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주중이 지나 맞이한 주말.
식사를 차려 먹기도 귀찮고. 냉장고가 비었으니, 장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외출길이었다.
"뭐 먹을까..."
그렇게 혼잣말하며 걸음을 옮겨, 가게마다 내걸은 간판을 둘러보면서 적당히 배를 채울만한 곳을 찾고 있었을까.
"...트레이너?"
"응?"
문득 뒤편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이윽고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서 뒤편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렸다.
"안녕~"
고개를 돌리자. 이내 평소의 익숙하게 보았던 트레센 학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후진이 인사를 건넸다.
"안...."
때아니게 만난 담당마의 인사에 답하려고 하려던 찰나. 이내 후진의 옆에 시선이 닿았다.
'..응? 누구?'
...누구일까. 후진과 딱 붙어서,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살짝 봐서는 후진과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다.
'후진의 가족? 가까운 친척일까?'
"...안녕. 후진. 우연이네. 이렇게 만나고."
"헤헤. 나도 그냥 돌아다니다가, 익숙해보이는 모습이 보여서 불렀더니 트레이너 씨였던 거 있지?"
어째선지 신경 쓰이게 있는 남자는 잠시 무시하고 나누는 대화 몆마디.
"...그런데, 옆의 일행은 누구야?"
그 대화 몇 마디가 끝나고 나서야, 살짝 운을 떼듯이 물어보는 질문.
"...응? 옆에 있는 사람?"
내 말을 들은 후진은 눈만 살짝 돌려 그 남자와 무언가의 시선을 맞교환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응! 내 남자 친구야! 너도 인사해. 내 트레이너 씨야."
후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서슴없이 그 팔을 붙잡듯이 팔짱 꼈다.
"안녕하슈~"
"아. 남자 친구였구나? 안녕."
...무뚝뚝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사실 조금 충격받았다.
'후진. 남자 친구 있었구나?'
몰랐던 사실에 놀라 머릿속에서 되새기듯이 하면서, 나는 이내 말을 이었다.
"후진한테 남자 친구가 있었는 줄 몰랐어."
"헤헤. 중학교 때부터 사귀었는걸."
이내 후진은 과시하듯이 제 남자 친구와 팔짱 낀 팔을 더더욱 당겨 붙였다.
어째서일까. 마음이 조금 아프다...
"으음. 할 일이 있던터라. 이만 가봐야겠어. 만나서 즐거웠어. 후진."
"응~ 잘 가. 트레이너~"
이윽고 나는 불편한 마음에 작별 인사를 건네곤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 다시 마주칠까. 나는 식사는커녕 장도 못 본 채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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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
그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애초에 이상한 일이 아닐 터다.
후진은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몸매도 좋으니까.
아마 그런 후진을 좋아하지 않을만한 남자는 없겠지.
"...나도 그랬고..."
우습게도, 그런 마음을 살짝이나마 가졌던 것 같다.
나이 차이나, 관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후진은 그만큼이나 매력있는 아이였으니까...
안된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남자의 마음이 그런걸까.
"...그렇지만...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안된다.
"...이 사람인가..."
후진의 남자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그야, 후진의 우마톡 스토리에 [오늘 남자친구랑 놀았어~]라는 제목으로 사진 몇 장과 글이 올라와 있었고.
그렇게 올라온 우마톡 스토리에 오늘 본 그 남자의 우마톡 스토리 계정도 연결되어 뜨고 있었으니까.
다니고 있는 학교는 트레센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에 속해있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인사할 때는 살짝 불량해보였는데 말이야..."
무언가의 편견이 금세 자리 잡았던 걸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휴대폰으로 몇몇 사진을 살펴보면서 나오는 혼잣말.
차분하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어째서인지 머릿속이 진정되질 않는다.
휴대폰을 내려두면 조금 진정될까. 하며 내려놓았지만, 머릿속은 그대로.
"나는..."
후진을 좋아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건 분명하다.
어른으로 살짝 부정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내 그러는 것도 마땅치 않다고 느낀다.
"...."
그렇지만 후진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다. 그것도 중학교 때부터 사귀었다고 하니, 트레센에 편입하기 전부터 오래된 사이일 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뭔가 망가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나는 분명히, 후진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
나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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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머릿속에 감돌던 고민은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기니 가라앉았다.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 [내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말 몇 마디.
"...에?"
갑작스레 걸려온 내 전화에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뭔가 눈치챈 듯.
이윽고 나는 '그러겠다.' 라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
몇십초도 안 되는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 살짝 숨을 삼켰다.
그냥 전화로 말해버릴 수도 있었을 터다.
...그렇지만, 전화로 말해버리는 것은 진정성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후진..."
살짝 눈에 닿은 거울. 비친 얼굴은 조금 슬프게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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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그대로 고백했다.
'좋아한다.'라고.
내 말을 듣자 무척이나 당황한 듯해보였지만, 어째서인지 거절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움에 붉어진 얼굴. 그렇지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들은 답.
"....저도요."
분명한 승낙의 답.
그 다음에 듣기로는, 저번의 일은 애초에 내가 고백하게 만들려는 후진의 계획이었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의 친구를 서로 우연히 만나서 같이 다니다가. 그러다가 나를 만나서는 후진이 즉석에서 그런 계획을 짜내었다고.
"....엄청난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후진의 행동력과 순간계획력에 잠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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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 정말로 고마워.
덕분에, 내 마음을 알 수 있었어.
"저기, 트레이너. 이번 주말에 같이 놀러가지 않을래?"
"이번 주말?"
...후진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마음도 제대로 모른 채로 보내야 했을거야.
그리고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응. 요즘 같이 놀만한 사람이 없어서... 헤헤.. 남자 친구도 조금 학교 일로 바쁜 거 같아서 말이야."
"으음..."
그렇지만,
후진.
"...미안, 선약이 있어서. 나는 안되겠어."
너에게는 고맙지만, 네 부탁을 들어 줄 수는 없을 것 같아.
"아... 그렇구나... 괜찮아, 신경쓰지마. 트레이너."
"으응.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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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주중이 지나고. 다시금 주말이 되돌아왔다.
나름 잘 차려입고 나선, 외출길.
"기다렸어?"
"아뇨. 저도 방금 왔는걸요."
분수대 앞에서 만난, 내가 좋아하는 상대.
"흐흠-"
서로 헛웃음하며 팔짱을 끼고. 이내 함께 걸음을 옮긴다.
"오늘 입은 옷, 정말 예쁜걸."
"...어울릴까 걱정했는데.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그런 말을 두런두런 건네며, 팔짱 낀 팔을 더더욱 가까이 붙인다.
더욱더 가까이서 보이는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오늘은 어디로 갈래요?"
"응. 영화라도 보러갔다가 같이 밥먹을까?"
"그것도 좋죠~"
이제는 여장도 잘해주는
내 사랑스러운 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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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꺼 써보려고 1시간동안 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