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지만, 저 또한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는 사람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이 글을 쓰는 요지를 정확히 말하자면 필력에 대해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을 공유함이겠죠.


*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논제가 있어요.


'필력이란 무엇인가.'


웹소설에서의 필력은 명징하게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개념이에요.


그래서 각자 필력을 보는 시선이 다른데...

일단 제가 생각하는 필력은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재미(기대감)에요.


이 기대감이라는 것은 하나의 조형예술과도 같아요.


캐릭터, 이야기, 연출, 감정선.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끔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등장하죠.


하지만 저는 문장의 유려함이 필력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써볼게요.



***



#1.


앞치마를 맨 시우가 먹음직스러운 토스트를 구웠다.

시아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침을 줄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는 완성한 크림치즈 토스트를 접시 위에 얹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친구와 눈을 마주쳤다.


"오랫동안 굶어서 배고프지?"


"저, 전혀?"


그녀의 말과는 반대로 요란하게 흔들리는 꼬리.


"그래? 괜히 만들었네."


수인으로 변한 친구의 모습에 장난기가 생긴 시우는 토스트를 버리는 시늉을 했다.


"갸약! 당장 내놔-!"


참지 못하고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며 달려드는 그녀.


"기, 기다려."


당황한 시우는 습관적으로 애완견한테 하던 행동을 그녀에게 해버렸다. 


"앉아."


-털썩.


"손."


-척.


시아는 본능적으로 시우의 손 위에 손을 올렸다.


"...어?"


당황한 시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2.


달궈진 팬에 버터를 두르고 호밀로 만든 식빵을 지글지글 굽는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올곧게 자라는 귀리는 어느새 우리들의 주식이 되었다 
 
 버터의 향이 열을 타고 올라와 코를 찌른다.
 
 표면이 먹음직스런 갈색으로 변한 빵은 감칠맛과 바삭함을 모두 끌어안고 훌륭한 요리로 변모할 준비를 마쳤다.
 
 다음은 크림치즈.
 버터나이프를 이용해 평소보다 1.5배는 될 정도로 꾸덕하게 펴 바른다.
 
 과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호밀빵 특유의 산미가 침샘을 자극하여 치즈의 꾸덕함을 무해한 존재로 만들것이다 
 
 호두와 아몬드를 양손으로 으깨어 위에 뿌린 다음,
 
 어린 시금치 잎 두 장을 얹고 올리브유에 재워둔 토마토 조각을 꺼내 위에 쌓았다.
 
 마지막으로 통후추를 그라인더로 갈아 마무리한다.
 
 이렇게 두 개의 토스트를 만들어 내 몫을 제외한 나머지 하나를 그릇에 담았다.


 식탁 앞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녀의 시선이 음식을 쫓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철저히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었기에 그 마수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며칠 동안 식사를 안 했다면 더욱.



***



똑같은 장면을 다르게 서술해 봤어요. 


저는 '#1'의 글이 필력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캐릭터, 인물 사이의 관계, 이야기의 정보를 전달해 최소한의 기대감을 만들어 냈거든요. 


'#2'에는 문장의 유려함은 있어도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후자의 문장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묘사는 적절해야 돼요.

절대로 상상력의 함정에 빠지면 안 돼요.


예를 들면 '커피를 마신다.'라는 문장 하나조차도 작가의 상상을 더하면 글 한 편을 쓸 수 있죠.


 

***



#3.


요리사에게 있어 커피는 가히 맛의 종주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욕심이 많아 음료인 주제에 짠맛, 신맛, 단맛, 쓴맛까지 고루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커피의 묵직한 짠맛을 사랑했다.

 산미는 주장이 강해 자칫하면 커피 본연의 매력을 성글게 하고, 단맛과 쓴맛은 서로 경쟁심이 강해 혀를 무디게 한다.
 
 오직 짠맛이 스스로 희생하여 묵직한 풍미를 이끌어낸다.
 
 이 사소한 차이에서 느껴지는 배려심이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였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특히 핸드드립 방식을 선호한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촉감으로 느끼며,
드립 포트에 담긴 물을 S자 형태의 관을 통해 붓는다.
 
자연의 힘으로 새까만 비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잠깐의 즐거움을 영원처럼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아 미각을 부풀리고.


성질이 급해 먼저 올라오는 향취를 한 모금 후각으로 마신다.
 

충분히 향에 익숙해졌을 때.
비로소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면.
 
풍미가 혀를 타고 차례대로 폭발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커피를 즐기는 방법이다.



***



어떤가요?


과하죠?


일단 저는 과하다고 느껴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커피를 마신다.'라는 일련의 행동을 저렇게까지 표현하려 하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필력에는 과한 묘사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에요.


언제나 이야기가 우선이 되어야 해요.


문장의 유려함은 이야기가 먼저 받쳐주었을 때, 비로소 작가의 장점이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좋은 이야기만이 존재해도 독자들은 매료되겠죠.


그러니까 필력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지 않길 바라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


오직 재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