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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이야기입니다



올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던 것이 직전에 거두어지는 것만큼 사람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침묵 속에서 슈가 라이츠는 한동안 벌려둔 무릎 너머로 트레이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뒤에 편안하게 기대 꼭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다시 다가올 기미 따위는 없다.

슈가 라이츠의 눈썹이 급격하게 기울어지면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베개를 쥐고 있던 손이 내려와 매트리스를 짚었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상체를 일으켰을 때는 전투적인 흥분에 사로잡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나보고 다시 시작하라고?”

그는 가만히 시선을 피했다. 모든 시선이 자기와는 상관 없다는 듯이, 편안하게 숨을 뱉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귀를 바짝 눕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그의 턱 근처를 노려보면서 그녀는 으르렁댔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방금 전까지의 수줍음이 분노 앞에 녹아버리자 행동이 수월했다. 슈가 라이츠는 거칠게 타이를 쭉 내려 옆에 던져버리고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이 떨려서 움직임이 부정확하고 거칠었지만, 거의 뜯어내다시피 풀어 헤쳐버렸다.

멜빵 집게를 풀어 끈을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슈가 라이츠는 낑낑대며 몸을 위쪽으로 옮겼다. 슬금슬금,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처럼, 가벼운 습기를 머금은 그녀의 몸이 바지에서 튀어나왔다. 꼬리를 살짝 흔들어보자 베개 위쪽이 가볍게 쓸리며 간지러운 소리를 냈다. 그녀가 무릎으로 기어 그에게 다가오자 그제서야 시선이 돌아왔다.

“슈가, 천천히 해. 넘어지겠다.”

“걱정해주는 척 하지 마.”

척이 아니라는 건 그의 양 팔이 마중나와 주는 것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렇게 쉽게 화가 풀리진 않았다. 약간의 도움을 받아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셔츠 아래쪽을 잡아 위로 무턱대고 잡아당겼다. 두 번 정도 걸리는 느낌 뒤에 시원하게 말려 얼굴을 통과했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하고 코웃음치면서 그녀는 셔츠를 침대 옆으로 던져버렸다.

“엉덩이 들어 봐.”

“우와아. 이거 분위기고 뭐고 하나도 없네.”

바지 허리밴드에 손가락을 걸고 있으니 그가 킥킥 웃어댔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콱 잡아당기자 그의 몸이 가볍게 들려 기우뚱대더니 반 걸음이 가까워졌다. 고개가 낮아져 눈높이가 맞았다. 그녀의 가늘어진 보라색 눈이 이글거렸다.

“지가 제일 좋을 때 박살내놓고 그딴 소리하는 거 진짜 열받네.”

“미안해. 미안한데, 해야 할 일이었어.”

“그냥 날 놀리고 싶은 거잖아.”

“꼭 그렇진 않아.”

“시끄럽네.”

아, 하고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지더니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앞니가 살짝 어깨를 찍는 느낌이 났지만 무시했다. 그대로 입술이 오므라들면서 말려올라온 피부를 짧게 빨았다가 뗐다. 쪽,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축축한 멍자국이 남았다.

시선이 닿지 않는지 그는 확인을 포기하고 그녀의 입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지가 아직 촉촉한 표면을 가볍게 쓸었다.

“정박효과라는 게 있잖아, 슈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거라고?”

“아니. 그치만 네가 가만히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래. 같이 하는 거니까, 너도 뭔가 하려고 해주면 좋겠어.”

“그럼 처음부터 말을 그렇게 해.”

그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눌러두고 조금 더 다가온 그녀가 팔을 살짝 꼬집었다. 그의 양 팔이 웃음소리와 함께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왔다.

“그럼 널 놀릴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놀리는 게 목적이잖아!”

“솔직히 엄청 괘씸했거든.”

끌어당기는 손에 이끌려 어깨에 기댄 사이, 등 뒤에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고정시켜주던 갈고리가 풀린 속옷이 힘없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끈이 있던 자리에 손끝이 재촉하듯이 민다. 몸이 맞붙는 거리까지 끌어당겨왔다.

그리고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 귓가에 떠들던 소리가 사라지고, 무서울 정도의 침묵이 찾아왔다. 들리는 것은 숨소리 뿐이었다.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들리는 음악처럼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괘씸했는데, 뭐?”

침묵이 슬슬 초조해진 슈가가 물어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귀끝에 와닿는 조심스러운 숨소리 사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귀가 놀라 움찔였지만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앞으로 움직여 붙었다. 잘 모르겠지만, 그의 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대답을 해. 아니, 뭐라고 말 좀 해.”

등줄기를 타고 그의 손이 미끄러졌다. 힘주어 누르고 있었는지 중간중간 걸리듯 꼬리 바로 위까지 내려왔다. 다섯 손가락이 피부를 꾹 눌렀다. 그녀의 몸이 당겨졌다. 그의 몸이 다가온 것도 같았다. 허벅지가 맞닿을 정도 거리에서 그의 입에 귀를 대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가 짧게 흘린 낮은 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가볍게 습기를 머금은 피부가 맞닿아 가볍게 스쳤다. 찌르는 듯한 느낌에 서로 품 안에서 몸을 움츠렸다. 섬찟할 정도로 상황이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그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모르는 고동에 맞춰 망치질했다.

“내가,” 숨을 급하게 들이마신 슈가 라이츠가 눈을 들었을 때 마주친 그의 눈이 모든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표정이, 눈빛이, 친구에게 원하는 것 이상을 말하고 있었다. 원한다, 원하고 있다, 그런 실감을 뇌리에 때려박고 있었다.

“왜 계속 놀리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어?”

“으응?”

판단보다 웃음이 먼저 나서 그녀는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안았다. 살결이 가만히 눌리면서 생생한 감촉을 만들어냈다. 피부 아래 신경에 불이 들어온다. 단순히 위아래로 짧게 문지르는 동작이 불을 키워 땀이 나게 했다. 깊이 생각하고 하는 동작은 아니었다. 단지 그러고 싶었다. 그 편이 행복했다.

“뭐라고?”

“아니, 아무 것도.”

끈적하게 들러붙으면서도 매끈한 감촉에 그녀는 조금 몰두해버렸다. 그의 다리가 조금 안쪽으로 모이면서 손이 그녀의 꼬리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자리를 만들었다. 거기 앉히려 들어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붙어 앉자 배 아래쪽으로 꾸욱 하고 길다란 도장이 찍히는 느낌에 그녀의 꼬리가 곤두섰다. 놀란 얼굴로 숨을 들이마시며 올려다보자 그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더 가까이 붙이려고 손을 꽉 쥐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피부끼리 맞닿지 않은 부분이, 사이에 둔 천조각들이 스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움직임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그의 팔보다 그녀의 다리가 빨리 지쳐버렸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갓 태어난 사슴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저기.”

“왜?”

“나, 다리.”

“아아.”

그의 팔이 멈추고 달래듯이 안아왔다. 그가 그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자괴감이 들었다. 보통은 이런 일로 분위기를 깨진 않을 테니까. 속으로 욕을 삼킨 다음엔 자연스럽게 사과가 토악질처럼 올라왔다.

“그, 미안해.”

“응? 아니야.”

그녀의 몸이 살짝 뜨더니 침대에 눕혀졌다. 그가 웃긴 했지만, 딱히 비웃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시원시원했다.

“손으로 해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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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라이츠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그녀가 탓해야할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무지였다는 깨달음도, 그녀의 작은 손 안에 담긴 것에 비하면 사소하게 느껴졌다.

가볍게 쥐고 위아래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벙찔 정도로 설명은 쉽고 간단했지만 실제로 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그녀의 손 안에 있다. 그녀가 더듬더듬 말했다.

“저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니까? 너무 어려워?”

“아니, 이렇게 중요하고 취약한 걸 우마무스메의 손아귀에 맡긴다고?”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사고는 정말로 거의 보고되지 않으니까 괜찮아.”

“다리 부상을 당했던 우마무스메 사례보고도 충분히 신뢰할 만큼 많아?”

“별로 중요하지 않아.”

손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널 신뢰한다는 거면 충분하지 않아?”

그의 손에 그녀의 귀가 눌렸다가 쫑긋 솟아올라왔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몇 번씩 더 쫑긋쫑긋거리더니 표정이 풀어졌다. 작게 웃으면서 그녀가 볼을 붉혔다.

“충분해.”

“괜찮다니까.”

“잠깐만.”

몸 위로 올라오는 손에서 도망친 그녀가 그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중하고 싶으니까 가만 내버려둬.”


사티를 처음 조립하던 순간이 떠오를 만큼 집중했다. 그녀의 손이 기계적으로 설정한 듯한 정밀한 궤적을 왕복했다. 신칸센을 방불케하는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었다.

“슈가.”

“집중하고 있으니까 말 걸지 말아줘.”

그녀의 눈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특이사항을 체크했다. 말아쥔 손 윗부분을 미끈하게 젖게 만드는 것도, 이따금 자기 의사가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도, 긴급상황인 것처럼 흠칫 놀라곤 했지만 이제 괜찮다. 모든 것이 통제 범위에 놓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처음으로 손을 떼지 않고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왜 불렀어?”

“이제 연습 끝이야?”

“연습 아닌데?”

“집중하는 건 귀여워서 좋은데, 내가 계속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건 좀 삭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 번에 여러 일을 하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늘어나.”

그녀가 천천히 내려가던 손을 조심스럽게 떼고 의혹에 가득찬 눈빛을 보냈다.

“혹시 별로였어?”

“슈가야. 것보다 네 차분한 목소리를 스스로 들어봐. 너한테서 풍겨나오는 이지적이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그게 왜? 집중했으니까 당연한 건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어 무릎 위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앉혔다. 손을 그녀의 허벅지 위에 두고 등에 바짝 붙었다. 머리카락에 코가 살짝 묻힌 게 느껴졌다.

“여기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거야.”



시계가 5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슈가 라이츠는 베개 양쪽을 꽉 쥐고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목에서 자꾸 끓듯이 소리가 튀어나왔다. 수십분 쯤 전까지의 차분한 모습은 진작 사라져버렸다. 침대에 바짝 엎드린 몸과 달리 그녀의 꼬리만 위에 높이 떠 있었다. 아래로 드리워져있다가 이따금 큰 소리와 함께 솟구치면 그 아래 감춰졌던 그의 축축한 손이 보이곤 했다.

“아으으으, 으으, 으!”

“제대로 집중하고 있어?”

“그만, 진짜,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뭔가 이상해!”

매트리스에 묻힌 양 무릎 아래가 경직되면서 위로 자꾸 들려올라갔다. 그녀가 우려했던 대로 갓 태어난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그만 하라고 할 때 그가 한 번도 멈춰준 적은 없는데도 계속해서 호소하고 있었다. 그저 낯설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비일상적인 감각이 무엇인지 혼동되고, 약간 무섭다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집중할 것을 권한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피부 위를 쓸고 지나가는 그의 손이 따뜻했다. 그에게 기댄 몸은 편안해져서 잠이 올 정도로 나른해졌다. 그가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도 가볍게 심장을 들뜨게 하는 사실이었다.

그가 그녀의 감상을 이따금 물어보는 게 덜 부끄러워지고서야 뭐가 다른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의 손도 - 경험이 많아보이는 것 치고는 - 영 어색했지만, 그런 점도 사랑스럽게 느낄 만큼 훈훈함이 감돌았다. 그녀에게 신경써주고 있다는 것이 전해져서, 몇 번이나 입술을 오물거렸다.

터치가 서서히 익숙해지자 이쪽을 이렇게 만져줬으면 한다, 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사유과정 없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브레인스토밍, 그런 요구들이 채워질 때마다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는 아마도 그것들을 데이터화했던 것이 분명하다.

문득 꾹 눌리는 느낌에 조금 크게 움찔인 다음 순간,

“그쪽이 좋았어?” 하는 그의 속삭임에 그녀는

“......그런가?” 하고 약간 어리둥절해했지만 그때부터 밸런스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소리없이 웃으며 그녀의 귀 끝을 입술 사이에 두어 가볍게 굴렸다.

“어느 쪽이 좋았는지, 제대로 집중해서 말해줘. 나도 알아야 하니까.”

“으으응.”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다리쪽의 감각이 슬슬 위험했다. 지쳐서라기보다는 너무 힘이 넘쳐서 곤란했다. 그렇게 잔뜩 힘이 들어간 적이 부상 이후에 거의 없었다. 거의 꺽꺽 우는 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귀엽지 않다느니 검토할 여유같은 건 없었다.

“제대로 집중하고 말해줘야지, 슈가.”

“무리, 무리! 무리야!”

아픔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기쁨과도 다르다. 그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좋다 싫다의 범주 밖에 있었다. 그저 순수한 자극의 포화 상태에서 발바닥이 허벅지를 건드릴 정도로 다리가 접혔다. 등을 꾹 누르는 느낌이 났다.

“허리 조심하고.”

허리를 조심하려면 몸이 이렇게 휘면 안된다는 사실은 운동을 해봤으면 알지만 의지대로 잘 되진 않았다. 그나마 주의를 받아서인지 홱 꺾여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가벼운 이명이 고동소리에 맞춰 울리는 동안 몸이 침대 위를 구르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휘휘 저어놓은 찻잔 속 내용물이 된 기분이었다. 뭐라 말하기 힘든 파도가 그녀의 몸을 씻어내리고 나니 잔해처럼 힘 풀린 사지가 늘어졌다. 그 위로 그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후후.”

그가 웃자 따라 웃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부끄러워서

“뭐가 그렇게 웃겨?”

하고 쏘아붙였지만, 몸 위에 올라오는 그의 손을 거절하진 않았다. 손 안에서 말랑말랑한 감촉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웃음 뒤에 막을 살짝 걷어보면 알량한 정복감, 그리고 그보다 조금 큰 성취감이 보였다. 그녀를 건드리면서 얼마나 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성취감이 웃음의 원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이상으로, 상대의 기쁨의 원인이 되었다는 성취감 말이다.

“너는 뭐가 그렇게 웃겨, 슈가.”

“......그냥.”

슈가 라이츠는 눈을 감고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가 다가오는 것에 맞춰 조심스럽게 양 손을 내려 더듬더듬 붙잡았다. 이번에는 배운 점을 제대로 피드백해서 시행할 계획이었다. 형태를 신중하게 매만져 그리면서 그녀가 그의 입가에 속삭였다.

“이제, OO 군이 집중할 차례네.”



슈가 라이츠는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이미지 트레이닝과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철저한 계획도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쓸모가 없었다.

“진작에 솔직했어야 했는데.”

입구 바로 앞까지 와서 노크하면서 그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똑같은 생각이었다는 게 그녀의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해 줬다. 쉽고 빠른 길을 알고 있대도, 그 역시 고르지 못하고 빙빙 돌아 왔을 테니까. 조금 후회 되더라도 날이 밝기 전에 여기까지 와서 다행이었다.

짧게 눈빛을 교환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그가 밀려들어왔다.

이전에 누구에게도 허용된 적 없는 길을 지나는 느낌에 슈가 라이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약간 버거운 소리를 내자 걱정하는 말이 돌아왔다. ‘이제 와서 무슨’ 하고 그녀는 가볍게 일축해버렸다.

“다리 망가졌을 때보단 훨씬 참을만 하니까 괜찮아.”

“눈물이나 좀 닦고 말해.”

“......기쁨의 눈물이야.”

둘러대면서 팔을 벌리자 그가 팔 안으로 들어와 붙었다. 조금 더 긴장이 풀리자 여유가 생겼는지, 체중이 조금 더 깊이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 숨을 토해냈다.

솔직히 다시 하기 싫을 만큼 아팠다. 자신이 이걸 바랐다는 사실을 가볍게 후회할 정도였다.

고통은 그녀에게 실패와 연결된 감각이었다. 완주하지 못한 레이스, 움직이지 않는 다리, 뜻하지 않은 은퇴, 고통을 트리거로 딸려오는 기억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매달려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앞으로 얼마를 더 버텨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런 개인적인 사정들이 그와 연결되는 기쁨을 가리는 건 싫었지만, 더 가깝고 선명한 감각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몸이 잔뜩 긴장해버리는 것도 그랬다. 그녀는 다가올 고통을 예견했다.

다시 밀려드는 아픔에 턱 걸리는 소리를 토해냈다. 평균적으로 몇 번이나 움직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끝까지 견딜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만둘 수는 없다. 중간에 뺄 수도 없다. 둘 다에게 씁쓸한 경험을 남기기 싫었다. 순전히 허세와 오기로 버티겠다고 마음먹자 더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려 했다.

무엇보다 처음 이후로 그녀를 걱정해주지 않는 그를 향해 별별 생각이 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실망했다거나, 귀찮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와 이렇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더 굳어버렸다.

“......저기이.”

“......응?”

“괜찮아?”

그 말에 그는 잠깐 고민하듯이 침을 삼키더니, 몸을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전혀 대답이 되지 않았다. 깊이 훅 찔러들어왔다. 짧게 진동하는 느낌에 그녀가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대답하듯 다급한 숨소리와 함께 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슈가 라이츠의 배 위에 하얗게 눈발이 흩뿌려졌다. 그 위를 서늘한 새벽 공기가 지나고서야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볼 정신이 들었다. 유감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겨냈다는 기묘한 성취감이 다른 감정을 다 잡아먹었다.

“아 ㅋㅋㅋ”

해냈다. 해버렸다.

아무튼 그녀의 유혹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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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이는 그냥 소재인건데 한편을 다 잡아먹게 쓰는건 처음임

뾰이씬 잘 쓰지도 못하는데 몰아놓은 대가를 일시불로 치르니 현타가 온다

그냥 내가 어쩌다 이렇게됐는지 생각하면서.....반성하면서..... 인생을 다시 돌아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