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산 모음집】


원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125801


의역 많음! 번역기 사용 양해!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시끌벅적하던 우마무스메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주변은 고요함으로 뒤덮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은 장마철이라 빗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담당과 함께 만든 테루테루보즈를 봤다. 어둑어둑한 기운은 나를 가볍게 집어삼켜 업무 의욕을 저하시켰다.



습기를 잔뜩 빨아들였는지 창문에 걸려 있는 테루테루보즈는 평소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일이나 공부에 매진하고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잠을 잔다. 그런 일상의 사이클.



"꾸우욱~"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이다. 나는 아이돌도 아니고, 어느 나라의 왕자님도 아니다. 수억 명에 달하는 인간 중에서 일반인 중 일반인. 이렇다 할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생길 리가 없다.



"뿌우~ 트레이너?"



자료를 비교하며 생각하고 아웃풋한 것을 제자에게 주입하며 함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선수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트레이너라는 직업. 화려한 그녀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념하는 그런 모습을 동경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네 이노옴~!"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의자를 빙글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리낌 없이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그 얼굴은 묘하게 그리운 얼굴이었다.



"내가 일부러 데리러 왔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파인 모션, 나의 첫 담당이자 아일랜드의 공주님. 비유가 아니라 진짜 공주님이다. 함께 트윙클 시리즈를 함께 누비며 발자국을 남겼던 위대한 우마무스메.



"사명은 어쩌고?"



"후훗, 잘하고 있어. 그보다 나 더 예뻐졌지?"



나와 조금 떨어져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파인. 그때의 옷차림 그대로, 하지만 머리가 조금 자랐는지 어른스러움이 조금 묻어난다. 속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경쾌한 말투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5년 만이지?"



"그렇네, 그래... 벌써 그렇게 오래됐구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를 위해 그것을 거절했다.



"대장님은? 밖에 계시면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대장은 없어."



"어, 대장님 안 계셔?"



천장 뒤쪽이나 벽 뒤쪽을 경계하며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녀의 말에 굳어버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납득이 ㄱ...



"그럴 리가 없잖아."



"아야!"



파인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자, 이런 짓을 하면 곧바로 대장님이 달려와서...



"어, 정말 없나?"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했잖아."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는 파인을 뒤로 하고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트레센 학원으로 향했고, 지금 가르치고 있는 담당과 교육을 진행했다. 그 후, 평소처럼 사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아일랜드에 있어야 할 파인이 왔다. 그 파인은 보호자가 없다고 한다. 그렇구나... 모르겠다.



"혼자 왔다는 거야?"



"맞아."



명랑하게 말했다. 일국의 공주님이 혼자서 일본에...?



"폐하께서 용케 허락해 주셨네."



"말 안 했으니까."



"그래, 그럼 혼자 오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등록되어 있는 전화번호부를 열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이름을 눌렀다.



"음, 전화?"



"응, 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에~ 아버님께 전화하다니. 트레이너도 참 급하네~"



꾸물거리는 파인을 무시하고 전화를 걸기 시작헸다. 시간도 시간이고, 전화를 받지 않으실 가능성도 있다.



"스피커폰으로 하면 되잖아! 나도 트레이너의 아버님과 얘기하고 싶어."



"그래, 그럼 스피커폰으로 할게."



"후훗훗... 응? 트레이너 이거..."



"그래, 네 아버지."



"흣!"



"아앗!"



파인은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내 스마트폰을 가로채더니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 스마트폰을 자신의 가슴에 집어넣었다.



"야, 내 스마트폰 돌려줘!"



"왜 아바마마한테 전화하는 거야!?"



"아니, 그건... 널 데리고 가라고..."



"내가 오배송된 짐이라는 거야!?"



분개하는 파인,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했을 텐데...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는 파인. 옷 위로 드러난 스마트폰의 실루엣은 정확히 파인의 가슴 위에 있었다... 돌려받았을 때, 어떤 심정으로 만져야 하는 걸까.



"모처럼 둘뿐인데, 그러지 마."



아까보다 조금 톤이 낮아진 파인. 확실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본에 왔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파인은 왜 여기 온 거야?"



의자에 다시 앉아서 자세를 가다듬고 질문을 하자, 파인은 억지로 만든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별거 아닌 일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는 벽이 느껴졌다.



"숙소는?"



"호텔 예약해놨어."



"데려다 줄게."



컴퓨터 전원을 끄고 짐을 정리했다. 차를 타고 오지 않아서 걸어서 가야 하는데, 혼자 호텔로 향하게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녀는 공주다.



"아, 그럼 같이 라멘 먹자!"



"저기... 네가 어떤 입장인지 알고 있는 거지?"



"부탁이야, 트레이너! 트레이너와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했어!"



나를 올려다보는 파인. 예전부터 나는 이 얼굴에 약했다.



"오늘만이야."



"앗싸! 좋아해, 트레이너!"



게다가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을 기회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녀의 분위기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 빨리 스마트폰 돌려줘."



"어디 있는지 알지? 가져가.... 아야!"



빗줄기는 아직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여전히 라멘이구나."



"후후후. 라멘이 있는 곳에 파인이 있다고."



"별로 자랑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길을 둘이 나란히 걷는다. 우산을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우산을 펴지 않는 그녀는 내 옆에 바짝 붙어 함께 우산을 쓰고 있다. 키가 큰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그 조금은 어린아이 같은 분위기는 이제 사라지고 완전히 성인 여성으로 완성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돌아보게 만드는 미인와 함께 가는 곳은 라멘집이다. 어딘지 모르게 언밸런스한 데이트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고 편안하다.



"라멘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라멘은 마무리!"



꽉 붙잡힌 채로 끌려간 곳은 시내에서도 꽤 유명한 바였다. 가격도 꽤나 비싸서 평소 이런 곳에 잘 가지 않는 나로서는 이세계처럼 느끼던 곳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저쪽에 게신 손님이 사신 겁니다. 같은 곳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곳이었다.



"이렇게 비싼 술은 부담 없이 마실 수 없는데..."



"괜찮아, 여긴 내가 계산할 테니까."



"하지만..."



"괜찮아. 트레이너는 신경 쓰지 말고 마셔"



그렇게 말해도... 일단 바텐더에게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을 추천을 받자. 파인은 이름도 잘 모르는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술을 조금씩 마시고 있다.



"그래, 이제 파인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후훗, 맞아. 이제 이렇게 너와 같은 걸 할 수 있어."



팔짱을 끼고 책상에 엎드린 듯한 자세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 있다. 술로 인해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표정이 심상치 않게 녹아내리고 있다. 이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 시점에서 말려야 했을지도...



"...그, 별거 아니라는 일이라는 게 뭔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어쩐지 지금의 분위기가 너무 어색한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파인은 반쯤 남은 유리잔의 얼음을 재미없다는 듯이 굴리다가 천천히 내려놓으며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궁금해?"



"그야..."



5년 만의 재회. 사전 연락도 없이 나를 찾아온 파인. SP, 심지어 폐하께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찾아온 것이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거짓말을 했어. 별거 아닌 일이 아니야."



"그럼..."



"응. 정말 중요한 일이야."



파인은 남아 있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서둘러 물을 준비해 파인에게 마시게 하자, 파인은 활짝 웃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럼 왜 마신 거야?"



"트레이너 앞이니까."



똑바로 나를 쏘아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아름답고도 무서운 흡입력을 가진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를 상징하는 앞머리의 유성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트레이너 앞에서만."



"벌써 시간이... 택시 부를 테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일어서려는 순간 파인이 옷을 잡아당겼다. 어깨에 닿는 그녀의 머리가 뜨겁게 느껴진다.



"데려가줘."



"아니, 그 정도는 혼자 갈 수 있잖아."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부탁이야."



왜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기회는...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면 이루어진다. 그녀는 마지막이라고 했다. 게다가 혼자서 건너온 비밀 여행. 이런 말을 듣고 거절할 만큼 나는 박정한 사람이 아니다.



"오늘만이야."



몇 번째인가. 너무 많이 써서 효력이 없어질 것 같은 마법의 단어...



"에헤헤, 다행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 그 안도감은 그녀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것은 조용히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






비는 어느새 그친 상태였다. 파인이 걷고 싶다고 해서 걷기로 했다. 택시를 타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나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시즌이지만, 밤은 그래도 해가 없는 만큼 낮보다 시원하고 가끔씩 뺨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다.



"라멘 먹으러 갈까?"



"이젠 배불러~"



바에서의 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 앞을 조금 앞서가듯 두 손을 뒤로 모으고 즐거운 듯이 걷고 있다.



"트레이너는, 만약 그때 내가 같이 가자고 하면 따라왔을까?"



파인이 몸을 돌리자, 원심력에 의해 살짝 떠올랐던 스커트가 중력을 따라 천천히 내려앉았다.



"...가지 않았을 것 같아. 트레이너를 계속하고 싶었거든."



"아바마마 앞에서 그렇게 위세 좋게 말해놓고?"



"그것도 좀 있을지도."



3년이라는 제약. 그리고 일국의 공주로서 해야만 했던 일들. 누리고 싶었던 청춘과 제패하고 싶었던 레이스.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었던 그녀의 각오와 심정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강한 그녀 곁에 나라는 존재가 어울릴까. 그녀와의 이별이 괴로워서, 그런 단순한 이유로 함께 있어도 되는 걸까.



"그럼 지금 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하면 따라올 거야?"



그런 자격이 나에게 있을 리 없다.



"미안해."



"...그렇겠지. 갑자기 그런 말을 들은 것도 있고, 이젠 예전 같지 않을 테니까."



파인은 울고 있었다. 내가 울렸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녀는 씩씩하게 웃으며 갸웃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 그럼 안녕."



"파인!"



달려가는 그녀를 황급히 뒤쫓았다. 여기서 그녀를 멈추지 않으면 정말 마지막 이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술에 취해 무거운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보지만 역시 선수였던 그녀와의 격차는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평소에 운동을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폐가 타들어갈 듯이 아프지만 여기서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노력하겠는가. 자신의 몸에 채찍을 휘두르며 계속 달렸다.



"파인!"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있다. 시속 6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그녀를 평범한 성인 남성이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체력 고갈로 외벽에 몸을 맡기고 어깨에 기대고 숨을 골랐다. 근처에 유명한 호텔은 단 한 곳뿐이다. 도박이지만 거기로 가보는 수밖에 없다.



"파인 모션 님이시군요. 방이 두 개 예약되어 있습니다."



"네?"



몇십 분 후, 겨우 도착한 호텔에서 접수처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뜬금없이 객실 열쇠를 받았다. 적혀있는 층수를 나타내는 번호 옆이 그녀의 방인 것 같다. 그녀는 왜 방을 두 개나 예약한 걸까? 왜 그것을 나에게 건넸을까. 그런 의문이 남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였을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나니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다시 한 번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파인... 그, 있어?"



건네받은 객실 열쇠의 옆방. 노크를 해서 그녀가 있는지 확인하자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은 전부 옆방에 두고 와. 그러면 열어줄게."



손에 쥐고 있던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파인의 지시에 따라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방에 두고 왔다. 돌아왔을 때는 문이 살짝 열려있었고,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파인이 보였다.



"들어와."



"파인, 그..."



"됐으니까 들어와."



내 말을 가로막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파인의 재촉을 받아 방으로 들어가자, 파인은 재빨리 문을 닫았다.



"파인...!?"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뭔가 화제를 찾고 있었는데, 파인이 나를 껴안았다. 호흡이 거칠고 포옹하는 힘도 조금 세다.



"괜찮아, 파인!?"



"생각보다 많이 취한 것 같아."



축 늘어진 몸을 거의 나에게 맡기는 듯한 자세가 된 파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떻게든 파인을 들어 침대 쪽으로 눕히고 방 안에 물이 없는지 찾아보니 냉장고에 물이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자유롭게 마셔도 되는 것 같다. 역시 고급 호텔...



"파인, 물이야. 마실 수 있겠어?"



"으으..."



술기운이 어지간히 도는지 물을 받으려 하지 않아서 내가 뚜껑을 열고 마시게 해 주려고 해도 반응이 없다. 몸이 나른한 건지 파인에게 내 목소리가 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악의 경우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고, 나 개인으로서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호텔 직원을 부르는 방법도 있지만, 유명한 전 스타 우마무스메, 더군다나 일국의 공주가 일반인과 호텔에서 단둘이 있는 모습이 발견되면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고, SP가 여기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 대장님도 없다.



"하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만 가능하면 그 수단은 쓰고 싶지 않고, 다른 방법을 쓰고 싶다. 하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다른 생각 따위는 떠오를 리가 없고, 고민할 여유도 없다.



"미안해, 파인."



나는 그렇게 한 마디 사과를 한 뒤 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 물을 마셨다. 그대로 입에 머금은 물을 파인의 턱을 들어 올려 입에 옮겨 담아 그녀에게 마시게 했다. 파인은 작은 입을 살짝 벌려 물을 천천히 삼켰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그 작업을 반복했다. 페트병의 절반 정도 마신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마시려는 순간, 갑자기 머리를 잡혔다.



"앗!?"



이 방에 있는 사람은 파인과 나뿐이니 필연적으로 그 사람은 파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파인은 그대로 기세 좋게 호쾌하게 내 입술을 빼앗았다. 물이 들어있지 않으니 키스인 것 같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입 안을 공격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혀와 혀가 얽히는 요염하고 관능적인 키스는 그녀를 의식하게 만들고,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나를 놓아주었다.



"푸핫, 파인...?"



"후훗... 아하하하하!"



조금 전의 힘들어하던 모습이 거짓말 같은 태도로 웃고 있는 파인은 혀에 손을 대고 촉촉한 감촉을 즐기듯 핥고 있다.



"말도 안 돼! 넌 옛 제자에게 손을 댄 나쁜 트레이너야!"



"하지만 네가 술에 취해서 힘들어 보였으니까..."



"우마무스메는 술이나 약에 강한데?"



파인의 그 말에 퍼뜩 깨달았다. 왜 그런 기초적인 것을 잊고 있었던 걸까.



"짜잔~ 이게 뭘까요~"



"...앗!"



그녀가 손짓으로 흔드는 것은 내 객실 열쇠였다. 재빨리 옷 속 가슴 부분에 집어넣은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트레이너를 껴안았을 때 주머니에서 꺼냈어. 짐은 모두 저쪽 방에 있으니 이게 없으면 돌아갈 수 없지?"



직원에게 들키면 곤란하기 때문에 마스터키를 빌리러 갈 수도 없다. 애초에 파인이 날 놓칠 리도 없고...



"어딜 만져도 괜찮으니까 트레이너가 노력하면 객실 열쇠를 되찾는 것도 가능한데~?"



파인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구도상으로는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었다.



"잘 될지 걱정했어! 하아... 이렇게 긴장한 것도 오랜만이야."



그녀가 혼자 나를 찾아온 것도, 바에서 술을 마신 것도, 호텔 객실을 두 개나 예약한 것도, 그때 보여준 눈물도 모두 그녀의 계산대로였을까...



"저기, 파인.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뭐든 상관없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나는 단 한 가지,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어디서부터가 거짓말이었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파인은 즐거운 듯 대답했다.



"전부♡"









= 끗 =


평민은 언제나 귀족과 왕족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존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