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040034
2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151676
3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246193
4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305916
5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391365
6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486117
7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562135
8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737558
9화 https://arca.live/b/umamusume/120876608
-트레센 식당 오늘의 식단-
조던과 함께 식당 앞에 놓인 식단표를 확인한다. 메뉴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으으으으음...오늘 밥 괜찮은데?"
"야야야야 얼른 가자 얼른"
우리 넷은 각자 먹을것을 적당히 담아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으려니 조던이 어느쪽을 본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트레이너와 요시자와 트레이너가 배식을 받고 있었다. 어쩐지 두 사람은 즐거워보인다.
"헤에-"
그것을 보고있는 조던이 눈동자만 굴려 내 쪽을 쳐다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게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할 것같은 예감이다.
"왜. 밥이나 먹어"
"흐응-"
조던의 시선을 눈치 챈 파머와 헬리오스도 같은 방향을 본다. 이미 트레이너와 요시자와 트레이너는 사라져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파머가 물으니 조던은 내 눈치를 쓱 보고 "암것도 아님" 이라 답하고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내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으으...이 기지배가 진짜. 여기서 반응하면 내가 지는거다. 나는 애써 조던의 장난끼 가득한 시선을 무시하며 밥을 먹었다.
오늘 텐동에 올라간 가지튀김이 아주 맛있었다...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차라리 그걸 안봤더라면 맛있게 먹었을텐데. 그렇게 무슨 맛으로 밥을 먹는지 모를정도로 대충 먹고 각자의 반으로 헤어졌다.
"옆에 분명 요시자와 트레이너였지?"
"...어"
교실로 향하면서 조던이 내게 슬쩍 물어온다. 나는 조금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두 사람, 사이 좋아보였지?"
"내 트레이너가 신인때부터 도와준 선배니까"
"헤에- 그런가아-"
"어어"
"라이벌?"
그렇게 히죽거리며 나를 보고 도발을 해온다. 한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거 아니거든? 야, 그리고 아까부터 너 왜 자꾸 내가 꼭 트레이너...를 좋아하고 있는것 처럼 말하냐?"
나는 혹시라도 다른아이들이 들을까봐 목소리를 줄여 말했다. 조던은 세상 놀란척을 하며 "어? 아니였어?" 하며 또 히죽 웃는다. 하아...아. 벌써 교실 도착했네. 우리는 자리에 가서 앉았고, 조던은 앉은채로 몸을 돌려 내게 말했다.
"그럼 싫어?"
"뭐래 진짜"
"그럼 좋다는거?"
"하아...네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거든"
"그치만 너, 매일 트레이너님 방에서 데이ㅌ"
화들짝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조던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도 교실에는 아직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아이들이 얼마 없었고, 그 아이들도 이어폰을 끼고 자습을 하거나 본인들 일에 바쁜지라 우리 둘한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목소리를 낮춰야만 했다.
"너, 너 그거 어떻게"
"우으으으응 우으응응"
조던이 손바닥으로 내 손바닥을 파닥파닥 때리기에 일단 놔주었다. 조던은 푸핫 하고 숨을 뱉어냈다.
"아니, 야. 뭐야. 너 나 스토킹해?"
"시치. 나한테까지 숨길 필요 있어?"
"...그, 네가 뭔가 오해를 하는것 같은데"
"오해? 무슨 오해?"
"...하아...아니다. 더 숨겨봐야 이미 들킨건데 어쩔 수 없지..."
결국 나는 포기하고 모든걸 조던에게 털어놓았다. 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부분은 제외하고. 조던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래서 매일 저녁에 방에 없었구만? 라인도 잘 안보고"
"하아...미안. 숨기거나 거짓말 하려고 했던건 아니였는데"
"아니, 뭐. 다들 숨기고 싶은거 하나쯤은 있는법이고-"
조던은 갑자기 말꼬리를 늘리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사실은 그냥 떠본건데. 히히"
"...뭐?"
하아?
"그 왜- 지난번에 우리 영화보러 가기로 한 날. 그때 너한테 났던 향수냄새가 트레이너님 사무실에서도 났었거든"
아, 그때...일단 모르는척 해보자. 이건 방금 얘기 안했으니까.
"향수냄새?"
"어어. 평소에 안뿌리던 향수냄새니까 기억에 남았었는데, 그게 트레이너님 사무실에서도 나니까. 네가 여기 왔었나 싶었지"
"...근데 내 트레이너 방에는 왜 간거야?"
"어? 아, 너 찾으러"
"나 찾으러?"
"어어"
"애들한테 잘 말해준다고 했었지 않았어?"
"아...하하...그게- 막상 애들이 물어보니까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이 안나서 그냥 자고 일어나니 없어져서 잘 모르겠다고 했거든"
하아...얘를 믿은 내가 바보지...
"아프다고 하면 분명히 걱정된다고 너 찾는답시고 의무실이나 생활관 갔을거고. 스케줄땜에 먼저 갔다고 하는것도 그럴거였으면 네가 그렇게 말 못꺼낼 정도로 나한테까지 숨기지 않았을테니 그것도 말이 안되고. 아주 쬐끔 나도 궁금하긴 했고"
"그래서 거기까지 찾아간거야?"
"응. 근데 없어서 그냥 애들이랑 수다좀 떨면서 주스 얻어마시고 왔지"
그래도 애는 정직하다. 너무 정직해서 탈이지만.
"하아...그냥 그때 너한테라도 솔직히 말 할걸 그랬나보다"
"뭐, 그때는 나도 너한테 말하기 힘들면 말 안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지금 듣고보니 너 나름대로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였고. 말했어도 내가 뭐 어떻게 할수 있는게 아니잖음. 거기서 얘들아 트레이너실은 안돼! 하면 더 수상하지"
"그렇긴 하네. 애들한테는 나중에 따로 기회되면 말해야겠다. 일단은 너만 알고 있어"
"으응. 그래두 나한테까지 숨겼던건 좀 서운한데-"
그렇게 말하는 조던의 눈빛에는 정말로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다. 딱히 조던을 못믿어서 숨긴건 아니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마음이 어떤지 솔직히 내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냥 순간의 설레임이나 착각으로 생겨났던 마음이였을수도 있었으니까...솔직히 못믿었던것도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고?"
"앞으로?"
"어어. 고백할거야?"
"고백? 뭐래 진짜"
"아니, 그렇잖아. 내가 봤을땐 너 뿐만 아니라 트레이너님쪽도 호감이 없는건 아닌거 같은데"
"아니, 그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좀 아니지 않나 고백은"
"왜에?"
"그, 그렇잖아. 우리는 어디까지나 트레이너랑 담당이니까"
"그게 어때서?"
"그, 나 아직 미성년이야"
"그게 왜?"
"왜긴 왜야. 안되는거잖아"
"왜 안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안될게 뭐 있어?"
"사회적 시선이랄까, 그...교칙이나 법 같은것도 있고"
내가 조금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조던이 푸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얘 진짜 위험하네. 완전 진지하잖"
"야. 난 진심이거든?"
"아니, 푸하하하핫. 법이래 법 푸하하하 진짜웃겨 올 상반기 최고 명대사야"
"지금은 하반기야 멍충아"
"아 어쨌든~"
그렇게 배를 잡고 한참을 웃더니, 다시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 법이 뭐...푸흡...가 문젠데"
"...하아...됐어"
"아니, 나도 진지해...아 미안. 크흠. 진짜 진지해. 그래. 뭐 그런게 있다 쳐. 근데 네가 그런걸 왜 신경씀?"
"무슨 소리야? 당연히 신경 쓰이지"
"야, 그럼 내가 반대로 물어볼게. 학생과 트레이너가, 아니. 미성년과 성인이 서로 좋아하면 안된다. 이를 어기면 징역 몇년에 처한다. 이런 법이 있어?"
"그런건...없겠지. 내가 변호사냐 그런걸 일일이 다 알게"
"내 생각에도 그런건 없을것 같은데. 그럼 뭐가 문제야?"
"아 몰라 하여튼 안된다니까"
"왜 안되는거냐구. 네가 트레이너님을 좋아하는걸 솔직하게 말하는게 안돼? 법으로 막아논것도 아니구. 고백하면 경찰아저씨가 와서 어! 고백했다! 이녀석들 잡아! 하는것도 아니구"
"아니-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봐봐, 트레이너랑 내가 사귄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되겠어?"
"축하해줘야지?"
"아오...너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거고"
어쩐지 조던의 페이스에 말리는것같은 기분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내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확신이 필요하다.
"잘 생각해봐. 우리 매번 보건시간에 듣는게 그런 사고잖아. 몇년 전에도 남자 트레이너 하나랑 학생 하나가 뒤뜰인가? 기숙사였나? 하여튼 거기서 그렇고 그런짓 하다가 걸려서 짤리고 애는 퇴학당하고. 그...걔 이름이 뭐였더라...베스트 어쩌구 였던것 같은데"
"아, 아. 맞아. 나도 기억나. 그랬지. 그 트레이너 아마 깜빵갔을걸?"
"그래. 내가 말한게 그거야"
"흐음. 뭐, 듣고보니 아주 틀린건 아니네"
"이제 알겠어?"
"그치만 그거. 그렇고 그런 짓, 어디까지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하면 안되는 짓을 하다가 걸린거잖음?"
"그러니까 짤리고 퇴학당했지"
"그럼 안걸리면 되는거 아님?"
얘 방금 엄청 위험한 발언을 한것 같다. 나는 다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걔들이 걸렸겠냐?"
"아니, 굳이 걸릴일을 왜 교내에서 하고 다니느냐 이거지. 난 이해가 안되는데"
"그렇게 안하면 죽을거 같으니 그랬겠지"
"그정돈가- 흐음...난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조던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럼 너도 그러고 싶어?"
"어?"
"트레이너님 만나면 그러고 싶냐구"
"그, 그런다는게 어디까지를 얘기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모, 몰라! 애초에 왜 그런걸 묻는건데. 난 그냥..."
"흐음- 얼굴 빨개지는거 보니 이미 할거 다 한거 아니야?"
뜨끔
"아, 아니거든? 미쳤다고 내가 그러겠냐?"
"그거야 모르는일이지"
"어, 어쨌든. 하아...안돼"
"아니, 진심 답답하네. 뭔가 너 내 말을 오해하는거 같은데. 나는 너한테 트레이너님이랑 사귀고 그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라고 한 적이 없어. 막 네가 미쳐가지고 대놓고 발정난 강아지 마냥 트레이너님한테 달라붙어서 물고빨고-"
"야, 야, 말조심해 말. 뭐라는거야 진짜"
"쏘뤼~ 그렇게 막 그...온몸승부? 뭐라 해야되지?"
"...그냥 너 편한대로 해"
"푸흡. 알았어. 하여튼 그렇게 달라붙어서 하고싶은거 다 하라는 얘기가 아니란거지. 그렇게 한 그 사람들이 이상한거고. 그사람들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걸린게 아니고, 못참고 선 넘는짓을 하니까 걸린거잖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그냥 마음만 전해. 솔직하게 부딫히라 이거지"
"고백하라며"
"그게 고백이잖"
"...사귀는거 말고?"
"사귀는건 그 다음 일이고"
"고백하는게 사귀자는거잖아"
"하아- 증말 우리 시치 순진한건지 답답한건지"
조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애초에 서로 좋아하면 사귀어야 해?"
"당연하지"
"왜?"
"그야, 서로 좋아하니까?"
"그래. 그럼 너도 나랑 사귀어야겠네"
"무슨소리야 또"
"너 나 좋아하잖"
"아니, 우린 친구잖아"
"차콜 다 떼고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는건 맞잖음?"
"차콜이 아니라 차포겠지. 그리고 그거는 이거랑 다르지"
"근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좋아한다는 순수한 마음은 같은거잖아? 그리고 여자끼리 좋아서 사귀는 경우도 있고"
"...너 설마"
"아니아니, 나 남자 좋아하거든"
"하아...그래서 결론이 뭐야. 어쩐지 머리아파진다"
"시치. 기억해? 너 그때 매니저 언니랑 싸우고 기숙사 뒤에서 나랑 얘기했을때"
"어어..."
"그때 내가 그랬잖아.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힘들면 그냥 마음 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하라고"
"그랬었지"
"지금 너는 트레이너님이랑 만나면 어떻게 하고 싶은데?"
"..."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트레이너를 만나면 어떻게 하고싶냐니...그야 당연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
"바로 그거야. 또?"
"트레이너도 나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고..."
"또?"
"계속 같이 있고 싶고..."
"그리고 또?"
"으으으..."
"뭐, 손도 잡고 싶겠고 뽀뽀도 하고 싶겠고- 아니, 뽀뽀는 너무 애같잖음. 키스도 하고싶겠고-"
"키, 키, 키스?"
"그리고 손도 잡아보고 껴안아도 보고~데이트도 하고~그리고오~"
"그,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하아...그래서. 그걸 나보고 하라고?"
"아니, 아까 말했잖아. 그렇게 하면 안된다며"
"그럼 나더러 어쩌라구..."
"그냥 일단 마음만 전하라니까? 내가 보기에는 어쨌든 너도 트레이너님을 좋아하고 트레이너님도 너한테 어느정도 호감이 있잖아? 그리고 내 생각엔 네쪽이 더 좋아하는것 같고. 그럼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려. 나 트레이너님 좋아한다. 트레이너님은 나 어떻게 생각하냐. 아니, 꼭 물어볼 필요도 없어. 그냥 네 마음 솔직하게 말하기만 해도 돼. 트레이너님이 그 얘기 듣고 나도 너 좋아! 하면 땡큐고, 안돼 우린 학생과 선생이야! 하면...아니, 그것도 괜찮아. 그냥 너 어른 될때까지 기다리면 해결되는 일이야"
"만약에, 싫다고 하면?"
"그럴 일은 없을걸?"
"어떻게 장담해?"
"그야, 애초에 싫은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다정하게 해줄리 없잖아? 단순히 너를 담당으로만 생각했으면 굳이 그렇게까지 챙겨줬을까? 너는 네 트레이너님이 다른사람한테까지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거 봤어?"
"그, 요시자와 트레이너랑 친하잖아..."
"아니 바보야 그건 네가 말했잖아. 그냥 선후배 사이니까 그러는거지. 그 트레이너한테 옷이라도 벗어줬어? 너한테 그런것처럼? 막 자기 사무실에서 재워줘? 집 갈때 맨날 데려다줘? 저녁마다 같이 밥먹어줘? 선물도 사줘?"
"...모르지 그건"
"모를수가 없지. 아니, 몰라선 안되는거지. 애초에 네 트레이너님은 최근에 너랑만 같이 있었는데"
반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조던은 입에 모터라도 단 듯 계속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때 사무실 놀러갔을때도 우리한테 막 그렇게까지 다정하고 친절하게 해주지도 않았어. 그냥 주스 주고 할일만 했으니까. 솔직히 나랑 헬리가 좀 귀찮게 하긴 했는데 그래도 그냥 허허 웃으면서 일만 했다구"
...야. 그건 좀 사실이랑 다른거 같다? 너 헬리 부추겨서 계약시킬려고 했잖아. 생각해보니까 열받네? 애초에 이 기지배가 헬리한테 그런 소리만 안했어도-
"아, 그, 내가 헬리보고 트레이너님이랑 계약해보라고 한것도 있긴 한데, 장난이였으니까"
장난 아니였거든? 일단 여기서 따지면 얘기가 길어질것 같으니 그냥 말만 들어주자.
"어쨌든, 너네 트레이너님이 뭐 불친절하고 그렇다는게 아니고, 선은 확실히 긋는 타입이라 이거지 내가 봤을땐. 근데 너한테는 안그러시잖아? 그럼 뭐야. 너한테도 호감이 있으니까 그렇단거지. 단순히 담당이라서 더 챙기는건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어떤 트레이너가 담당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는데? 우리 트레이너도 안 그래"
"...진짜?"
"그럼 가짜겠음? 그치만말야, 트레이너님은 그걸 대놓고 표현을 못하는거지"
"어른이라?"
"응. 네가 걱정하는거랑 같은 걱정을 트레이너님도 하고있을거 아니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망설이는거 아님?"
"그렇긴 하지"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문제면 너랑 하루종일 같이 있는 너네 트레이너님도 같은걸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을거잖. 그리고 그쪽은 부담이 더 크다구. 어른이니까"
"근데 그러면 내가 내 마음을 고백하는게 더 부담을 주는 일 아닐까?"
"왜케 네거티브한데 너. 오히려 안심할수도 있지. 트레이너님이 널 좋아하고 있다고 쳐, 근데 그쪽도 아 나 혼자만 좋아하는거면 어떡하지. 시티는 학생인데. 나는 어른인데. 이 감정을 숨겨야하지. 잘못된 사랑. 불장난. 안돼안돼. 이런 생각 하지 않겠음? 그러는 사이에 너는 네 마음 숨기고 있다가 트레이너님이 마음 굳히고 접어버리면? 네가 말했던것처럼 사회적 비난이라던가, 교칙이라던가, 법이라던가...그런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마음 접고 막 괴로워하다가 다른 여자 만나면?"
"...그건 싫어"
"그러니까 네쪽에서 먼저 말하라는거야. 그래야 트레이너님이 당장은 그런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괜찮아질거아님? 뭣하면 몰래 사귀어도 되고. 그게 부담스럽거나 걱정이면 나중에 너 어른되고 사귀면 되잖음. 걍 기다려달라 한마디 더 붙이는게 어려워?"
"..."
뭐라 할 말이 없다. 얘 왜 이렇게 말을 잘해?
"야. 그렇게 꽁꽁 숨기다가 다른여자, 애초에 너네 트레이너님...너한테 이런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비호감은 아니고, 주변에 친한 트레이너들, 특히 여자들. 노리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을걸? 가까운 요시자와 트레이너만 해도 그렇고"
"아니, 그쪽은 말하자면 친누나동생쯤 관계야"
"그래도 진짜 친누나는 아니잖"
"...그렇긴 해"
"세상에 절대란 없어. 무슨 말인지 이해됨?"
"으응..."
그렇다. 조던의 말이 옳다. 애초에 나도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숨겨야만 했다. 사회적 시선때문에. 트레이너와 담당, 어른과 학생이라는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혼자 고민하고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좋아하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좋아하는 감정은 애틋해졌고, 커져만 갔다. 상자 속에 갇힌채 계속해서 바람이 불어넣어지는 풍선처럼 커지면 커질수록 아프고 죄여왔다.
"그리고 너도 네 표현이나 생각 표현하는거 서투르잖. 그래서 트레이너님이 더 답답해할 수도 있을걸"
"...아니라곤 말 못하겠네"
"그러니까, 이제 좀 솔직해져 보라 이 말이야. 그만 좀 틱틱대고"
"그...정말 괜찮을까"
"흐음- 솔직히 100퍼센트라고 장담은 못하겠는데, 애초에 나는 너네 트레이너님이 아닌데다가 너처럼 오래 같이 있지도 않았으니까"
"이제와서 무책임한 소리 하네"
"아니, 그치만 꼭 당장 이렇게 뭐가 된다 이런게 아니라, 그냥 계기만 만들어두란거지. 농사를 지으려면 밭부터 갈아야 할거 아니야"
"그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하아..."
"뭐가 더 남았어?"
"...아니. 솔직히 나도 너랑 같은 생각 하고 있었어. 다만...확신이 없었을 뿐"
"확신이 없는건 너네 트레이너님 쪽도 마찬가지일거. 그럼 네가 확신을 주면 돼"
그래. 내가 확신을 주면 된다. 조던의 말대로, 굳이 사귀는것 까지 갈 필요도 없잖아. 그냥 솔직하게 내 마음 전하고, 트레이너가 어떤 답을 하던, 아니, 답을 못받더라도 그걸로 됐다. 그걸로 솔직하게 내 마음 전할 수 있으면 된다. 전하지도 못하고 조던의 말대로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나버리는것보단 훨씬 나으니. 하지도 않으면 0퍼센트지만, 일단 하면 0.000001퍼센트라도 가능성이 생기는거니까.
"시작도 안하면 0인데, 일단 시작이라도 하면 0이 아니야. 레이스도 그렇잖음? 3천미터든 4천미터든 뛰어보지도 않고 아 안돼 무리 하면 영원히 출발선이라구"
조던이 내 마음을 읽고있는것 같은 말을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새삼 이 아이, 무섭다.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원래 조던이 진지할땐 한없이 진지하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거지? 마치 경험자인것마냥.
"일단 그쪽 마음을 확인 하고, 손을 잡던 키스를 하던 서로 끌어안고 자빠지던 그건 그 다음 일이란거지. 솔직히 그런 생각 안해봄? 진짜. 솔직히"
"그...아니, 안해본건 아닌데...네가 생각하는 그정도까지는 아니야...그리고 자빠지긴 뭘 자빠져..."
"어쨌든, 안 들킬 자신 있으면 몰래 하고. 러스크 감수하기 싫으면 나중에 어른 되고 떳떳하게 하고"
"리스크겠지. 그리고 미쳤다고 내가 어떻게 그런걸 해"
"그럼 너 어른될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님 트레이너님 쪽에서 너한테 그렇게 하게 만들던가"
"하아?"
"애초에 나는 그것도 안될거라고 보지는 않는데?"
"야. 되겠냐 그게"
"안될게 뭐 있어. 아니, 안될수도 있긴 하겠다. 선 확실히 긋는 타입이면"
"하아..."
조던의 말처럼 나 또한 트레이너에게 한창 나름대로 호감을 표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런 생각과 행동들을 해왔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미 나의 모든것들은 그를 향해있었다. 심지어 내 두 눈으로 그걸 확인까지 했었으니까.
"뭐, 어쨌든 내가 할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고, 근데 나 너 부추기는건 아니다? 그냥 네가 좀 옴팡질팡 하는것 같아서 그런거지"
"갈팡질팡이겠지. 그리고, 뭐...덕분에 생각이 좀 정리된것도 있고"
"그럼 됐지 뭐. 어쨌든 책임이나 결과는 네가 감당해야하는거니까"
"야, 여태까지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와서 발뺌이야?"
"아니이~ 그냥 내가 보기엔 그렇다구. 야 무조건 해! 이건 아니고, 그래도 나는 네가 후회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 해서"
조던에게서 무언가를 바란건 아니였다. 그저 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었으면 싶었다. 그랬기에 뱀부 선배에게도 물어봤었던 거고. 오히려 처음부터 조던에게 털어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얘기를 들을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 너...뭔가 좀...달라보인다?"
"흐응?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나의 말에 조던이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어보인다. 평소의 그 바보같이 멍하고 헤실거리던 조던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른처럼 보인다.
"뭔가, 어른같아"
"어? 진짜? 오늘 패드 넣긴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티 많이남?"
"..."
존경심이 3초만에 사라져버렸다. 애초에 여자밖에 없는 학원에서 패드따위를 왜 넣는거야?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점차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수업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하기로 하고 수업 들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왜 패드를...아니아니, 고백이라...고백...지금까지의 나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행동으로만 표현했지, 말로 꺼내본 적은 없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트레이너쪽에서 부드럽게 거절하는 식으로 끝났었기에. 그리고 나조차도 끝까지 말을 마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트레이너에게도 그런 확신이나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조던의 말처럼 그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테니. 그렇다면 확신을 주면 된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일순간의 호감같은게 아니란걸 그가 알아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여차하면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나를 좀 더 어필하는 방법도 고려해볼만 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좀 더 신경쓰게 해야 한다. 내가 늘 그의 생각을 하고 있는것처럼, 그 또한 매 순간 나를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으니까.
물론 두려움이 없는건 아니다. 그 두려움은 사회적 시선, 부적절한 관계보다는 트레이너가 나에게 부담을 갖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나를 거부하는 경우. 그렇지만 그럴 확률은 조던의 말처럼 매우 낮다. 그 확률을 더 낮추는건 내가 그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일것이다. 지금까지는 소극적이였지만, 조금 적극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그 사람은 둔하고 눈치가 없으니까, 자극요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아...그런건 좀 자신 없는데...
결국 그런 생각을 하며 2시간짜리 세계사 수업을 날려버렸다. 수업 내용 따위 머리에 하나도 남지 않았고, 더 있어봐야 집중도 안될것 같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척을 알아챈 조던이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오오, 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라구"
"뭐래. 이럴때 쓰는말 아니거든?"
"아 그래? 헤헹-"
"그리고 내가 어디 가는줄 알고"
"어디긴 어디겠어"
"칫. 맘대로 생각하던가"
그대로 교실 문으로 나가는 내 뒤에 조던이 "화이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내 친구지만 바보같다니까.
내가 향한곳은 당연히 트레이너의 사무실 앞.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한번 하고 머릿속을 정리한다. 조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갈 시간. 한번 더 되뇌인다. 어제보다 좀 더 솔직하게.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덜커덕 하고 문이 열린다. 트레이너가 안에 있다는 뜻. 열리는 틈 새로 사무실 안이, 책상 앞에 앉아있는 트레이너가 보인다.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오는걸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걸까. 기쁘다. 진정하자.
"뭐야, 나 기다렸어?"
괜히 떠본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 오늘 나의 방향성을 정해보자. 트레이너가 아니라고 답한다. 실망. 살짝 쨰려보며 앙탈을 부려본다. 그제서야 기다렸다고 답해준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기다렸다고 하던가. 그래도 뭐, 안하는것보단 낫지. 흠...봐줬다.
"60점"
"응?"
"다시 기회를 줄게. 나 기다렸어?"
이번엔 100점짜리 대답을 기대해본다. 이 남자,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한다. 하아...둔탱이...
"힌트 줄게. 다녀왔어"
나의 힌트를 들은 트레이너가 조금 고민하더니
"어서와?"
물음표때문에 1점 감점. 왜 확신이 없는건데 진짜...웃겨.
"99점"
풉. 그래도 애썼네. 아니, 아침에 잘 다녀와 했으면 당연히 왔을때는 어서와 라고 해야하는거 아니야? 진짜 이렇게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나? 으휴...그래도 뭐, 이런것도 재밌긴 하다. 하나하나 나에 대해서 알려주면 되는거지. 여태까지는 트레이너가 운동선수로서의 나, 컨디션이나 주법, 버릇, 적성같은것만 분석하는 입장이였다면, 이제 한 사람의 여자로서의 나를 알게 해주면 되는거다.
자, 이제 어떡할까?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트레이너쪽에서도 위화감을 느끼고 경계를 할 지도 모른다. 아직 남아있는 불안같은것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평소대로처럼 행동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마음의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대로 트레이너를 살살 흘겨보며 간이침대로 향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저 얼굴을 보니 웃음이 자꾸 난다. 앞으로가 더 재밌어질것만 같아서 흥분이 된다. 재미있다. 이래서 연애를 하는걸까.
"나 한숨 잘거니까 절대로 누구도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알았지?"
나의 말에 그가 "예 알겠습니다" 라며 답해왔다. 갑자기 웬 존댓말? 진짜 웃겨. 아 웃음 참아야 하는데.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은 나는 누운채로 수달 쿠션을 껴안고 곰곰히 생각했다. 일단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뭘 해야하지? 불러서 같이 한숨 자자고...아니아니아니 이건 너무 나갔잖아! 어린아이가 누워있다가 굴러다니다가 바닥을 기다가 걸음마를 떼듯이,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침대에서 잔것도 꽤 여러번인데, 트레이너는 어쩐지 내 쪽으로는 한번도 안왔었던것 같다. 물론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왔을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예민한 내가 바로 기척을 알아챘을거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남자가 내가 잠든사이에 무슨짓을 하지 않을까 아주 조금이라도 걱정 안한건 아닌데, 그럴만한 배짱이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아니지, 왔었긴 했다. 왔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몇번이나 왔었다. 늘 와서 본인 옷을 덮어주고 갔으니까.
정말 옷만 덮어주고 갔...우와.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부끄럽잖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단 말이야? 방금 예민하다고 했던거 취소. 한번도 안왔었던게 아니고, 나한테 손을 안댔다가 맞는거지.
으음, 어떡할까, 어떡할까, 살짝 불러볼까? 자장가 불러달라고...아니 무슨 애냐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하게. 나도 참 이럴때 보면 바보같다니까.
뭐, 머리 싸매고 억지로 뭘 하려 해봐야 떠오르는건 없을거고, 오히려 더 어색할테고, 그냥 진짜 잠이나 잘까? 아마 오늘도 옷을 덮어주러 올테니까.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해보자. 어차피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시간은 주로 저녁...응?
어느샌가 키보드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딱딱한걸 드륵 드륵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지? 그리고 소리가 멎었다. 의자가 삐그덕 대는 소리, 발소리, 인기척. 어? 지금 오는거야? 나 아직 잠 안들었는데?
나는 누운채 옆으로 몸을 돌려 커튼쪽으로 향했다. 커튼 바깥에 그림자가 비친다. 트레이너다. 그림자는 가만히 서 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걸까? 손가락이 커튼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커진다. 보지 않아도 그가 내 앞에 서있는걸 느낄 수 있다. 그는 가만히 있다. 가만히 서 있다. 옷을 덮어주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서있다. 뭐야? 대체 뭐야? 왜? 그리고는 다시 발소리, 기척이 멀어진다. 커튼소리가 다시 난다. 어쩐지 아까랑은 달리 서두르는듯한 발소리. 무슨 일이지? 그냥 나를 보고 있다가 돌아간거야? 왜? 어째서? 그냥 내가 자고있는지만 보러 온거야? 뭐지? 무슨일이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트레이너의 행동에 내 마음속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복잡하게 흐트러졌다. 설레임, 긴장, 초조함, 약간의 불안함, 이해할 수 없음. 대체 이 남자는 뭐땜에...
살짝 눈을 떠보니 커튼이 다시 닫혀있었다. 그냥 들어와서 나간 이유가 뭐지? 그리고 왜 다시 안오지? 옷 덮어주러 온거 아니였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몸을 움직였을때 스커트가 올라갔는지 허벅지가 거의 아슬아슬할정도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 설마 이것때문에 다시 나간건가? 근데 허벅지야 뭐 트레이닝 할때 맨날 보던거 아닌가? 애초에 수영장에서 하는 트레이닝이나 반바지 입으면 다 보이는데...
...아하. 그런건가.
그래. 수영복을 입거나 반바지를 입었을때 보이는 허벅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따라서 의식하지 않으려면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드러나는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가 내 허벅지나 다리를 대놓고 보는 기색은 없었지만.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다르다. 그냥 평소처럼 옷을 덮어주러 왔다가, 팬티가 보일정도로 잔뜩 드러난 내 허벅지를 보면 아무리 트레이너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트레이너를 자극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내 몸에 손을 대거나 옷을 고쳐주는 선택지 대신 그대로 돌아가버린다는, 그것도 다급히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고른거다. 그건 말 그대로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나를 깨우던지 무언가를 덮어주던지 아니면 평범하게 돌아갔을테니까.
그런거구나. 당신도 나를 여자로서 인식하고 있다는거구나. 내심 기뻤다. 어린 아이, 단순히 학생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닌, 이성으로서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살짝 달아오른다. 하반신 쪽에 약간 움찔하는 느낌도 든다.
조던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쪽에서 나를 의식하게 만들어라. 어쩌면 이 방법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조금 더 자극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천천히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