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는 에어 그루브를 보며 동급생 우마무스메들이 그루브가 은퇴할 때 그가 완쾌해야 결혼하지 않겠냐는 등의 농담을 던진다. 그러지 말라하지만 꼬리는 평소보다 붕붕 흔들린다.


병원에 들어와 프런트의 직원들에게 인사를 한다. 부모보다 많이 병문안 오는 지극정성이라는 말에 평소처럼 업무차 온 것이라며 대답하고 그의 몫으로 만든 간식거리를 나누어준다.


이내 하얀 복도를 지나 병실 앞에 선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며 평소 굳게 닫혀있는 병실 문을 열기 전 숨을 한번 들이마쉬니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에 올라온다. 이 냄새는 세월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아 쓴웃음을 지으며 병실 문을 두번 두드린다.



"들어간다."


"오냐."



들어오라는 대답과 그녀가 병실 문을 열자 일인병실에 누워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반겼다. 병실에 들어온 에어 그루브는 침대 아래에서 간이침대를 꺼내 그 위에 앉았다.


"오늘치 트레이닝은 끝낸거야?"


"물론이다. 그러니 네놈 걱정이나 해라."



심장에 병이 생긴 트레이너의 투병생활을 평소에도 집안 청소를 도와주던 에어 그루브가 도와주는 한편, 트레이너도 최대한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닝을 끝까지 맡아 지도한다. 1년 전 여름 합숙 중 쓰러져 병원에서 눈을 뜬 트레이너와 에어 그루브의 약속이였다. 그렇기에 병실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닝 레포트를 가방에서 꺼내는 에어 그루브와 레포트를 검토하는 한편, 최근 레이스에서의 성적들을 언급하며 다음 경기의 트레이닝을 지도하는 트레이너. 그녀가 달리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없어 즉각 대응하는 것은 힘들었을지라도 이런 생활을 한 이후로 그들은 3착 이하로 내려오지 않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최근 경기를 보면 말이지..."

"나는 그쪽보단 이 그레이스 어드마이어라는..."

"아니, 그쪽은 여제의 이름값에 눌릴거야. 여기선 오히려 메지로 도베르 쪽이..."

"여제의 이름값이라니... 거기에 눌린다면 애초에 이런..."

"그런 것도 무시할 순 없어. 만약에..."



그들의 회의는 해가 지고 기숙사 통금시간이 다가와 에어 그루브가 돌아갈 때 까지 이어졌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내일 보자고."



///



그 날도 해가 지고 기숙사 통금시간이 다가올 때 까지 에어 그루브와 트레이너의 병실 업무회의가 이어졌다. 



"그루브? 지금 안들어가면 통금에 걸리는거 아냐?"

"그루브?"


"음? 아아. 기숙사라면 최근 파인이..."


"아니. 통금말이야. 지금 안들어가면 걸리는거 아니냐고."



에어 그루브가 스마트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평소같았으면 벌써 기숙사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 평소라면 에어 그루브가 시간이 늦었음을 먼저 인지하고 일어났지만 이 날 따라 에어 그루브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어 그루브는 바로 가방에 짐을 챙겨 일어났다. 그러나 좀처럼 발을 뗄 수 없었다. 뒤를 돌아 트레이너를 바라보자 트레이너는 일으켜있던 침대를 다시 조작해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얼간이... 바로 누우면 몸에 안좋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너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몸에 힘이 쫙 빠지네."



에어 그루브는 몸을 완전히 돌려 다시 트레이너의 침대 앞에 섰다. 누워있던 트레이너는 자신에게로 온 에어 그루브를 보며 말했다.



"그루브."


"음?"


"벌써 은퇴전이네."


"그래... 덕분에 원 없이 달렸다."


"화려하게 마무리하려면 지금 푹 쉬어야 해."



하지만 에어 그루브는 병실을 나갈 수 없었다. 병실을 나서는 순간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감각이 그녀의 몸을 훑고 있었다. 트레이너는 몸을 일으켜 어딘가 불안한 듯 가방끈을 꼭 잡은 에어 그루브의 손을 붙잡았다.



"내일의 태양. 알지?"


"후훗..."


"내일 보자."



이 느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지난 1년간 이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은 트레이너의 모습도 많이 봐왔지 않은가. 그때마다 트레이너가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뜨고 지고를 반복하는 태양처럼 그는 오늘까지 살아왔다. 그러니 내일도...


그렇게 생각하자 에어 그루브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나왔다. 그녀의 미소를 본 트레이너도 붙잡은 손을 놓았다. 



"그래. 내일 보자. 내일은 휴식일이였지?"



///



무언가가 기숙사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에어 그루브의 눈이 뜨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이따금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 비가 오는 듯 하다. 옆 침대에서 조용히 잠을 자는 파인 모션이 깨지 않도록 조그맣게 콧김을 내쉬고 다시 베게에 머리를 뉘었다.


똑똑.


누군가가 살짝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빗소리에 마침 잠이 깬 에어 그루브가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어 그루브 씨. 빨리 옷 입고 나오세요."



타즈나가 조용히 들어와 그녀를 불렀다. 일과시간이라면 몰라도 이런 이른 새벽에 그녀가 기숙사까지 와 학생을 부르는 이유는 일찍 출발해야하는 경기가 있거나... 무슨 일이 안좋게 흘러갔다는 뜻이다. 에어 그루브는 파인 모션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옷을 챙겨입고 타즈나를 따라갔다.


평소와 같이 굳게 닫힌 트레이너의 병실. 문을 두번 두드리고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에서 들어오라는 대답 대신 중년의 여성이 눈물을 훔치며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한 에어 그루브가 자리에 주저앉자 문을 열어준 여성... 트레이너의 어머니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에어 그루브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평소처럼 침대를 일으켜 자신을 반겨주고 트레이닝 레포트를 봐주는 트레이너가 아닌... 얼굴까지 천이 덮인 트레이너였다. 트레이너의 어머니의 눈물에 에어 그루브의 어깨가 젖기 시작하자 흐려지는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다.



"얼간아... 뭐가 내일의 태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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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은 잘 지내나?"



길게 내려온 머리를 말아올린 한 우마무스메가 봉안당의 한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자리의 유골함은 옆에 한 남자와 학생 시절의 자신이 티아라 노선 우마무스메 최초로 따낸 가을 천황상 상패를 들고 찍은 사진과 함께 들어있었다. 그녀는 유골의 주인과 함께 했던 나날을 추억했다.



"나는 네 뒤를 이어서 트레이너 일을 해볼까 한다. 어머님을 도와 두라멘테를 지도했던 경험도 있고..."



에어 그루브는 어깨에 맨 가방에서 낡은 노트 한권을 꺼냈다. 표지는 손때가 잔뜩 묻어 빛이 바래있고 여러번 펼치다 이음매가 뜯어졌는지 실로 꿰맨 흔적도 있다. 그녀는 낡은 노트를 소중하게 쓰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필기시험의 난이도가 꽤 있다만... 네놈의 투병생활 중 작성한 트레이닝 레포트가 공부에 매우 도움이 된단 말이지."



그리고 에어 그루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교사가 되어 트레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심볼리 루돌프의 이야기, 두라멘테가 소개시켜준 후배가 트리플 티아라를 땄다는 이야기, 주니어 시즌에 G1을 포함한 중상 3승을 거두었지만 이어지는 클래식 시즌에서 성적을 거두지 못해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한 후배의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더 이상 기숙사에 살지 않아 통금은 없지만 봉안당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에어 그루브는 유골함에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방을 나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했지... 다음 태양이 뜰 때는 내 담당과 상패라도 가져오마."

"다음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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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오늘 그루브 생일이네


살짝 다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