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040034
2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151676
"뭐 갖고 싶은거 없어?"
"어? 갖고 싶은거? 갑자기?"
"응..."
"글쎄...딱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으휴...그럼 필요한거는?"
"글쎄? 그것도 별로...필요한건 직원용으로 다 나오니까"
"아니...그런거 말고! 네가 갖고싶은거! 필요한거! 왜 뭐 그런거 있잖아! 넥타이라던가! 벨트라던가! 지갑이라던가!"
"아니 뭐 갑자기 물어봐도...근데 그런거는 왜 묻는거야?"
"아 됐어 됐어. 알아서 할게. 물어본 내가 바보지"
"응? 뭐라고?"
"됐다구!"
"뭐여..."
- 어느 평범한 날, 트레이너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의 대화 -
눈을 뜨면 몸에 걸쳐진 따스함이 느껴진다. 오늘도 또 덮어주었구나. 조금 더 누워있을까. 일어나면 이 온기를 트레이너에게 돌려줘야 한다. 아직 좀만 더...5분만 더...
그렇게 눈을 감으면 10분, 20분, 30분 감은 눈으로도 바깥이 어두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슬슬 일어나야지. 더 있다간 내일까지 자버리게 생겼어.
몸을 일으켜 내 몸을 덮고있던 재킷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가만히 품에 안아본다.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기분좋게 올라온다. 하아-
정신을 차리고 파티션 바깥으로 향하면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트레이너가 보인다. "자, 이거" "아, 괜찮은데" "됐어. 잠 깼으니까" 괜히 한마디 더 툭 던져본다. 트레이너는 그런 나를 보고 히- 하고 웃는다. 진짜 바보같아.
"그럼 나 갈게"
"아, 그래. 조심히 들어가"
밥은 안먹어? 또 잔업이야? 나 배웅 안해줘? 그렇게 바빠? 칫.
문 앞에 서서 괜히 한번 더 돌아본다. 손이 멈춘 트레이너는 나를 보고 또 웃고 있다. 그만 웃어. 진짜 바보같으니까. 괜히 또 한마디 더 해본다.
"나 진짜 간다?"
"으응. 잘가"
어휴 바보야. 이럴때는...아니다. 됐다. 내가 뭘 기대하고 있는거래.
문 손잡이를 돌려 열고 바깥으로 나온다. 다시 몸을 돌려 천천히 문을 닫는다. 바보같은 미소를 띄며 오른손을 흔든다. 진짜. 더 바보같아보인다. 어떻게 저게 서른두살이야. 그냥 동네 바보지.
달카닥 소리를 내며 문이 잠기고 문고리에서 손을 놓는다. 내 지문이 살짝 묻어있는 문 손잡이. 언제든지 이 손잡이를 돌리면 다시 들어갈 수 있지만, 괜히 바쁜 트레이너를 방해하는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한다. 그래도 조금 아쉬워서, 얼마 안 있어 일을 마치고 나올것 같아서. 벽쪽에 기대 멍하니 문을 바라본다. 묵묵부답인 문을 10분이고 20분이고 바라보다가, 내가 뭘 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익숙해진 혼밥.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보며 거리를 두고 인사를 하고 아는체를 하고 쑥덕거리고 수군거린다. 응 그래, 밥 맛있게 먹어. 아아, 오늘은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그래 잘가. 대답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이럴거면 그냥 트레이너한테 저녁 사달라고 할걸.
밥을 먹고 본관을 나와 기숙사로 향하다가, 트레이너가 있는 건물쪽을 뒤돌아본다. 여전히 불이 켜져있는 사무실. 매점에서 뭐라도 사다줄까. 아니야, 괜한 참견이야. 알아서 잘 챙겨먹겠지. 발걸음을 재촉하려 몸을 돌렸다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본다. 여전히 불이 켜져있다. 칫.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경쓰는거야. 애초에 내 트레이너실만 불이 켜져있는것도 아닌데.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기숙사로 향했다. 여느때와 같이 기운찬 뱀부 선배와 인사를 나누고, 샤워를 마치고, 우마스타를 확인하고, 매니저 언니는...오늘은 아니야. 밀려있던 라인에 답장...응? 뭔가 엄청 많이 쌓여있네. 헬리오스가 우라늄맨3가 개봉했다면서 같이 보러갈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으음, 어떡하지. 다음주 목요일? 딱히 일정은 없기는 한데...
답장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1 없어졌다!' 하는 헬리의 라인이 올라왔다. 얘는 뭐 하루 종일 이거만 보고 있나? 그리고는 부산스럽게 나에게 우라늄맨3를 보러가자고 라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나는 적당히 그때 별일 없으면 이라고 라인을 보내고 핸드폰을 껐다. 오늘은 케어좀 하고 자야지. 물티슈로 손을 닦고, 평소 루틴대로 코스메틱을 바른 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뭔가 좀 심심한 느낌. 키츠네 우동에 키츠네가 빠진 느낌.
뭘까, 이 2% 부족한 느낌은.
별거 아닌데,
신경쓰이네.
음...
모르겠다.
근데 키츠네 우동에 키츠네가 빠지면 키츠네 우동이 아니지 않나?
아, 우동먹고 싶어졌다. 내일 점심 메뉴 뭐더라.
근데 왜 키츠네 우동은 키츠네 우동일까? 여우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키츠네 우동을 검색했다. 아아, 그런거구나. 그래서 키츠네 우동이구나.
우리 학식 주문메뉴에 키츠네 우동이 있던가? 없으면 그냥 우동이나 타누키 우동이라도 먹을까.
음, 근데 타누키 우동은 왜 타누키 우동이지? 이건 또 못 참지. 음...뭐야, 별거 아니네.
...그럼 헬리가 먹은 너구리 컵라면은 왜 너구리지? 그냥 마스코트? 아...그런거였구나. 뭐야. 웃겨.
하아...자야되는데...어, 누가 댓글 달았네. 뭐야 광고잖아. 차단.
...푸하핫. 이 우마톡 엄청 웃기네. 헬리한테도 보내줄까. 얘 자나? 지금?
크크크크 그치, 너도 개웃기지. 아 뭐야, 이런건 또 어디서 구한거야 푸하핫.
엥, 헤에...그래서 사람들이 물컵을 들때 새끼손가락을...근데 그러면 그냥 티슈로 닦고 뿌리면 되는거 아닌가?
음...이건 뭐야, 교미 중 색 변하는 카멜레온...어떤 변태가 이런걸...에이 뭐야 낚시잖아.
응? 타즈나씨의 비밀? 뭐야. 이걸 누가 몰라. 이미 애들은 다 알고 있는건데.
엑? 에에엑? 헬로씨 남친 있었어? 전혀 몰랐네. 남친은 뭐하는 사람이지...어? 어머, 어쩐지 그때부터 썸타는거 같긴 했는데...팔코선배도 알고있겠지? 아니...팔코선배 둔하니까 모르고 있을지도.
아, 오구리 선배 또 프사 바꼈네. 우와...이걸 혼자 다 먹은거야? 오구리 선배 위장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을까. 타마선배랑 같이갔었구나.
와 여기 단풍 예쁘네. 아르당 선배는 이런 갬성샷 참 잘찍어. 본인도 좀 갬성적으로 생기긴 했는데. 뭔가, 말 걸기 힘든느낌이지. 응응.
후진선배 또 알바 바꿨구나. 여기 제복 귀엽네. 잘어울린다.
아니, 이 날씨에 바다로 드라이브를 갔어? 마루젠선배네 트레이너도 참 고생이네. 아니 그래서, 둘이 결혼은 언제하는데?
...제퍼짱은 또 난해한 포엠을...에...모, 모르겠다. 어느나라 말이지 이거.
...
...
..
뭐했다고 2시지...하아...내일도 늦잠자게 생겼네.
으으음...몇시지...8시 20분...하하하...오늘은 그래도 여유가 있네. 여유는 무슨. 서두르자.
헉, 헉, 헉...안늦었지? 8시 55분. 좋아. 세이프.
자리에 앉으면 조던이 기다렸다는 듯 "하이-" 하고 인사를 건넨다.
"하이-"
"너 우라늄맨3 보러갈거?"
"어, 그때 일 없으면 보러가지 뭐"
내 말을 들은 조던은 쿠후후 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야.
오늘 1교시는 레이스 이론. 레이스랑 관련된 내용이라 그나마 덜 지루하지만, 하아아암- 수업은 수업이라 역시 지루한건 매한가지다. 오늘도 멍하니 창밖을 쳐다본다. 운동장에는 뛰어다니는 아이들, 트레이닝 하는 아이들. 파란 하늘에 하얀색 뭉게구름. 만쥬같이 생겼네.
"또한 이미 레이스를 뛰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저차 2미터의 오르막이 있어서 특히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거기 시티, 집중해라"
"앗, 네"
딴청 피우고 있던게 들켰다. 담당교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내가 방금 설명한게 어디 레이스장이냐?"
"아..."
하나도 못들었는데. 뭐, 뭐지? 칠판에는...아무것도 안쓰여있네.
"도쿄"
순간 조던이 양말을 고쳐신는척 하며 속삭였다. 나는 곧장 "도쿄 레이스장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담당교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그래" 하고는 계속 수업을 이어나갔다.
"땡큐 조던"
"흐흐. 별말씀을"
조던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윙크를 하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도 조금 정신을 차려야겠다.
다음 수업은 이동수업이다. 미술. 자화상 그리기인데, 영 어렵다. 연필을 아무리 슥슥 삭삭 해도 뭔가, 진짜 그냥 그림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옆을 보니 조던이 진지한 얼굴로 화가처럼 연필을 엄지로 쥐고 캔버스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더니 슥삭슥삭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디, 에엑- 뭐야, 생각보다 잘그리잖아? 맨날 네일해서 그런가?
2시간짜리 수업을 마치고 미술실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동안 트레이너의 사무실 앞을 지나친다. 여전히 문은 닫혀있다. 오늘도 바쁜가...
영어수업이다. 영어수업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일 때문에 어깨너머로 배운것도 있고, 회사에서도 간단한 회화정도는 알려줘서. 으음, 그래도 원어민 강사는 좀 부담스러워. 어쩐지 큰 타이키를 보는거같다. 타이키가 선생님이 된다면 저런 느낌일까? 그래도 몸매는 타이키쪽이 살짝 더 좋은것 같다. 아메리칸 스타일.
"조금만 더 먹을까-"
어느덧 점심시간. 조던이 급식을 받으며 당근구이를 하나 더 먹을지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평소처럼 적당한 양만 담아 빈 테이블에 앉았다. 응, 너희도 점심 맛있게 먹어. 응 맛점. 하아...너희는 한번이면 되지만, 같은 말을 여러번 해야 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라.
아이들과 밥을 먹고 오후 수업 전까지 운동장 계단에 앉아 한가로이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은 곧 우라늄맨 1, 2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라늄맨 3...엄청 기대하고 있는것 같다. 으으, 진짜 보러 가야되나? 허블코믹스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닌데.
"우리 5교시 수업 뭐지?"
"체육!"
내 물음에 조던이 그렇게 답하자, 헬리가 "와 개부럽! 우린 역사인데! 역사 지루해! 역사도 레이스처럼 재밌으면 안되나? 그냥 레이스 하면서 수업 들으면 안돼? 어떤데? 1펄롱마다 암기할거 적어놓고!" 하며 투정을 부렸다.
그 말을 들은 파머가 "그러면 공부가 제대로 되겠냐?" 라고 하자 헬리가 "왜!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그래!" 하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누군가 말릴틈도 없이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쟤 어떡해"
뛰고 있는 헬리를 보며 내가 말하자, 파머가 별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냅둬" 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조던도 일어나서 헬리를 부르며 뛰기 시작했다. 뭐야, 얘네 왜이래. 오늘 밥에 이상한거라도 있었나? 어? 파머 너까지?
결국 우리 넷은 식후운동으로 운동장 5바퀴를 교복을 입은채 미친듯이 달리고 나서 잔디밭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뛰고 나니 이상하게 기분은 좋네.
"하아...하아...그래서, 공부 효과는 어땠어?"
"헤엑...헤엑...모르게써..."
내가 묻자 헬리가 혀를 내밀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파머는 몸을 일으켜 앉아 "흐윽...바보야...그야...아무것도...없었으니까...그냥...뛰기만...흐윽...했잖아..." 라며 헬리의 머리를 손날로 톡 하고 때렸다.
"헤엑...헤엑...푸헤헥...푸하하하하하핫!!"
"아...너 땜에...하악...땀났자나!!"
"푸하하하하핫 아 개웃겨억!! 왜 뛴거야!! 공부 하나도 안됐어!!"
조던이 떽뗵거리거나 말거나, 헬리는 그렇게 또 웃어버렸다. 진짜 한결같다.
그렇게 영문모를 뜀박질을 하고 나서 조던과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훈련때에 비하면 뛴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오후 수업은 무리야...거기다 체육? 절대로 내가 수업을 듣기 싫어서 그런거는 아니고...하아...
"조던. 나"
"응? 어엉"
조던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른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이정도만 말해둬도 조던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트레이너의 사무실로 향한다. 노크따윈 필요없다. 덜커덕 하고 문을 열어 들어가면 처음 있는일인 양 놀란다. "어어? 오늘도?"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됐잖아?" 하고. 근데 매번 이렇게 오니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그냥 내 침대, 아니...간이침대로 재빠르게 간다.
어느샌가 이 베개에는 내 샴푸린스냄새가 조금 배어있다. 이미 자리잡고 있던 트레이너의 냄새에 내 냄새가 조금 얹어져 묘한 냄새를 풍긴다. 뭐, 아저씨 냄새 나는거보다는 훨씬 낫지. 후후.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늘상 내 위에는 트레이너의 옷이 덮여져 있다. 매번 이렇게 해주는게 고맙기도 하고, 그냥 담요나 이불같은걸 하나 가져다 놓으면 될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괜히 또 팔랑팔랑 흔들어보기도 하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입꼬리가 어느샌가 올라가 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
그런식으로 며칠을 출퇴근도장을 찍으니, 이번에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숨겨달라는 나의 말에 냉큼 "어" 하고 대답한다. 엥? 뭐지?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건가?
"왜. 얼른 숨어"
오늘은 딱히 숨으려고 온건 아닌데. 뭐, 됐나. 그래. 익숙해져야지. 후후후. 그럼 오늘도 늘어지게 한숨 자볼까.
베개에 섬유유연제라도 뿌린걸까. 아니면 베개피를 세탁이라도 한걸까.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늘 맡던 트레이너의 냄새가 없어진건 조금 아쉽...
응?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왜 내가 아쉬워 하는거지?
...
하.
에이...설마...
하하. 말도안돼. 있을 수 없는일이야. 그냥 낯선...섬유유연제인지 탈취제인지 모를 냄새가 어색해서 그런거겠지.
...
괜히 또 신경이 쓰이네. 하아...뭐지? 앗. 이쪽으로 온다. 자는척 하자. 또 덮어주네. 그래. 이 냄새야. 따뜻한 냄새. 마음이 편안해지고...잠이...솔솔 오는...
으음, 언제 잠든거지. 배고파. 옷을 챙겨서 트레이너가 있는쪽으로 향한다. 아직도 일 하고 있구나. 벌써 해 저물었는데. 어른들은 다 이런걸까. 어른 되기 싫다. 근데 뭐, 나도 밤 늦게까지 스케줄 있을때가 있으니까.
"..."
"왜?"
"아냐, 암것도. 나 갈게"
"응"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야근인건가. 어쩐지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핸드폰을 보니 조던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라인을 보냈다. 알았다고 답장을 대충 하고 핸드폰을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식당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발이 안떨어진다. 이상하다. 벽에 기대 멍하니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본다...문이 찰칵 하고 열린다. 어? 옷을 챙겨입고 나오는 트레이너가 보였다. 뭐지? 오늘은 야근 안하나?
"오늘은 일찍 퇴근?"
"어, 어어"
나도 모르게 다음 말이 튀어나왔다.
"앞으로는?"
"어어, 볼일이 있어서"
볼일? 무슨 볼일? 야근도 제낄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아님 누구 만나러 가는건가?
"밥은?"
"나간 김에 대충 때우려고"
"흐음..."
나간다고? 잠깐만 있어봐...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켜서 조던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저녁은 따로 먹겠다고 라인을 보냈다.
"나도 갈래"
"어?"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트레이너를 따라 가겠다고 한건지. 어디를 가는지도, 뭘 하려는지도, 내가 같이 가면 되는 자리인지도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일단 질렀으니 밀고 나가자. 뭐, 내가 낄 자리 아니면 알아서 거절하겠지.
"같이 간다구"
"어디를?"
"어디겠어?"
"나?"
"그래"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여기.
"왜?"
뭐야, 반응이 왜이래? 기껏 담당이 생각해줘서 어울려 주겠다는데. 아니면 일부러 또 모르는척 하는건가? 지난번부터 마음에 안드는데 진짜 한대 때릴까? 맞으면 좀 정신을 차리려나?
"하아?"
"아, 알았어"
트레이너는 조금 당황했지만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 말은 내가 동행해도 상관 없는 일정이란 뜻이다. 어디 누구랑 술 먹으러 가는건 아닐테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것도...아닐테고. 그럼 어디 가는거지? 퇴근시간에. 맨날 야근하던 루틴도 깰 정도로 중요하고 급한 일인가? 아님 오늘 할 일은 다 끝난건가? 모르겠다. 가보면 알겠지 뭐.
트레이너와 함께 밖에 나오니 쌀쌀한 가을 밤바람이 불어왔다. 으, 추워. 나 춥다구 이 인간아. 얼른 그거 벗어서 줘.
"기숙사 가서 옷 가져올래?"
"..."
하아...눈치...눈치...그래, 내가 이해해 줘야지. 우리 트레이너는 눈치없기로는 트레센에서 두손가락 안에 들거야. 분명해.
트레이너가 입고 있는 양복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자, 트레이너는 조금 나를 빤히 보더니,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같은 얼굴을 하면서 옷을 벗어주었다. 히힛. 따뜻행. 하아- 기분좋다.
"있잖아"
"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 얘기도 안하고 가는건 좀 어색해서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왜 매번 너만 바빠?"
"아- 흐음...바쁜게 좋은거지 뭐"
"하? 바쁜게 좋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에...뭐냐, 그냥 뭐. 안바쁘면 일이 없다는거잖아. 그럼 능력을 인정 못받는다는거고"
"흐음. 그냥 대충 둘러대는거 아니야?"
"아냐, 그리고 승진시험 준비도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내 시선을 회피한다. 어차피 그 교원평가인지 뭔지 받는거 다 알고있는데. 그래도 본인이 말하기 껄끄러운것 같으니 굳이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면 좀 덧나나? 하루이틀 같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쫌 서운하네.
"승진시험은 뭐 준비하는데?"
"어어, 내년에 시니어 트레이너 시험 TO가 나서. 마침 시험 볼수있는 연차도 됐고"
"헤에- 벌써 그렇게 됐나?"
"벌써라니. 이제 내년이면 7년차인데"
"우와...늙었어"
"와...너한테 그런말 들으니 좀 섭하다. 너랑은 벌써 4년째인데"
"그거야 그거고, 네가 늙은거랑은 다르지"
"같이 늙었잖아"
"하아? 어떻게 나한테 늙었단 소릴 할수가 있어?"
"아하하. 말이 그렇단거지.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안늙었어"
"서른살 넘었으면 늙은거야"
"뭐, 그렇다고 치자"
"왜 또 여기서는 그냥 납득하는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하하하"
또 바보같이 웃는다. 그나저나...
"벌써 4년째구나. 내가 입학한지 그렇게 오래 됐나?"
"그치. 시간 참 빠르다"
"그러게. 난 나이 안먹을줄 알았는데"
내 말에 트레이너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웃긴거야.
"네 나이 또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거같은데"
"무슨 뜻이야 그거-"
"아니, 그냥. 뭐랄까. 내 동년배나 선배들 입에서나 나올법한 말?"
"지금 그거 나보고 늙었다고 하는거야?"
"아냐 아냐. 우리 시티가 늙긴 뭐가 늙어"
"됐어. 나 늙었네요"
"아하하하. 같이 늙어가자고"
치-. 진짜 아저씨 같은 말만 하고있네. 여자아이 대하는 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섬세하지도 않고. 분명 모쏠일거야. 여동생이나 누나도 없는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번화가와 대로변을 지나 큰 건물 앞에 섰다. 니토리? 여기는 왜 왔냐는 물음에 트레이너는 담요를 사러 왔다고 답했다. 갑자기 웬 담요? 아 그런가, 나한테 옷 덮어주느라 추워서 그런가? 아니면 나한테 덮어주려고? 이거 괜히 따라왔나. 어쩐지 민망해지는데. 그냥 시치미 떼고 모른척 하자.
"왜?"
"사무실에서 추울때 뒤집어 쓰려고"
그럴땐 빈말이라도 "너 잘때 덮어주려고" 라고 했어야지 이 사람아. 그 말 하는게 그렇게 부끄러운가? 근데 이 얼굴에 이 체격에 춥다고 담요 뒤집어 쓰고 일하는걸 생각하니 뭔가 웃긴다. 사무실에서 여중생 여고생처럼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야근하는 30대 아저씨라니. 풉.
매장 안에 들어오니 온갖 침구류와 잡화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세상에 온것 같았다. 니토리에 온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트레센 입학할때나 이불 알아본다고 왔었던거 같은데. 아, 저 이불 되게 따뜻해보이네. 흐음, 오오. 엥? 이건 뭐야. 베개에 왜 YES라고 써져있는거지? 반대쪽은 NO 라고 써져있네. 뭐가 YES고 뭐가 NO 라는거야? YES 쪽을 베고 자라는 뜻인가? 모르겠다. 애초에 니토리에 이런게 있었나?
그렇게 매장을 둘러보다가, 나는 쿠션이 잔뜩 놓인 매대 앞에 멈췄다. 엄청 귀여운 수달모양 쿠션이랑 바나나 모양 쿠션이 놓여져 있었다. 어떨까. 우와, 이거 좀 위험한데. 둘다 갖고싶어. 어느게 더 좋을까. 흐음...
"뭐 봐?"
으아! 뭐야!? 아, 아저씨 진짜 왜 놀래키고 그래!
"아잇 깜짝이야! 왜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니, 어...쿠션?"
우씨. 그럼 이게 쿠션이지 밥상으로 보이냐! 트레이너는 나와 쿠션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나 사줄까?" 하고 물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고는 하나 고르란다. 뭐야뭐야, 사주려고? 사줄거면 둘 다...아니, 사준다는 사람한테 난 또 무슨 생각을. 일단 여기서는 한번 거절하는게 예의이다.
"으음...아니야, 됐어"
나는 마음에도 없는, 그러니까 예의상. 진짜 예의상 한번 거절을 했다. 그러자 "알았어" 라고 대답한다...하아? 지금 나 갖고 놀리는거? 아니 또 웃고있네? 이 아저씨가 증말...그러고는 또 뻔뻔한 얼굴로 "왜, 됐다며" 란다. 안되겠다. 오늘은 진짜 한대 떄려야겠다.
"아니 너 진짜..."
"장난이야 장난, 하나 골라 진짜로"
...으으...장난이면 다 넘어가는줄 아나? 그래도 하나 고르라니까 이번만은 넘어가준다. 진짜로. 나 오늘 많이 참는다. 근데 어떤게 좋을까. 수달도 귀엽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나나가 더 마음에 든다. 귀엽잖아. 바나나. 맛있고. 수달도 괜찮은데, 바나나가 뭔가 안정감이 있달까. 하아...어떡하지? 둘다 안는 느낌도 괜찮고, 아니지, 안는 느낌은 수달쪽이 나은데, 푹신푹신한 정도나 얼굴에 베는건 또 바나나가 좋고. 무엇보다 바나나쪽이 더 색감이 좋아. 이 수달은...귀엽긴 한데...뭔가 눈 앞에 있는 이 아저씨 닮은것같기도 하고...아니, 이 아저씨가 귀엽단 뜻은 결코 아니고. 일단 나는 바나나가 마음에 드는데, 그래도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어떤게 좋아?"
"응?"
"둘 중에 어느거"
자, 너의 미적 감각을 보겠어. 트레이너는 나와 쿠션을 진지하게 보더니 수달모양을 골랐다. 으음, 내가 원했던 답은 아닌데, 나랑 어울린다고 하니 수달로 해야겠다. 바나나는 나중에 따로 사면 되니까. 바나나야 곧 언니가 데리러 올게 얌전히 있어. 헤헷. 근데 이 수달 안는 느낌이 진짜 좋은데. 잘때 안고자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수달을 넣었다. 그리고는 함께 담요를 파는곳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트레이너는 마치 혼수라도 고르는 듯 진지하게 담요를 보고 있다. 그러더니
"어떤게 좋아?"
"에?"
뭐야, 나 따라하는거? 진짜 웃겨- 이 남자가 이럴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 장단이나 맞춰주자. 어디보자, 흐음...이쪽은 색감은 별론데 엄청 푹신푹신하고 따뜻하다. 이쪽은 색감은 괜찮은데 재질이나 두께가 조금 추울지도 모르겠다. 지금 사는 담요니까 겨울에도 쓸걸 생각하고 조금 두께감 있는거로 고르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이거를 트레이너가 뒤집어쓴다고 생각하면...아, 진지한 표정. 담요 고르는데 뭐가 그리 진지한거야 이 남자는. 아니지, 담요 고르는걸 진지해하는 사람이 또 있다. 아야베씨...그래! 내가 아야베씨라면...그리고 이 회색빛...어쩐지 아까 산 수달 쿠션이랑 색감이 비슷한데. 깔맞춤은 어떨까. 트레이너랑 어울리려나? 흐음. 음. 의외로 괜찮은 조합일지도? 그래. 이게 낫겠어.
"어때? 내가 아야베씨라면 이걸 골랐을거야"
뭔가 "너랑 잘 어울릴것 같아" 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해서, 아야베씨 핑계를 댔다. 하지만 아야베씨가 같이 있었다면 내 선택이 옳았다고 해줄거다.
"아야베씨?"
뭐야, 모르는건가? 모를리가 없는데. 아냐, 여기서 다른 사람 얘기를 더 해봐야 말만 길어진다.
"아냐, 신경꺼. 어쨌든 어떠냐구"
"내가 생각한건 이쪽은 아닌데-"
엥? 뭐지...나도 사실은 트레이너가 골라준 쪽이 더 마음에 들었던건 아닌데...뭐야. 이런건 또 비슷하네. 같이 지낸 시간이 오래라서 그런가. 아니 그럼 애초에 서로 취향을 모르는쪽이 더 이상한거 아니야? 나만 그런가? 괜히 또 짜증나네.
"우씨, 그럼 왜 물어본거야"
"하하하 농담, 나도 이게 좋다고 생각했어"
으으 진짜. 이 남자 속 마음을 전혀 모르겠다. 진짜로 이쪽이 더 좋은건지, 아니면 내 기분 맞춰주려고 그런건지, 진짜 아무생각없이 장난치려고 그러는건지.
하여튼 약속대로 트레이너가 모두 계산을 했고, 계산이 끝난 쿠션을 안고가겠냐면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안고 돌아다니라는거야...애도 아니고. 그렇게 퉁명스럽게 답하니 봉투에 넣는단다. 아니, 그래도 뭔가, 나 생각해서 해준건데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건가. 에이 기분이다. 선물해준 사람 비위 맞춰주자.
막상 쿠션을 껴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푹신하고, 뭔가 진정되는 기분. 하아...위험해. 사람을 글러먹게 만든다.. 아차차, 고맙다고는 해야지. 히힛. 오늘부터 안고자야지. 아니지, 오늘은 세탁하고 내일부터 안고자야지.
배쪽에 쿠션이 닿아 감촉이 느껴지니, 문득 잊고있던 허기가 올라왔다. 밥 안먹었었네 그러고 보니. 밥은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나보고 먹고싶은게 있느냐고 묻는다. 또 내가 골라도 되는건가? 오늘 원래 따로 먹고싶었던게 있었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물으니 어차피 내 마음에 안들면 내가 고르지 않았겠느냐고 대답한다. 맞는말이다. 이런건 또 잘 아네. 히힛.
음, 뭐먹지. 모처럼 오랜만에 같이 나와서 먹는 밥인데. 뭔가 특별한게...이 근처에...아 그러고보니.
"조던짱 시티짱, 오늘 수업 끝나고 안바쁘면 옷챠호이 먹으러 갈래?"
"옷차호이?"
"응! 번화가 쪽에 파는데가 있어서, 이따가 포케짱이랑 카페짱이랑 같이 가기로 했거든!"
"에- 갈래 갈래-! 시치 같이 가자!"
"오, 옷차호이가 뭔데?"
"옷차호이는...그러니까...옷차호이야!"
"...그, 오늘 트레이너랑 상담이 있어서 미안...나중에 같이 가자"
"에에- 알았어. 나중에 꼭이야?"
"응 단츠. 잘 다녀와"
라고 대화를 나눴던게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옷차호이!" 라고 외쳐버렸다. 트레이너의 반응은...뭔가 엄청 쌩뚱맞은걸 들었다는 표정이다.
"그게 뭔데?"
당연한 반응인가. 나도 그랬으니까.
"어, 단츠가 지난번에 얘기해줘서 갑자기 먹어보고 싶어졌어"
"단츠? 단츠 플레임?"
뭐야, 아야베씨는 모르더니 단츠는 아는건가?
"응. 알아?"
"뭐, 친한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면서 인사하고 그런정도"
"흐으음-"
호오- 그러셔? 뭐, 사실 단츠는 눈에 띄는 아이이긴 하다. 뭐랄까, 엄청 크다. 그렇다고 아케보노처럼 막 엄청 크고 그렇다는건 아닌데. 크다. 하여튼 크다. 눈도 크고 입도 크고 키도 크고...그, 가슴이나 엉덩이도...하여튼 크다. 그와중에 허리는 또 잘록해. 말이 되나? 그런 큰것과는 달리 목소리나 하는 행동은 애기같다. 애교도 많고 꼭 커다란 강아지를 보는것 같다. 성격도 착해서 같이 있으면 포근하고 즐겁고 그렇다. 그래서 인기도 많다. 지난번에는 같이 밥먹는데 주인 할머니가 좋은 며느릿감이 될거라는 얘기도 했었다. 근데...왜 이 남자가 단츠를 알고 있다니까 짜증이 나지? 게다가 뭐야, 친한건 아니고? 친한 애는 따로 있다는 뜻? 으으..별것도 아닌데 신경쓰이네.
그래서 먹을거야 말거야 하는 물음에, 어디서 파느냐고 묻더니 가기로 했다. 나도 처음 먹어보기는 하는데, 뭔가 설렌다. 트레이너도 처음, 나도 처음, 처음을 함께. 후후후...아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그냥 평범하게 저녁밥 먹는건데.
그렇게 옷챠호이를 파는 가게...옷챠호이 집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와서 교자랑 같이 주문해서 식사를 했다. 난생 처음 먹어본 옷챠호이의 맛은 뭐랄까...
"뭔가 기대한거랑은 다른 맛"
"동감"
내 평가에 트레이너도 동의했다. 맛이 없다는건 아닌데, 뭐랄까, 난 좀 더 뭔가 이국적인 그런...처음 먹어보는...그런걸 기대했는데. 애초에 이거...옷챠호이를 제대로 주문한건 맞겠지? 나중에 애들이랑 다시 와봐야겠다. 뭔가 먹는 방법이라던가, 같이 곁들여야 하는거라던가 그런게 있었을지도 몰라.
식사를 마친 우리는 돌아가기 위한 걸음을 옮겼다. 날은 쌀쌀했지만 안고있는 쿠션의 온기와 뱃속에 들어간 옷챠호이의 따끈함, 그리고 내 옆에서 걷고 있는 트레이너가 있다는 사실에 추운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면서 가다가, 어느덧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하아...벌써 도착한건가. 하아. 뭔가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간것 같은 기분.
트레이너랑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뭐랄까. 으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하다보면 어느새 훌쩍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어찌 보면 당연한건데.
그래도 뭔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은데...아니아니아니,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그, 뭐야, 이렇게 생활관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면...오늘 하루가 끝나는거잖아...그럼 또 자고 일어나서 내일이 되고...지루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자 그럼, 내일 보자"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에 잠겨있으려니, 트레이너가 인사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보자 라는 말. 그래. 내일 또 보면 되는거야. 오늘의 아쉬움은 오늘을 마무리 하며 묻어두고, 내일 또 다시 만나면 되는거야. 그러면 또 오늘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아쉬움이 덜어졌다.
"응. 바래다줘서 고마워"
요새 매번 늦게까지 야근하느라 피곤하고 지쳤을텐데,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바래다 주었다. 그러면서도 피곤한 내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나를 신경써준다. 오늘 식사 메뉴 정하는것도 그랬고...
"잘 자고"
왜일까, 잘 자라는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다정하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그 목소리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뱀부 선배나, 다른 친구들이 말했을때랑은 다른 느낌. 내일 또 만나기 위해서 해야하는 작별인사. 오늘은 끝이지만, 분명 또 내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주는 말. 아니아니아니, 그냥 평범한 잠인사잖아. 고작 잘자란 말 한마디에 왜 이렇게까지 의식하는거야.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읏 진짜...이런거 치사해.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어. 조금만 더...
내게 잠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가며 멀어지는 트레이너의 등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그를 부르고 말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는 우뚝 멈추더니 몸을 돌려 나를 본다. 아, 어떡하지, 왜 부른거지,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깊게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는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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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또 분량조절 대실패느낌인데. 본편보다 더 길어질거같은데. 어떡하지. 모르겠다. 일단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