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나는 머리에 손을 짚고 길바닥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웅웅대고 있어서 어지러웠다.


주변을 둘러 보니 편의점이나 집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있는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내가, 여기 왜 누워 있는 거지…’


타다다당-


때맞춰 들려오는 총소리가 내가 왜 쓰러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답해 주는 것 같았다.


아니, 총소리?


총소리를 듣고 설마 해서 내 몸을 이곳저곳 더듬어 보니 총알 자국은 없는 듯 했다.


그래, 총에 맞았으면 일어나려 했을 때 아파서 못 일어났겠지.


그나저나,


‘시선이 많이 낮아진 것 같은데…’


내 시선이 낮아진 것인지, 확실히 건물들이 더 높아 보였다.


더군다나 아까 몸 이곳저곳을 확인했을 때 보았던 것은 분명 내가…


‘여자가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그래, 하루아침에 여자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다는 것이지.


그 때, 내 머리가 찌릿 하고 울리며 무언가 기억 같은 것이 떠올랐다.


‘...헬멧단하고의 전투가 있었다…?’


콰앙-


“으꺗?!”


내가 방금 떠오른 이상한 기억에 대해 생각하려는 타이밍에 폭발음이 지근거리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충격은 내가 숨어 있던 엄폐물에까지 전해졌다.


그래, 전투가 있었다가 아니라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라는 거지.


그 생각을 마치자, 나는 엄폐물에서 벗어나 내가 들고 있는 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했다.


누구 하나는 맞겠지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만일 그 잠깐의 기억으로 추론한 결과가 맞다면-


여기서 나는, 총을 맞는다고 절대로 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으, 으아아아!!!”


그, 절대 무서워서 막 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이다!”


타다다당-


“으꺄앗?!”


나는 몇 명 맞추지 못한 채로 총알을 무더기로 얻어맞고 기절했다.


내 추론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


내가 다시 일어난 것은, 병실에서였다.


다행히 내 추론이 맞았는지 나는 살아서 병실의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아무래도 내가 하던 게임인 블루 아카이브의 세계 속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의 형태로 내가 어느 학교 학생인지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이 검은색 교복의 형태는…트리니티 정의실현부 학생인가.


화장실을 가며 거울을 보니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 특색 없는 모브의 모습이었다.


그래, 뭘 기대한거냐.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와 구호기사단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곧장 바깥으로 나왔다.


“아, 햇빛이 밝네…”


하늘을 바라보니,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던 자기 혐오의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위험한데. 


‘3학년인데, 나는 언제까지 1인분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냥 이대로 짐덩어리가 될 바에는, 정의실현부를 나가고…’


툭-


그렇게 내 것이 아닌 어두운 감정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 지 몰라 길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서 있던 중,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사실 어깨가 부딪혔다기엔 내 키가 150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라 내 머리와 그 사람의 어깨가 부딪혔다고 보는 게 맞았지만.


“아, 죄송함다. 괜찮슴까?”


아무튼, 내가 부딪힌 사람은 정의실현부의 2학년 부원인 나카마사 이치카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 최애캐이기도 했다.


실눈에, 흑장발, 그리고 슴다체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들어 있었기에 나는 이 캐릭터가 일본 서버에서 나오자마자 반드시 뽑아 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거의 7천장을 쌓아 놓고 결국 이리로 직접 오게 된 건 조금은 아쉬웠지만,


“어…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심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최애캐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아, 아니요…”


나는 아직도 약간 얼떨떨한 상태로 겨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최애 앞에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 틀림없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무언가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질문했다.


“그, 선배. 혹시 안 좋은 일 있으심까?”

“안 좋은 일은 없는데요…제가 3학년인 건 어떻게…?”

“저희 저번에 만난 적 있지 않슴까. 그건 그렇고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셔서…”


음, 저번에 한 번 만난 적이 있구나.


그나저나 내가 속으로 어쩔 줄 몰라 했던 감정들이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그런데 길 가다 부딪힌 사람의 얼굴 표정이 별로인 걸 보통 신경을 써 주나?


아무리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해도 그렇지, 보통은 신경을 안 써 줄 텐데.


역시 내 최애야.


이러니까 내가 매일 블루 아카이브 커뮤니티에서 이치카는 정실이라고 꾸준글을 올리지.


어쨌든.


“그, 별 일은 없어요…”

“그러심까.”


내가 그런 생각들 끝에 한 마디를 또다시 겨우 내뱉고 가려고 발을 옮기려던 찰나, 이치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 선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디저트 카페 같이 가는 건 어떻슴까?”

“디저트 카페요…?”


그 내용은, 디저트 카페를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디저트 카페, 분명 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텐데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흠, 이것도 원래 있던 기억인가.


“조…좋아요. 같이 가요.”

“그럼 디저트는 제가 사겠슴다~”


내가 수락의 의지를 내비치자, 이치카는 내 팔짱을 끼고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가면서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나는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걷는 데 대부분의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못했다.


으, 내 키가 줄어든 게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


나카마사 이치카.


그녀는 16살로, 트리니티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디저트 카페에 와 있었다.


“헤헤…”


파르페를 주문한 채로 빵실빵실 웃고 있는 저 선배님과 함께 말이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트리니티의 학생을 잡아다가 몸값을 요구하던 헬멧단과의 짧은 교전이 있었다.


그 짧은 교전 중, 이치카는 눈앞의 이 선배님이 어디 있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야,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이 선배님의 총을 맞고 쓰러진 헬멧단원들은 없었지만 말이다.


견착도 제대로 하지 않고 쐈으니 당연한 걸까.


그래도, 평소에 의기소침하고 위축된 상태로 지내던 사람이 그렇게 나선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닐까.


이치카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는 눈앞에서 파르페를 다 먹고 헤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를 바라보았다.


“나, 나카마사 양…다 먹었어요…?”

“아, 네. 다 먹었슴다.”


선배는 이치카와 눈이 마주친 것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몇 마디의 말을 했다.


이치카는 선배와 마주쳤을 때부터 솟아오른 ‘선배를 마구마구 쓰다듬고 싶다’는 욕구를 참고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그…고마워요…”

“뭐가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검까?”

“아니, 길 가다가 마주친 나한테 디저트를 사 주기까지 했잖아요…그게 그냥 고마워서…헤헤.”

“...”


하지만 이어진 말에서, 이치카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했기에 그랬다.


***


“그…그럼 잘 가야해…?”

“선배도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이치카에게 파르페를 얻어 먹고 나는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헤헤…”


게임에 빙의하고 처음으로 만난 게 최애캐고, 거기다가 최애캐한테 디저트까지 얻어 먹었다니.


이건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타다당-


“아…여기는…”


그렇게 무심코 걷다 보니 사격훈련장의 근처였다.


또 떠오른 기억에 따르면 기숙사 방향과 사격훈련장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딴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


나는 잠시 사격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렇게 빙의한 이상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 지도 모른다.


죽으면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죽는게 그렇게 쉬울 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힘들게 죽고 나서 진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사격법이라도 확실히 익혀 둬야겠지.


군대에서 이미 익힌 적이 있다고 해도 몸부터 바뀌었으니까.


벌컥-


그리고 열고 들어간 사격장에는,


“어, 선배 오셨슴까?”

“이, 이치카…?”


이치카가 있었다.


아니, 이 시간에 사격장에 있다고?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