


이 몸이 된 이후로 하루도, 한 시간도 편안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

눈을 잠깐 감으면 제국 군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먼 발치에서 인기척만 느껴도 수백 걸음을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지켜야 한다, 이 아이를.

내 안에서 미약하게 싹트고 있는 어린 생명을.



세 달 전의 이야기다.

분명 평범한 용사물에 빙의되었다. 

나는 신에게 선택 받은 절대적인 무력을 가진 용사로, 동생은 고결한 성녀로.

음, 그래. 고결하고 아름다운 성녀로.

남동생 시우, 그 녀석이 말이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토악질이 나오던지.


아.


갑자기 토악질 언급하니까 정말로 속이 메스껍네.

잠깐만.



.

.

.


정말 나쁜 아이구나. 이렇게 힘들게 하고.

아니면 자기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아보는걸까.

잠깐만. 마력을 써서 몸 좀 진정시켜야겠다.


음, 음, 괜찮아. 좀 낫네. 그럼 유쾌하지 않은 썰을 계속 풀어볼까.


하여튼 우리는 TS남매근친 같은 끔찍한 태그는 달지 않고 무사히 마왕 앞에 도착했지.

그대로 마왕년의 목을 썰어버렸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여기서 골 때리는 일이 일어나는 거야.

빙의자가 1명이 더 있었다는 거.


그래, 그 마왕년의 정체가 시아라는 녀석이었다는 거지.

누구냐고? 미래의 제수씨. 그러니까 내 동생의 여자친구되시겠다.

불쌍한 운명을 가졌던 여자였지. 어떻게 만나도 하필 내 동생을 만나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쩌겠어. 나도 항상 사고 치는 동생놈을 직접 갱생시킨 그 녀석과 동생의 결혼을 적극 지지할 만큼 마음에 들어했고, 시우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싸움은 허무하게 멈췄지.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잠적해서 사라져버렸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마왕은 사라졌고, 용사도, 성녀도 희생해서 사라지는 그림이 될 줄 알았지.


하, 그 썩을 신들만 아니었어도.

시아와 시우는 내 주례 하에 부부의 연을 맺었지.

음, 음, 시아한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걔 아니면 시우를 데려갈 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시우 쪽이 임신을 했더라.


여자끼리인데 어떻게 임신했냐고 묻지 마.

나도 몰라. 판타지 세계관의 성녀님과 마왕님인데 어떻게든 했겠지.


그런데 그 날, 여신년이 신탁을 내린거야.

세상을 멸망시킬 마왕의 딸이 자라고 있다고. 그리고 용사와 성녀는 인류를 배신했다고.

마신년도 다를 바가 없었지.

마족들까지 우리를 척살해야한다고 이를 갈아댔어.


그 뒤로 어쨌겠어?

제국부터 시작해서 대륙의 모든 왕국이, 지하의 모든 마족이, 하늘의 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쫓아다니기 시작하더라.

물론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나였지만 한계는 있었어.


시우와 시아는 결국 내가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심하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지.

인간과 마족의 사랑이라는 금기를 범한 대가는 결국 마신과 여신으로부터 힘을 천천히 압수당하는 거였다는 걸 몰랐던 내 잘못이야.

그 때, 자기들은 괜찮을 거라고 정찰이 우선이라고 말한 동생 부부의 말을 들은 건 지금도 후회되네.


결국 돌아왔을 때, 내 눈에 담긴 건 피를 흘리며 마력도, 신성력도 모든 빼앗긴 채 죽어가고 있는 시우와 시아였지.

이대로 모든게 끝이구나 싶었어.


그런데 그 때, 시아가 그제서야 주섬주섬 이야기 보따리를 풀더라.

이 세상을 멸망시켜야만 우리가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고, 마왕과 성녀의 아이만이 그걸 이룰 수 있다는 예언이 있다고.


하지만 그럼 뭐해. 둘은 죽어가고 아이도 같이 죽을텐데.

그냥 돌아가지 말고 평화롭게 여기서 살아도 좋았잖아.

이런 결과면.


아니래. 그게 아니래.

이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황폐화시키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아예 초기화시켜 지워버리는 올 딜리트 같은거야.

이 세상이 지워진다는 건,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초기화된다는 것.

지금 이렇게 둘이 죽어도 그냥 빙의 전으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 아이를 살린다면 돌아갈 수 있구나. 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있어. 내 영혼을 시우 녀석의 몸으로 옮길 수 있대.

그럼 절대 박탈당하지 않는, 영혼에 새겨진 용사의 권능으로 몸도 치유가 될 거고, 힘을 온존한 채로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어.


동생 부부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내 선택은 어떤 거였겠어?


볼 것도 없지.

굳이 그게 아니더래도, 난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저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도 복수할 수 있으니까.


기꺼이 시아의 말에 동의했지.

그리고 지금이 그런 상황이야.


어라,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 보다. 저기 봐, 제국군들이 잔뜩 경계한 채로 또 걸어오고 있네.

좋은 태교는 아니지만, 이 아이의 정서를 지켜줄 필요는 없겠지.

너는 이 세상을 멸망시킬 재앙의 씨앗이니까.









3개월





용사님, 제발 포기해주세요!

그 아이만 포기하시면, 더 이상 이렇게 괴롭게 도망다니지 않으셔도 되요!


아, 시아를 만나기 직전까지 함께했던 너구나.

그 때, 수많은 마족들 앞에서 괜찮으니 먼저 가라는 너를 기억하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그 때도, 지금도 너는 참 상냥하구나.


그런데 그 상냥함을 어째서, 시우와 시아에게는 보여주지 않는거야?


그래, 대답하지 못하는 것조차 참으로 너 답네.

정말로 끔찍하지만,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갈기 갈기 찢어진 마음을 모르는 척 내 앞에 선거구나.


우욱, 또다시 구역질이 올라왔다. 임신 3개월차에 접어든 지금은 입덧이 제일 심할 시기기에.

그리고 동시에 저 착하디 착한 대마법사를 내 손으로 대적해야 한다는 지금 이 사실이 너무나 쓰라리기에.


나는 헛구역질을 모두 마치고 나서, 그 때까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말은 필요없어, 덤벼.


난 그 날,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친구의 목을 베었다.


겨우 세상 멸망 버튼을 위해서 그랬다.


아니,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이 녀석을 죽였다고?

그냥 살려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난 뭘 위해 이렇게 필사적이지? 이 도구가 뭐라고.


그것이 도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 때의 나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7개월





이렇게 쉬는 건 얼마 만일까. 

신의 눈이 닿지 않는 마을이라니.

지고의 엘더 드래곤이 신이라는 건 신물난다고 직접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신이니까 신물나지.


음, 죄송합니다.

누구랑 다니다 보니 옮았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건지, 알면서도 감싸주는건지 모두가 친절하다.

이제는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배는 부풀어 올라있었다.


그리고 그 7개월의 기간 동안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은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렸다.


이제 아무래도 좋다.

나도, 동생도, 시아도.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냥 이 아이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복수나 멸망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게.


그렇기에 지금까지 제대로 대해주지 못한 모든 미안함을, 지금에서야 뱃속의 아이에게 쏟는다.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며, 용사의 힘으로 이것저것 도와주는 것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것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보았던 수많은 끔찍한 광경들에 대한 얼마나 보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네가 태어날 때는 꼭 행복한 세상에서 태어날 수 있게 노력해볼게.








10개월 - 출산






드래곤의 마을, 눈 닿는 곳 하나하나마다 불꽃이 타오르고, 붉은 선혈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오래된 고룡조차 그 상처투성이 몸으로 겨우 신격과 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뒤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온몸을 뒤틀며, 새로운 생명에게 빛을 선물하기 위한 과정에 정신없었다.

지금 죽어가는 모든 생명체가 나를 위해서, 이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웃으면서 간다.


이 세상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었기에.

거짓된 세상을 끝내줄 수 있는 이 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있기에.


또 다시, 고통이 찾아온다. 할 수 있는 건 그 고통을 감내하고 배 아래로 힘을 최대한 주는 것 뿐.

무너진 집으로 또 다시 마법과 화살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거대한 용이 몸과 마력으로 나를 보호해준다.


한 달 같은 1초, 일 년 같은 1분.


그리고 그 과정 끝에서 아이는 끔찍한 전쟁터 속에서 빛을 본다.

그리고 전장의 함성보다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린다.


남아있는 고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아직 탯줄도 자르지 못한 못생긴 아이를 내 품에 스스로 안는다.


아, 내 아이야.

가장 소중한 아이.


해냈구나, 인간이여.


안심한 듯한 고룡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속해서 울고 있는 아들의 울음소리가 해냈다는 대답을 대신해준다.

아기의 대답에 거룡도 만족한 듯, 상처투성이 거체를 그제서야 나를 감싸는 형태로 바닥에 뉘인다.


이름은, 지어줘야하지 않겠나.


이름, 이름은 정해놓은 게 있었다.


■■


그렇구나, 그거면 되겠지.

이제 아이와 헤어질 준비는 되었느냐.


아, 그렇구나. 방금 품에 안았지만 이제 헤어져야 하는구나.

이 아이를 낳는 순간보다, 지금이 더 고통스럽다.


꼭 건강하고.

복수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나는 최후의 숨결을 내뱉으려는 드래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거룡의 눈이 감기며 그의 몸이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도 탯줄로부터 자유로워진 채, 고통스러운 전장에서 사라진다.



이거면 된 거야.


저 아이가 나중에 컸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내게 날아오는 수많은 화살들과 마법들을 웃으면서 맞이한다.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반인반마 틋녀 예정 아들의 복수나 사랑, 모험 판타지나

용사가 아이를 지키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표현한 피폐물 없냐!!!!!!!!!!!

아니면 이 이후에 제국의 황녀님이나 여제인 지아한테 잡혀서 마구마구 당해버려서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랑 배 다른 틋녀오빠랑 이케이케 어떻게 되는것도 좋음ㅁㅁㅁㅁㅁ



4500자만큼 창작으로 써왔으니까 누가 완성해와ㅏㅏ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