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날이 밝았다.

사방이 관중들로 가득 차 있고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시원한 바람이 빰을 스치고 부드러운 잔디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스타팅 게이트에 서자 심장 소리가 전신에 울리기 시작한다. 긴장에 그 어느 때보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스타팅 게이트로 들어온 뒤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 순간 경기 해설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의 3번 인기, 다이와 스칼렛. 이번에 우승해 저번 달의 굴욕을 씻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오늘의 2번 인기, 보드카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한 우마무스메입니다. 다른 레이스였다면 1번 인기였겠네요.”

“네, 오늘의 1번 인기, 오구리 캡입니다. 회색 털의 괴물로 불리는 우마무스메입니다. 지금까지 G1 우승을 4번이나 한 엄청난 우마무스메입니다.”

 

보드카, 데뷔전에서 나에게서 우승을 차지한 우마무스메

오구리 캡, 저번 달의 레이스에서 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우마무스메

특히 오구리 캡은 우마무스메들에게까지 괴물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우마무스메이다.

둘 다 나에게 패배의 쓴 맛을 안겨준 존재들. 그와 동시에 이번에 반드시 넘어야 할 존재들.

나도 포기할 수 없다. 자세를 잡고 집중하고 있던 순간

문이 열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심장 소리와 함성 소리, 달리기 소리가 겹쳐 알 수 없는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앞에는 아무도 없다. 탁 트인 풍경만이 반기고 있다. 흥분되기 시작한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건가?

집중하자. 스칼렛!

하지만 심장이 더 거세게 뛴다.

 

“다이와 스칼렛, 선두로 달리고 있습니다. 조금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 뒤를 5마신 차이로 오구리 캡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코너로 들어왔다.

다리가 가볍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 뭔지 알 것만 같다.

우승이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다이와 스칼렛! 선두를 놓치지 않습니다!”

“굉장합니다! 오구리 캡! 이 차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어느새 마지막 코너

결승선이 다가올 수록 해설도 더 격정적으로 바뀌었고 관중들의 함성 소리도 더 커졌다.

 

아직도 선두를 지키고 있다. 오구리 캡과의 거리도 꽤나 남아 있는 상황.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우승이 눈 앞에 있다.

하지만 너무 흥분했던 탓일까. 아니면 긴장했던 탓일까. 중요한 부분에서 살짝 삐끗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다시 자리를 잡았지만 괴물 오구리 캡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거리가 줄어들었다. 심지어 당황해서 써야 했던 기술도 타이밍을 놓쳤다.

 

“아~~! 다이와 스칼렛! 오구리 캡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습니다!”

“발을 잘못 디딘 것 같습니다! 과연 따돌릴 수 있을까요!”

 

나도 안다. 그리고 지금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최종 직선. 선행인 회색털의 괴물, 오구리 캡의 진가가 들어나는 순간이다.

 

“오구리 캡! 5마신 차이의 다이와 스칼렛과의 거리를 좁혀나갑니다.”

“오구리 캡! 4마신 차!”

“3마신 차까지 줄어듭니다!”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오구리 캡의 발소리가 바로 뒤에 있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심장 소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보드카는 빠져 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구리 캡은 2마신 차!”

 

이 소리가 심장 소리인지 발소리인지 분간이 안 간다. 온 힘을 다해 발을 내딪는다.

 

“오구리 캡! 1마신 차! 다이와 스칼렛은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결승선이 눈 앞에 보인다.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눈 옆에 오구리 캡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결승선도 다가온다.

 

”오구리 캡인가! 다이와 스칼렛인가! 오구리 캡! 다이와 스칼렛!“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오구리 캡도 나란히 옆을 달리고 있었다.

 

”아아아아!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레이스가 끝났다.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지고 내 이름도 들리지만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트레이너가 있는 곳을 보자 트레이너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지금 나도 그러겠지.

트레이너와 눈이 마주쳤다. 트레이너는 항상 그랬듯이 미소로 응답했다.

결과를 기다린다.

1분, 2분, 5분...

결과가 늦는다. 그 정도로 치열했다는 거겠지. 어느새 내 트레이너는 다가와 수건을 건냈고 오구리 캡과 트레이너도 옆에서 같이 결과를 기다린다.

트레이너의 떨리는 손이 보였다. 손을 잡으려고 마음 먹은 순간

 

”결과가 나왔습니다.“

 

긴장했는지 전광판에 등수가 평소보다 천천히 나오는 것 같다.

낮은 등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삣, 삣, 삣

보드카는 8착이었다.

옆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트레이너와 쓸쓸하게 퇴장했다.

 

삣, 삣, 삣

어느새 등수는 3등까지 공개되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2등이 공개되는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숨조차 쉴 수 없는 1초

 

결과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