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은 아니더라도, 해가 지려면 족히 한두 시간은 넉넉하게 남은 시간대의 밝은 길거리는 무척 낯설게만 느껴진다.


오랜만에 동행이 많은 거리의 정취를 느끼는 듯한 감각.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사실 그대로 느낌일 터였다. 담당마 여럿을 떠안게 되고 나서부터는, 예전과는 다르게 좀처럼 빠르게 퇴근한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며칠만이더라..."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렇게 혼잣말하며 대략 셈을 해보니 '족히 2~3주는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



이윽고 꺼내든 휴대전화의 메시지 목록을 살짝 올려보자. 내 머릿속 셈을 증명하듯이 그때쯤 전송했던 메시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일찍 끝나서 갈 수 있을 것 같아. 갈까?]


그리고, 그 답신도 같이.


[응, 기다리고 있을게.]



이내 나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서, 메시지 목록을 당겨 최근의 메시지를 표시했다.


그러자, 퇴근할 때 즈음하여 전송했던 오늘의 메시지가 대신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 끝났어. 오늘 갈 수 있는데, 갈까?]


심심할 정도로 이전의 메시지와 별다른 것 없는 내용. 어찌 보면, 너무나 삭막하다고도 할 수 있을 내용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면. 하루라도 집으로 아예 돌아가지 않는 날은 없을지라도, 좀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은 없으니 좀 더 애정을 품어서 보내도 좋으련만.


...이 메시지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일찍 퇴근해서 기분 좋을 발걸음이건만.


그리고 그런 발걸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건만.


어째선지 내가 보낸 메시지를, 그리고 그 아래의 답신을 바라본다.



[응. 트레짱.]







----







어느 아파트 현관문 앞에 멈춰서서,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듯이 시간을 보내다가, 이내 초인종을 살포시 누른다.



"...."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너머의 내부에서 낯익은 발걸음 소리가 도도도 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어서 와- 트레짱-"


"응, 트랜센드."



저녁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앞치마를 두른 채로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 맞이하는 트랜센드는 누가 보아도 새댁이라고 부를만한 모습이었다.


트랜센드의 너머 부엌에서는 연신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냄새는, 카레일까나.



"저기, 거기 서있기만 할 거야? 트레짱. 어서 들어오라고?"


기껏 요리하다 나와 현관문을 열어 맞이해주었건만, 들어와야 할 사람이 그대로 선 채로 가만히 있자. 트랜센드는 살짝 심통이라도 난 표정으로 재촉해왔다.



"아아, 미안."


그렇게 사과하면서 현관문 내부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돌연 트랜센드의 웃음이 짙어졌다.



"후후--"


"---!"



그리고는 이내, 걸음을 떼어 내부로 들어서려던 나를 갑작스레 껴안아 안은 채로 즐거운 듯이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껴안은 채로 마치 냄새를 묻히려는 듯이 제 머리를 도리질하며 부딪히기를 몇 번 했을까.


트랜센드는 연신 부딪혀오던 머리를 떼어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후흐. 미안, 트레짱과 이런 건 너무 오랜만인 느낌이라서."


"...뭐,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 좀처럼 줄어들기도 했으니까."


"응.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아쉽네."



트랜센드는 제 말마따나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살짝 눈꼬리를 내리며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나는 그런 트랜센드와 눈을 마주치다가, 마주치던 눈을 살짝 피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이제 그만 놓아주지 않을래? 계속 이러고 있으면 조금 곤란한데... 나 아직 신발도 못 벗었다고?"


"미안미안~"



놓아달라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트랜센드는 장난스러운 사과와 함께 껴안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아까 살짝 내려간 눈꼬리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기라도 하고 싶은 것 같다.



"자아, 트레짱? 선택할 시간이야."


그러한 내 추측이 맞다고 하듯이, 트랜센드는 이내 장난기 어린 웃음과 함께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음, 무슨 선택지이려나?"


"후흐. 목욕부터 할래? 아니면 저녁부터 먹을래? 아니면... 나일까?"



숫자를 세듯이 손가락을 펴가며 말하는 트랜센드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목욕부터 할게. 걸어오느라 조금 땀흘린 것 같기도 하고."


"흐. 뭐, 저녁은 아직 다 안되기도 했고. 아직 시간도 너무 이르기도 하니까. 그게 맞겠지. 후후. 트레짱, 그럼 씻고 와-"



마치 어서 씻고 오라는 듯이 욕실을 향해 손짓하는 트랜센드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이어가며 그 손짓을 따라 욕실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








욕실에서 몸을 씻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내가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소리를 들은 듯 트랜센드가 나를 불렀다.



"트레짱~ 저녁 다됐어~ 와서 앉기만 하면 돼~"


"금방 갈게-"



사용한 수건은 빨래 바구니에 잘 넣어두고, 본래 입고 있었던 옷은 가방에 잘 정리해서 챙겨둔다.


그러고 나서. 나는 트랜센드가 부르는 소리, 그리고 한껏 풍겨오는 카레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자자, 어서 와서 앉으라고. 트레짱."


"맛있겠는걸."


"뭐~! 그래봤자 카레지만 말이지."



트랜센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코로 풍겨오는 카레의 냄새나 눈으로 보이는 카레의 빛깔은 맛있게 잘 만든 카레라이스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이상적인 카레라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맛있어. 정말로 잘 만들었어."


수저에 카레를 밥과 함께 조심스레 떠서 입에 담고 목으로 넘기자, 목으로 넘어간 카레는 이내 그런 말로 변해 다시금 튀어나왔다.


그러고 다시금 몇 번 수저가 카레와 밥을 담은 채 입과 그릇을 왕복했을까.



"트랜센드, 그런데 너는 안 먹는 거야?"


어째서인지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트랜센드가 이상하여, 나는 수저를 잠시 내려두고 물었다.


칭찬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무언가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걸까.



내가 묻는 말을 들은 트랜센드의 표정은 조금 야릿하더니, 이내 울적한 표정으로 답했다.



"흐.. 미안, 트레짱. 다른 건 아니고... 오늘 트레짱이 이렇게 올 줄 미리 알았으면, 카레 말고도 다른 더 맛있는 걸로 준비해 뒀었을 텐데... 그게 아쉬워서..."


"...음. 아니야. 그건 미리 알려주지 못한 내가 미안해 할 일이니까. 그건 신경쓰지 말아줘."



아마도 이 카레라이스는, 평소에 트랜센드가 홀로 먹으려고 준비해두었던 재료로 만든 것이었을 터였다.


일이 일찍 끝나서 갈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도, 내가 퇴근하기 거의 직전이었으니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기는 힘들었을 테지.



"...."


"트랜센드. 지금은, 지금을 최대한 즐기는 거야. 맞지? 트랜센드가 해준 이 카레도 분명히 맛있으니까. 난 괜찮다고 생각해."


"...응. 맞아. 그렇지."



트랜센드를 다독이자. 이내 그 얼굴에 어려있던 울적한 표정은 천천히 풀어지더니, 이내 평소의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음! 오늘은 더 맛있게 된 것 같네! 트레짱 덕분이야!"



그리고 트랜센드의 입에도 그녀 자신이 만든 카레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제야 나도 내려두었던 수저를 들고 트랜센드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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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게-"


"아냐, 트레짱은 그냥 쉬고 있어."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


설거지라도 도와주려고 했었으나, 이내 트랜센드에게 밀려나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예전이었다면, 이미 해가 완전히 저버렸을 시간이었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된 탓일까.


어느덧 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해가 거의 다 저버리긴 했지만, 해는 아직도 제 얼굴을 빼꼼이나마 내민 채로 버티고 있었다.


해는 자기가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성화를 내듯이 제 붉은 노을빛을 창문 너머에서 쏘아 백색의 조명 불빛과 경쟁하듯이 하고.


주방에서는 물소리와 그릇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다가, 물소리가 끝나고 그릇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 설거지 끝~"


그리고는 이내, 설거지가 끝나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의 트랜센드가 주방에서 손을 털면서 나왔다.



"고생했어."


"후흣. 설거지 가지고 뭘 그래~"



트랜센드는 너스레를 떨듯이 웃으며 말하면서 소파로 다가오더니. 이내 내 옆에 덥석 붙여 앉았다.


그러고는 장난이라도 치려는 걸까. 트랜센드는 돌연 제 양손으로 내 양 뺨을 감싸듯 잡았다.



"~♬"


"옷-!?"



일부러 손을 찬물로 차갑게 만들어두기라도 한 걸까. 내 뺨을 감싼 트랜센드의 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나는 화들짝 놀라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흐흐흐- 트레짱 방금 그거 뭐야?"


"누구든지 갑자기 이렇게 당하면 비슷하게 비명이 나올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제 장난에 놀란 내가 무척이나 웃긴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트랜센드의 손을 붙잡아 뺨에서 치우며 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손에 어린 냉기가 가시도록 내 손과 포개듯이 붙잡은 채로 내려두었다.



"흥~♬"


트랜센드는 제 손을 그렇게 붙잡은 채로 내려둔 것을 보더니, 이내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흘리곤 자신도 손에 힘을 쥐듯이 하여 꼭 붙잡았다.


내가 손을 놓으려고 해도, 아마도 내 손을 붙잡고 힘은 나를 순순히 놓아주진 않을 터였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래?


손으로부터 전해지는 압력을 느끼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이내 트랜센드는 이젠 자기가 완전히 붙잡고 있는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내게 보이더니. 고개를 나를 향해 살짝 들이밀며 답했다.



"...정해져 있지 않아?"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한데..."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이에게 말하지 못할 무언가의 죄책감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트랜센드의 말에 떨떠름하게 답하며 살짝 고개를 피하려던 찰나. 트랜센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만큼 원해."



트랜센드는 그렇게 두 마디 말하곤 잠시 운을 떼더니, 다시금 이어서 말했다.



"트레짱을."


"...응. 알았어."



트랜센드의 분명한 의사표시에 따라,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하며 트랜센드를 마주 보았다.


이내 야릇하게, 그리고 묘하게 웃는 트랜센드의 얼굴이 다가오더니. 그 웃던 입술을 내 입술과 포개듯이 겹쳐가기 시작했다.


손을 붙잡고, 입술을 겹친 채로 같이 일어난 우리는 이내 서로를 껴안은 채. 침실로 향해가기 시작했다.

























































----







"...아-"


온몸이 땀에 젖어 후끈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나는 참아왔던 숨을 토해내듯이 내쉬며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 옆에는 트랜센드가 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로 잠들어 있었다.


...침실 문 너머 거실에서 어슴푸레하게나마 들어오는 불빛 덕택에, 흐트러진 이부자리 바깥으로 보이는 트랜센드의 몸은 나와 비슷하게 땀과 다른 체액으로 젖거나 말라붙은 흔적이 엿보였다.



"으..."


방금 잠에서 깬 탓일까. 아니면 행위가 남긴 후폭풍일까. 머리가 멍하고 뜬 듯한 감각.


나는 그러한 감각을 털어내려는 듯이. 다만 트랜센드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고개를 흔들었다.



'잠들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분명히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 때문인지, 트랜센드와의 행위는 격렬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였다.



'...안 되는데. 이러면...'


그렇게 걱정하면서, 어둠속에서 눈을 돌리며 시계를 찾는 것도 잠시.



"...후우..."


이내 시계에 표시되어 있는 시간을 보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내가 트랜센드와의 행위를 끝내고 잠들어 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듯. 시계는 내가 걱정하는 만큼 시간이 늦지 않았다고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늦기야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늦지는 않은 시각이다.



'일단 빨리 일어나서, 몸을 대충 씻고 나가면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트랜센드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어나려던 찰나.



"..?!"



돌연 내 몸 위에 얽혀있던 트랜센드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갑작스레 내 손목을 붙잡는 트랜센드의 손에 놀라, 그대로 트랜센드의 얼굴을 바라보자. 트랜센드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선명하게 빛을 내뿜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깨어 있었어?"


"...응."


트랜센드는 내 물음에 그렇게 답하면서, 이내 나를 흘겨보듯이 살피며 말을 이었다.


"트레짱은... 가려는 거야?"


"....가야지."


"...."



트랜센드는 내 대답에 잠시 아무 말 없이 입을 떨더니, 이내 손목을 쥔 손을 더욱 강하게 잡으며 다시금 말을 꺼냈다.



"...가지마. 가지 말아줘, 트레짱."



그렇게 부탁하듯, 아니면 애원하듯. 그것들조차 아니면, 마치 협박하듯이.


트랜센드는 그렇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같이 있어줘... 하룻밤만. 내일 일어나면, 트레짱이 옆에 있어 줬으면 해..."



울먹일 듯이 말하며, 내 손목을 쥔 손아귀 힘은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싶다고 말하듯이 더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



트랜센드의 그러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잠시 숨을 천천히 내쉬다가 다시금 말을 꺼냈다.



"약속했잖아. 트랜센드."


"...."



....


....


....


....


....


....




"적어도, 나와 아내의 관계가 곤란해지도록 만들진 않겠다고."


"...."


"....내가 트랜센드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트랜센드와 약속한 거. 그런 거였잖아..?"


"...으..."


"...그러니까, 약속을 지켜줘."


"....으으...!"



나를 바라보는, 어둠속에서 떨면서 빛나는 트랜센드의 두 눈동자.


점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가는 것이 보이는 듯한 그런 눈동자.


나는, 그 눈동자를 향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부탁해, 트랜센드. ...난 집으로 돌아가야 해."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라는 뒷말은 잠시 삼켜둔 채.


나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는 트랜센드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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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최고! 불륜 최고!


매달리는 불륜 최고!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불륜 최고!


너도 불륜 최고라고 외쳐라!







다음편 예정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