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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고 무언가를 위해 존재합니다.
의자는 앉기 위해 존재하고 연필을 쓰기 위해 존재하죠.
작중 이서연의 본질은 전색맹 포토그래퍼고 그 외 등장인물들도 저마다 목적과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사트르트는 이처럼 존재와 본질을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역할'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를 선고 받았습니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역할과 별개로 우리는 매순간 선택 때문에 고통을 받죠.
주어진대로 태어났지만,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점.
즉, 본질과 존재보다 앞선 개념.
사르트르는 이를 실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서연의 인생은 주어진 그대로죠.
친누나의 죽음, 원인을 알 수 없는 TS화, 전색맹이라는 저주, 그리고 썸까지.
이 모든 것들은 능동적이고 주동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그저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다가온 사건이었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실존성은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공간의 지분이 크다고 봤죠.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해도 사회적인 동물이니까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능동적으로 행동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상관 없이 자유를 만끽하죠.
그렇다면 잿사체 주인공인 이서연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흑백사진 촬영.

절대 다수와 전혀 다른 관점이 이서연의 매력이자 무기입니다.
그래서 이서연은 사진촬영을 열망하고 좌절 속에서도 멈추지 않죠.
전색맹과 흑백사진은 이서연과 타인을 구분 짓는 명확한 장치거든요.

사르트르가 유행시켰던 실존주의는 구조주의의 등장과 함께 묻히게 됩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언어, 문화, 가치관 등 사회가 만든 구조에 따라서 구성된다고 바라보는 철학 사조에요.
예를 들어 한국인은 특유의 존비어 표현에 익숙하고 세는 나이를 사용하며 유교 문화에 친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존대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뿌리가 박혔고,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이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 나라 특유의 문화와 가치관을 토대로 생각하고, 옛날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구조주의 다음으로는 해체주의와 분석철학이 등장합니다.
사회구조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결정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사회구조를 면밀히 해체하고 분석해서 알아볼 차례죠.

잿사체 세계는 현실과 똑같이 적녹청 3색각을 바탕으로 사회구조가 이뤄졌습니다.
전색맹이자 남자였었던 이서연은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이제 막 벗어났습니다.
그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색일까요.
이서연의 이야기는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를 거쳐 해체주의와 분석철학으로 이어지는 철학 사조의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잿사체의 주제가 뭔지 파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선택과 실존 문제를 서술하신 것을 보고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잿사체는 순수문학의 본질에 다가간 웹소설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첫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깊은 내공에 감탄하고 갑니다.

사실은 사진철학의 관점에서 리뷰를 쓰는 것이 마땅하나 제가 거기까지는 공부하지는 못해서 뭐라고 쓰기 어렵네요.
'잿빛 세상의 피사체'라는 제목을 이해하려면 결국 사진과 촬영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가 필요하겠죠.
작가님은 흑백사진을 통해 어떤 얘기를 우리에게 하고 싶은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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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하게 소감 댓글 달았던 것 그대로 가져옴


사실은 비평으로 쓰려고 했으나 깊게 탐구하자니 머리 아파서 패스...


촬영은 문외한이고 사진철학 쪽은 공부한 적이 없어서 낯설더라고요


나중에 완결 치면 그때 비평 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