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야요이가 골을 지나면 기록을 확인한다.

작년에 비해 처참할 정도로 느려진 기록을 확인하고 평정을 가장한다.

이것이 요 몇 달간 계속 이어진 내 일과였다.


‘이건…….’


본격화가 끝났다고 해도 말딸은 말딸.

히토미미에 비하면 압도적인 기록이지만, 애초에 말딸과 히토미미를 비교하고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다친 거라면 부상을 회복하고 테이오처럼 날아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격화가 끝나버린 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너무도 선명한 기록 차다.

달린 야요이 또한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기록은…….”

“불요(不要)! 말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지.”

“아직 두 번 밖에 안 했잖아? 조금만 더 해보자. 기록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

“그건 그냥 내가 본격화가 끝난 몸에 익숙해지고 있을 뿐이 아닌가?”

“……!”


이미 1분 이상 늦어진 기록에, 고작 1초나 2초 따위의 차이야 오차에 불과하리라.


“게다가 곧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훈련에 나올 시간이다. 레이스에 나가지도 않을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선 안 되겠지.”


이런 처참한 모습을 다른 아이들에게 보일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야요이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의 말조차 지금의 그녀에게는 심장을 찌르는 대못이 될 테니까.

남 탓조차 할 수 없다.

무리하다 부상을 당한 거라면 무리한 출주일정을 밀어붙인 트레이너를 탓하면 되고, 넘어져 다친 거라면 본인의 실수라 생각할 수라도 있을 테지.

하지만 본격화가 끝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돌아가는 야요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울고 있을 게 분명한 그 얼굴을 억지로 들춰내는 건, 너무도 가혹한 처사였으니까.


“어떻게, 여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안 되는 겁니까?”

[우마무스메에게 주어지는 본격화는 여신들의 축복이 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때문에 본격화기간 동안이라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만 아예 본격화가 끝나버린 건 여신이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도대체 왜 야요이에게만.”


혹자는 이런 말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해도 G1은커녕 G3도 나가보지 못하고 레이스 인생을 끝내야 하는 말딸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비하면 G1 10승이라는 신화적인 기록을 써낸 야요이는 억울해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리라.

화려한 클래식 시즌을 보내고 시니어 시즌은 초라하게 마무리한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달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건 아니잖습니까!”


자신이 느려서, 동세대의 다른 녀석들이 너무 굉장해서.

승리의 영광을 얻지 못한 이들이라도, 달릴 기회마저 앗아가진 않았다.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능력도, 게임에서의 기억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트레이너 군…….]

“이대로 끝날 순 없습니다. 분명,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여신의 힘이 닿지 않는다면 시라오키 님은 어떨까?

어쩌면 타키온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히토미미도 말딸로 바꿔놓는 타키온의 약이라면 본격화조차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는 힘을 되찾는 것뿐이라면 도핑문제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곧장 타키온을 찾아갔다.


“부탁한다!”

“잠깐,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그런 일은 확답이 불가능한…….”

“제발. 시도라도 좋으니 제발 부탁한다. 임상에 필요한 모르모트든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나는 타키온 앞에 주저 없이 무릎 꿇었다.


“야요이의 레이스는 이런 식으로 끝나선 안 돼. 내가 그 아이를 레이스의 세계로 끌어들였단 말이야. 나를 믿어준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은 일을 후회하게 해서는…….”


야요이가 지금까지 달려온 것을.

달리고 싶은 마음을 긍정했던 일을 후회하게 둘 순 없었다.


“젠장, 알겠으니까 일어나게. 가운이 늘어난단 말일세!”

“저, 정말로?”

“자네에게는 빚이 있지 않은가. 자네가 카페 군의 바람에 응해줬으니, 이제는 내가 자네의 바람에 응해줘야겠지.”


타키온은 투덜거리며 뒷말을 삼켰다.


‘언젠가 내가 과학의 힘으로 재현해야할 이렇게 꼴사납게 구는 것도 보고 싶지 않고.’


그로부터 실험이 계속되었다.

신약의 개발이란 한순간에 짜잔 하고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연구개발과 임상실험이 반복되는 동안 봄이 되어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여름이 되어 합숙을 떠났으며, 가을이 되며 살찐기미가 유행했다.

그러나 세상의 계절이 돌고 도는 와중에도, 야요이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마법의 가을이 끝나고 찾아온 겨울은, 영원처럼 이어졌다.


* * *


그 모든 시간동안 야요이는 학원의 이사장으로서 본분을 다했다.

허나 그것은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각오도, 학원의 모두를 위한 노력도 아니었다.

그저 달리지 못해 앉아있을 뿐인, 레이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도피처일 뿐이었다.


“이사장님 이미 며칠째 집에도 돌아가지 않으셨는데 이대로는…….”


결국 보다 못한 타즈나가 말리면 야요이는 잠깐 자신의 비서를 바라봤다가, 이내 서류로 눈을 돌릴 뿐이었다.

타즈나로서는 저러다 완전히 탈진해 쓰러지면 침실로 옮기고 주치의를 불러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고작.

깨어있을 때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야요이는 발작하다시피 경기를 일으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야옹!


그저 고양이 울음소리만이 애처롭게나마 그녀와 함께할 수 있을 뿐.


“이사장님!”


결국 야요이는 이번에도 체력이 다해 쓰러져 타즈나에 의해 침실로 옮겨졌다.


그 짧은 수면동안 야요이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한창때와 같은 몸으로 달릴 수 있었다.

언제라도, 어디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몸으로.

저 멀리 트레이너가 기다리고 있는 골을 향해 달려가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리고는 곧장 트레이너의 품에 안긴다.

꿈속의 두 사람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며 함께 절차탁마한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다.

그녀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큭……!”


잠에서 깨어난 야요이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잠옷은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사실 행복한 꿈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야요이에게 그 꿈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악몽이었다.

벌써 몇 달째, 조금이라도 저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억지로 잠드는 것을 참아내고 있을 정도로.

허나 그러다가도 체력이 다해 기절해버리면, 그때마다 예외 없이 저 꿈을 꾸고 마는 것이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잘 들어, 네 주법은 남아있는 스태미나의 여유분을 남김없이 털어내는 방식이야. 그걸 생각해서 스태미나를 여유롭게 찍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거리에 중마장이 겹친다면 함부로 꺼내 들어선 안 돼.’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언젠가 그녀의 트레이너가 해주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 안 돼……!’


고개를 돌리니 벽지에는 목책무늬가 반복적으로 이어져있다.

후추의 울타리와 같은 모양이었다.


“윽!”


세상 모든 것이 그녀의 눈에는 레이스로 이어진다.


“얼른 출근준비를 하지 않으면…….”


달리기 시작한 이후, 그녀의 세상은 레이스로 가득 찼다.

야요이가 레이스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서는 서류에 코를 박고 기계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그녀가 다시금 출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야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즈나라면 그녀의 출근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허나 상대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들어가겠습니다.”


야요이를 찾아온 것은 카페였다.

한때 그녀가 이겼던.

그러나 지금은 절대 이기지 못할 우마무스메.


“꼴이 가관이로군요. 뭘 그리 잘했다고 씩씩거리고 계신가요? 약해빠진 승리자 씨.”


모두에게 예의바르고 차분한 카페는 야요이를 보자마자 대뜸 극딜을 박았다.


“솔직히 말해 민폐입니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다른 이들의 일을 늘려서 뭐하자는 겁니까.”

“멸구(滅口)! 네가, 본격화도 끝나지 않았으면서 은퇴한 네가 뭘 안다고!”

“예. 모릅니다. 근데 이사장님은 그렇게 잘 아셔서 그간 한 번도 트레이너실을 찾지 않으신 겁니까?”

“……!”


달리지 못하는 말딸이 트레이너를 만나 무얼 하겠는가?

창밖에 내리는 비만 보아도 머리가 어지러워 서있기 힘든데 트레이너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야요이는 그간 일부러 자신의 트레이너를 피해왔다.

반면 카페는 현역 은퇴 후에도 트레이너와 연락을 계속해왔다.

개선문마로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거나 방송을 출연하느라 바빠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안부를 물었다.


“따라오세요.”


카페는 우악스럽게 야요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본격화가 끝난 야요이로서는 카페의 손을 쳐낼 수 없었다.

자택에서부터 트레센으로 향하는 길.

거리에는 카페의 얼굴이 가득했다.

개선문상 승리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카페의 일대기가 적힌 자서전이나, 화보집 따위의 발매를 알리는 광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리마의 승자는 야요이였고, 아직 현역인 것도 야요이였으나, 세상이 열광하는 것은 맨해튼 카페였다.


“빨리 오세요.”

“현역 주제에 은퇴한 저보다 느린 건가요?”

“리코 트레이너도 이것보단 빠르겠군요.”


카페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야요이를 채찍질했다.

팔을 붙잡힌 야요이는 이를 갈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타키온의 트레이너실.


“의문. 여긴 왜……?”


카페는 쉿 하며 문을 여는 대신 창문 틈으로 안쪽을 비췄다.

안쪽에는 야요이가 꿈에 그리던 그녀의 트레이너가 보였다.

허나 꿈에 그리던 모습은 아니었다.


“에?”


멀리서도 눈에 띄게 늘어난 새치와, 병자처럼 창백한 안색.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손에 들려있는 지팡이가, 지팡이를 따라 내려간 시야에 보이는 절뚝이는 다리가 기억 속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져있었다.


따악.


맨해튼 카페가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해왔지만 들리지 않았다.

야요이의 머릿속에는 마룻바닥에 지팡이를 짚는 소리만이 선명히 울렸다.

마치 편자가 박힌 구두소리와도 같은, 평생을 잊지 못할 꿈속의 그 장면과도 같은 소리였다.

트레이너는 모니터를 보면서 타키온과 뭐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쿨럭!


입가를 가린 손바닥 사이로 붉은 꽃이 피어난다.

야요이는 순간 문을 열어젖히고 트레이너실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으나, 카페가 그녀를 붙잡았다.


“불가해! 자네가 나를 데려왔으면서 왜 막는 것인가!”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카페는 그간 야요이의 트레이너가 무슨 일들을 해왔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귀신에게 홀려 사이비 종교에 전 재산을 바쳤다든가, 키류인 가문의 히토미미 수련법을 말딸용으로 무리하게 개조하다 주화입마에 걸렸다든가, 반복된 생체실험으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든가.


“초임년도에 십관과 개선문상을 쓸어담으신 분이십니다. 원래라면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왕조를 세우고 계셔야 할 분이 당신 때문에 저렇게 되었단 말입니다.”


카페는 야요이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야요이에게 격노한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약해서.’


자신이 고작 2년밖에 뛰지 못한 반푼이라서 그가 저렇게 되었다.

이래선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반푼이인 자신과는 달리 그는 모두의 애정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트윙클 시리즈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인물이었다.


“당신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트윙클 시리즈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이기고도 만족하지 못하셨습니까? 십관을 달고도 아직 부족한가요? 얼마나 더 트레이너님을 아프게 해야……!”

“그만! 그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카페의 분노에 이끌린 ‘그들’이 이계의 공간을 형성한 것이었다.

허나 그들조차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카페가 가진 막대한 영력이 그녀의 분노로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아시겠죠? 가세요. 가서 해야 할 일을 하세요.”


돌아오는 동안 야요이는 재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눈앞에는 절뚝거리는 다리와 붉은 꽃이 아른거렸고, 귓가에는 지팡이 소리와 카페의 명령만이 맴돌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야요이의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또한 통화기록에는 야요이가 아는 모든 기자들의 전화번호가 이어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통화가 닿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남긴 내용도 있었다.

야요이는 그것을 틀어 자신이 했던 말들을 확인해보았다.


은퇴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 *


선대가 죽었을 때, 야요이는 울지 않았다.

이미 선대의 부채를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각오를 마친 상태였으니까.

어린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바들바들 떨면서도 해야 할 일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이만 현역생활을 종료하고…….”


십관 우마무스메의 공식적인 은퇴선언이다.

비록 그녀가 이미 사실상의 은퇴상태로 무기한 휴양 중이었다고 해도, 이 기자회견이 가져오는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몰려든 취재인파로 인해 황급히 예약을 새로 잡아야했던 호텔의 연회장.

결혼식 피로연에도 호화로운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춥고 외로웠다.

장례식장의 한 켠.

어른들이 쉬고 있으라고 안내해준 그날의 방 안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셔터음과 함께 시야가 백열한다.

눈이 멀 것 같은 광채에도 세상은 색채를 잃은 회색빛이었다.

뜨거운 조명으로도 데울 수 없고, 번쩍이는 플래시로도 밝힐 수 없는 그 방 안에 귀에 익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


시끄러운 셔터음 속에서 그 소리를 잡아낸 귀가 반사적으로 쫑긋거린다.


따악.


새까만 방 안에 색이 되돌아온다.


화악!


세상이 열기를 되찾는다.


“누구 맘대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

순애에는 고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심동체의 트레이너와 이인삼각으로 가장 어려운 시간을 함께 이겨낸다?

이게 바로 학대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굴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