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마약 8화


*


그 길로 상점가를 벗어난 나는 다음 행선지로 모험가 길드를 택했다.


굳이 모험가 길드가 아니더라도 이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겠지만 중요한건 내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봐야 6일.


이미 시험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를 잡고 손님이 모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장사를 시작한다?


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너무 오래 걸려."


그러니 장사는 시작하더라도 아카데미에 수석으로 입학한 후 시작하는 것이 상책일 터.


속으로 그리 다짐한 나는 탁탁, 하고 새로 산 신발의 코 부분을 바닥에 두드렸다.


물론 꼭 느리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모험을 다니며 찾아야 할 기연이나 직접 채집해야 할 재료들도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우···."


할 일이 태산이라는 것을 느낀 나는 이미 돈까지 낸 숙소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이 숙소에 있는 것은 아까 포션 상점에서 나와 간단하게 쇼핑을 한 후 이 숙소로 방을 잡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꽤 비싼 숙소라서 그런지 방의 구석에는 전신 거울마저 세워져 있었다.


아무렴 하루에 150실버라는 큰 비용이 드는 만큼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비추었다.


"흠···. 적어도 뜨내기처럼 보이진 않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그렇게 평가한 나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디 이상한 부분은 없나 확인했다.


처음 남자의 집에서 옷을 훔쳐 빠져나왔을 때는 마치 아빠의 옷을 딸이 훔쳐 입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전혀 달랐다.


조금 깡마르고 얼굴이 홀쭉하긴 했지만 적어도 모험가라는 태가 날 정도는 될 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춤의 작은 단도. 다용도 주머니가 잔뜩 달린 상의. 발 끝부터 허리춤까지 전혀 살을 노출하지 않는 거친 재질의 바지까지.


모험을 하는 사람으로써 기본은 갖춘 듯한 모습에 나는 미약한 만족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런 부분에선 마법이 좋기는 하네."


내가 그리 중얼거렸다.


시선이 닿은 손가락에는 처음에 금고에서 훔친 반지를 제외하고도 새로운 반지가 하나 더 생겨나 있었다.


그것은 은빛의 링과 묵빛의 보석이 인상적인 반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입학 시험에서 수석으로 입학해야 하는 내가 반지를 사치품으로 샀을 리는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반지를 쓰다듬으며 이 반지를 팔면서 주인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이고 잘 오셨습니다! 네 이 안에는 무려 100m의 공간이 있구요, 거짓말 아닙니다! 제가 왜 거짓말 하겠어요?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하는게 비열해보이긴 했지만 체험 해보니 정말 그의 말대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안에 100m의 공간이 있다라···."


나는 천장의 흐릿한 마석불에 반지를 비춰보며 이리저리 기울여 보았다.


그렇다.


이것은 무려 2골드 500실버라는 거금을 들여 장만한 '아공간 반지'였다.


참고로 판타지에 자주 나오는 그거 맞으며, 검은 보석에는 아공간 마법이. 은색 링에는 주인이 원할 때마다 물건을 편히 넣고 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부여된 귀물이었다.


"흠···."


그런 귀물을 손에 끼고 짧게 신음한 나는 한번 시험삼아 미리 넣어뒀던 약통을 꺼내고자 생각했다.


그러자 내 의지에 따라 아공간 반지가 진동하더니 어느새 약통이 내 손에 잡혀있었다.


"효과는 확실하네."


내가 살짝 미소지었다.


이러니 이 아공간 반지는 모험가들 사이에선 꿈의 아티팩트라고 불리는 장비였다.


무기를 넣으면 무기를 화살을 넣으면 화살을 원하는 순간 원하는 신체 부위에서 꺼낼 수 있다니!


말도 안되는 편의성은 물론이고 실용성까지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지만.


"확실히 좀 비싼 감이 있지."


내가 반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히 목숨 값보다 비싸진 않겠지만 이 세계에서 1골드가 평범한 4인 가정 1년치 생활비와 맞먹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용병이 구입하기엔 정말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이 아닐수 없을 터.


앞으로 약 일주일이지만 모험가로써 활동 할 생각인 나는 이 반지를 보였을 때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은 물론이고 낮은 확률로 뒤통수에 칼이 날아올 것이 뻔히 보였기에 반지를 낀 손을 미리 구매해 두었던 하얀색 장갑으로 덮었다.


물론 금고에서 훔쳤던 금색과 푸른 보석의 반지도 같이 말이다.


이렇게 준비는 끝.


나는 모험가 길드로 향하기 직전 내게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원래 금고에서 훔쳐서 가지고 있던 돈이 3골드였으니까···.


"거의 다 써버렸나."


옷도 새로 사고 반지도 사고 마차도 타고 길안내도 받고 하는 사이 그 많던 현금 무더기도 거의 다 써버리고 말았다.


물론 내 손에 끼워진 이 조그만한 아티팩트 하나에 거의 다 탕진한 것이지만 이 아티팩트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후회는 없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숙소를 나서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모험가 길드는 의외로 도시 중앙이 아니라 변두리의 외각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쉴새 없이 조잘거리던 꼬마의 말에 의하면 밖으로 나가는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아 모험가와 용병들이 편하고 빠르게 드나들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나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지.


그리 생각한 내가 모험가 길드의 문 앞에 섰다.


그러자 문을 열기 전임에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들어봐! 그러니까 내가 말이야! 그 녀석의 콧대를···!

-어휴, 자네 술이 너무 됐네 술이 됐어.

-동쪽 숲에서 하양쇠뿔버섯 열송이. 가격은 후하게 쳐주지.

-저희 얘가 근처 강가에서 놀러간다고 하고 돌아오질 않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번 의뢰는 다 꽝이군. 할만한게 없어.


우하하하 웃는 소리.


책상을 쾅쾅 내리치는 소리.


누군가 애원하는 소리.


조용하게 오가는 거래 소리.


혀를 차는 소리.


식기가 부딫히는 소리.


전부 방랑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소란스러움에 나는 잠시 입구에서 머뭇거리다가 금새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호오··· 못보던 얼굴인데."

"여자인가?"

"예끼 변태새끼야. 여자면 어떻고 아니면 어쩌려고!"

"신입인가."

"비쩍 마른게 제 몸 하나 간수 못 할 것 같이 생겼군."


그런 나에게 대부분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일부는 나를 바라보았고 그중에서 더더욱 일부는 나를 슥슥 스캔하며 나에 대한 품평까지 내놓기도 했다.


특히 저 머리를 빡빡밀고 양아치 같이 생긴 놈.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특히 기분 나빠 연금술을 이용해 조금 매운 맛 좀 보게 해줄까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앞으로 용병으로써 꽤나 활동해야 할 것을 생각해보면 일일이 저런 것에 반응하는 것보단 익숙해지는 것이 마음에 편하리라.


나를 따라오는 시선들은 그런 마음으로 떨쳐낸 직후.


새로 사서 신은 바람에 영 어색한 감촉의 신발을 고쳐 신은 나는 곧장 접수원에게 향했다.


"저, 여기가 접수하는 곳인가요?"

"네~ 의뢰를 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받는 쪽?"

"아뇨. 둘다 아니라 모험패를 발급 받으러 왔어요."

"어머. 복장이 너무 완벽하셔서 이미 모험가신줄 알았어요!"

"괜히 띄워주시지 마세요. 저도 제 옷에 길이 안들었다는건 알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뻣뻣한 옷매무새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제야 짓궃은 미소를 풀어낸 접수원은 무언가 사각사각 적어내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모험패는 아이언 등급부터 시작하실거에요. 혹시 이의 있을까요?"

"있어요."

"어머?"


내 당당한 태도에 접수원은 귀여운 것을 봤다는듯 눈을 샐쭉 기울이고 입가를 가렸다.


"그럼 어떤 등급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실버."

"등급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저희 모험가 길드에 있는 지부장이나 간부들과 직접 대련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어요."


내가 확실하게 단언했다.


그러자 접수원은 신기한 사람을 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또 다시 무언가 사각사각 써서 허공에 던졌다.


사라락.


마법처럼, 아니 아마 마법에 의해 종이가 사라지고 접수원과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이언 등급부터 실버 등급까지 의뢰를 통해서 올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내 실력이라면 골드 등급까지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거기까지는 현재 내 수중에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갈 수 없었다.


심사를 볼 때마다 10실버의 가격이 들어가는데 현재 내 수중에 남은 돈은 28실버.


승급 심사를 두번 보면 전부 사라질 돈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승급 시험이 준비되었다는 접수원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뭐어? 실버 등급 심사아~?"

-야, 야야! 아오 저 미친 변태 새끼가 진짜···!


누군가 내 뒤로 다가왔는지 내 신형에 그림자가 지는게 느껴졌다.


동시에 귓가에 역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대머리가 분명했다.


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게 뭐?"

"허! 그뤠? 그게 모?"


파하하하하하!


-큽, 흐흐···.

-푸흡···.


그는 내 말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으나 그 모습이 퍽 웃겨보였는지 따라 웃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제야 나는 시끌벅적하던 모험가 길드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고 길드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이 대머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들 깨달았다.


이것은 대머리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잠깐 굳었다가 오히려 더 날뛰며 나를 향해 시비를 걸었다.


"이봐, 꼬맹이."

"누가 꼬맹이라는거야?"

"너 말이야 너."


쿡쿡.


대머리가 그렇게 말하며 내 이마를 찌르려고 하는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그 손길을 피해냈다.


심상치 않게 예의 없는 대머리의 행동에 기분이 내 기분이 몹시 더러워지려던 찰나.


"그래,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은 네년."


아마 그가 노리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듣는 정말로 엄마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년인 내 표정이 오묘해졌다.


이걸 패드립으로 봐야할까 아닐까.


그런 시답잖은 고민이 들었다.


허나 남자는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욕을 이어갔다.


"딱 봐도 모험가 길드는 처음 오는 것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아이언부터 시작해."

"네가 무슨 상관인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하!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어이가 없다는듯 고개를 팩 돌렸던 대머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품을 뒤적거리더니 그곳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손 안에서 번쩍이는 그것.


그건 이 모험가가 용병이자 모험가로써 자기 앞가림은 자기 혼자 할 수 있다는 증거인 실버 등급 모험패였다.


허나 그것 얼마나 심하게 닦았는지 광택의 수준을 넘어 빛을 완벽히 반사시키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 반짝거림은 어찌나 심하던지 거의 이 대머리의 머리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준으로 빛나는 바람에 내가 미약하게 눈쌀을 지푸렸다.


대머리는 그런 나를 보고 쫄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바로 그 실버 등급 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그게 나한테 참견하는 이유가 되진 않을텐데."


내가 '니가 실버인거랑 나한테 시비거는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하는 태도로 그렇게 말하자 잠시 어이 없다는듯 나를 쳐다본 대머리가 소리쳤다.


"뭐라는거야. 너 병신이냐?"

"뭐···?"

"내 말은, 너 같은 초짜 머저리가 나랑 같은 실버 등급이라고 생각하는게 기분나쁘다 이거야! 실버 등급이 되려면 어떤 경지에 올라야하는지 알고는 있냐?"


대머리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경험을 쌓아서 착실하게 올라가던지, 소드 유저가 되던지, 1서클 마법사가 되던지, 3류 무인은 되야지 실버가 될 수 있다 이 머저리야."

"···그래서."

"그래서? 그래애서~? 뭘 그래서야! 너 같은 툭 치면 부숴질 것 같은 약골이 도전할 수 있는 등급이 전혀 아니다~ 이런 말이지! 당장 처 꺼지던가. 아니면 저 접수원한테 가서 '깝쳐서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해. 그러면 봐줄게."


대머리가 그렇게 말하곤 낄낄거렸다.


저 멀리서 어떤 이가 -옳소옳소! 하고 동조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아무래도 내 모습이 최소한의 모험가로써 태가 나긴 해도 정말 최소한의 태만 난 모양이었다.


"하아···."


내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대머리에게 냉랭하게 쏘아 붙였다.


"3초줄게. 너, 당장 여기서 안꺼지면 나한테 죽는다."


움찔.


그런 내 태도에 '진짜 이거 뭐 있는거 아니야?' 하는 표정을 지은 대머리는 눈을 도륵도륵 굴리다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 이 말에 도망치면 자신의 명성이 개박살 날 것이라고 느꼈는지 애써 내 말을 따라하며 나를 약올렸다.


"뭔···. 3츠 드꼐. 등장 은꺼지면 즉는다~"

"3."

"뭔 3초야! 죽는건 너고~"

"2."

"어쭈? 해보려고? 해봐, 해봐!"

"1."


스각.


주르륵.


정말 끝까지 거짓말인줄 알았는지 한쪽 다리를 들고 혀를 내밀며 머리에 양 손을 붙이고 흔들고 있던 대머리는 그렇게 그 우스꽝스러운 자세 그대로 굳고는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야 대머리 자신의 목에는 아주 날카롭게 변한 마루 바닥이 파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자신이 개좆됐음을 인지한 대머리의 태도가 급속도로 침착해졌다.


'조, 좆됐다···!'


그런 생각을 하는게 뻔히 보이는 모습에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빠르게 이 자리를 뜨기 위해 살며시 몸을 뒤로 빼려던 대머리는 이내 눈을 살짝 돌려 뒤를 보고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히익···!"


왜냐하면 그의 바로 뒤에도 그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조금이지만 시끄러웠던 모험가 길드에 싸늘한 정적이 찾아오고.


-마법사?

-마법사라고?

-마법사가 대체 왜 여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이들의 중얼거림만이 간간히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쾅!


길드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호탕하게 소리치며 길드의 문을 걷어 차고 들어왔다.


"하하하하하하! 이거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주 물건이잖아? 절대 실버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실버로 신청한거야?"


당연하지만 정적 속에 일어난 커다란 소음은 모두의 시선을 불러모았고 내가 갑자기 난입한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눈썹을 꿈틀대던 사이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모험가 길드 수도 지부장 하인더···?

-지부장이라고···? 저 남자가···?

-수도 모험가 길드 지부장이잖아?

-죽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던거야?

-하긴, 저 괴물 같은 남자가 죽었을 리가 없지.


모두의 시선을 동시에 모은 하인더라는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와선 내 가시를 톡톡 치고 자신을 소개했다.


"일단 이 흉악한건 좀 치우자고 친구? 화가 날법한건 알지만 아무래도 우리 수도 길드에 길드원끼리 싸움이 나서 누구 하나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지부장으로써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게 되니까 말이야. 이해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거부권은 없다는듯 나를 미소지으며 압박했고 그의 제안 아닌 제안에 나는 뚱한 표정으로 손을 놀려 대머리를 풀어주었다.


어차피 진짜 죽일 생각도 아니었지만 대머리는 거의 기듯이 도망치며 출행랑을 쳤다.


"으으, 히이이익!"


동시에 우리는 그가 지나간 자리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빠르게 바깥으로 향한 그의 발걸음을 따라서 길다랗게 무언가에 젖은 듯이 물에 길이 나 있었다.


어쩐지 그가 그렇게도 빨리 도망간 이유에는 공포심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섞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어···. 음···."


나는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던 건지 영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인더와 눈을 마주쳤다.


잠시 대머리가 있던 자리가 축축하게 물든 것을 곁눈질한 하인더는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짓더니 내게 제안해왔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갑작스럽게 자리를 옮기자는 그의 제안에도 나는 크게 저항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나 또한 누군가 똥오줌을 지린 자리에서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러운 놈.


나는 속으로 대머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마지막까지 더럽고 추잡한 놈이라고 낙인찍었다.


*


아카마약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