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흥분한 군중들을 뚫고 나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나와 슈발 그랑의 키 차이는 제법 되는 편이었고, 그녀에게서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려면 최대한 품 안에 끌어안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와중에도 슬쩍 눈치를 보며 기대오는 슈발 그랑의 몸짓이란. 


된통 당해버린 입장에선 헛웃음이라도 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차를 몰아 트레이너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입을 열 수 있었다.




"걱정마. 그정도 말실수는 사람들 입에 몇 번 오르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니까. 그래스에겐 내가 잘 말해볼게."


"......"


"..설마, 진심이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골치아픈 상황에 습관처럼 뒷목을 매만졌다. 노을이 내려앉은 트레이너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슈발 그랑, 나는ㅡ..."


"아, 알고있어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저도 알고 있다구요. 트레이너는, 그래스 언니의 남편이잖아요."


"...그래."


"하지만, 하지만... 소원이잖아요. 뭐든지 해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한 슈발 그랑이 내게 몸을 기대왔다.




"부탁이에요... 정말 좋아해요. 결혼이 안되면 첩이라도 괜찮으니까ㅡ"


"미친!!"




누가 들을까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첩이라니! 간절한 건 알겠지만 말에도 정도라는게 있는거다.


등줄기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전 담당, 이제는 부부의 연을 맺은 그래스는 매사에 정말 상냥했지만 여자 관계에 대해선 유독 예민한 면이 있었다.


만약 방금 슈발 그랑이 했던 말이 그래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러는 사이 손을 내린 슈발 그랑이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 역시, 트레이너도 저 같은 추녀는 싫으신거죠...?"


"...뭐?"


"몸은 왜소한데 가슴만 쓸데없이 크고, 얼굴도 아이처럼 생겨서는... 트레이너가 좋아하는 그래스 언니와 하나도 안 닮았잖아요."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정신나간 중얼거림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슈발 그랑은 결코 추녀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도 특출나게 아름다운 편이었다. 


귀여운 외모와 살짝 올라간 눈매. 그와 상반되는 소심한 성격과 여성으로서 자기 주장이 확실한 커다란 가슴까지. 


슈발 그랑 본인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내게 찾아와 그녀에게 모델 일을 시켜볼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었다.




"일단... 일단 진정 좀 하자. 응?"


"역시 그럴거야... 이 징그럽게 크기만 한 가슴 때문에 트레이너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가슴 밑에 나는 땀냄새를 누가 좋아하겠어...?"


"슈발 그랑!"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라니. 최악, 최악이야...! 아니, 지금이라도 이 쓸모 없는 젖가슴을 없애버린다면..."




하이라이트가 꺼진 눈으로 무어라 중얼거린 슈발 그랑이 두 손으로 제 가슴을 들어올리며 석류빛 입술을 잘게 짖이겼다. 


틀렸다.


이 상태의 슈발 그랑은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질 않는다. 


나는 더 크게 목소리를 내기보단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건만. 자괴감에 빠져 죽으려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약해져버렸다.


무엇보다 내 직업은 트레이너.


담당을 케어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행복하게 해줄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결국 나는 굳은 얼굴로 그 자리에서 바지의 벨트를 풀어버렸다.




"여길 봐 슈발 그랑!!"


"지금 당장 병원으로오......?!! 하아아아아아앗?!!!"




내 외침에 이쪽을 바라본 슈발 그랑이 두 눈을 화등잔만하게 키우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귀엽게 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빨게 물들었다.


시선은 완전히 내 사타구니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흉측한 인자봉이 얇은 팬티 너머로 빳빳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 저, 저, 저, 저기! 트레이너?! 바, 바지가!"


"그래, 이제야 정신차렸구나..."




나는 그녀가 완전히 정신 차린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금 주섬주섬 바지를 끌어올렸다.


결국 그녀의 소원대로 바지를 벗어버리고 말았다.


나보다 한참은 어린 여자 아이 앞에서 바지를 벗다니. 윤리 의식 이전에 담배 한 갑을 핀 것 같은 씁쓸함이 입 안을 가득 매웠다.




"저, 정말, 죄, 죄송해요 트레이너! 멋대로 혼자 자책해서... 저는, 저는 그냥 트레이너가 너무 좋아서... 하으으,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정신 차렸으면 된 거지. 아무튼 알겠지?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흐윽, 정말, 정말 죄송해요. 매번 이런 식으로 트레이너에게 민폐만 끼쳐서는..."




입으로는 연신 죄송하다면서도, 그녀의 새파란 눈동자는 감길 줄을 몰랐다.


오히려 빤히, 뚫어져라 내 하반신을 보고 있었다.


어딘가 가려운듯 두 다리를 배배 꼬면서도, 두 손으로 제 몸을 껴안은 슈발 그랑이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마무스메인 그래스를 아내로 두고 있는 나는 저 행동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트... 트레이너어..."


"......"




먹고 싶다.


그녀의 눈빛에는 그러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 음습하고 뜨거운, 침대 위의 그래스에게서나 느꼈던 묘한 압박감에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위험하다. 


이건 진짜로 위험하다.


두 뺨에 베시시 열이 오른 슈발 그랑이 달뜬 미소를 띄우며 한걸음, 한걸음, 내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부터...




"하아, 하아.... 딱 한 번만, 하악, 만져봐도 될까요..."




슈발 그랑에게 따먹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순애물에 하드 뾰이물을 넣는 것이지!


썼던 괴문서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