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게이트 앞에 모인 우마무스메들 중 동생이 전광판에 잡힌다.

굉장히 부드러운 표정, 그 표정 때문에 오히려 고고한 느낌이 들었다.

고고한 경쟁자는 투쟁심을 불러오기도, 혹은 위압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평소의 동생도 위압감 있는 강자였지만 오늘은 채도가 다르다.

블루홀 심해와 가을 하늘 정도의 차이다.

객석에서 보는 나조차도 그리 느낀다면 과연 동생과 나란히 선 그녀들은 무엇이 보일까?

아니면 그저 다른 문제로 골치가 아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매번 그녀들이 동생 옆에서 고민해왔던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맨 앞인가?

맨 뒤인가?

동생은 언제나 레이스를 뒤흔들었다.

최전방으로 치고 나가 골까지 세이프티 리드를 할 스태미너도,

최후방에서 지켜보다가 마군 자체를 모조리 제치면서 올라갈 근력도,

그러면서 발휘되는 압도적인 스피드도,

동생의 달리기는 그런 체급으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체급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단순무식하다 해야할지, 피지컬을 극한으로 사용하는 매서운 전략이라 해야할지,

그런 동생의 스타일은 커리어 내내 상대에게 고민을 안겨줬다.

당연히 생각할 것이 늘어나면 그만큼 손발이 굳는다.

그 사소한 차이가 승부의 행방을 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생의 노림수는 그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때마침 동생은 마지막으로 객석을 눈에 담으려 쭉 훑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들리진 않겠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있었다.

내 앞에서 펑펑 울던 동생은 과연 달리는 것이 즐거웠을까.

내심 무거운 짐이 가슴한켠에 계속 있었으니 맘껏 웃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만큼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닿지 않을 것 같았다.

함성소리를 뚫고 저 곳까지 닿기엔 너무도 멀었다.

동생은 여전히 나를, 우리 가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난 말 대신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지었다.

동생도 무슨 뜻인지 알아 채곤 상쾌하게 이를 보이며 웃음지었다.

새삼 멋져보였다.

그러곤 발걸음을 돌려 게이트로 향했다.

동생의 경기는 몇 번 보질 않았지만 게이트에 들어가는 모습은 워낙 살벌해서 기억에 남았다.

턱은 내리고 앞을 노려보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모습, 누가봐도 싸우러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터벅터벅 편하게 걸어들어가던 동생의 얼굴은 훨씬 가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세를 잡고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동생의 표정은 즐거움이 옅게 깔려있었다.



*



경기 자체는 싱겁고 스무스하게, 변수없이 끝났다.

지쳐서 널브러진 동기나 후배들을 일으켜 세우고 퇴장하는 동생의 모습은 아쉬우면서도 후련해보였다.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멋있었다.


"라이브는 저녁에 하는 거였나?"


아버지가 운을 띄웠다.

나도 궁금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현장에서 직접 위닝라이브를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절대 동생의 귀여운척 애교 떠는 모습을 직접 찍어서 두고두고 놀려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특히 춤선이 굉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

아...


"그거, 꼭 봐야하나요?"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려고?"

"아뇨, 뭐 어차피 드림트로피도 뛸거라던데..."


잠깐 잊고 있었다가 기억이 났다.

난 동생의 라이브를 본 적이 있었다.

내 동생의 비즈니스, 그걸 또 봐야한다.

그래, 춤선이 굉장한 건 어떻게 알고 있었겠나.

봤었으니까.

온 몸을 비틀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참으며 딱 한 번 봤었으니까.

그걸 이번엔 현장에서 봐야한다.

내 동생이 대견하고 멋있는 건 알지만,

알고는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



내 걱정과 달리 동생의 무대는 꽤나 볼만했다.

보다보니 괜찮아졌다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보기 좋았다.

현장의 열기 덕분이거나 내 안에서 동생의 이미지가 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연은 재밌게 봤다.

다만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동생이 날 엄청 잘 찾았다는 것이다.

부모님께는 솔직하게 내 동생의 비즈니스가 좀 오글거려서 멀찍이 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잡은 뒷자리였고 사실상 무대는 전광판으로만 봤다.

그런데 은근 볼만해서 아쉽다 느끼던 찰나, 동생이 카메라나 정면이 아닌 방향을 종종 보는게 잡혔다.

위화감이 들어서 고개를 무대로 돌리자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눈이 마주친 것이 맞다고 말하는 것처럼 동생은 터프에서 지었던 미소를 다시금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부모님께도 말을 했더니,


"뭐... 그럴수도 있지..."


어머니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아마 부모님하고도 눈이 마주쳤던 것 같았고, 확신은 안 서지만 일단 반응은 그런 것 같았다.

결국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 동생에게 직접 물어봤다.


"너 혹시 나랑 눈 마주친거 맞아?"

"맞는데?"

"너무 멀찍이 있길래 찾는데 좀 걸렸지."

"그... 레이스 때 말고..."

"어, 라이브장에서 말하는 거 맞는데? 왜 오빠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거야?"

"...그러니까 두 분도 찾고 나도 찾은거야?"

"낮에 옷 입은 거 봤으니까 금방 찾았지."

"어... 그래."


아니 그래도 그 어둠 속에서 찾아내는 게 가능한 일인가?



괴문서에 대괄호를 붙일까 말까 고민했는데 바꾸면 또 줄줄이 바꿔야해서 그대로 가기로함



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