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각사각, 사과를 깎아내던 칼이 멈춘다. 


방금 들려온 그 말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마치 환청이라도 들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분명 환청이 아니다. 설령 환청이라도, 나에겐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무슨 말이에요?"


살짝, 사과를 살피던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한다. 


...야속하게도, 그는 이미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저 이전보다 더 가냘파진 옆얼굴만이 눈동자에 비칠 따름이다.



"...."


소독약냄새, 사과냄새, 삑삑거리는 기계들, 우리 두 사람의 작디작은 숨소리.


좁은 병실에, 무언가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침묵만이 감돈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그 돌려버린 고개에, 피하는 시선에, 차마 숨기지 못한 옆얼굴에.


그저, '잘못 들었다.'던가.' 무슨 말을 했었어?'고. 그렇게 되묻는 말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



"...."


그렇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분명, 그에게 내 말이 들렸을 텐데도. 내가 대답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묻잖아요!"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화난 것이 아니다. 그에게, 화를 내고 싶은 생각도 마음도 없다. 


그저, '말이 잘못 나왔다.'고. '실수야.'고. '너에게 그럴 리 없잖아.'라고. 


그런 대답이 들려오길 바랄 뿐이다. 그저, 이 불안한 침묵을, 그런 말로 끝내줬으면 할 따름이다.



"....대답해줘요!"


...링거줄에 달린 수액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져 간다. 그의 병든 몸속으로.


몇 방울이 그의 몸속으로 흘러 떨어져 갔을까.


이윽고,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미안해."


"....!"


그렇게 열린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은 부정이나 되묻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사과하는 그 말 한마디.


그 사과하는 말 한마디에 담긴 뜻.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그는 내뱉은 말을 되돌릴 생각이 없음을,


그리고, 그가 희망을 완전히 저버렸음을,



"....당신!"


나는, 깨닫고야 만다.



"...정말로 미안해."


붉게 물든 눈동자 너머, 그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어둡고, 수척해진 얼굴로,


울음 섞인, 눈물짓는 눈으로,


그는, 나를 향해 웃음 지어 보인다.


마치, 옛날에 힘들어하던 나를 위로하며 웃어주던,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려는 듯이.





"...이혼해줘, 단츠."


무척이나 따뜻해 보이는, 그때의 웃음을 지으며. 


그는, 나의 바람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






"요즘 힘들어 보이시는데... 괜찮으신 건가요?" 


전조는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깨어났을 때 힘들어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으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하면, 나에겐 으레 그런 말을 하면서 곧 멀쩡하다고 과시하는 듯이 말하고는 했다. 


자신의 걱정은 하지 말라고. 



"...네, 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여보."


"응, 다녀올게. 사랑해, 당신."


그를 믿었기에, 그가 하는 말을 믿었기에. 


나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걱정은 애써 치워버린 채로, 그가 지어 보이는 웃음을 따라 하며 그의 출근길을 배웅하곤 했었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분명하게도,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것을 숨기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나와 살아왔는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당신을, 그리고 저를 닮은, 그런 예쁜 아이를요."


어느 날 밤. 그를 유혹하여 손을 잡고 함께 누운 침대 위에서, 나는 콘돔을 꺼내려던 그에게 그리 말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작은 부끄러움과 큰 기대를 담아서.



"...."


"...안될까요?"


그는, 그런 나의 말에 당황했던 듯이 눈을 갈팡질팡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눈을 돌리던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분명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내가 너무 야한 말을 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부탁이에요."


"...단츠가 원한다면야, 어쩔 수 없네~ 하하..."


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애원하는 나의 말에, 이내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씩 웃으면서 사랑을 나눠주기도 했었다. 


달콤하고, 정열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즐거운 사랑을.


그를 껴안은 채, 그에게 껴안긴 채.


그의 사랑을 갈구하고, 또한 그에게 갈구받았다.



비록, 아이가 들어서는 일은 없어서, 아쉬움을 달래곤 했지만. 그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도. 그리고 나도.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우리 부부에게 남은 시간은 많으리라고 여겼다.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으니까.






----





"좋은 아침이에요, 여보..."


창밖에서 비추는 따듯한 햇살, 울리는 자명종 시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아침이었다.



"...여보?"


아침 인사를 건네면, 으레 인사를 되돌려주던 그. 



"....으으..."


그랬던 그가, 옆자리에서 신음하며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 왜! 왜 이래요?!"


몹시 고통스러운 듯. 바들바들 떨면서 신음하는 그의 모습. 


침대와 이불은 그가 떨며 흘린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여보! 여보!?"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를 붙잡은 채로 불러대기를 몇 번.



"...으....단츠...."


"나 여기 있어요! 정신 차려요!"


바들바들 떠는 입으로,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



"...부엌 찬장... 구석에....상자..."


"....!"


"...가져다줘..."


어째서인지도,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나는 무작정 그의 말을 따라,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부엌을 향해 달려갔다.



"찬장 구석? 여기? 어디지?!"


이윽고 도착한 부엌. 찬장을 쓸어버리듯이 뒤적이며, 나는 그가 말했던 '상자'라고 할만한 물건을 찾아 헤맸다.



"...이건가?!"


그러다가 말 그대로 찬장의 구석에서 찾아낸, 다른 물건들에 숨겨지듯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 숨겨져 있던 낯선 상자.


분명,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상자를 붙잡아 통째로 꺼내었다.


우악스러운 손짓에 밀려, 찬장에 있던 유리잔이나 그릇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그깟 물건들 따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신음이, 더욱더 커져가고 있었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게이트를 넘어 박차고 달려가던 그때처럼. 


마치 골대를 지나가듯, 나는 문지방을 넘어 다시금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가져왔어요!"


"..으...으으..."


무언가의 대답이나, 그런 것을 하기도 힘든 것처럼, 눈을 까뒤집은 채로 신음하는 그.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들고 왔던 상자를 살폈다.



"...진통제?" 


그 상자에 적힌 여러 가지 글. 


영어로 적혀있기는 했지만, 분명 그 상자 안의 내용물은 진통제라고 말하듯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금지 표시와 크고 붉은 글씨로 적힌 글은, 그것이 진통제지만. 또한 그것이 일반적인 진통제의 종류가 아님도 깨닫게 하였다.



"....!"


"으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신음을 토해내며 벌린 입. 그러나, 그것은 신음 때문에 벌려진 것이 아니라. 내게 그 진통제를 먹여달라는 뜻임을 눈치챘으니까.



"빨리, 빨리...!"


급한 마음 때문일까. 잘 열리지 않는 상자를 잡아 뜯어내듯이 열어, 약통을 꺼내어 그대로 약 한 알을 꺼내 그의 입에 집어넣었다.


이내 꿀꺽. 하고 그의 목으로 넘어가는 약의 모습.



"이...이제, 어떻게....?"


당황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이내 구급차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휴대전화를 손에 집어들었을까.



"....!"


"...괜찮아... 이제 괜찮으니까...."


아직도 떨리고 있는 손으로, 그는 내 옷자락을 붙잡은 채로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괜찮아. 나는 괜찮아. 단츠.. 그러니까..."


어떻게 보아도, 절대 괜찮지 않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애써 그렇게 연이어 말하는 그의 모습에.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아 주저 앉은 채로, 울면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






"...이혼해줘, 단츠." 


무척이나 따뜻해 보이는, 그때의 웃음을 지으며. 


그는, 나의 바람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 


내게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의 입에 진통제를 먹였던 그날 이후, 그의 입으로 진실을 들었던 그날 이후. 그는 병원에 입원했다. 


이제야 입원하러 왔냐는 의사의 물음에, 그는 입을 닫았고. 나는 울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불치병이라는 것은, 의외로 흔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그가 그러하였으니까. 



그도 처음에는 그저 몸이 좀 피곤하겠거니, 그저 지나가듯이 아픈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정기적인 건강검사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걱정하는 것 없이.



그러다가, 검사결과가 나올 때쯤. 돌연 연락한 병원의 전화에 살짝 불안한 마음을 품었고. 이내 심상치 않다는 의사의 말에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검사 결과는, 그의 몸이 병마에 천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병은 치료할 수도 없는, 생명이 위험한 종류의 병이라는 것.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서 관리받으며 연명치료를 하는 것으로 고통을 줄이고 살 수 있는 날을 늘리는 것뿐.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제 몸과 삶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당신...."


대신 떠오른 것은, 나. 


그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나였을 터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을 택했다. 


그저 진통제로, 하루마다 더해가는 고통을 참는다.


본래 쓰던 진통제로 버티지 못하게 되면, 점차 강한 종류의 진통제로 바꿔가면서까지. 



그는, 나와 함께 일상을 보냈다.


그저,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나의 사랑을 위해서.




내가 물어보았을 때. 그는 괜찮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내가 걱정하는 대신, 오롯이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칭얼대었을 때. 그는 갈등했다. 자신이 책임져줄 수 없는, 그런 짐을 내게 맡기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바람에 따라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는 나를 사랑해줬다.


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음에 아쉬워하면서도. 이내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절, 떠나보내려고 하려는 거예요?"


그는, 나를 떠나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놓아주려고 하고 있었다.


이혼이라는 것으로, 나를 놓으려 하고 있었다.



"저, 사랑한다고. 말해줬었잖아요!, 저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단츠..."


그는, 힘겹게 입을 다시 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지금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일 리가 없다. 


그는 사랑을 속삭이려는 것이 아니다. 분명하게도, 이별을 말하는 것일 터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듣고자, 남기고자 하는 귀가 쫓듯이 움직인다.



"너는, 아직 젊어. 그리고, 분명히. 너를 사랑해 줄 다른 상대도 만날 수 있을 거야..."


"제 상대는 당신 뿐이에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의 말을 묻어버리려는 듯이, 나는 크게 소리치듯이 말한다.



...그런다고, 그의 말이 묻힐 리 없다. 이미, 내 귀에는, 그의 말에 똑똑히 새겨져 들어왔으니까. 


털어내고 싶어서 귀를 움직여보아도, 당연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렇지 않아. 그러면 안 돼..."


"으으...!"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귀를 푹 숙여버린다. 


그것 만으로는 모자라, 귀를 붙잡아 숨기듯이 손으로 짓누른다.


그저, 그것 만으로, 지금의 이런 하루일지라도, 더 그와 보내길 바란다. 



"...저는, 계속 사랑하고 있단 말이에요... 트레이너 씨..."


그저 울음 섞인 말로, 예전에 그를 부르던 호칭을 꺼내 보인다.


아직,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당신을 놓지 못하니. 당신도 나를 놓아주려 하지 말아 달라고.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런 말은...."


나는, 눈을 감는다.


그저 그렇게,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고. 


그저 울면서, 어린 우는 아이처럼, 그에게 매달리고 싶을 뿐이다.




"...."


머리에 닿는, 가냘프지만, 따듯한 무언가.


그것은, 그의 오른손이다.



"...미안해. 단츠." 


"흐윽...."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울음은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




푸른 나비 한마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걸." 


살이 조금 더 붙은 그의 손을 붙잡고, 길을 걷는다. 


아직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건강해진 그의 모습. 그의 발걸음.



"...다행이잖아요. 치료법이 나왔다는 게."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그의 발걸음을 따라 속도를 조금 줄인다. 


화창한 날씨,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는 푸르른 길.


그와 함께 놀러 나온, 그가 머무르는 병원 근처의 공원.



그가 입원하고, 그의 마지막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고자 마음먹으며 그 옆을 지킨 날이 며칠일까.


어느 날. 기쁜 얼굴로 찾아온 의사 선생님은, '외국에서 실험적인 치료법이 고안되었습니다. 한번 시도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라는 말로 제안했다.


비록, 실험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는 제 의견을 덧붙이면서. 



당연하게도, 그와 나는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리고 그 치료법은 효과가 있어, 지금은 함께 주변 산책도 다닐 수 있을 만큼 그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정말, 그때는 그렇게까지 말해버렸었는데..."


"그거, 또 그런 말 해버리면 저 정말로 화낼 거에요?"


이혼하자고 했던 때를 떠올린 것인지, 픽 웃으면서 하는 그의 말에 짐짓 화난 얼굴을 하면서 답한다.



"안 해. 안 해. 절대 안 해. 내가 단츠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내 얼굴에, 그는 픽 웃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의 웃음에, 그의 말에, 나는 짐짓 화난 척하던 얼굴을 다시 되돌린다.



"...."


그러고는, 그의 곁에 딱 붙여 걷는다.


마치, 포옹하듯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디 도망 안 가는데 말이지..."


그런 내 행동에, 그는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살피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래도, 나를 밀어내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살포시 허리를 감아 안아줄 뿐이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걷게 해주세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그런 그의 손길에, 나는 더욱 그에게 매달리듯이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래, 단츠. 나도, 너를 사랑해."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저,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으니까.  












































----



"...."


묵념을 끝내듯, 나는 눈을 뜬다. 


껴안고 있던 것은 차가운 비석, 그 비석에 보이는 것은 그의 이름.



"아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눈물이 흐를 만큼, 깨어난 것이 아쉬울 정도로.


혹시라도 지금이 꿈은 아닐까. 두리번거리며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비석들뿐.


떠나간 자들을 위해, 남겨진 자들이 새긴 것이다. 



"...당신..."


그리고, 이 앞에 있는, 내가 껴안고 있던 것은, 내가 그를 위해 남긴 것이다. 


그의 이름과, 그의 성이기도 하고. 나의 성이기도 한 단어 몇 자가 적힌 묘비다. 



"...행복한 꿈이었어요. 당신이 꾸게 해주신 건가요?"


그렇게 물어도, 차가운 비석은 대답하나 해주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 있을 따름이다. 



"...."


나는, 손수건을 꺼내 묘비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랑했어요. 사랑해요. 사랑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다시금 한 차례, 묘비가 더러워질세라, 쓰다듬듯이 닦아낸다.



"아아... 저의 트레이너 씨, 저의 당신..."


사랑을 주고받던 그는, 제 가진 사랑을 한껏 새겨주고 떠났다.


그가 떠난 빈 자리에, 얼마 만큼의 사랑을 쏟아부어도 모자르다고 생각할 정도로.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저를 사랑했던 것을,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화창한 날씨,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는 푸르른 길.


그를 성묘하러 나온, 그가 머물렀던 병원에서 떨어진 어느 묘지.


그를 떠나보내고, 울먹이며 이곳을 찾아왔던 날이 며칠일까. 



이제는, 헤아리기 힘들다. 



"...갈게요. 또 올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을까. 



"...아."


푸른 나비 한마리가, 눈물이 흘러나오던 눈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는, 살포시 그의 묘비 위에 내려 앉는다.



"....울지 않을게요. 울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그렇게 눈물을 닦으며 다짐하면서, 나는 그를 떠올린다.


그의 웃음, 그의 손길을.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빨리 가면, 울어버리실 테니까.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갈게요. 알았죠? 당신..."


마치 대신 대답하듯이, 푸른 나비는 날개를 살랑 흔들었다.







































=======================



단츠, 이혼, 트또죽, 2단 통수, 새벽, 말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