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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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인 당신만이,


이 뒤틀리고 일그러진 종착지가 아닌 다른 결과를...]


언제 보아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사, 그리고 상황.


이미 클리어를 하고 난 뒤에도, 나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이야기를 돌려보았다.


그때, 잡음이 섞였다.


지지직.


[다른 결과를... 다른 결과를... 다른... 결과를...]


"어라...?"


원래 들리던 목소리. 언제나 같았던 목소리 속에, 잡음이 섞이고 난 뒤부터, 서서히. 서서히 다른 감정이 섞이기 시작한다.


당신을 믿는다는, 당신에게 맡기겠다는 어조의 대사가 점점, 점점 자신에 대한 후회로 바뀌어간다.


[ 죄송해요... 제가 죄송해요... 선생님께만 맡겨서 죄송해요...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신비도, 헤일로도 없는 평범한 인간... 당신이 쉽게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알고는 있었지만...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고, 당신 혼자서 모든 걸 떠맡게 해버렸어요...


아아... 죄송해요... 저는, 저는...]


울음 섞인 한탄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부터, 난 천천히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몸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진다.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각이, 촉각이, 미각이, 후각이, 전부 마비된다. 세상이 암전한다.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남아있다는 청각만이, 유일하게 남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 저만 사라진다면... 저만 키보토스에 남아있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모든 선택을 맡긴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던 거네요...


제 신비를, 제 목숨 마저 제물로 바쳐야. 겨우 이 세계는...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걸까요... ]


이 총학생회장은, 결국 선생이 프레나파테스가 되어버린 세계의 총학생회장인가.


결국, 그녀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세계를 보고 만 것일까.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모두가 살아남는, 행복한 세계를.


입을 움직인다. 입을 움직인다는 감각조차 이젠 희미하다.


성대를 울려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가 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아로나'


그녀에게, 내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 아아... 선생님...? 당신이신가요...?


저는, 저는 당신에게 큰 죄를 저질러버렸음에도, 그럼에도 당신은 저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시는 건가요...? ]


'괜찮다니까.'


[ 아아... 아아... 선생님...


정말, 이기적인 부탁이겠지만... 다시 한 번... 


이 세계를... 당신의 학생들을... 부탁해도 될까요...? ]


'물론이지.'


모든 게 무너져버린 세계의 선생이, 행복한 세계의 선생에게. 화면 너머의 나에게 한 것과 비슷한 질문.


나도, 선생이라면 했을, 당연한 대답을 그녀에게 되돌려 준다.


[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


그렇게 세상이 다시 한번 밝아졌다.


***


삐익. 삐익.


요란한 기계의 비프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전신이 무겁다.


전신에 무언가가 치렁치렁 달려있다.


불편하다.


전부 뜯어낸다.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암전되어 있다.


어둡고 어둡다.


창문 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폐허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의 옆.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태블릿을 손에 쥔다.


아직, 3개의 구멍은 나있지 않다. 아직, 나에겐 나를 지킬 방법이 남아있다.


무리하게 일어서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그럼에도, 할 일은 잊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익숙한 감각이 드는 기동어를 읽는다.


"우리는 원한다. 예리코의 통곡을. 우리는 기억한다. 일곱개의 화두를."


기억하는 것과 약간 다르다. 하지만, 이것이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생체인증 완료. 선생님,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


스토리 속에서는 계속 무뚝뚝한 반응을 보였던 프라나의 목소리에, 약간이나마 감정이 섞인 것이 느껴진다.


웃음이 나온다.


벌컥!


"방금, 무슨 신호가... 서, 선생님...? 어떻게...?"


의사는 당황해, 분명 방금까지도 소생이 불가능하다 판단했던 여성을 쳐다본다.


팔과 다리는 심하게 야위어, 걸을 수는 없으며,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끔찍했던 상처가.


전신이 찢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느껴졌던 그 폭발의 흔적이,


전신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 몇 가닥의 파란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아주 연한, 알아채지 못할 만큼 약한 고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고리를 가로지르는 빛의 십자. 학생들은 구분할 수 없지만, 선생은 알 수 있는 그것.


선생에게는 너무나 익숙할, 총학생회장의 헤일로였다.


***


[ 속보입니다...! 선생님이, 소생불가 판정을... ]


아,아...


나는, 뭐를 위해...


[ 네...? 저, 정말입니까...? 저, 정정보도 입니다...! 선생님이, 방금...!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부, 분명 소생불가라는ㅡ ]


툭.


한 손에 들고 있던 라디오를 떨어트렸다.


잘 보이지 않는 한눈도 상관없다.


어느샌가 날아가버린 머플러도, 상관없다.


다만,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깨어나셨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나, 구원을 받았고.


또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소녀.


스나오오카미 시로코는, 선생이 지금껏 누워있었을 병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드르륵!


"선... 생님...!"


"아... 시로코...?"


정말이다. 정말, 살아있다.


멀쩡해진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그저, 눈물만이 났다.


와락.


"진짜... 살아 있어... 응..."


"내가, 미안... 시로코..."


"아니야, 아니야..."


체온이, 체온이 느껴진다. 죽지 않았다. 잃어버리지 않았다.


아직은, 지킬 것이 남아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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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좋으면 담편도 가져옴 ^오^ 엄청 좋으면 패러디 연재도 함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