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부드러운 햇살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서늘한 바람은 방안을 맴돌았고, 타키온의 옷 사이로 가볍게 스며들었다. 목이 늘어난 스웨터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 엉성한 뜨개질 사이로 타키온의 살색이 살짝살짝 드러난다. 


잠에서 막 깬 타키온은 습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선다. 주방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고, 트레이너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느때와 다름없는, 주말의 풍경이다.


"일어났어? 아침 간단하게 해놨으니까 먹어."


주방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토스트와 홍차. 타키온은 홍차잔만 집어 들고 홀짝이며 거실로 향했다. 이윽고 소파에 누워있는 트레이너를 쳐다보더니, 재미난 생각이라도 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너무 빤히 처다보는것 아닌가? 아침부터 그런 시선은 조금 부끄러운데."


부끄러운척 팔로 가슴을 감싸는 타키온. 그러나 하반신은 습기찬 검은색 팬티와 찢어진 스타킹만이 타키온의 아래를 간신히 가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트레이너는 눈을 피하며 대꾸했다.


"아니야. 그냥... 네 옷이 이뻐서 쳐다본거야."


"평소 입던 옷과 다를게 하나도 없네만? 그리고, 이쁜 옷이라면 좀 소중하게 대해주지 그랬나."


"...옷이 좀 큰거같네."


"자네 덕분이지. 옷이 많이 늘어났어. 옷 벗는것조차 못기다려주는... 자네 탓이야."


트레이너는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이렇게 부끄러워해서야. 밤만 되면 짐승이 되는 주제에. 덕분에 이 옷도 이제 외출복으로는 못쓰겠네."


"...아끼던 옷이야?"


트레이너도 본인이 잘못한거는 아는지, 화분을 박살낸 골든 리트리버처럼 눈망울이 촉촉하다.  


"물론. ...자네가 처음 선물해준 옷이니까."


타키온은 소파에 앉아 트레이너의 팔을 가슴으로 꼭 감싸주었다. 


트레이너는 자연스럽게 반대쪽 팔로 타키온의 허리를 감싼 채 부드럽게 모닝키스를 해주었다.




...긴 키스가 끝나고, 트레이너가 타키온에게 물었다.


"오늘 데이트 어때? 처음 데이트 했던 아쿠아리움으로. 그... 옷도 좀 사고. 내가 사줄게."


"이 옷을 입고 나가라고? 자네도 이상한 취미가 생겼군?" 


"아니 물론 그 옷을 입고 가자는게 아니라..."


"됐네. 오늘은 집에만 있고 싶어. 옷은... 인터넷으로 대충 시킬거야. 예전에는 늘 그렇게 옷을 사 입었네"


트레이너는 살짝 아쉬운 듯, 살짝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사이즈 맞는 옷이 없었잖아."


"내가 작은 옷을 사면 몸에 꽉 끼어서 좋다고 해주고, 큰 옷을 사면 귀엽다고 좋아해줄거 아닌가?"


"넌 사이즈 맞는 옷을 입었을 때 제일 아름다워."


갑작스러운 칭찬에 타키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타키온? 왜 말이 없어?"


트레이너는 그런 상황을 모르는 듯 인터넷 쇼핑몰 링크를 타키온에게 보내주었다.


"그럼 이런 사이트는 어때? 여긴 옷 사이즈를 굉장히 세세하게 알려주거든. 옷의 기장이나 사이즈를 세세하게 알려줘. 옷도 이쁜게 많아."


"모르모트? 그러면 우선 사이즈부터 재줬으면 하는데. 신체를 그렇게 자세하게 측정 해본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 잠시만, 줄자 찾아올게."




트레이너는 줄자를 가져와 타키온의 몸에 가져다댔다. 부끄러움 많은 트레이너지만 타키온과는 몸의 대화를 나눌만큼 나눈 만큼 이런 일에는 거리낌 없었다.


"우선 허벅지부터..."


트레이너는 소파에 앉아있는 타키온의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 순간, 타키온이 발로 트레이너를 밀어냈다. 트레이너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타키온? 지금 뭐하는거야?"


"스타킹의 복수. 어제 자네가 찢은 이 스타킹... 비비안 웨스트우드 제품이라네. 산지 이틀밖에 안된거였는데 말이야. 허벅지에 손이 닿으니까 갑자기 어제 기억이 생각나서. 스타킹 찢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애교섞인 장난이었지만, 원망이 홍차의 설탕만큼은 섞여있었다.


"...그것도 내가 사줄게. 그래도 사이즈는 재게 해줘."


타키온은 말 없이 일어나 트레이너 앞에 섰다. 


"바지는 안살거니까 허벅지는 잴 필요 없네."


"그래. 그러면 팔 길이 한번..."


"상의도 안살거니까 잴 필요 없네."


의아한 표정으로 타키온을 바라보는 트레이너. 타키온은 트레이너의 귓가에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슴 둘레만 재줘... 외출복보다 밤에 입을 옷이 필요하니까...♥"


어젯밤 트레이너를 짐승으로 만들었던 타키온의 달콤한 속삭임. 부드러운 목소리와 은은하게 풍기는 여자의 냄새. 남자를 발정시키는 화학식.


"타키온. 그럼 가슴둘레만 재줄게."


그 순간, 두툼한 손이 타키온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잠깐..♥ 좀 부드럽게...!"


"너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해줄게. 으음... 가슴둘레는 전보다 좀 커진거같기도 하고?" 


"오..으읏....! 자네가 매일 밤마다... 아..아앗♥♥!"


"타키온? 밤에 입을 옷이 필요하다고? 이상하네... 밤에는 옷이 필요 없잖아."


가슴을 쥐었던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온다. 젖어있는 몸이 마르기도 전에, 어젯밤의 흔적을 씻어내기도 전에, 짐승의 성욕이 끓어올랐다.


타키온의 꽃잎을 부드럽게 만지는 트레이너. 타키온은 어떤 저항도 없이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고싶다고 했지?"


"응. 하루 종일...♥"


둘은 다시 침실로 들어갔고, 둘은 자신들을 훔쳐보는 태양이 부끄러워져 커튼을 쳤다.


주말 오후. 부드럽게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침실을 가득 채웠다. 따뜻한 숨결은 방안을 맴돌았고, 타키온의 몸 안으로 가볍게 스며들었다. 찢어진 스타킹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 검은색 스타킹 사이로 타키온의 살색이 살짝살짝 드러난다. 


황홀경에 빠진지 오래인 타키온은 트레이너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워있다. 몸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고, 트레이너는 타키온의 몸을 음미하고 있다.


...어느때와 다름없는, 주말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