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태어난 세계에는 동물 귀와 동물 꼬리가 난 인간, 즉 수인이 존재한다.

 

 “dl dkdlfh wjdgoTdjdy.”

 (이 아이로 정했어요.)

 

 그리고 이쪽 세계에서 수인은 보통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펫샵에서 입양된 나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호두. dhsmfqnxj sp dlfmadms 호두di.”

 (호두. 오늘부터 네 이름은 호두야.)

 

 애완동물이 되는 게 운명이라면… 나는 생각했다.

 

 야생에서 들개처럼 살지도 않고, 식용으로 키워지거나 강아지 공장의 부품이 된 것도 아니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충분히 행운이라고 치고 만족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집에 도착한 나는 거울부터 확인했다.

 

 거울상은 진열장 유리에 어렴풋이 비쳤던 모습 그대로였다.

 

 큰 눈과 앙증맞은 입술. 보호욕을 자극하는 앳된 얼굴.

 

 과연, 나는 선택받을 만했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과민한 후각과 청각에, 새빨간 머리와 꼬리털의 너무 부드러운 감촉에.


 그리고 성별이 바뀐 신체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시간만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2]

 “EhrEhrgks dkdlfotj dntehs wnrh epfudhkTwksgdkdy.”

 (똑똑한 아이래서 웃돈 주고 데려왔잖아요.)

 

 거울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화장실도 잘 가린다.

 

 주인이 밥을 먹을 때 옆에서 귀찮게 굴지 않는다.

 

 목욕을 시켜도 가만히 있는다.

 

 소위 ‘이쁜짓’만을 골라서 했다. 주인이 내게 끔뻑 죽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djWja dork dlfjgrp diawjsgkdo? djEjgrp rydbrtlzuTrlffo?”

 (어쩜 애가 이렇게 얌전하대?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ghensms dnjsfoqnxj dlfoTdjdy. rydbrdms Ekfh dks tlzuTdjdy.”

 (호두는 원래부터 이랬어요. 교육은 따로 안 시켰어요.)

 

 “anj? rjwltakf clwl ak! snlwlq dosms sns wha EpdjTek gkaus dhtwkdgkrh tlsqkfwkdeh akdkr gpwlqdjshgrh, shvdms rhtdps antjdnjtj anfrjsdmf enwlf ahtgody. …rmfjsep sjs djWja rmfjgrp diawjsgksl?”

 (뭐? 거짓말 치지 마! 뉘집 애는 눈 좀 떼었다 하면 옷장하고 신발장도 마악 헤집어놓고, 높은 곳엔 무서워서 물건을 두질 못해요. …그런데 넌 어쩜 그렇게 얌전하니?)

 

 내가 착하게 구는 것과는 별개로, 주인도 좋은 사람이다.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산책도 거르지 않는다.

 

 매일은 아니지만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목욕도 시켜준다.

 

 (딱히 필요는 없지만) 수인 전용 놀이 용품과 옷도 사준다.

 

 이전 세계에서 주인을 잘못 만난 애완동물들의 취급이 가혹한 걸 생각하면, 내 경우엔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다만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enfdl cjt aksskadlsp. tlfndi, dlstkgodiwl?”

 (둘이 첫 만남이네. 시루야, 인사해야지?)

 

 나를 자꾸 다른 수인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까 호들갑을 떨며 나를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던 건 주인이 초대한 자기 친구였다.

 

 그리고 주인 친구는 자기가 기르는 쪼그마한 수인을 데리고 왔다.

 

 주인 친구는 자기 뒤에 숨어있던 수인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녀석은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덩치에 예쁜 털색이 요크셔테리어를 연상시키는 녀석.

 

 여자애 같은 외모에 팔랑팔랑 공주님 같은 드레스를 입혔지만, 수컷이다.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나와 우리집 안을 경계심 많은 눈초리로 훑어보던 녀석은,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웃기지? 이 옷. 나는 싫은데 엄마 취향이야.” 내게 말을 걸었다.


 …….

 

 놀랐다.

 

 그렇구나. 같은 수인끼리니까 당연히 말도 통하겠구나.

 

 산책할 때는 다른 수인과 마주쳐도 대화를 시도하지 않아서 몰랐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통성명을 나누었다.

 

 내 이름은 호두. 네 이름은? “시루.”

 

 평소엔 뭘 하고 지내? “엄마가 없을 때 집을 지켜.”

 

 좋아하는 간식은? “육포. 아, 껌도 좋아해.”

 

 “djaj, enfdl qjfTj clsgowuTsk qhek. antms dOrlfmf gksms rjfRk?”

 (어머, 둘이 벌써 친해졌나 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가벼운 문답을 주고받던 중, 주인 친구가 우리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사진을 찍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주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듯, 주인들도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시루에게 내가 옛날에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고.

 

 “나도 옛날엔 내가 사람인 줄 알았어.”

 

 시루는 처음엔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다가,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쇠로 된 소(자동차)나 인간들이 들고 다니는 네모반듯한 돌(스마트폰)의 정체와 용도 등등,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를 몇 가지 대니,

 

 “네 이야기 되게 재밌다!”

 

 …며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 보답으로 자기도 재밌는 놀이를 가르쳐주겠노라고 말했다.

 

 무슨 놀이인가 했는데, “이러면 엄마가 깜짝 놀란다?” 현관의 신발을 물어뜯으려고 하길래 겨우 뜯어말렸다.

 

 주인 친구가 돌아갈 때, 시루는 내게 손을 흔들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해맑게 말했다.

 

 수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3]

 몸의 변화는 곧 지능과 감수성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변화라기보단 퇴화를.

 

 그리고 더 큰 낙차의 폭을 보인 것은 지능보다 감수성 쪽이었다.

 

 예전엔 희로애락 사이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말로 표현 못 할 감정’이랄 게 있었다면, 지금은 단순하고 좁은 틀에 갇힌 느낌이다.

 

 가령 간식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주인이 목줄을 챙기면 기쁘다.

 

 주인이 가끔 퇴근이 늦거나, 나 말고 다른 아이에게 눈길을 주면 슬프다.

 

 주인이 산책가는 척 나를 미용실이나 병원으로 데려가면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노을이 지는 시간, 주인님이 돌아올 때가 되면 내 꼬리는 나도 모르게 살랑거린다. 문가를 향해 귀를 쫑긋하게 된다.

 

 주인님을 기준으로 재정립된 나의 일상.

 

 해체되고 분해되고 조립된 나의 감정,

 

 나의 모든 것들.

 

 그 안에 단 한 조각 남은, 내가 나인 걸 증명하는 기억은,

 

 내가 예전에 인간이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4]

 시루와 주인님 친구는 며칠에 한번 꼴로 우리집에 찾아왔다.

 

 가끔은 주인님 친구가 나를 시루와 함께 산책시키기도 했고, 반대로 우리집에서 시루를 며칠 맡기도 했다.

 

 시루와는 마음이 잘 맞았다.

 

 나는 시루에게 간식을 나누어주고, 시루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 둘도 없는 사이였다.

 

 ……어느 날 내가 시루에게 강간당하기 전까지는.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단순하다. 시루에게 발정기가 왔기 때문이다.

 

 시루가 내게 애교를 부리며 달라붙을 때,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낳아줄 거야?”

 

 “글쎄, 그럴 일은 없어.”

 

 내가 코웃음을 치자 시루는 혼란스러워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아양을 떨어서 얻어낸다는, 자신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시루는 포기하지 않고 내게 달라붙었다. 나를 끌어안고선 내 꽁무니에 얼굴을 박으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적당히 하고 떨어져. 안 그럼 화낼 거야.”

 

 그러나 내가 안 된다고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시루는 점차 이성을 잃고 난폭해졌다.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대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윽고 나를 때리고 내 옷을 억지로 벗길 때.

 

 분명 나보다 여리고 힘도 약했을 텐데.

 

 어느새 나는 바닥에 납작 깔려서, 시루에게 목덜미를 짓눌린 채 범해지고 있었다.

 

 해프닝은 시루의 주인이 내 비명 소리를 듣고, 우리가 있는 방에 들어오면서 끝났다.

 

 시루의 주인은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시루를 억지로 떼어냈다

 

 시루는 허공에서 발을 버둥거리면서 자기 주인의 손을 물려고 했다.

 

 뒤이어 주인님도 달려와 시루를 진정시키려고 힘을 썼다.

 

 벌거벗은 주인님에게선 벌거벗은 시루의 주인의 냄새가 났다.

 

 [5]

 시루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양손에 깁스를 차고 나타났다.

 

 골절을 당한 건 아니었다.

 

 개에게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넥카라를 씌우듯, 수인들은 함부로 수술 부위를 건들지 못하게끔 손을 봉한다.


 본의 아니게 시정마 역할을 하게 된 시루는 수술을 받았다. 무슨 수술을 받았는가 하면… 땅콩을 뗐다.

 

 그건 시루에게 닥친 비극.

 

 내 몫의 비극은 따로 있었다.


 몇몇 동물종의 암컷들은 성적 자극을 받는 것으로 배란한다.

 

 그리고 시루에게 범해진 영향으로 나마저 발정기가 와버리고 말았다.

 

 나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종일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의식이 몽롱했다.


 나는 주인님께 가서 빌었다.

 

 ‘빨리 어떻게든 해줘.’

 

 배고플 때 밥을 줬던 것처럼.

 

 간식을 달라고 조르면 간식을 주는 것처럼.

 

 졸릴 때 곁에서 잠을 재워준 것처럼.

 

 목욕을 시켜준 것처럼, 산책 시켜준 것처럼.

 

 이 갈증을 해소시켜 줘. 부탁이야…….


 “sjeh wndtjdghk tntnfdmf tlzlejsrk, dks rmfjaus qkato RldRldeotj rhsfksgkejfk.”

 (너도 중성화 수술을 시키던가, 안 그러면 밤새 낑낑대서 곤란하더라.)

 

 “wndtjdghkfk….”

 (중성화라….)


 평소엔 착한 아이로 있었는데,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몸을 가눌 여력이 없었다.

 

 참지 못하고 그만 주인님의 다리에 대고 가랑이를 비볐다.

 

 주인님과 주인님 친구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둘은 심각한 표정이 된다.

 

 이상한 분위기.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다리에 달라붙어서 가랑이를 비볐다.


 ***

 

 주인님 친구가 돌아간 뒤, 주인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whrmaaks rlekfu? dnfl dPQms 호두, dhQkrk rmaqkd vusgkrp gownfrp.”

 (조금만 기다려? 우리 예쁜 호두, 오빠가 금방 편하게 해줄게.


 하고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지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