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일은 항상 불현듯 닥쳐온다.  

급히 달려가 변기에 앉으니 화장지가 없다던가, 월요일을 맞이해 알람을 잔뜩 맞춰놓으니 하나도 듣지 못했던가처럼.
 
끔찍한 사고로 자취를 감춘 소꿉친구가 여자가 되어 찾아온 것이 내겐 그랬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세 명씩이나.
 
"시우..."
 
폭넓은 소복을 입고 나타난 무협풍의 미인이 아련한 눈길로 다가와 나의 손을 붙잡았다.
 
"시, 시우야!"
 
흔히 마녀하면 생각 날듯한 고깔모자를 쓴 적발의 미녀가 갑작스레 나를 끌어안았다.
 
"냐냐냥!"
 
코스프레가 아닌 정말 동물의 귀가 달린 백발의 소녀가 네발로 달려와 나를 핥아대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은 항상 불현듯 닥쳐온다.
 
미소녀가 된 소꿉친구가 차원의 벽을 뚫고 내게 나타난다던가, 그것도 각자 다른 평행세계에서 찾아왔다던가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 '불현듯'이라는 단어는 내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일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고 지금만큼은 단언할 수 있으니.
 
나 대한민국의 평범한 신참 헌터 관리관 하시우.
그저그런 삶을 누리던 새내기 사회인인 내게 왜 이런 일이 펼쳐진 것일까?
 
"너희들은 누구지?"
"뭐야, 당신들은."
"캬아아아앗...! 캬아앗!!!"
 
심장이 뭉개질 듯한 기운을 서로를 향해 내비치는 세 여인.
고래들 사이의 새우가 된 나의 심장을 그녀들이 뭉개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외쳤다.
 
"다, 다들 누구세요...?"
 
 
**
 
 
 
내게는 소꿉친구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침에 날 깨우면서 도시락을 챙겨주는 그런 츤츤거리는 소꿉친구는 아니었다.
그냥 옆집 사는 남정네이니 부랄친구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테지.
 
여튼, 우리는 집도 가깝고, 성격도 잘 맞고 하여 형제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9시 뉴스에 이다온이라는 석 자가 새겨지기 전까지는.
 
우리의 세상에는 차원과 차원을 잇는 게이트라는 것이 발생한다.
그것은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위협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인간에게 이능적인 힘을 주는 근원이기도 했다.
 
원리는 조금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다른 차원의 힘은 선택받은 인간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들을 헌터라고 불렀다.
 
내 소꿉친구 이다온도 그런 헌터 중 한명이었다.
 
물론, 그는 헌터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여리고 겁이 많은 남자아이였으니까.
 
그런 그에게 레드 게이트라는 전무후무한 악재가 들이닥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지는 사건이었다.
 
게이트는 어디에도 발생할 수 있다. 정말 어디에도 말이다.
그래, 최초의 레드게이트는 이다온의 집 안에 발생했다.
 
그의 부모님이 집을 비우고 옆집 친구인 나만이 집에 함께 있었을 때 말이다.
 
"이게 뭐야...? 시, 시우야...!"
 
정말 갑자기 발생한 게이트는 다온이를 먹어치웠다.
 
"잡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그의 손을 잡았지만.
 
"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격통만 전해졌을 뿐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았고, 다온이는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13번째 실종자로 남았다. 그리고 게이트로 빨려가 돌아온 이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멍하니.
 
그렇게 멍한 나날을 보내던 중 순간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떠나보낸 다온이의 낯을 볼 수 없다고.
 
나는 헌터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헌터들의 팀을 꾸리고 관리하는 관리자는 될 수 있었다.
내가 훌륭한 관리자가 되어 게이트를 닫는다면 다온이 같은 희생자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 다짐하여 움직였다. 보통 5년이 걸린다는 헌터 관리관 시험을 1년 만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나타난 날은 내가 관리관으로 재임한지 첫날이 되는 때였다.
 
 
 
 
**
 
 
과연 레드게이트는 보통의 게이트와 뭐가 달랐던 걸까?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으나, 이렇게 모이고 보니 확연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다온이라구요?"
 
"그래."
 
"그쪽도 다온이고...?"
 
"응."
 
"이쪽도..."
 
"냥."
 
레드게이트에 빨려 들어감으로써 수많은 평행세계의 이다온이 탄생한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시우와 함께 말이다.
 
"허어..."
 
시우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본다.
세 여인은 그의 모습에 저마다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처음 다른 세계로 진입했던 날의 기억.
 
"허어... 이게 뭐람."
 
그때도 시우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껏 겁에 질린 자신과는 반대로 말이다.
 
"시, 시우야 이게 대체..."
 
"쉿."
 
그 시절의 자신은 정말 말할 것도 없이 한심했다.
무와 협의 세계에서도,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도, 힘과 야성의 세계에서도 변함없이.
 
"마물이야.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있자."
 
만약 시우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아니, 자신들은 초장에 습격당해 끝장났을 것이다.
살아남았다 한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든다.
 
"휴, 겨우 구해왔다. 빌어먹고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니네."
 
헌터인 자신도 이렇게 무서운데 일반인인 그가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었을까?
 
"배고프지? 빨리 먹자."
 
어찌 그런 미소를 지으며 작은 빵 덩이를 내게 갈라주었을까?
 
"뭘, 우린 친구잖아."
 
이렇게 달라진 외모에도 나를 친구로 여겨주는 걸까?
 
"친구 좋은 게 뭐야. 아, 공짜는 아니야? 나중에 잘 되면 배로 갚으라고."
 
시우가 그리 웃으며 등짝을 팍팍 두드렸다.
 
"으... 응."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고."
 
말은 그렇게 했음에도 그의 눈동자엔 조금의 탐욕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사는 차원이 달라졌을 뿐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고 또한 구원이었다.
 
"너 그거..."
 
"아,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날이 지나면서 그의 얼굴엔 잔 상처가 늘어갔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의 무릎이 동전 몇 푼에 꿇려지는 것도.
꼬르륵 소리를 내면서도 음식을 나눠주는 것도.
뭔지도 모를 녀석의 손찌검에 자국이 남는 것도.
 
내가 강해진다면 그런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이토록 굶을 필요 또한 없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해야만 해."
 
필사적으로 단련했다.
무술을, 마법을, 야성을.
 
딱히 재능 있는 헌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차원을 이동하고, 몸이 바뀌며 그 한계치 또한 달라졌다.
 
그 재능의 덕인지, 노력의 탓인지 머지않은 시기 나는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나의 눈치를 보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그래, 호의적이라는 부분은 시우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에 추악한 탐욕이 들어차 있었다는 것만 뺀다면.
 
그들은 나의 명성을 원했고, 강대한 힘을 바랬으며, 심지어는 바뀌어버린 몸마저 탐했다.
 
강해질수록 구역질이 치밀었다.
시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강해지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 모르겠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빨리 너도 먹어봐."
 
"좀 천천히 먹어. 많이 있으니까."
 
허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는 그의 눈빛은 오랜 고난에도 티 없이 맑았다.
힘이 늘어갈수록 탁해지는 나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미안, 이번에는 위험할 것 같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것이 아름답지 않았다.
 
"아니, 괜찮은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안돼. 위험해."
 
물론, 그의 눈빛이 변한 것은 아니다.
더이상 빛남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눈빛이 탁해졌을 뿐.
 
그 사실을 조금만 더 빨리 알게 됐더라면 어땠을까?
 
"뭐 하는 거야.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이차원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해졌다.
부와 명예는 가득했으며, 먹을 것 따윈 차고 넘쳤다.
 
하지만 시우는 여전히 일반인일 뿐이었다.
나를 돌보아주던 그는 점점 돌보아지는 신세로 전락해갔다.
 
은인에서 동료로. 동료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부하로.
 
그는 시중이자 짐꾼이었으며, 야성의 세계에선 신분으로서 노예에 가까웠다.
 
"미안, 그래도 역시 도움이 되고 싶어서."
 
"도움은 무슨... 방해만 될 뿐이라고. 너도 알잖아."
 
이런 말을 할 바엔 입이라는 것이 존재치 않았으면.

남은 것이라곤 후회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과거를 돌릴 순 없었다.
 
그가 내게 베푼 선의가 잊혀져갔던 것처럼.
힘과 명예가 어둠이 되어 눈을 가린 것처럼.
 
"아...?"
 
그가 나를 대신해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다행... 다행이다..."
 
"아아...?"
 
방심한 새 다가온 최후의 적의 발악.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약하디약한 사내.
 
"시... 싫어... 어째서...?"
 
억겁의 어둠에도 사라지지 않던 그의 빛이 마침내 존재를 감추었다.
누군가의 오만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어둠으로 인하여.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어리석은 이는 한 차원에서 가장 강한 이가 되었다.
어딘가에서는 천하제일인으로, 어딘가에서는 대마도사로, 어딘가에서는 수왕으로.
 
각자의 명칭은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해졌다.
강해질 이유를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누렸다.
함께 나눌이는 없었다.
 
더 이상 누구도 그녀를 손찌검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 누구도...
 
왜 강해지고 싶었는가?
어째서 강해져야 했는가?
 
그것을 떠올렸을 때.

천하제일인은.
대마도사는.
수왕은.

아... 아아... 


―――――――――――――――――――――!!!


그저 평범한 아이와 같이 주저앉았다.
사흘 밤낮으로 통곡만을 흘렸다.
 
세상에 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년은 이미 그 빛을 잃었기에.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을 돌릴 방법을 탐구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둠만이 자욱하던 나날.
그녀들은 발견하고 말았다.
 
"시우...?"
 
절대자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벽. 그 밖에 소년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녀들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벽을 넘었다. 찢고, 붕괴시켰다.

.
.
.
 
"그러니까..."
 
"응."
"그렇다."
"냥."
 
그렇게 여인들은 한 소년의 앞에 모였다.
 
"따라하지 마라?"
"그대야말로."
"냐냐냥!"
 
아마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 누구보다도 밉고, 혐오스러운 이들과 동시에.
소년을 구하지 못한 어리석은 어둠과 함께.
 
"자, 다들 싸우지 말고요.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해보죠."
 
소년... 아니, 청년의 발언에 다투던 여인들은 급히 자세를 바로잡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갚지 못했던 빚을 갚아야만 하니까.
 
자신들의 소년과 지금의 청년이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도.
이 무거운 죄업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하는 더러운 술수일지라도.
 
― 꼬르륵...
 
"아... 저희 밥부터 먹죠?"
 
"응, 응."
"그대의 뜻대로."
"냥! 냥!"
 
머쓱한 소년의 웃음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들.
 
천하제일인은 속 없는 만두를.
대마도사는 딱딱한 호밀빵을.
수왕은 풀로 끓인 죽을.
 
그들의 세계에서 소년이 좋아하던 음식을 떠올렸다.
 
소년이 최대한 식비를 줄여보던 것이 버릇이 된 것도 모른 채.
단순히 소년이 좋아하던 음식을.
 
"저... 놓아주시면 안 돼요?"
 
한 세계의 절대자라기엔 너무나 모자람 많은 행태였다.
 
"안돼."
"안된다네."
"냐냐냥."
 
그래, 모자랐기에 들끓는 마음을 이렇게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저 혼자 두지 말라는 것처럼 청년을 끌어안아서.
 
"비켜! 이 자식들아!"
"그대나 비키게나. 이 금수랑 같이."
"캬아아아아악!!!"
 
 
 
**


3명의 절대자 헌터팟을 이룬 초심자 시우

미국이 울고 일본이 오열하는 sss파티를 만들게 되는데


과연 동일인물 3명의 하렘은 하렘인가 순애인가

그래, 이건 순애하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