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 도도독... 똑 또옥... /

비오는 날은 조금 시끄럽다. 적당히 싼맛에 구했던 자취방이기에, 창밖에서 두드리는 빗소리가 가감 없이 들리는 터라. 시끄럽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그럭저럭 적응되어서. '이것도 나름의 운치가 아닐까.' 하며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음♪"


빗소리를 들으며 살짝 콧소리로 화음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이내 앞치마를 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저녁을 준비한다.

조금 거센 비가 내리는 지라 창밖은 해가 떠있는지 안 떠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는 않지만. 시계는 제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터라 곧 저녁시간대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생선구이와 된장국. 그리고 전번에 반찬가게에서 사 왔던 것들로 요기를 때울 요량이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구색은 맞췄다고나 할만한 밥상이다.


/ 또도독- 도-또옥-똑- /

"음♪ 흠흠♪"


빗소리에 맞춰서, 콧소리를 내보면서, 된장국을 휘젓고, 치이익 거리는 생선을 뒤집어보기도 한다.

기름을 뱉어내며 노릇노릇 익어가는 생선은 비리지만 맛있는 냄새가 난다.

거품을 끓여내며 보글보글 달아오르는 된장국은 고약하지만 구수한 냄새가 난다.

그렇게, 빗소리와 콧소리, 그리고 거기에 섞이는 저녁 식사 거리의 냄새에 한참을 취하고 있었을까.


/ 똑-도도도... 똑똑- /

언뜻 듣기에는 빗소리와 비슷했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빗방울이 아닌 누군가가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


"...어라?"

나는 그런 소리에 이끌리듯, 이내 풀어져 있던 귀를 세워 현관문 쪽을 향해 살짝 집중한다.


똑똑- /

그러자, 마치 자신은 빗방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다시금 같은 노크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온다.


"...."

이런 자취방에 찾아올만한 사람, 그것도 굳이 비 내리는 날에 찾아올만한 사람은 몇 없다.

그렇기에, 머릿속에서 '문 앞의 상대가 누구일까.' 하며 생각하던 용의선상은 단번에 좁혀진다.


"음-"

이내 생각이 끝난 나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부엌을 벗어나 현관문으로 향한다.

현관문으로 다가서는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연신 문을 두드리던 사람도 이제는 그 손짓을 멈춘 듯. 노크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괜찮겠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스스로 물음을 던지면서, 슬쩍 현관문 옆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로 내 모습을 확인해본다.

딱히 별로 이상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앞에 서있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몰골로 있는 상대와 마주했다.


"...."

"안녕..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으려나, 어서와. 오르페브르 씨.

"...."

오르페브르는 대답을 대신하려는 것인지, 빗물이 타고 흐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복도식 자취방인지라 건물 내부로 빗물이 들이치기야 하지만, 단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심한 몰골.


'...음.'

그 심한 몰골에 살짝 숨을 삼키면서 오르페브르를 살펴보자, 걸치고 있는 옷이나 몸 어느 구석 하나 비에 젖지 않은 곳이 없어보인다.

비를 막아줄 우산이나, 우비라던가 하는 것은 애당초 보이지도 않고. 애초에 무언가 가방이나 그러한 것도 없이 옷만 간신히 걸치고 나온 듯한 그러한 모습.


"...들어가게 해줘."

그렇게 잠시 살피고 있자. 오르페브르는 짧게 그런 말을 꺼내었다.

마치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그렇지만 사실은 간신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음색으로, 오르페브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더욱 간절해보여서, 그리고 돌봐주고 싶어서,


"...들어와도 돼."

나는 그런 말을 꺼내게 되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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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떨어져도 그냥 다시 닦으면 되는 거니까. 그냥 들어와도 돼."

"....응."

"일단 샤워라도 해. 수건있으니까 그거 쓰고. 옷은... 뭐, 대충 내꺼라도 빌려줄 테니까. 일단 샤워부터 하고 있어 줘. 오르페브르 씨."

"...."

"알았지? 오르페 씨?"

"...알았어."


그렇게 오르페브르를 욕실로 보내놓고. 이내 나는 마른걸레로 바닥에 떨어진 빗물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문 너머 욕실에서는 부스럭거리며 옷을 벗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욕실의 불투명한 문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동안 멈춰두었던 바닥 걸레질을 다시금 하기 시작하고. 현관문부터 욕실 문까지 이어진 물발자국을 닦아내고 나서야 일어섰다.


"음--으흠..."

살짝 허리를 펴고, 바닥을 닦는데 썼던 걸레는 잠시 치워둔 뒤. 다시금 부엌으로 향한다.


"아마... 안 먹었겠지?"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대략적으로나마 시간이라던가, 오르페브르의 모습이라던가, 작금의 상황을 셈해본다.


"응. 안 먹었을 거야."

그렇게 셈을 끝낸 나는 아까 생선을 굽던 후라이팬에 생선 몇 개를 더 집어 넣고 나서야 다시금 불을 켠다.


"음♪ 흠흠♪ 흠흐음-"

다시금 시작된, 저녁 식사 준비의 화음.

다만 이번의 화음에는 빗소리와 콧소리에, 욕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샤워기의 물소리도 더해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건 다 익었고..."

아까 먼저 넣어서 굽고 있었었기에 다 익은 생선구이는 꺼내어 다른 그릇에 올려두고, 그 자리에는 새로이 다른 생선을 집어 넣는다.


'나야 입이 짧지만, 오르페브르는 먹성이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욕실을 향해 눈만 살짝 돌려서 바라본다.

불투명한 유리문은 그 너머로 희끄무레한 형체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너머의 상대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이 샤워기 물을 맞으며 가만히 서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정말."

그것을 인식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준비하고 있던 저녁 식사 거리를 뒤로 하고. 다시금 욕실 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욕실 문을 톡톡 두드리며 오르페브르를 부른다.


"오르페 씨? 너무 오래 있는 것 아니야?"

"...."

"이제 그만하고 나와. 저녁 안 먹었지? 저녁 준비 해놨어. 같이 먹자."

"알았어. ...곧 나갈게."


물소리가 섞인 오르페브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다시금 부엌으로 향한다.

자기들을 잠시 방관해 두었다고, 금세 타버릴 것만 같은 생선구이들을 후라이팬에서 그릇으로 옮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겠다 싶어진 나는 생선구이를 담은 그릇을 들고 식탁에 내려두었다.

아까 보글보글 끓었던 된장국은 미리 불을 꺼두긴 했지만, 여전히 뜨겁다. 조심스럽게 국그릇에 된장국을 담아서 이것도 마찬가지로 식탁으로 가지고 향한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반찬들을 꺼내어 식탁에 장식하듯 올리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밥그릇에 요령 있게 담아 같이 식탁에 올려둔다.


그리고 이윽고,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슬쩍 눈길을 향한다.

자기가 입은 내 옷이 살짝 마땅치 않은 듯. 살짝 옷을 잡아당겨 보기도 하던 오르페브르는 이윽고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눈을 살포시 피한다.


"다시 부르러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와서 앉아. 오르페 씨."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쪽 자리에 앉으라는 듯이 식탁 옆에서 의자를 빼고 손짓한다.

오르페브르는 살짝 멈칫하더니, 이내 코를 살짝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는 듯하다가, 이윽고 그 냄새에 이끌리는 것처럼 천천히 터벅터벅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가오는 오르페브르를 보며, 나는 이내 식탁의 반대쪽 자리로 향해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어서 앉아, 뭐. 오르페 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차림이지만."

이윽고 조심스럽게 식탁 앞 의자에 앉은 오르페브르는 내 말에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말 없이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밥을 먹는 오르페브르의 모습을 보고, 이내 나도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한다.


"맛있어?"

"...."

식사하던 중 먹던 음식을 살짝 목으로 넘기고 그렇게 묻자, 오르페브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이내 다시금 그 입에 생선 몇 점과 밥을 같이 우겨넣었다.

그렇게 몇 번 수저가 오갔을까.

오르페브르는 무척 배고팠던 듯. 내가 넉넉하게 담았던 밥공기를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더 줄까?"

"...응."

비워진 오르페브르의 밥공기를 살짝 바라보고 내가 부족하냐며 물음을 던지자. 오르페브르는 짧게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렇게 말하곤 오르페브르가 비워놓은 밥공기를 들어서 전기밥솥으로 향해 밥을 담아 다시금 오르페브르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르페브르는 마치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댔기에, 나는 식사를 하다말고 몇 번이나 식탁과 전기밥솥 앞을 왕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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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난 이후.

아무 말 없는 오르페브르는 그대로 식탁 앞 의자에 앉혀둔 채로, 나는 저녁 식사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싹싹 비워진 밥그릇이라던가, 생선 기름만 간신히 남아 한때 생선구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만한 그릇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싱크대에 넣고. 이윽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 달그락- 달그락- /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살짝 돌리고 집중한다.

여전히 들려오지만, 조금 빗줄기가 잦아든 걸까 하는 빗소리.

설거지하며 들려오는 그릇이 부스럭대는 소리.

그리고, 식탁에 앉아 있는 오르페브르의 숨소리 같은 것에.


"...."


그렇게 살짝 집중하고 있었을까.

"....!"

갑작스레 들려오는 다른 소리에 움찔 놀라면서도,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설거지를 이어나간다.

의자를 끌고 일어나는 소리.

그리고,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과 인기척에.


이내 설거지거리에서 눈을 살짝 돌리자, 내 뒤편에 오르페브르가 제 눈을 살짝 내리깐 채로 서있는 것이 눈에 담겼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듯한 모습, 고작 몇걸음 걸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거칠어진 듯한 숨소리.

그러한 것에 살짝 무섭다고 느껴질 만도 한데도, 나는 애써 괜찮은 것처럼 오르페브르를 걱정하는 듯이 말을 꺼낸다.


"...왜 그러는 거야? 오르페 씨?"

"...."


오르페브르는 내 말을 듣고 내리깔던 눈을 살짝 올려 나와 마주쳐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뭐가?"

갑작스레 오르페브르의 입가에서 내던져진 사과의 말.

오르페브르는 무엇을 사과하고 싶은 걸까.


"다 괜찮아. 뭐 사과하고 싶은 건지 몰라도. 난 괜찮으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돼."

나는 오르페브르에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눈을 돌려 설거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래도?"

이내 갑작스레 붙잡힌 손에, 던져진 말에, 시선이 따라가듯이 다시금 오르페브르와 시선을 마주한다..


"이런 건 이제 안 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미리 사과한 거야."

볼멘소리로 말하며 붙잡힌 손을 떼어내려고 해도,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오르페브르의 손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젠틸돈나 씨는?"

"...알잖아?"


그 상대자를 두고 하는 말에, 오르페브르는 퉁명스럽게, 그리고 좌절스럽게 답하며 내 손을 붙잡고 있던 손을 살짝 풀더니. 이내 제 팔로 나를 안듯이 붙잡아 껴안는다.

이내 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오르페브르와 시선을 마주한다.


"...."


그리고, 오르페브르와 마주치던 시선을 살짝 내린다.

그 입가에서 무슨 말이 꺼내어질지 기대하듯, 아니면 두려워하듯.


"...."

그리고, 이내 그 입가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천천히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숨을 살짝 삼킨다.


"...여를, 위로해다오."

"...하."


이내 망가진 자존심과 자존감, 그러한 것이 뒤섞이듯 튀어나오는 말 두마디.

나는 그런 말에 삼켜두었던 숨을 살짝 토해내며, 이내 그 말을 토해냈던 입가에 내 입을 맞춘다.


이내 나를 안고 있던 팔이 살짝 풀어지더니, 그 팔 끝의 손이 앞치마 속으로, 그리고 옷가지 너머로 파고 들어와. 과실의 꼭지를 찾는 뱀처럼 휘젓는다.

다른 한 손은 반대로 아래로 향하더니, 입고 있던 치마의 끝단을 벌리고 탐욕스럽게 들어와, 이내 그 속옷마저 파고 든 채로, 이내 그 비밀스러운 살갗 사이까지 파고 들어와 괴롭힌다.




그리고, 이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