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산 모음집】


원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1849320


의역 많음! 번역기 사용 양해!






"이것이 우리가 개발한 혁신적인 실험 장치, 10년 바주카, 그 이름은... 『FUTURE☆이타코1960』이다! 자, 빨리 실험 대상이 되어주게!"



"우왓...! 안 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트레센 학원에 여럿 존재하는 마경 속에서도, 언터쳐블이라고 할 수 있는 판데모니움... 속 악명 높은 과학자, 아그네스 타키온의 연구실.



그 악명이 헛소문이라는 말도 있긴 한데... 사전 설명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실험 대상이 되라는 꼴을 보고 있으니,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인 것 같다.



"뭔가, 기쁜 마음으로 따라온 건 자네들이었잖나. 이제 와서 주저하면 곤란한데."



"나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변명을 하며,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앉아 있는 의자가 신성한 옥좌로 보일 정도로, 불손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폭군...



내 담당 우마무스메, 오르페브르다.



담당하고 있다기보다는, 모시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녀와 계약을 한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오늘도...



『여~ 오르페브르 군. 자네의 협력이 필요한 실험이 있는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미안한데, 지금부터 트레이닝을...』



『좋다, 그렇게 하겠다.』



『엑? 아니, 왜...?』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니, 어서 따르도록.』



이런 식으로, 내 의사는 전하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오르페는 왜 타키온의 수상한 실험에 어울려주겠다고 한 걸까? 평소의 그녀라면 『여의 시간을, 그런 하찮은 연구에 낭비할 생각은 없다. 여의 앞에서 사라져라.』 라고 일축하고 끝났을 텐데...



정작 본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체념하고 다시 타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그... 10년 바주카인지 퓨처 보이인지... 그 군용 병기로 보이는 그게 그거 맞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줘."



"좋네, 이것을 피험자를 향해 발사하고 착탄하면! 피험자의 10년 후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세. 의식을 가진 채로 할 수 있는 시간 여행이라고 할까."



"엑... 에엑? 그런, 시간 도약 장치 같은 게... 정말로 가능한 거야...?"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는 그런 초과학적인 물건을 만들 수 없네. 이번 작품과 관련된 대부분의 지식은 골드쉽 군에게 받은 것이지... 솔직히 나도 모든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라네."



아... 역시 고루시였구나. 확실히 그 아이는 이론이나 이치 같은 게 통용되지 않으니까.



"훗, 역시 그 기인이 벌인 건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자고 있었던 걸까?) 오르페브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역시라니... 알고 있었어?"



"여라고 알았을 것 같나? 저 연구자가 말을 걸었을 때 그놈의 그림자가 느껴졌을 뿐이다."



"뭐, 그녀와 몇날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함께 작업했으니 이 가운에 냄새가 배었을지도."



그럼 빨래를 해... 설마 샤워도 안 한 건 아니겠지?



오르페에게 있어 고루시는 몇 안 되는 호적수, 레이스 내외를 불문하고 의식하고 있다... 이번 일도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고 직감적으로(혹은 단순히 냄새로) 알아채고, 실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겠지.



"완성에 이르는 경위는 이해했어. 하지만, 이 실험의 위험성은? 미안하지만, 그 부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할 수 없어. 오르페가 뭐라고 해도..."



"...흥, 여전히 쓸데없이 신중하군."



오르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을 다물고 다리를 꼬았다.



이 3년 동안, 조금씩 쌓아 올린 왕과 신하와의 유대 덕분에... 충언도 들어주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여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냐, 분수를 알아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타키온은 나의 완고한 태도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걱정할 것 없네. 리스크는 거의 없다네. 조금 전에 초과학적이라고 했지만, 이건 10년 후의 자신과 바뀌는... 그런 건 아니네. 어디까지나 단방향에 불과하네. 일종의 빙의 체험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음... 그러니까, 미래의 자신의, 그... 영혼? 기억? 그런 걸 불러들인다는 거지?"



"흠, 그렇게 생각해도 되네. 그리고 빙의되는 동안 피험자의 의식은 일시적으로 끊기네. 물론 그렇다고 해도 2분에서 3분 정도고, 효과가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의식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그동안의 기억은 없겠지만."



"그렇군... 아, 그런데 왜 FUTURE에 이타코(무녀)가 붙은 거야?"



무녀가 과거에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낸다면, 이 바주카는 미래의 산 자를 불러내는 거라 그런가...?



"네이밍에 대한 클레임은 작명자인 골드쉽 군에게 제기하게... 아무튼, 건강 상태나 뇌에 부담이 가지 않는 건, 나와 골드쉽 군이 직접 실험을 통해 증명했네... 그리고 일단, 우리의 모르ㅁ... 트레이너 군의 협조도 있었지. 확실하게 안전하다고 약속하지."



흠,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의식이 끊기는 건 무섭지만... 뭐, 개발자들이 자기들 몸으로 직접 실험을 했다고 하니, 눈 감고 넘어갈 수 있는 리스크겠지.



실험 대상이 된 그녀들의 트레이너들이 안쓰럽지만, 애초에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좋아했을 것이고, 고루시의 트레이너는 싫어도 억지로 협력했을 것이다.






=====






"좋다. 이제 됐다."



오르페브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당당하게 걸어가 바주카를 들었다.



"단순한 장난감 치고는 확실히 손이 많이 간 것 같군. 여전하게 미친 짓을 하는구나... 이것은 그 기인의 불손한 도전,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지."



"하하하! 협조 고맙네."



"네놈, 꽤나 오만한 태도로군. 당연히 왕의 시간을 낭비한 만큼의 보상을 준비해 두었겠지?"



오르페가 타키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압박감에 오히려 내가 움찔했지만, 당사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물론이지. 나한테도 나름의 인맥이 있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서나 구하기 어려운 신발, 편자... 원하는 것으로 준비해주지."



"좋다... 그럼 다음으로 트레이너, 네놈에게도 한 가지 묻겠다."



"...무엇입니까, 오르페브르 님."



오르페브르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나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놈은 조금 전, 이 실험의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 그렇다면 네놈이 먼저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할 터. 나의 신하로서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망설임 없이 총구를 들이댔다.



"가능하면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타키온의 목소리는 오르페에게 전혀 닿지 않는 것 같다.



당연히 대답은 정해져 있다.



"당연하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고... 지금 바로 쏴도 돼."



"충성스럽군. 10년 후에도 여전한지 두고 보겠다."



으으, 제발 10년 후의 나 부탁해... 잘못하면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갈지도 몰라.



여전히 장소를 옮기자는 타키온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쏘겠다."



오르페브르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폭음과 동시에 가슴에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순간,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 이거 들이마시는 게 괜찮은지 안 물어봤네... 후회할 새도 없이 주변이 연기로 가득 찼다.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졌다.



하지만 의식은... 아무래도 끊어지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을 굳게 먹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냄새는 없지만, 이물감 때문에 기침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연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보라색 빛...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라는 걸까.



"콜록콜록... 응? 어라?"



내 눈앞에는, 바주카를 든 채로 눈이 휘둥그레진 오르페브르와, 별 관심 없다는 듯 나를 보고 있는 아그네스 타키온이 있었다.



실험이 성공한다고 해도 미래의 내가 빙의하는 건 길어도 3분...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오르페가 바주카를 계속 든 채로 있는 건 이상하다. 10년 후의 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계속 들고 있을 이유는 없을 텐데.



"저기, 의식이 끊어지는 느낌 같은 건 없었는데... 실험, 어땠어?"



"어땠냐고 해도 말이지..."



타키온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오르페는 바주카를 제자리에 놓자마자, 말없이 내 옆을 지나가더니...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잠깐, 오르페...?"






"...오지 마라!"






일갈에 실내의 공기가 울린다. 심장이 멈출 것만 같은 압박감...



이렇게 확실하게, 강하게 거절당한 건 처음이다.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연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하들을 뿌리치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누구도 여를 볼 수 없는 곳을 찾아서...



치욕의 극치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건 패배다.



나의 압도적인 질주 앞에 어떤 자는 엎드렸고, 어떤 자는 굴복했고, 그리고 도망쳤다.



평생 이해할 수 없다고, 이해할 필요조차 조금도 느끼지 못한 패자에게... 공감하고 말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고도 맞서지 못하고, 비참하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도착한 곳은 인적이 없는 옥상.



지금 이 시간, 이 장소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큭...!"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예전에 한 번, 왕에게 꿈을 맡긴 소년을 애도할 때도 눈물이 흘렀다.




여는 이번에도, 지키지 못한 건가.



그 장난감에서 발사된 포탄은 틀림없이 트레이너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연기가 사라져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실험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는 알고 있다.



골드쉽은 놀이일수록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임하는 여자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 장난감은... 장난감이라고 해도 대충 만들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실험은 성공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실패한 것이다...



트레이너의 10년 후의 모습을 불러내는 데 실패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트레이너는 10년 후.



살아 있지 않다.



과학이든 초과학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10년 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험이 성공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앞뒤가 맞고, 논리도, 이론도, 맞다. 어떤 모순도 없다.



"...읏, 크읏...!"



왕은.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인연이 아무리 옅더라도.



한 번 신하로 맞이한 자는 모두가 왕을 필요로 하지 않을 그때까지 평생을 보살펴야 한다.



무책임하게, 그저 저 혼자 편하자고 시중들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왕을 누가 따르겠는가.



지키고, 인도하고, 군림한다. 그것이 여가 생각하는 왕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여를 두려워하지 않고, 존경하면서도 충언을 아끼지 않는다.



패도를 달리는 왕의 이해자이자 측근이었던 트레이너를. 미래의 나는 지키지 못했다.



그 소년과 마찬가지로... 여는 이제부터 슬퍼할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운명을 타파하지 못하고. 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채.



여는 무력하게...






 "...아아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설령 그것이 패자의 울부짖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갈 곳을 잃은 슬픈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 장난감이 여를 향하고 있었다면.



10년 후의 여는 그를 잃고도 슬픔을 감추고 태연자약한 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그를 지킬 수 있었던 장본인이 있었다면.




분명 지금 이상의 추태를 드러냈겠지.





=====






"...그런 거라네, 자, 지금부터는 자네가 그녀 몫을 대신 채워줘야 할 때네."



"하아... 알았어."



오르페가 갑자기 연구실을 떠나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아그네스 타키온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곧바로 뒤쫓으려 했지만... 연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의 신하들이 『부디, 오르페브르 님을 혼자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막아세웠다.



이럴 때 강행돌파 하려다가 더 완강한 제지에 부딪힌 경험은 벌써 열 번도 넘는다. 때로는 잠자코 기다리는 것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구실로 돌아와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그 바주카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었다.



"흠, 이상하긴 해도 도망치지 않으려는 점은 마음에 드는군. 애초에 나에게 협력할 이유 같은 건 없을 텐데."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까.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조금 전에 말했던 연구서나 슈즈, 오르페브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이런 실험 한 두 번은 별거 아니야."



"훌륭하네! 그럼 바로... 이 약액을 먹어주게. 우주를 조금 느끼게 될 걸세."



"(우주를)싫어하는 느낌이 드는데...!"



우주 어쩌고 하는 것이 만약 임사 체험이라면, 타키온은 초S일 것이다. 같은 일말의 기대와 불안을 가지면서, 누가 봐도 사람이 마셔서는 안 될 색깔의 액체가 든 시험관을 받았다.



뭐, 예전의 타키온은 자신의 트레이너를 실험대로 삼다가 혼났다고 하니... 같은 전철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왕을 위한 것이다. 독이 든 잔이라고 해도 깔끔하게 마셔 보이겠다고 생각한 순간...



 쾅!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쪽을 바라보니...



"어라? 오르페, 마침 잘 왔어. 그 바주카 실험은..."



"...!"



그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귀신 같은 형상으로 다가오더니, 내 손에서 시험관을 낚아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어, 어어...!"



"아앗!? 귀, 귀중한 샘플이..."



갑작스러운 난폭한 행동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는데, 오르페는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증오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네년... 지금 뭘 마시게 하려고 한 거냐...!"



열화와 같은 분노를 드러내며 타키온의 멱살을 잡았다.



큰일이다, 진심으로 화났다...!



"자, 잠깐! 오르페, 진정해!"



처음 보는 격앙된 모습에 당황감을 억누르며 오르페를 뒤에서 잡아서 말리려고 했지만, 로데오처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달리는 게 고작이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나, 오르페브르 군...! 진정하게...!"



"이 악당...! 네년의 같잖은 실험으로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쩔 셈이냐!"



조금 전에 그 실험의 산물로 날 쏜 네가 할 말이야...? 같은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오르페브르! 난 괜찮으니까 그 손 놓아줘! 부탁이야...!"



"큭...!"



내 목소리가 닿은 걸까, 반쯤 내동댕이치는 형태로 타키온의 멱살을 놓았다.



기침을 하고 있는 타키온이 걱정이 되어, 다가가려고 했지만...



"와라!"



"엑...!"



오르페가 내 팔을 붙잡고 그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안 돼, 저항을 못 하겠어...!



"진짜 미안해! 타키온...!"



사과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지만,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 마디 뿐이었다.






=====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팔이 떨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오르페를 쫓아갔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 것은, 트레이너실 문을 거의 박살낼 기세로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직후였다.



"하아, 하아... 오, 오르페...?"



"..."



그녀는 내게 등을 돌린 채 말없이 내 팔에서 손을 떼었다.



"왜, 왜 그래... 너 오늘 너무 난폭해."



"...."



대답은 없었다.



정말이지....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다지 소란을 피우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지만, 타키온과 그녀의 트레이너에게는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 혼자 가서 하는 것으로는 성의를 보일 수 없겠지.



그리고, 애초에 왜 이렇게 난폭하게 행동했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직접적인지는 차치하고, 원인은 분명하다.



"솔직히, 네가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나를 지켜주려고 한 건... 정말로 기뻤어. 뭐, 애초에 네가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건 내가 경솔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지켜주려고 했다, 라."



마침내 오르페가 입을 열었지만, 그 말의 진의를 알 수는 없었다.



목소리도 억지로 짜낸 것처럼 무겁다.



"아니, 결국 마시지는 않았고... 그리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억지로 마시게 한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합의 하에 한 거야."



어쨌든 대화가 끊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말을 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녀의 마음을 이렇게 갉아먹는 건 대체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좋으니 단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그렇게까지 냉정함을 잃었던 이유를 말해줘. 그게 뭐든 나도 짊어지고 싶어. 트레이너로서도, 신하로서도."



"...그건, 네놈이...!"



오르페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후~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고 나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격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의연하게 서 있는 왕이 현현하고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나? 잠시 후 네놈의 집에서 말해주겠다."



"집? 집이라니... 갑자기 왜."



"바보 같은 질문은 듣지 않는다."



대답은 YES 말고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격앙된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좋아, 그럼 트레이닝 후에..."



"트레이닝은 중단한다. 네놈은 빨리 집으로 가 왕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어라."



"...그리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한 시간 후에 가겠다."



오르페는 그 말만을 남기고 내 옆을 지나 밖으로 나서려고 한다.



한 시간...? 방을 정리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건 없지만(애초에 방을 어지럽히고 있는 물건이 없다.)



"집에 오기 전에 뭐 할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계속 그런 바보 같은 질문으로 여를 실망시키지 마라."



오르페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문을 닫으면서



"...왕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 결례를, 사과하러."



그렇게 말했다.



문이 닫히고 남은 것은 성실한 왕을 섬기는 신하 한 명.



...저 오르페브르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몰래 들여다 본 것을 들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냥 집에 가서 청소나 하자.






=====






정확히 한 시간 후, 왕이 누추한 신하의 집에 행차하셨다.



"...흠."



방 안을 훑어본 오르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후, 일단 방의 청결 상태는 문제 없었던 것 같군. 청소기를 돌리고 환기를 한 보람이 있었다.



"거기 소파에 앉아 있어, 지금 차를..."



"필요없다, 여의 앞에 서라."



"...? 알았어."



시키는 대로 오르페 앞에 섰다.



광택이 흐르는 자수정에 옅은 남색이 섞인 강렬한 눈동자, 신화의 세계에서 강림한 듯한 아름다운 외모에 여신조차 굴복시키는 폭군의 압력... 미인은 사흘이면 질린다고 한 놈은 분명 오르페브르를 본 적 없어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리라.



3년이 지나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박력이 더해지고 있다. 그나마 눈을 돌리지 않게 된 게 성장한 부분인 걸까.



"뒤로 돌아라."



"어, 어어..."



서로를 10초 정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뒤로 돌라는 말을 듣고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뭐지? 옷차림 체크인가? 그렇다고 해도 복장은 그대로인데... 하지만 의도를 알 수 없어도 들은 명령을 따르는 게 신하의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원한다면 개 흉내를 위해 요튼바인이 되어 세 바퀴를 돌고 멍멍 짖을 수도 있다.



"묻겠다. 여의 측근으로서 패도를 빌던 지난 3년, 네놈은 뒤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설마, 이번 3년을 끝으로 계약을 해지할 생각인 걸까? 곧 봄이 다가오고 이별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왜, 갑자기...



아니다, 잡념은 배제하고, 나에게 내려준 질문에 대답하자.



"빛난다고 생각했어. 너의 달리기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고, 수많은 강적을 물리치고, 세계도 쓰러뜨렸지. 누구도 갈 수 없는 패도를 활보하는 왕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어... 트레이너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칭찬의 말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제불능의 폭군이라 무섭긴 하지만, 이 몸을 바칠 각오가 있었기에... 왕을 따라가는 것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오르페브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확신한다. 유일무이한 정점의 달리기를 봤으니...



"그러니까,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후회는 없어. 그만큼 충실한 3년이라고 생각해."



"..."



등 뒤에서 오르페가 숨을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 지금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아니면 그냥 감동한 건가...? 에이, 설마.



뒤돌아 보고 싶지만, 그런 명령은 받지 않았으니 하지 않았다.



"사실은 네 눈을 보면서 말하고 싶지만... 고마워, 오르페브르. 그리고 네가 허락해준다면... 앞으로도 왕의 곁에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후회하지 않게 노력할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이제 오르페의 반응을 들어보도록 하자.



"...좋다, 지금까지 네놈이 보여준 헌신은 치하할 만하다. 그저 방해나 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고집스러운 면이 있더군."



작게 훗, 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웃고 있는 것 같다.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니까.



"물론이지, 그냥 따라다니는 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조언하지 않는 트레이너는 있을 이유가 없지."



"그것이 교만과 앙금에서 나온 망언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들어줬을 뿐이다. 그 한신대상전에서 여의 자만심을 엄하게 지적했던 네놈의 말이 있었기에, 봄의 방패를 거머쥘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흑을 물리치는 자에게 휩쓸렸겠지."



"아, 그게 벌써 1년 전이네..."



하루하루를 온 힘을 다해 보내서 그런 걸까, 지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삼관을 제패했던 게 까막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기껏해야 2년 전인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오르페와 옛 추억을 되새기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녀는 연말에도 후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후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니가 웃는다고 해도, 왕은 더 크게 웃으며 오니를 멀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옛 추억을 회고한다...? 어떤 바람이 분 걸까.



역시 계약 해지 전 마지막 호의인 걸까...? 아니, 애초에 오르페가 여기에 온 목적이 뭘까?



그녀가 오늘 타키온... 혹은 10년 바주카인지 뭔지 하는 것의 (정식 명칭이 뭐였더라?) 실험 직후부터, 냉정함을 잃고 있었던 이유.



그걸 알려주는 게 아니었나?



"수고했다, 트레이너.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칭찬할 만하다. 탐욕스럽게 배우고, 레이스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 몸으로 여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상을 내리겠다."



"엑..."



예상치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려고 한 순간, 등 전체에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감싸듯이, 배에 팔이 둘러지고...



갑작스러운 포옹에 하얗게 질린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듯이.



왕은 신하의 귀에 대고...























































































"여가, 그대의 아이를 낳아주겠다."



시간은 멈추지 않아도 세상은 멈춘다.



그만큼 오르페브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귀가 아니라 내 의식 자체를 의심할 정도였다.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집에 돌아와서 오르페를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든 게 아닐까?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게 정말로 그 오르페브르가 맞나?



하지만 애초에 내가 오르페의 목소리를 착각할 리가 없다. 설령 그 목소리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라고 해도...



"어, 어어... 무슨."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농담... 그래, 농담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이상하다.



하지만.



"여가 터프를 떠난 후, 우리의 패도의 발자취를 후세에 전할 의무가... 여의 신하에게는 있다. 당연히 왕을 지지한 트레이너의 이야기도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여와 그대가 살았다는 증거가 되겠지."



거침없이 쏟아지는 나와 오르페브르의 미래.



지금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다. 나는 왕이 얼마나 세계 최강의 달리기를 보여줬는는지, 그 카리스마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는지, 평생을 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왕의 패도를 목격한 역사의 산 증인들이 오르페브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트레이너인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면. 그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질리고 쉽게 잊는다. 여가 새긴 위업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측근들의 이름은 언젠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대는 여가 떠난 뒤에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라면, 운명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여가 이 몸으로 그대가 살아있었다는 증표를 남길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



왜, 왜 내가 오르페브르가 은퇴한 후에 트레이너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남긴 성적 덕분에, 트레센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사장으로부터 칭찬도 들었고, 지도해 달라고 상담을 청하는 학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나도 다음에는 팀을 꾸려서 도전해보고 싶은데... 운명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본래라면, 여가 그대를 지켰어야만 했다. 그것이 왕의 책무라고는 하지만... 왕과 신하, 모두에게는 천수가 있다. 그것을 거스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설령 그것이 밝은 미래가 약속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여가 사랑한 단 한 명의 측근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조심스럽긴 해도 역시 좀 아프지만... 그것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니다.



오르페브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등을 통해 전해지는, 분명한 동요...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두 번째다.



잊혀지지 않는 아리마 기념 2주 전, 그 아이의 부고를 들은 직후에도... 오르페는 평정을 잃고 망연자실해 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이는 어미로서 여가 훌륭하게 키워 보이겠다. 왕으로서의 그릇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 다만 그대의 그 넘치는 정열의 불꽃을 마음에 밝히고, 아이에게 아비가 얼마나 상냥하고, 우수하고, 레이스의 세계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었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잘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영웅담으로서 몇 번이고... 그대의 몫까지, 여... 아니, 내가 행복하게 해줄 것을, 약속하지."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왕으로서 여가 그대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지막 상이다... 받도록 해라."






=====






...끝까지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르페 본인 기준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설명한 것이겠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오르페 기준) 오래 살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내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다는 건가.



지리멸렬한 것처럼 들리지만, 일단 말은 된다.



하지만, 그건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앞으로 향해 걸어가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통할 말이다.



우선, 나는 엄청 건강하다. 수명이 몇 년 남았다느니 그런 소리는 들은 적도 없다.



그리고 나와 오르페브르는 지도자와 학생, 혹은 왕과 그 휘하... 교제는커녕 연애의 'ㅇ'자도 없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상 같은 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오르페를 진정시키자.



"오르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쪽을 보려고 하는 거냐, 대답이 먼저일 텐데."



뒤돌아보려고 했지만, 어깨를 누르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제대로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 내 질문에 먼저 답해줘... 왜 내가 조만간 죽을 것처럼 말하는 거야?"



"...여의 입으로 말하게 할 생각인가, 그걸."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해서 다행일지도.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를 직접 보면서 들었다면 심장이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짐작도 안 돼서 그래. 나 완전 건강해. 필요하다면 작년 가을쯤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 보여줄게. 불의의 사고 같은 건 피할 수 없겠지만, 난 오래 살고 싶어. 근데 왜 그런..."



"이...! 얼간이가...!"



고함소리가 들린 순간, 재빨리 힘을 줘 몸을 돌렸다.



반회전 정도지만, 무리하게 밀어붙여서 균형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오르페는 휘청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양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치켜 올라간 눈썹, 주름진 미간, 붉어진 뺨, 떨리는 입술,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



얼굴의 모든 부분이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데, 눈꼬리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아직도 모르는 거냐!? 어리석은 것도 정도가... 됐다! 조금 전, 네놈은 그 장난스러운 실험으로 그 바주카를 맞았었다! 하지만, 네놈의 10년 후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순간 망설이듯 시선을 돌렸지만, 곧바로 마음을 굳혔는지



"네놈은 10년 후,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다!"



오르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고개를 떨구기 직전의 표정은, 조금 전까지 드러냈던 격앙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괴로워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



이번에는 내가 오르페를 끌어안았다.



등 뒤가 아닌 정면에서, 한 번만 더 누르면 부서질 것 같을 정도로 갈라진 껍질을 감싸듯 부드럽게...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소녀를 대하듯... 부드럽게 껴안았다.



"미안해, 오르페. 그렇게 힘들었구나... 네가, 그 실험 후에 상태가 이상했던 것도... 그게 원인이었구나."



"..."



오르페는 갑자기 안긴 탓에 놀라서 몸이 굳어 있었지만... 그 굳은 몸은 금세 풀렸다.



하지만 딱히 저항하지도 않고, 그대로 안겨 있다.



좋아, 일단 이걸로...



방 안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참사는 피한 것 같다. 아마도.



작은 소망이지만... 이젠 기도할 뿐이다.



그 정도로, 지금 그녀에게 전해야 할 사실은... 여러모로 엄한 것이다.



"그... 오르페는 못 들었겠지만..."



"뭐냐, 빨리 말해라."



아아, 신이시여.



부디 다 들은 오르페브르의 멘탈이 부서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주소서...



"그 바주카... 인간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는 거야."






=====






오르페브르가 도망간 후의 실험실에서


"...이런, 쫓아가지 않아도 되나?"



"그렇게 하고 싶은데..."



연구실을 뛰쳐나간 오르페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신하 중 한 명의 말을 듣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신하들 중에서도 최고참인 녀석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라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는 그녀가 오르페와 더 오래 알고 지냈고, 나 역시 그녀를 신뢰하고 있다. 지금은 그녀의 말을 따르자.



"그런데, 조금 전에도 물었지만.. 결국 어떻게 된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설명을 안 했군. 그건 우마무스메 전용이라 인간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네."



"엑... 그럼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잖아. 그런 건 빨리 말했어야지."



나의 불평에, 타키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하지만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 바주카를 발사한 것도, 장소를 옮기자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기서 발사한 건 오르페브르 군이다만? 나도 이미 무의미하다는 걸 아는 실험은 피하고 싶었네."



"이미...? 아! 그러고 보니 너희 트레이너로도 했었다고...!"



그렇군, 타키온은 이미 인간에게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실험이 끝난 직후의 반응도 미묘했던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오르페브르 군 본인에게 실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해서 굳이 말리지 않았던 건데... 그냥 연구실이 더러워지는 걸로 끝나고 말았군. 하아, 카페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으... 미안해. 그런데 왜 인간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거야? 네 과학력과 고루시의 초과학적인 힘이 있다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도록 설정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골드쉽 군이 정한 사양이라네. 나도 인간에게 효과가 있도록 하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아앙!? 너 임마, 총구하고 어묵 구멍은 사람한테 겨누면 안 된다고 계왕한테 안 배웠냐!?』라고 하더군."



"...그럼 어쩔 수 없지."



더 이상의 질문은 서로에게 무의미할 것 같다.



타키온은 기지개를 켜고



"...그런 거라네. 자, 지금부터는 자네가 그녀 몫을 대신 채워줘야 할 때네."



"하아... 알았어."









=====






"...그런 말을 들었어. 그러니까, 내가 10년 후에 죽는 건 확정이 아니, 에요..."



껴안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귀에서 넘쳐흐르는 분노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존댓말로 바뀌었다.



아~ 안돼! (방이) 작살난다! (보증금이) 돌아오지 못한다!



"..."



오르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며시 내게서 떨어졌다.



난동을 부릴 생각이라면 포옹을 해서라도 움직임을 봉쇄하고 싶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일 것이다.



일단 도게자 준비를...



"...그렇군."



그러나 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뒤로 누웠던 귀는 쫑긋 섰고,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여유롭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바로 평소와 다름없는 오르페브르 그 자체였다.



아니, 오히려 표정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훗, 뭘 그리 놀라는 거냐. 지레짐작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설마 여가 치욕 때문에 추태를 부릴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조금, 생각했어."



"흠, 바보같이 솔직하긴. 그 어처구니없는 솔직함 때문에라도 여를 의심한 건 불문으로 부치겠다."



조금 전까지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내 등에서 울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오만불손함...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금빛의 폭군.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사람 같은 변화는 놀라움을 넘어 무섭다... 역시, 내가 보지 않는 타이밍에 누군가와 뒤바뀐 게 아닐까.




"...하지만, 바뀌는 건 없다."



"어?"



"설령 천지가 뒤집어지더라도 왕에게 두 말은 없다. 한번 하사한 상을 거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 설마...



"그, 그건 아니지! 전제가 바뀌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보상은 트레이너의 3년에 대한 것이다. 게다가 네놈이 10년 후, 혹은 내일까지 살아있을 보증 같은 건 애초에 없다."



X됐다.



겉으로는 평상시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물러설 생각이 없어진 것 같다.



한 번 말한 목표와 야망은 반드시 달성한다.



평소에는 그 자세에 감탄하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하지만... 왕에게도 유연성이 필요하지? 이번에는 마음만 받을 테니까..."



"허? 겸손떨긴... 아니, 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군. 설마 네놈, 불만인 건가? 그 아랫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귀부인과 불침함 같이 쓸데없이 큰 젖가슴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거유에만 흥분하는 그런 취향은 아니다. 오히려 오르페브르 정도의 사이즈가 취향... 아니아니,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네.



보상을 받으면 나는 사회적으로 죽게 될 것이고, 오르페브르는 현역에서 은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오르페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왕이 내린 결정에 두려워하지 않고 의견을 낸 건, 레이스나 트레이닝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페도 들어준 거고...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건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가. 이 지경에 이르고도 신중함을 버리지 못한 건가. 겁쟁이의 생각을 바꾸는 거야 쉽지만... 흥이 올랐다. 그 방해물, 왕이 풀어주겠다."



흥 같은 거 타지 마!



오르페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자기 집인 것처럼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겉보기와 달리 질이 좋군."



"...침구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인생의 3분의 1을 보내는 곳이니까."



"그렇군."



오르페는 누운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몸을 던지듯 누운 상황이라 치맛자락이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올라가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단련된 다리가... 선정적으로 보여서, 그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곧 후회했다.



나를 시험하는 듯한 눈빛. 유혹하듯 풀어진 입매, 입술 사이로 보이는 요염한 혀...



학생을 넘어,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 같은 요염한 색기.



이성의 굴레 같은 건 순식간에 부숴질 것만 같다.



"왕의 몸을 만지고,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건 그대뿐이다... 지금은 말이지."



왕의 손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왼손은 옆구리에서 교복 아래에 숨어 있는 곡선미를 드려내고 있다.



오른손은 스커트 안쪽의 단련 되었음에도 부드러운 탄력이 있는 허벅지를 강조하고 있다.



만질 수 있다면, 입맞춤을 할 수 있다면,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승천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여를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지. 왕에게 일생을 바치려는 남자는 하늘의 별만큼 있을 것이고, 그 중에는 여의 혜안에 맞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는 평생 단 한 명의 사내만을 사랑할 것이다.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지만, 영웅을 초월한 왕과는 무관한 망언일 뿐... 자, 눈앞에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그대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오르페브르가, 나 이외의 누군가와...



손가락이 얽히고, 미소를 짓고, 사랑을 속삭이며 입을 맞추고, 하나가 되고...



그 몸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를...



"여를 보지 않는 자신을 용납할 수 있겠나? 맺어졌어야 할 인연이 사라져 다른 수컷과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있나? 그때가 되면 아무리 매달려도 여는 그대를 분명하게 거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왕의 기억에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 그걸 견딜 수 있다고 한다면, 여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오르페는 녹아내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팽개친 자식을 끌어안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동자에는 이것이 최후통첩이라는 엄격함이 담겨 있다.



"선택은 그대의 몫이다. 원하는 대로 해라... 나의 사랑스러운 신하여."






=====






선택의 여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몸이 자연스럽게 왕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입술을 겹쳤다. 그 사지를 거침없이 쓰다듬었다. 온몸의 피가 모인 허리를 원숭이처럼 밀어붙였다.



말 없이 교복을 걷어 올리고, 부드러운 열매를 주무르고, 거친 호흡으로 신성한 피부를 핥고 핥아댔다.



마지막으로 마침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허락을 구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때묻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에 정욕이 끓어오르는 것을 집어넣고...



...그런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 정도로 오르페브르의 마력에 수컷으로서의 본능이 자극을 받고 있다.



안 돼... 안 돼!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트레이너가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일개 신하였다면 진작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철의 의지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지도자로서의 부모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페브르가 은퇴한 후, 한 명의 어른으로서 기도하는 것은 그녀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가정을 갖는 것만이 아니다. 선택지는 무한히 펼쳐져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것을 오르페가 선택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결혼이거나 아이를 낳는 것이라면 전력을 다해 응원할 것이다.



그 상대가 꼭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오르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불만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으로서는, 그 자격이 나에게만 있는 것 같다. 이 손에 왕과 맺어질 특권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다, 마음속에서 남자답게 결단하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애초에 그 자격도 의심스럽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애초에 오르페의 착각에서 시작된 것이고, 평생을 각오하고 한 보상이라는 말을 철회하지 못하고, 결국 유혹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른인 내가 그걸 진정으로 받아들여서, 원치 않는 결과가 펼쳐지는 건 보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애시당초 맺어진다고 하는 건, 결혼한다는 거지? 그것도 지금 이대로라면 왕과 신하라는 관계가 그대로... 트레이너와 담당으로서라면 몰라도, 역시 평생의 반려라면 대등한 입장이 되어 주는 여자가 좋다.



세월이 흐르면 힘의 균형이 기울어질 수도 있겠지.



나도, 장래적으로 오르페의 엉덩이에 깔려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왕과 신하는 좋지 않다. 시작부터 힘의 균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고,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 편할 때가 없을 것 같다.



트레이너로서 왕을 따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참는 것도 아니지만, 한 개인으로서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엉덩이에 깔린다고 해도, 주종 관계까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 이전에 개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할 의사가 있어야 부부이고 가족일 것이다.



그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매력적이고 존경할 만한 여자라고 해도 결혼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오르페브르가 『신하 주제에 왕과 대등한 입장을 요구하는 거냐, 분수를 알아라.』라고 말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녀는, 과연...



"..."



...뭐야, 그 표정.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모습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의성어 중에서 맞는 걸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와 오르페 사이에 흐르던 끈적한 공기가 구름처럼 사라졌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표정이라 내가 더 당황스럽다.



당황한 시선이 겹치고, 몇 초...



"반대로 말하면."



오르페치고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여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대와 같은 입장이 되어도... 여의 곁에 있겠다는 건가?"



"그건... 그래, 그렇게 생각해도 돼."



물론, 오르페가 그러길 원한다면... 이라는 말은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답을 들은 오르페는 나를 보다가 천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후후."



마치 소녀처럼 웃었다.



그 미소는, 틀림없이 처음 보는 것이어서... 설렌다.



"아무래도 여가 또 착각을 한 것 같군. 해가 뜨고 지기 전에 두 번이나 잘못을 저지르다니. 왕도 망령이 드는 건가."



"아직 10대인 녀석이 뭐라는 거야."



덩달아 웃고 있지만, 뭘 착각했다는 걸까?



"트레이너여, 지금부터 여가 그대에게 할 말을 귀담아 듣도록. 한 번만 말할 것이다."



"...알았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오르페의 모습은, 레이스 직전 집중력을 높일 때처럼 보였다.



무슨 말이 나올지 불안하지만, 나도 집중하자.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오르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당신을 절대로 놓지 않을 거야. 설령 레이스의 세계에서 은퇴한다고 해도... 당신 앞에서는 왕으로 있고 싶었어. 당신은 내가 왕으로서 패도를 나아가는 모습에 심취해서 따라왔으니까 그렇게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과거의 영광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 위광을 벗어던진다면... 당신이 지금처럼 곁에 있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오르페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압도적인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패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말에,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투명한 것처럼 순수한... 나이에 걸맞는 소녀가 품고 있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당신은 내가 왕도, 금빛의 폭군도, 세계 최강도 아닌 나, 오르페브르가 된다고 해도 이 손을 잡아주겠지.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지만... 평생을 함께한다면, 그런 사람이 좋다고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어."



어떤 왕에게도 본모습이라는 게 있다. 화려한 망토와 정엄한 왕관을 벗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침실뿐이겠지.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침실로 초대받았다.



"조금 전에 다른 남자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은 당신밖에 없어. 처음부터 당신뿐이었어. 그런데 왕이 아니어도 곁에 있겠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더 당신을 놓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 사랑을, 억누를 수 없어."



등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설령 왕의 권위를 벗었다고 해도, 그 아래에 있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감성일 리가 없다.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어하는 탐욕과 애정은 왕만의 특권이 아니다.



순수하기에 어쩔 수 없고, 무겁다.



"조금 초조하기도 했어. 왕 이전에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늘은 상 대신 당신에게 선언할게."



오르페브르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굳어버린 내 눈앞에 섰다.



왕의 박력도 폭군의 압력도 없지만, 그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와 열기와 힘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나를 선택하게 할 거야. 도망치게 두지 않아... 도망치지 마."






=====






아, 말이 되지 못한 신음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이 순간... 선택의 여지는 사라지고, 미래가 결정되었다.



10년 바주카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나는 앞으로... 오르페브르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입장이나 관계 같은 건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내 입으로 대등한 입장이 되어도 곁에 있겠다고 말했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본 오르페브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만족한 듯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용건은 끝났다. 오늘 예정이었던 트레이닝은 내일부터 사흘 간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벌충한다. 그 사흘 간의 메뉴는 다시 짜도록, 알겠나?"



"어, 어어... 알았어."



"좋아, 그리고 조만간 그 연구자...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여의 훈시를 내려야겠군. 이번의 결례는 그걸로 약속했으니 준비를 갖추도록."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르페브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떨리는 손이 환상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환각도 꿈도 아닌, 현실이라고. 왕과 신하의 관계로 돌아왔을 뿐,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변했다고.



"...알았어."



"흠, 그럼 여는 기숙사로 가겠다. 그럼 이만."



"그래, 내일 보자..."



오르페브르는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잠깐.



"오르페브르!"



왕의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지금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았다.



비록 그것이 일방적인 결정이었다고 해도, 거부권이 없다고 해도.



"나는... 전부 받아줄 테니까. 도망가지 않을 거야."



거부할 생각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



그녀의 본모습도, 사랑도, 장래도... 전부 받아들일 것이다.



"..."



쫑긋, 그 귀가 움직인 순간.



오르페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놀라서 움츠린 내 오른쪽 어깨를 붙잡았다.



달콤한 향기가 퍼지는 것을 만끽할 틈도 없이...



"...!?"



오른쪽 목덜미에 촉촉하고 미지근하면서도,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순간 물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세우지 않은 것 같지만, 급소를 잡혔다는 생리적 공포와 부끄러움이 반반.



당연히 저항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큭, 우앗!?"



갑자기 아픔이 들이닥쳤다.



빨아들이는 소리가 경동맥을 통해 온몸을 달린다.



피, 피부를... 빨아들이고 있어...!



"아, 큿... 아...!"



떼어내고 싶은 충동은 주먹을 쥐는 것으로 참아냈다.



우마무스메 중에서도 백미의 실력을 지닌 왕의 폐활량에 빨려들어가는 목덜미,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닌데 피가 솟구칠 것만 같다.



고귀한 흡혈귀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



"...훗."



마침내, 오르페가 입을 뗐다.



아직도 욱신거린다... 아니, 욱신거림만 남은 게 아니었다.



거울로 볼 필요도 없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총애의 흔적이 선명한 검붉은색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왕이 내리는 맹약의 증거다. 숨기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숨긴다고 해도 늘릴 거지만."



"...분부대로."



전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 정도 일로 동요해서는 안 된다.



약하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왕은 좋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현관으로 걸어갔다.



...는가 싶더니 또 멈췄다. 뭐지? 이번엔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 저기, 오르페..."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또다시 다가오는가 싶더니, 또 움츠리고 있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으읍!?"



얼굴의 거리가 제로가 되었다.



눈을 감는 것조차 늦은 전광석화 같은 입맞춤. 이가 부딪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건조해도 촉촉함이 사라지지 않은 입술의 녹을 것만 같은 부드러운 감촉과, 그 안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오르페의 숨결.



몸에 들어있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이런 행복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니...



이번에는 고통이 아니라 행복에 의해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는데...



"...후우."



츄, 짧은 물소리를 남기고 입술이 해방되었다. 조금 전과 달리 아쉽다.



"..."



"...저기, 오르페브르?"



"...상이다, 기쁘게 받도록."



"고, 고마워...?"



어, 이게 그런 거였나...?



조금 전 키스 마크는 맹약이고, 지금 건 보상... 뭐, 어쨌든 받았으니 받아두자.



오르페는 이번에도 좋다고 말하고는 다시 등을 돌리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는가 싶더니 또 멈췄다.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돌아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오르페의 귀와 꼬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 번 더, 하고 싶어?"



"...!"



꼬리과 귀에서 핑! 소리가 났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은 신하로서, 좀 더 적절한 단어 선택을...



"미안, 잘못 말했어! 상을, 한 번 더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놈... 왕인 여에게 또 상을 청하는 것이냐, 생각보다 욕심이 많구나."



그럼 돌아가든가... 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부조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들뜬 연하를 리드하는 것이 어른의.. 물론 왕을 끝까지 따르는 신하의 역할이다.



"좋다, 그리 해주지. 왕은 관용을 베풀어야 하니."



"고마워, 널 섬길 수 있어서 행복해."



"흥, 얼간이."



입과는 반대로 걸음걸이에서 참을 수 없다는 게 전해지고 있다.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뭐가 그리 웃기는 거지? 그 정도로 상을 기다릴 수 없다는 건가?"



"뭐, 그런 거지."



"참을성 없는 신하를 두면 고생하는 법이지."



오르페의 두 손이 내 뺨에 닿았다.



이런 따뜻함은, 그녀의 신하에 대한 온정에서 온 것이라고 해두겠다.



아주 조금 붉게 물든 뺨도 나의 거리낌없는 행동에 조금은 화가 난 것이라고 해두자.



이번에는 천천히, 흔들리는 자수정 눈동자가 다가온다.



그에 맞춰 나도 눈을 감았다.



"...고마워."



마지막으로 들은 소박한 감사의 말은 환청일지도 모른다.



결국, 왕께서 만족하시며 신하의 집에서 나서신 것은 통금 시간 직전이었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