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엔딩 트레이너 - 내가 쓴 괴문서 모음



 그날 메지로 가의 아침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당주는 나를 메지로 가의 트레이너라고 소개했다.

 아무런 실적도 없는 신입 트레이너를 갑자기 메지로의 트레이너로 받아들이는 건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나를 키류인 가의 트레이너라고 했다.

 이 말에 키류인 가에 현재 아들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있다고 했다.

 

 ‘불만이 많네’

 

 지금 메지로 가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입 트레이너에게 메지로 가의 영애를 하나 그냥 던져주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당주는 어떤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눈여겨 볼만한 아이는 둘이 있다고 하며, 도베르와 브라이트를 내 눈앞에 데려왔다.

 

 “…….”

 “당신이 찾는 맥퀸이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있는 아이는 이 둘이 끝입니다.”

 “상관없습니다.”

 

 나는 도베르와 브라이트를 둘 다 바라봤다.

 도베르는 나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지만 남성 공포증이 있다는 말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를 피하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와 반대로 브라이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맥퀸 때의 브라이트는 이런 눈이 아니었는데?’

 

 집착과 불신에 사로잡힌 눈이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고,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짓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님?”

 “왜 그러죠 브라이트?”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여러분들의 트레이너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신인 트레이너가 말이죠?”

 

 브라이트는 당주에게 하는 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무례하게 말했다.

 나는 잠깐 정신이 혼미했다.

 내가 게임에서 봤던 브라이트라곤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제 눈이 잘못됐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다들 조용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게 눈에 선히 보였으며, 자신이 선택받지 않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대로 억지로 선택하면 자기 멋대로 하겠지.’

 

 나는 그들에게 살짝 맞춰주기로 했다.

 

 “제가 두 달간 트레이닝을 지도하겠습니다. 만약 제 트레이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계약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좋아요.”

 “저도 그런 거라면 좋아요~”

 

 도베르는 개인적인 감정보다 남성 트레이너 자체를 힘들어하는 느낌이었다.

 브라이트는 나를 못마땅해하며 자신의 트레이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둘 다 대충 보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뒤 내쫓을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면 달라지겠지.’

 

 다행히 아직 메지로 가의 트레이닝 시설과 관리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많았다.

 식단마저도 전용 요리사들이 있으니 두 달간 매우 타이트하게 해보기로 했다.

 

 ‘쉽지.’

 

 ***

 

 첫날에 나를 의심했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모두가 나를 메지로의 최고 트레이너로 인정하고 있으며, 처음에 나를 불신했던 이들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메지로 가는 봄 방패상, 즉 메지로의 비원이 사라지고 훗날 메지로를 이끌 맥퀸 역시 사라진 상태다.

 지금 메지로는 많이 휘청거리며 위험했고, 도베르와 브라이트는 메지로 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생각보다 성격이 많이 변했네.’


 특히 브라이트는 맥퀸 때 봤던 것 이상으로 말할 수 없는 강박증이 생겼었다.

 메지로 가에서 기대하고 있지만 자신의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느긋하며 천성이 느린 건 똑같았지만, 여유는 사라지고 집착과 광기가 서려 있었다.

 

 ‘도베르는 나름 비슷하네, 다른 꿈이 있어서인가?’

 

 도베르는 여전히 나를 힘들어하지만, 실력만큼은 믿고 있었다.

 내가 가끔 시험 삼아 마사지를 위해 신체접촉을 하는 일이 많았다.

 당연히 그냥 팔다리만 풀어주는 게 아니라 몸에 대한 접촉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소름 끼쳐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며 거절했다.

 

 ‘브라이트는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고 노력했지.’

 

 반대로 브라이트는 오히려 다른 것도 괜찮다는 듯 내게 달라붙는 일이 있었다.

 점점 성과를 보일수록 내게 다가와 마음대로 해도 좋다며 백허그를하며 숨결이 닿을 만큼 달라붙었다.

 

 ‘느릿느릿하고, 귀엽지만 무섭기도 해.’

 

 브라이트는 맥퀸이 절망했을 때가 생각났다.

 자신이 우승할 수 있게 해준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은연중에 비춰주고 있었다.

 내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고, 가끔 바보 같은 모습도 보이며 내 호감을 얻으려 했다.

 실제로 꽤 나쁘지 않았다.

 

 ‘맥퀸이 사라져서 가장 많이 변했네.’

 

 나는 브라이트와 도베르를 불렀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고 이제 나는 누굴 담당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도베르와 브라이트는 은연중 기대를 비추며 나를 바라봤다.

 

 ‘도베르도 기대하는 건 의외네.’

 

 도베르는 다른 여성 트레이너를 선택할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내 트레이닝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가끔 신체접촉이 많을 때 기겁하긴 했지만, 그것도 참을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브라이트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내가 완전히 구세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지.’

 

 솔직히 나는 성에 차지 않았다.

 비한다면 너무나도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특히 브라이트는 거의 불완전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형편없었다.

 다른 우마무스메였으면 몰라도 브라이트의 성씨는 메지로였다.

 

 “여러분이 메지로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둘이었죠?”

 “예.”

 “…네~”

 

 도베르와 브라이트는 둘 다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서 좋은 말이라도 나올 거라 생각한 것 같았지만, 나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오늘부터 메지로의 트레이너는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메지로의 미래라면 이번 세대에서 끝나겠네요.”

 “예?”

 “…에?”

 

 하나는 좀 빠르게 반응하며 이런 게 어딨냐고 말했고, 나머지 하나는 잠시만 기다려 보라며 내 팔을 붙잡았다.

 어차피 이대로 뿌리치고 나가는 것도 힘들 테니 이유라도 말해달라는 것에 즉시 답해줬다.


 “자기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질팡갈팡거리는 모습과 달리는 모습에서 선택과 고집을 엿볼 수 있었어요.”

 

 달리는 것에서부터 자신들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했다.

 둘 다 G1에서는 우승할 수 있겠지만, 그것 이상의 가치를 보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물론 도베르는 조금 가능성이 엿보였지만, 브라이트 쪽에서는 끔찍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가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놓아주시겠어요?”

 

 브라이트는 나를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동공이 흔들리며 입꼬리만 올린 채 눈 끝이 심하게 아래로 처지며 억지로 웃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받았다.


 “잠깐만요~ 분명 계약했다면 할머님과….”

 “전 당주님의 부탁으로 이곳에 있던 거지 계약으로 묶인 몸이 아닙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 홀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어디서 곤란한 게 있다는 거죠?”

 

 브라이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통증이 올라왔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줬다.

 이제 이딴 건 전혀 아프지도 않았고, 아플 리도 없었다.

 목을 매달았을 때 더 이상 나는 발버둥 치지 않았었다.

 

 “…웃고 계시네요?”

 “그럼 울어드리면 되겠습니까?”

 

 브라이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아귀에 더 힘이 들어가려 할 때 도베르가 내게 다가와 팔을 뿌리치게 했다.


 “진정해.”

 “호와아….”

 

 브라이트는 진정했다는 듯 손을 놓아줬지만, 독기가 서려 있었다.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가능성과 기회를 봤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분명 충격이 컸을 거다.

 

 ‘그럼, 이제 아사마를 보러 가야겠네.’

 

 명목상 이유는 이제 메지로 가의 트레이너를 그만두겠다는 말이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당주의 모습은 꽤나 아름다웠다.

 스스로 흉측해졌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편이 죽은 22살의 자신만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하얀 빛깔이 바탕에 연보랏빛을 섞은 듯한 긴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눈은 날카롭고 진한 자수정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피부는 계속 관리받고 있는지 50대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윤기가 있었고, 나름 쫀득한 느낌으로 적당히 탄력도 아직 붙어있었다.

 몸매는 아직도 운동을 계속하며 식단을 조절하며 지낸 노력의 결과였는지 가슴도 전혀 처지지 않고, 손에 완전히 잡히지 않을 만큼 크고 예쁜 형태를 유지했었다.

 심지어 아사마는 매우 엄하며 모든 행동에서 기품을 보이며, 귀족으로써 우아함이 뭔지 보여주는 숙성된 귀부인이었다.

 

 ‘세월을 완전히 이기진 못했는지 잔주름이 있지만, 저 정도면 촉촉함이면 애교지.’

 

 본인의 입으론 추하게 늙었고, 몸을 보고 비웃지 말라고 했지만 전혀 그럴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매우 진하고 녹진한 초콜릿에 캐러멜로 감싼 소금을 넣은 것 같았다.

 입 안에 넣고 혀를 굴리면 진득하게 녹아 천천히 사라져갔고, 씹어먹으면 캐러멜이 부서져 안에 있는 소금의 짠맛으로 달콤함이 더욱 잘 느껴졌다.

 

 ‘젊었을 때도 맛보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아사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겠지.’

 

 당주는 남편에 대한 기억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그녀는 내게서 남편을 보고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내가 당주를 만나러 가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옆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했다.

 

 “조금 소란스럽더군요.”

 “아, 메지로도 옆에서 그걸 봤어야 했어. 엄청 재밌었는데.”

 

 말을 조금 흘리며 방패상이라는 메지로의 비원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떡밥을 던졌다.

 당주는 이미 내가 마음에 가는 사람을 정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네.”

 “그런가요?”

 “먼저 찾아오는 애를 선택하겠지.”

 “그렇다면 브라이트겠군요.”

 “어째서?”

 

 내 질문에 당주는 바보처럼 행동하는 건 좋지만, 적당히 하라고 했다.

 일일이 자신의 대답을 알고 있는 주제 답해주는 건 피곤하며 짜증 나는 작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메지로의 목소리 생각보다 좋아, 나긋나긋하고 재밌잖아?”

 “…그 아이는 뭔가 씌었으니까요.”

  

 당주는 자신이 졌다는 듯 답해줬다.

  

 “꿈보다는 집착에 가깝게 뭔가에 씌어있죠. 반드시 자신의 언니를 따라잡겠다는 목표와 집착에 비해… 실력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죠.”

 “심지어 귀엽고 가슴도 크지.”

 “조심하도록 하세요.”

 

 입조심이라고 말하지만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전에 맥퀸을 말할 때는 눈앞에서 젊은 여자를 찾는 것 같아 화난다고 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왜 화내지 않는 거야?”

 “무엇을요?”

 “저번에 맥퀸을 말했을 때는 화냈으면서.”

 “그 아이의 가슴과 외모가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 그렇군.”

 

 확실히 당주는 아름다웠다.

 할머님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철저히 관리받은 50대 언저리의 여성이었다.

 비록 지금은 세월을 맞고 추레하다곤 하지만, 결코 못생기고 못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생기는 없었지만, 무언의 집착이 그녀의 피부에 스며들었고, 메지로의 원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그녀였다.

 

 “얼굴에 주름이 스며들고 생기를 잃긴 했지만, 너는 아름다워.”

 “입에 발린 말은 잘하시는군요.”

 “진심이야. 네가 20, 아니 10년만 더 젊었어도 몸을 보고 접근했을걸?”

 “…돈이 필요해지신 모양이군요.”

 “들켰네.”

 

 간단한 담소로 시간을 보내던 와중 당주는 내게 경고하듯 말했다.

 일단 확실히 나라도 선을 긋겠다는 느낌이었다.


 “도베르는 당신 아래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한 아이가 아니에요.”

 “아이 하나는 나 준다면서?”

 “아이를 하나 준다는 게 그 아이가 자살할 만큼 학대하는 걸 허락한 게 아니에요.”

 “…첫날이 마지막이라 까칠해진 거야?”

 “트레이닝만 하지 않으시고 가끔 데이트를 해주셨다 할지라도 제 대답은 변함이 없었겠죠.”


 곤란했다.


 “그럼 자살하지 않을 정도로만 학대하는 건 괜찮아?”

 “죽지만 않는다면 괜찮아요.”

 “…와 좀 무섭네.”

 “어차피 학대는 제가 말려도 하실 거잖아요? 그럼 당해도 견딜 수 있을 만한 아이를 주는 게 맞죠.”

 “브라이트면 가능할 것 같다?”

 “빠른 시일안에 찾아갈 거예요.”

 “데이트 비용을 걸고 내기해 볼까?”

 “나쁘지 않네요.”

 

 생각해 보니 맥퀸의 야구와 디저트의 유전자가 누구에게 왔을지 생각하면 확실히 기묘했다.

 메마른 꽃이 아닌 생기있던 시절의 당주라면 정말 재밌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야. 만약 네가 젊었다면 너를 내 담당으로 선택했을 거야.”

 “택도 없는 소릴.”

 “아쉽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옆에 서서 당주를 보좌하듯 옆에서 손을 잡고 간단히 손등에 키스했다.

 이상하게 이런 식으로 신체접촉을 하면 당주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이것도 전남편 행동이 아닌가?”

 “잘 아시는군요. 연기해야 할 때는 똑바로 해주세요.”

 “그래, 다음부턴 안 할게.”

 

 가끔 이런 지뢰가 있었지만, 대놓고 밟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보통 눈감아줬다.


 “이 관계는 언제까지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어느 정도 걸리실 것 같으신가요?”

 “빠르면 2년. 늦으면 3년.”

 “…그럼, 그때까지 저도 즐기도록 하죠. 저야 즐거운데 당신은 괜찮으실까요?”

 “이런 담소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진심으로 데이트하면 즐거울 것 같은데?”

 

 당주는 내 말에 잠깐 내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몸을 섞는 건?”

 “그것도 생각보다 즐거워서 놀랐어.”

 “생각보다군요.”

 “약간 오래된 빈티지 차를 타는 느낌이었지, 승차감은 별로지만 이거에 미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잖아?”

 “참으로 천박한 표현이로군요.”

 

 그 말에는 당주는 진심으로 피식 웃어버렸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너무 천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엔 귀를 핸들처럼 써줄까?”

 “…….”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이건 분명 긍정의 표시였다.

 당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기 전에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브라이트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맥퀸으로 만들 거야.”

 “…좀 더 풀어서 설명해 주시죠.”

 “연인이 되어줄 생각이야.”

 “당신도 저처럼 정말 어지간히 미쳐버린 사람이군요.”

 “나도 알아, 메지로는 나중에 데이트 약속 잡자. 괜찮지?”


 내 말에 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고 있겠다는 한마디만 하고 내게 돌아가 보라고 했다.

 나는 다른 사용인들에게 이틀 뒤에 방을 빼겠다고 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하냐는 말에는 그냥 웃으며 트레센에 더 좋은 아이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언제 나를 붙잡는지 보자.’

 

 당주와 데이트를 하고 내가 돈을 부담한다면 아마 돈이 한두 푼 깨지는 게 아닐 거다.

 아마 잘못하면 식사 한 번에 수십만 엔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잠깐 소름 돋았다.

 

 ‘뭐, 상금 받으면 해결할 수 있겠지.’

 

 아마도 가능할 거다.

 

 ***

 

 내가 아는 브라이트는 착하고 선량했다.

 느긋하고 느리며, 자신의 천성을 기억했다.

 메지로 가에 어떤 기대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자신의 길을 관철했다.

 그런 아이였고, 결국 메지로의 봄을 가져다준 착하고 아름다운 아이였다.

 그랬을 터다.

 

 ‘이게 맥퀸이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니.’

 

 맥퀸이 사라지자 메지로 가의 비원인 방패상은 꿈이 돼버렸다.

 메지로의 스테이어 중 역사에 이름남긴 우마무스메는 사라졌고, 누가 봐도 정당히 당주를 이을 수 있는 아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아니, 등장해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

 

 그래서 더 조급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트레이너님, 저를 받아주세요.”

 

 브라이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던 게 저 말이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가 해서 나는 싫다고 했다.

 그러자 아무 말 없이 단추를 풀며 내게 다가왔다.

 

 “원하시는 걸 드릴게요.”

 “메지로 브라이트에게 바라는 건 없어.”

 “…….”

 

 브라이트는 말없이 행동을 멈췄다.

 단추는 이미 반쯤 풀렸고, 거의 실성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호와아~ 그럼 제게 원하시는 건 뭘까요?”

 

 브라이트는 내게 완전히 달라붙어 갔다.


 “…돈?”

 “그런 건 필요 없어.”

 “…명예??”

 “얻어봤자 전부 사라지는 것들이야.”

 “……제 몸이라도 드릴까요~?”

 “그거 좋네.”

 

 나는 브라이트의 잠옷을 잡아당겼다.

 남은 단추가 뜯기며 땅바닥에 흩뿌려졌고, 나는 브라이트를 밀어 눕혀버리면서 말했다.

 

 “약속도 있으니 널 받아줄 생각이긴 했어, 다만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그녀는 꽤 풀어졌다.

 이때 나는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 약속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녀도 지켜주길 바라면서.

 

 “내 인형이 돼줘.”

 “…네?”

 “넌 봄의 방패상을 얻으려고 하고 있어.”

 “……?”

 

 갑작스러운 내 말에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브라이트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몸이라도 바치면서 어떻게든 계약해서 메지로의 꿈을 이루려 했던 그녀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다잡고 내게 다시 한번 물었다.

 

 “…인형이라고요?”

 “메지로의 비원과 꿈을 위해.”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떻게든 주제를 인지하려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해받고 싶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메지로 당주가 나를 받아들인 것처럼.

 

 “넌 지금부터 메지로 맥퀸이야.”

 

 나는 브라이트에게 키스했다.

 강제로 연극에 어울리게 하는 꼴을 생각하니 도저히 당주를 비웃을 수 없었다.

 

 주제는 비극이며, 각본은 사랑.

 배우는 나와 내 미련을 뒤집어쓴 인형 하나.

 피날레는 자살이고, 결말은 실성.

 

 이번에도 내가 죽지 못한다면, 내가 죽을 방법 따윈 없었다.

 그렇다면 영원히 피날레만 반복하자.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