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엔딩 트레이너 - 내가 쓴 괴문서 모음
특별한 건 없었다.
브라이트가 정말 인형처럼 변했을 뿐이었다.
내가 말한다면 뭐든 들어줬고, 따로 말이 없다면 그냥 내 주변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내 시야 안에 들어와 있으려고 했다.
어쩌면 나를 시야에 넣어두고 있으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
발렌타인 데이가 되고, 아침부터 식겁할 만한 일이 있었다.
브라이트는 내게 초콜릿을 선물해 줬다.
이사장과 당주도 내게 초콜릿을 보내왔다.
‘현실에서 나는 초콜릿을 받았던가? 아니, 아마 못 받았었겠지.’
기억을 되짚으려 했지만 뭔가 기억들이 흐렸다.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되짚는 것처럼 뿌연 시야를 뚫고 봐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14년은 분명 길지만 내가 현실에서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그렇게 길지 않았다.
‘미치겠다.’
초콜릿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는데, 당주의 초콜릿들은 양이 매우 많았다.
이름을 봐도 뭔지 몰랐지만, 상표를 검색하자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0이 잘못 들어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미친년이 진짜….’
다음은 이사장의 선물이었다.
아마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둘러봤다.
상표와 초콜릿이 뭔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관련으로 무언가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이런 것에 해박한 집사장에게 들고 가서 물어보자, 집사장은 처음 보는 종류라고 못을 박았다.
너무나도 궁금해 뜯어서 먹어볼지 했지만, 편지에 동봉된 ‘이걸 먹는다면 이 세상에선 느끼지 못한 황홀함을 느낄 겁니다.’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그냥 곱게 다시 넣었다.
‘우선 먹어야 할 것부터 먹어야지.’
당주와 이사장의 초콜릿부터 들어 올려 확인하고 먹지 않고 내려놓자 브라이트는 다시 빵긋 웃었다.
그렇다, 브라이트는 아침부터 내 방에 들어와서 초콜릿을 선물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계속 기다리며 내가 초콜릿을 뜯어 먹길 기다리고 있었다.
‘…….’
아마 먼저 안 먹고 다른 걸 뜯어먹으면 분명 오늘은 정상적으로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그랬듯 침대에 나를 밀어 넣고, 미친 듯이 쥐어짤 것 같았다.
‘좋아. 먹고 맛있다고 하는 거야.’
브라이트의 초콜릿을 둘러보자, 상표라던가 그런 게 없었다.
‘직접 만든 거야?’
브라이트의 초콜릿은 매우 아름다웠다.
초콜릿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거울처럼 반사되는 느낌이 날 만큼 반짝거렸고, 위에는 화이트초콜릿으로 코팅하거나 장식을 넣었다.
심지어 초콜릿으로 조각이라도 했다는 듯 뭔가 다양하게 예술작품이라 생각될 것들로 가득했고, 카카오 비율을 만지며 따로 만들었는지 색깔 스펙트럼이 보였다.
‘…….’
견과류 같은 유사 식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순수하게 강도 높게 초콜릿으로 가득했다.
브라이트는 죽은 눈에서 살짝 반짝거린다는 느낌이 나올 만큼 내게 많은 반응을 강요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 정성이면 두려움이 먼저 쫓아왔다.
‘어쩌지.’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이렇게 종류도 많고, 여러모로 위험해 보이는 초콜릿이기에 브라이트에게 말했다.
“하, 하나 골라서 먹여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말하자 브라이트는 살랑거리던 꼬리를 멈췄다.
아, 이거 죽었구나 싶었을 때 귀가 살짝 내려앉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가운데 있는 초콜릿을 꺼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아~ 해주세요.”
“…….”
이제는 내가 브라이트에 대해 모르겠다.
뭐가 위험하고 안전한지 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입을 벌렸다.
내가 입을 벌리자, 브라이트는 자기 입으로 초콜릿을 물었다.
‘어?’
이때 순간적으로 나는 입을 닫아야 했는데, 브라이트는 내 턱과 뒷머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입에서 입으로 초콜릿을 전하며, 직접 초콜릿을 녹여주며 흘려보냈다.
맛이고 나발이고, 이 상황에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았지만 초콜릿은 정말 달콤했다.
“푸하~ 다음엔 꼭꼭 씹어 드셔도 괜찮아요~”
“아, 아냐 괜찮아….”
나는 초콜릿을 옆에 내려놨다.
한동안 초콜릿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
봄의 시니어를 위해 오사카배와 봄의 방패상에 도전했다.
당연히 오사카배는 볼 것도 없이 승리했으며, 봄의 방패상에선 다들 브라이트를 꺾기 위해 준비한 이들이 많았다.
어쩌고 보면 내 업보였다.
‘뭐….’
다만 나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나는 브라이트가 패배한다는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진지하게 패왕이나 총대장 모드 스페셜 위크라도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이라면 그 둘이 온다고 해도 이쪽에서 비벼볼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상황이 좋았다.
그리고 황금세대가 나온 시기가 됐다.
덕분에 이번 클래식에서는 브라이트의 무패행진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았다.
‘글쎄, 지금 상황을 본다면?’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브라이트의 전성기는 이번 연도가 끝일 거다.
그 뒤로는 황금세대의 등장으로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하고 침몰해 버렸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엇을?”
“뻔하죠. 황금세대와 메지로의 미래에 대해 말입니다.”
내 옆의 당주는 내게 물었다.
황금세대는 앞으로 브라이트가 어떤 길을 가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메지로의 미래에 관한 질문은 당연히….
“황금세대라~ 내가 담당을 구한다면 킹 헤일로가 아닐까 싶은데? 가장 밑바닥이라곤 하지만 혈통과 재능은 잘 갈고닦으면 될 것 같으니까.”
“호, 그런 평가를 내리실줄은 몰랐군요.”
“이 바닥에서 혈통을 무시할 순 없지.”
이 바닥에서 재능은 거의 모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노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고,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똑같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그걸 관리하고 케어하는 트레이너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녀는 트레이너를 보는 눈이 없으니까.”
“아직 트레이너를 구하지도 않은 아이입니다만?”
“이번에도 내기해 볼래?”
“아뇨, 됐습니다. 그대와 내기하면 언제나 제가 져버렸으니까요.”
다른 것들도 내게 질문을 했다.
황금세대에 있는 다른 인원들에 대한 특징과 특별한 것들을 서로 이야기했고, 나는 그들에 대해 하나하나 평가를 냈다.
역시 가장 고평가 해준 건 엘 콘도르 파사였다.
“특별히 눈여겨본 느낌이군요.”
“특별하다라고 할까, 본능이라고 할까? 그 아이는 엄청 대단해. 물론 내가 담당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나는 엘 콘도르 파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확실히 황금세대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세상을 놀라게 했을지도 모르지?”
“몰랐을 거다?”
“…뭐, 현실이라는 건 결국 신들의 장난이 가득 들어간 비극이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느낌의 말이지?”
다른 황금세대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왔지만, 나는 특별한 평가를 내려주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빛난 별들이지만, 그것 이상으로 반짝이거나 특출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브라이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밀로 해준다면.”
나는 귀빈석에서 게이트를 내려봤다.
브라이트는 게이트 앞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상황이 됐음에도 끝까지 나만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늦은 출발 하겠네.’
브라이트는 이제 승리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것 같았다.
당주도 그걸 아는지 한숨을 쉬며 내게 물었다.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메지로 가문의 실패작, 미안하지만 이것만큼 어울리는 말이 없어.”
내가 이런 평가를 내리면 당주가 나를 혼낼거라 생각했지만, 당주는 내 말에 헛웃음 치며 너무 정확한 평가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솔직히 아직도 전 브라이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우승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다 내가 뛰어난 덕분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넘기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게 너무 많잖아?”
“그렇기에 더욱 확실히 알아야죠. 정말 당신 덕분이라면 당신을 영원히 메지로 가에 구속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당주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내 덕분은 맞았지만 그게 무패 7관 행진을 하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미 당신이 말했죠. 노력은 당연한 겁니다. 당연히, 브라이트는 노력했고 다른 이들도 노력했죠. 그렇다면 나오는 건 트레이너와 재능인데 브라이트에겐 재능이 없어요.”
너무 각박한 평가에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브라이트에게도 재능은 있지만, 지금 당주가 내게 말하는 재능은 아예 다른 개념이었다.
당주는 맥퀸처럼 최강이라 불릴 수 있는 재능을 말했지만, 브라이트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사실을 말해주지.”
“그러니까 당신에게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겠죠.”
당주는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죠?”
“나도 몰라.”
여기선 미안하지만 정말로 나도 모르고 해줄 수 있는 말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하거나 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브라이트에게 뭐든 해줄 수 있다고 말했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시니어와 클래식을 무패로 끝내게 해줄 생각도 있었으며, 원하는 G1을 전부 안겨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순항이었다.
‘메지로 가의 트레이닝을 참고하고, 키류인이 내게 줬던 백서와 내 경험, 게임에서 배운 사실들을 섞었다 할지라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우정 트레이닝이라고 할만한 건 거의 없었다.
브라이트의 지식은 완벽했고, 경험은 말할 것도 없이 쌓여있었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과 가르쳐야 하는 것에 대해 한 번에 이해했다.
“미안하지만 정말 나도 몰라. 다만, 메지로의 실패작이라는 것은 확실해.”
그럼에도 실패작인 이유는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장거리 레이스가 아니라면 약점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고, 연소하는 타이밍도 너무 늦었다.
분명 쌓여있는 것들이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말이 너무 어울렸지만, 그걸 전부 무시하고 이겨내고 있었다.
신비로웠다.
“내 대답은 충분했어?”
“그럼, 당신은 브라이트가 저런 미지의 상태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우승시킬 수 있나요?”
“…….”
이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분명했다.
“못할 거라 생각해?”
“당신이란 사람도 참 별나군요.”
당주는 나를 보며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말을 꺼내려다 잠깐 멈추고, 결국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당신이 기고만장해지는 건 보기 싫지만, 인정해 드리죠. 당신 수준의 트레이너는 제가 봐온 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하다는걸.”
“가장 뛰어난 건 아닌가 보네?”
“일본도 결국 우물안에 있습니다. 대해의 넓음을 모른다면 아무리 뛰어나도 의미 없죠.”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대해의 넓음을 아는 네게 나는 얼마나 뛰어난 트레이너지?”
“아까 답해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직접 듣고 싶었다.
세계를 구경한 메지로의 당주에게 직접 내 수준을 알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전혀 의미 없지 않다는 것을.
“…당신이 나이를 먹어 은퇴한다는 가정이라면, 당신 이상의 트레이너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대답에 만족하며 나는 출발 신호를 들었다.
브라이트는 역시 예상대로 늦은 출발을 했고, 여유롭게 추입을 선택했다.
“그럼, 이따 방패상을 들어 올리는 브라이트에겐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적당히 키스 한 번 해주면 적당할 것 같은데….”
내 말에 당주는 질렸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정말 궁금해져서 하나 물었다.
“진심으로 브라이트에게 당주 자리를 줄 거야?”
“…아직도 다른 선택지가 존재합니까?”
“…….”
당주에게 대충 넘겨짚을 느낌으로 물어봤던 질문의 답은 나왔다.
이제 모두의 손을 떠나버렸다.
당주는 이제 내가 없으면 브라이트는 제정신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내가 있으면 브라이트가 망가질 걸 알았다.
이젠 서로 모든 걸 내려놨다.
***
모두의 예상과 생각대로 브라이트는 방패상과 함께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다시 승리했다.
메지로 가에서 축제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다들 브라이트에 대한 걱정만 늘어놓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도 브라이트가 너무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브라이트도 대충 눈치를 보며, 메지로 가에서 여름합숙으로 도망치듯 나와 함께 이동했다.
‘심지어 너무나도 헌신적이지.’
지금 브라이트는 매우 헌신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달라붙고, 함께 다니며 그것들은 이미 파파라치 같은 이들에게 진즉 찍혀 사진은 이리저리 팔려나갔다.
“하하….”
모든 이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차기 당주가 될 사람과 결혼한다는 말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나도 이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이트의 눈을 보면 계속 뭔가 말로 하기 힘든 꺼림칙함이 계속 따라왔다.
‘왜지?’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칼부림이 일어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브라이트는 원한다면 다른 여자를 만나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호와아~ 이사장님이나, 할머님을 만나러 가셔도 괜찮은데요?”
“…….”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셨나요?”
정말 숨이 막혔다.
차라리 분노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냥 눈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것 같았으며, 귀와 꼬리는 아래로 내려가 완전히 빛을 잃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려 할 때 브라이트는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셨던 건 아니잖아요? 괜찮아요~ 전 그런 트레이너님도 좋아하고 신경 쓰지 않아요.”
“그, 그래?”
“어차피 당신의 마음속에 틀어박혀 있는 건 그딴 년들이 아니잖아요? 정말 제가 질투하고 미워하며 증오하는 건 따로 있잖아요?”
브라이트는 내게 다가왔다.
발걸음이 이쪽으로 가까워지며 내 뺨을 감싸 끌어안았다.
브라이트를 피하려다 살짝 뒤로 넘어진 나를 브라이트는 밀어버렸다.
땅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내 위에 올라탄 브라이트는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제가 두려우신가요?”
“…….”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황에서 브라이트는 조금만 다가가도 입맞춤할 수 있는 거리로 내려갔다.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눈 안으로 나를 집어넣으려고 하며, 숨을 들이킨 브라이트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트레이너님은 자기 자신을 원망하셨나요? 아니면 스스로에게 질투하셨나요? 혹은 멋진 꿈을 꾸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아, 그건….”
“걱정마세요! 트레이너님은 행복을 찾으실 거예요. 반드시 해피엔딩과 모두가 당신을 사랑하며 끝났다는 이야기를 맞이하실 거예요.”
브라이트의 손이 어깨에서 목으로 올라갔다.
내 목을 움켜쥐기 직전으로 변했고, 조금만 힘을 줘도 내 목뼈를 부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딴 이야기에 모두가 행복해질 필요는 없겠죠?”
브라이트의 말은 너무 날카로웠다.
마지막으로 내 표정을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깔깔 웃으며 내 위에서 일어나 옆으로 자리를 피해줬다.
그러면서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로 좋아해요~ 당황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트레이너님은 엄청 귀엽거든요.”
이 모든 건 그냥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아주 철없고, 질 낮은 장난이었다고 브라이트는 고작 그런 말로 넘기려 했다.
새까맣게 물든 눈으로 말이다.
진심으로 혐오와 증오, 미련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버린 손으로 말이다.
“다만, 맥퀸도 말하진 않았지만, 한 번쯤은 정말로 질척질척하게 절망해서 절규하는 표정도 보고 싶었을 거예요….”
“자, 잠깐.”
브라이트는 직접 맥퀸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내가 더 자세한 것을 물어보려 하자 검지로 내 입을 닫아버렸다.
지금, 이 시간도 아깝다는 듯 그녀는 말했다.
“자, 그럼 다시 트레이닝하러 가요. 모처럼의 마지막 여름이잖아요? 충분히 즐기지 않으면 마지막에 후회해 버려요.”
나는 브라이트의 손목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정말 아주 혼란스럽고 머릿속에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딱 하나만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메지로, 하나만 물어보자.”
“뭔가요?”
“왜 마지막 여름이야…?”
브라이트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왜 마지막 여름이라고 했을까요?”
브라이트는 내게 거짓말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대놓고 내게 대답을 알면서 그런 말을 강요시키냐며 비웃듯 말했다.
“호와아, 잘 모르겠네요~”
이젠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커튼콜은커녕, 소품도 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브라이트는 나를 실로 엮어 조종하고 있었다.
운명 위에서 부채로 입을 가리고 흥얼거리며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꾸미고 있었다.
‘…브라이트.’
마지막 여름이다.
틀림없이 마지막 여름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