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https://arca.live/b/umamusume/112786890



'슬슬 됐나......' 

분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필요한 물자들을 긁어모으고 있었고, 난 체크리스트와 그 광경을 번갈아 보며 중대 본부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그때 저만치서 다가오는 이와 눈을 마주쳤다.


'피식'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살아계셨구먼! 고메즈 중위!"

내가 그의 이름을 외치자마자 분대원들의 시선은 미소와 함께 한 곳을 향했다.

고메즈 중위, 항상 우리 분대의 뒷배를 봐주는 인물이었다.

다른 이들이 우릴 바라보는 시선엔 항상 약간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과 다르단 것을 실감하고 있었고, 

우릴 전쟁기계를 보듯이 대했다.

그러나 고메즈 중위만큼은 달랐다. 우릴 전쟁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했으며 스스럼없이 우리와 편안히 대화했다.


"그럼 아직 사지 멀쩡히 살아있고 말고! 근데 너 장교한테 계속 말이 짧아진다? 군법회의에 끌려가고 싶나 보지?"

"이 개떡같은 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야 중위님을 발로 까버리고도 가지요."

카츄샤가 탄통을 들고 외쳤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웃음을 참았다.

"너한테 차이면 그 자리에서 즉사라 넌 바로 총살될걸?"

그의 반박 한마디가 웃음을 참던 분대원들마저 배를 잡고 웃게 만들었다.

"그래서 무슨일로 오신검까?"

안피사는 약간의 기대감이 찬 눈빛으로 질문했다.

"아 잠시 너희 분대장과 나눌 말이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 이건 네 선물."

고메즈 중위가 배낭에서 보드카병을 꺼내 안피사에게 던져줬다.

"역시 중위님이 최고임다!"

안피사의 꼬리가 세차게 흔들렸고 귀가 쫑긋쫑긋해졌다.

"그럼 우리 분대장씨는 잠시 저 BMP 뒤에서 볼까?" 



"그래서 할 말은?"

고메즈는 어딘지 모르게 앞서 보여줬던 유쾌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불안한 느낌을 물씬 풍겨댔다.

그는 어렵게 입을 뗐다

"도대체 상부가 왜 너희들을 694고지로 보낼려는건지 이해가 안 돼. 거긴 가봤자 개죽음밖에 안 된다고. 지금 상부는 코딱지만큼이라도 점령지를 늘리는 데 혈안이 돼있어. 

그 고지를 탈환한다고 얼마나 많은 병력이 갈려나간 줄 알아? 대대 병력이 들어갔다가 중대 하나만 살아나왔어. 나머진 죽었거나 병신이 돼서 나왔다고!

거긴 그냥 지옥이야!"

'그런 시답잖은 얘기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너도 참 물러졌군.'

"우리야 항상 그런 곳에 소방수 역할로 투입돼왔잖나, 상부의 명령인데 우리가 뭐 어쩌겠나

우릴 사지로 내몰아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염병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곤 생각했는데, 직접 들으니 더 착잡하군.

그래도 가야겠다면 내가 최대한 지원을 붙여주지. 그 주변에 있는 포병연대랑 전투폭격연대에 미리 연락을 해뒀어. 이걸 가져가."

그가 배낭에서 금속 박스같은것을 꺼냈다. 

'가방이 유난히 각지다 생각했던 이유가 저거였군.'

"레이저 표적지시기야. 포병 놈들이면 몰라도 공군 놈들은 이게 있어야 정밀유도가 가능해."

"참 친절도 하셔라."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자 고메즈 중위를 기다리던 타 중대원들이 다가왔다.


"중위님 무슨 얘기길래 그렇게 오래 하십니까? 이제 슬슬 가셔야 합니다."

고메즈의 모습에서 안절부절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중대원들에게 말했다.

"좀 쌓인 게 많아서 하룻밤만 자달라 했지. 얘네 하체가 탄탄해서 아주 명기라고!"

이런 허풍의 의미를 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만의 불안함을 이기기위한, 애써 밝은 모습으로 불안함을 밀쳐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야 나도 이를 받아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좆이나 까잡수세요. 니한테 대줄 바엔 우리 분대원들이랑 비비겠다!"


타 중대원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중위와 함께 멀어져갔고 우리 둘은 서로 중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중지를 펼치고 있는 고메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