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가 귀가해보니 아내 슈퍼 크릭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당신.”

살짝 몸을 굽혀 부드럽게 인사하자 앞치마 위로 늘어졌던 트레센 교복 리본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 뒤에서 부들부들 흔들리고 있을 것들을 가볍게 암시하는 듯한, 아무럴 것도 없으면서 묘하게 노골적인 제스처였다.

“다녀왔어.”

“고생 많으셨어요. 일단 가방은 이리 주시고......”

가방을 넘겨주려 내민 팔에 살짝살짝 닿는다. 다분히 의도적인 움직임이다. 적당히 도발적인, 시선을 마주치게 하려는 의도 말이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가 조금 더 상체를 굽히며 눈웃음을 쳤다. 이런 흐름이면 100% 그 말이 나올 거라 트레이너는 확신했다.

“밥부터 드실래요, 목욕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가벼운 윙크와 함께, 귀여운 혀끝이 살짝 빠져나와 입술을 낼름 핥는다.

“나, 부, 터?”

당장 눈앞의 여자에게 손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면 안된다. 독점력이나 피지컬 같은 얕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주도권의 문제다. 상대 슈퍼 크릭은 까다롭다. 굴지의 스테이어, 오구리 캡이나 타마모 크로스, 이나리 원같은 괴물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강한 우마무스메,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어보이는 포용력 있는 마망. 여러가지 평판이 있지만, 뭐 그건 레이스만 보는 사람들 얘기다.

트레이너가 어리광부려줬으면 하는 만큼, 그녀 역시도 어리광쟁이 기질이 있다. 해쪄요는 상호 관계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남녀 문제로 넘어오면 은근히 방어력이 약한 편이기도 하다.

말딸 상대로 주도권을 쥐고 뾰이하고 싶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인자봉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러니 머리를 굴려야 한다. 살짝 질문을 던져서 한 번 더 확인해본다.

“그거 택1이야, 아니면 순서야?”

“......순서랍니다♪”

아니나다를까, 준비를 많이 해놨다. 살금살금 그의 앞에 다가와 달콤한 비누 냄새 따위를 풍기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면서 어깨 너머로 얼굴을 뺐다. 깊이 들이마시니 부엌 쪽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비릿하면서 기름진 지방질의 냄새, 장어다. 분명 한 마리인데 꼬리가 여러 개인, 노골적인 장어구이 세트. 스태미너식을 잔뜩 먹인 날에는 그녀의 양심 리미터가 조금 내려가는 것을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다.

“무슨 생각 하세요, 트레이너 씨? 아직 고민중이신가요?”

“요 녀석, 요 녀석, 준비를 단단히 했네, 아주.”

“......어머나아, 향초도 켜 놨는데 알아채셨네요?”

“기념일도 아닌데.”

“당신이랑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기념일인 걸요♪”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할까. 새삼 다정한 허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몸의 감촉이,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게 다가온다. 조금 더 힘주어 안으니 바로 반응이 온다. 가까이, 더 가까이 붙고싶어하고 있다. 손을 내려 그녀의 팔을 미끄러져 손을 깍지껴 잡았다. 그리고 약하게 밀어붙이자 그녀가 슬금슬금 벽으로 밀려났다. 천천히 등을 붙이며 편안한 숨을 쉬고 있지만, 불붙은 두 눈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기대감에 가득찬 시선이 그를 훑고 있다. 손을 벽에 꾹 눌러 붙이자 놀란 척 숨을 좀 크게 들이마셨다.

“어머, 어머.”

“입 가져와.”

공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말딸은 공간이 있으면 얼마든지 힘있게 달려나간다. 개활지에서 도망가봤자 뻔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예로부터 말딸을 상대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아예 가속도 뭣도 못하도록 운신의 폭을 줄이고 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벽에 완전히 밀려 속수무책으로 깍지낀 손을 잡혀버린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지만, 움직이기 싫은 것은 확실하다. 심장이 빨리 뛰는지 그녀의 교복 리본이 위아래로 가쁘게 오르내렸다.

“못 움직이겠어요, 여보. 좀 더 가까이 와 주세요.”

여기선 굳이 참지 않는다.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크릭의 목에서 높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코 끝이 닿을 때 이미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뭔가 먹을 때 혀가 마중나오는 사람처럼, 벌써 목적을 이룬 듯한 자신감이다. 그것조차 귀엽지만,

“여기까지.”

“......하에?”

살짝 벌어진 입술을 다물지도 못하고, 방금 전까지 꿈을 꾸느라 감겨있던 눈이 뜨인다. 어째서? 싶은 표정에 넘어가서 달려들면 안 된다. 아직 바라는 대로 해주면 안 된다.

“다녀왔어요 키스도 했으니까, 목욕부터 하려고.”

“......저부터 고른 거 아니었어요?”

“너로 하겠다고 말 했었나?”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썹을 스치는 노골적인 실망의 빛, 결혼 초기에는 이 정도만 해도 완전히 여유를 잃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도 성장했다는 것일까,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셨군요♪ 조금 정열적이라 헷갈렸나 봐요.”

“너무 예뻐서 그랬어.”

“......너무 예뻤던 거 맞아요?”

“너무 예쁘지만,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으니까.”

“......순서를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입가를 가볍게 닦고, 슈퍼 크릭은 부엌으로 가기 전 그에게 눈을 가볍게 흘겼다. 토라졌다. 기대가 꺾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마 그에게 보이고 있는 등 너머로는 입술을 살짝 깨물거나, 불만스럽게 삐죽거리고 있겠지. 그것도 그것대로 귀엽지만, 안 된다. 허용할 수 없다.

“히이이?”

쫓아 걸어가 좌우로 살랑거리는 91사이즈 쿠션을 냅다 후려치듯이 움켜잡았다. 쫓아오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으니, 평소보다 소리가 높은 건 아무래도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리라. 크릭이 홱 고개를 돌려 그를 가볍게 째렸을 때, 입 모양과는 다르게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으니까.

“뭔가요? 순서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목욕하신다면서요.”

“네가 약간 오해하고 있을까봐, 미리 말해주려고.”

“무슨 오해요.”

“피하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어차피 피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요.”

눈가에 얕게 그늘이 진다. 안된다. 그녀가 냉정해지려고 한다. 이래서 쫓아왔다. 토라지거나 냉정해져서 기대가 식어버리면 주도권을 뺏기고 마니까, 여기선 좀 더 기대감과 욕망을 부채질해줘야 한다. 그가 쉬면서 준비되는 동안, 그녀는 몸 안에 붙은 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되는 대로 널 개처럼 따먹어버릴 거라고.”

“......에?”

좀 과격하게 나가기로 한다. 난생 처음 듣는 천한 단어에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그대로 움켜잡은 부분을 끌어당겨 몸을 가까이 맞대고,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간다.

“침실 벽에 손 짚고 서게 만들 거야. 뒤에서 머리채 잡고 손잡이로 써줄 테니까.”

“그, 그럴 수가......”

“엉밑살부터 꼬릿심까지 철썩철썩 흔들리겠지? 너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벽에 기대서 헐떡거릴 거고.”

“으으......”

이런 종류의 말을 속삭인 게 처음이다. 뜬금없이 지껄였다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아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몇 번 해봤으니까. 그러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자신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동안,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시선이 몇 번이나 불안하게 아래를 향했다.

“옆집에 미리 연락해 놔. 벽이 많이 울릴 지도 모른다고.”

“......타마쨩, 애 보느라 피곤할텐데......”

“어차피 그때가선 그런 생각도 못하게 될 거니까 지금 해 놓으라고. 애 우는 소리보다 네 울부짖는 소리가 더 크게 만들어줄테니까.”

“이제 그만......”

“그게 네가 이따가 할 말인데, 미리 대답하자면 절대로 듣지 않을 거니까. 아가방부터 명치까지 뚫어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알아.”

“......후후, 당신, 나쁜 말을 많이 알고 있네요.”

그녀의 손 하나가 슬그머니 내려가 그녀의 뒤에 올라와 있던 그의 손목을 잡았다. 억지로 천천히 끌어올려 그녀의 꼬리로 가져갔다. 꼬리 아래쪽 깊은 곳, 꼬리털이 덮이지 않은 심에 그의 손가락을 둘러주면서 그녀가 조금 낮게 웃었다.

“나쁜 아이는 벌을 좀 받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손이 그의 손을 이끌어 가볍게 쥔 꼬릿심을 앞뒤로 느긋하게 왕복시켰다.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듯한 움직임에 조금 당황한 그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짧게 윙크를 했다.

“해쪄요 놀이를 추가해야겠네요.”

“호오......”

그녀가 무너져내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좀 벗어났다. 여기서 조심해서 다뤄야할 것이, 우마무스메가 가진 승부욕이다. 모순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마무스메는 겁이 많으면서도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건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의욕이 과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과하게 승부욕을 자극받으면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다른 말로는, 쾌감에도 다소 둔감해진다. 그러면, 알다시피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해쪄요 놀이는 나도 아주 좋아하지. 그런데.”

“뭔가요? 변명하는 아이는 훈육이 더 필요할텐데요.”

“사랑하는 사람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가 나쁘다고 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승부욕을 적당히 흩어버린다. 적당히 말꼬리를 잡아 시작해서, 정론이지만 논점에서 벗어난 말로 흐름을 흩어버린다.

“지금 그게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죠?”

“말이 거칠었던 건 인정하지만, 그만큼 내 마음이 좀 거칠어져 있단 걸 이해해주면 좋겠어.”

“......”

“너도 알겠지만 나 지금 좀 피곤해.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저도 알아요. 감사하고 있어요. 정말로, 언제나.”

치사한 방법이지만, 양심에 호소하는 것도 굉장히 잘 먹힌다. 크릭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꼬릿심을 쥐고 있는 손등 위의 손도 힘이 조금 약해졌다. 남은건 진심을 담은 결정타를 날리는 것 뿐.

“피곤한 것보다도 너랑 이것저것 하고 싶어서 못 참겠으니까 이러는 거야. 알지?”

“......알아요.”

“잠깐만 쉬고, 전력으로 사랑해줄 테니까. 알겠지?”

“......♡”

봉합이 잘 됐다. 그녀가 웃으며 입술을 맞춰 왔다. 보통은 여기서 마무리를 한다. 그치만 오늘은 특별한 날일 예정이니까, 그녀는 투쟁심을 놓았어도 그는 그녀의 꼬리를 놓지 않는다. 키스가 끝나고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치는 동안에도, 그녀가 아까 유도했던 대로 꼬릿심을 쥐고 슥슥 움직여주고 있다. 점점 그녀의 얼굴이 붉어져갔다. 허리가 살짝 앞으로 튀자 걷잡을 수 없이 빨개졌다.

“.......저기......”

그녀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손이 채 가리지 못한 그녀의 입술만 뻐끔거렸다.

“슬슬, 꼬리 놔 주시면 안 돼요?”

원래도 정중한 그녀의 말 선택이지만 더욱 정중해진 건 약해진 마음의 표현이다. 듣지 못한 척 조금 더 슥슥 건드리면, 그녀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면서 숨을 토해낸다. 허리가 다시 한 번 앞으로 튈 때, 그 반동으로 그녀가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왔다. 그의 조끼 자락을 꽉 쥐었다.

“꼬리, 놔 주세요, 오빠......”

결착이 났다. 저울은 더이상 평형하지 않다. 그녀가 그에게 완전히 기울어버린 것이 그 증거다. 그는 선선히 꼬리에서 손을 떼고, 힘겨워하는 그녀를 일으켜 머리를 넘겨준 뒤, 다정하게 볼에 키스해주고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어 세탁 바구니 안에 던져넣는다. 승부처럼 말했지만 애초부터 할 맘이 가득했던 탓에 그의 속옷도 꼴이 말이 아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잔뜩 화난 몸을 진정시키는 동안, 어쩐지 문 바깥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필사적으로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으려는 듯한 움직임, 혹은, 들키지 않게 조금만 열고 엿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귀여워 죽겠다. 그러니까 더더욱 휩쓸릴 수가 없다.

“크릭, 있어?”

“네. 네에?”

대답이 꽤나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가 마침 불렀으니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그녀는 문을 열고 상체를 비집고 들어왔다.

“필요한 것이......”

그녀가 말을 멈춰버렸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을 확인하고 그가 물었다.

“아니, 문 근처에 있는 것 같길래.”

“아, 아니, 아뇨. 그게, 우와......”

“거기서 뭐 하고 있었어?”

“처, 청소를 해 드릴, 아니 할까 해서요......”

“나중에 하자. 어차피 내일 또 해야 돼.”

“녜, 녜에.”

“쉬고 있어. 목욕하고 올게.”

고개만 까딱거리는 그녀를 뒤로 하고 욕실에 들어간다. 욕실의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물을 적당히 끼얹고 욕조에 들어가며 트레이너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몸이 더워서 그런지 물이 평소보다 시원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