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도 그렇지만, 승마는 더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야.


물론 경마가 더 접근성이 편하긴 한데,

우리보다 경마가 더 발달한 일본에서조차 올림픽 금메달 1개+승마 그랑프리 볼모지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승마는 거의 유럽~미국의 전유물에 가깝다.


솔직히 경마 교배는 좀 양심적이라고 생각드는게 얘네는 이 고인물 싸움에서 서로 빠요엔 시키겠다고,

다른 품종끼리 교배는 기본이고, 체외수정이나 뭐 그런거까지 동원하는 종목이니 말 다했지.

(그놈의 메를린의 유전자를 돈만 생기면 질러대는게 이 승마놈들임.)




아무튼 이 지랄맞은 고인물 빠요엔들이 설치는 승마 종목에서 올림픽 메달 9위를 차지한게 러시아 그니까 구 소련이고,

그 첫 메달을 가져오고 이후로도 활약했던 말은 '블랙스완' 압생트(Absent)라 불리는 말이었다.


나무위키에 한줄 딸랑 써있는거 보고 예전 책에서 읽고 기억나는데로 써본다.





압생트의 품종은 가장 아름다운 말로 불리는 아할 테케다.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금빛 털의 윤기가 매우 인상적인 말이다.





(부마인 아랍. 아할테케 라곤 하지만 대충 고루시 비슷한 컬러라고 한다.)


압생트는 1952년 아랍과 바카라 사이에서 루고브스키 마장에서 태어난 말이었다.

아랍은 1949년 소련 컵에서 우승했던 말이었고, 바카라는 후술하겠지만 성격덕에 그냥 평범하게 지내던 말이었음.


아무튼 압생트는 어릴 때부터 이쁜 말이었는지 1954년 소련 박람회장에 부마인 아랍과 같이 성과로서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은 말이었다.


딱히 훈련을 한건 아니었는데도,(오히려 아랍이 장애물 비월을 훈련받은 말이었다.)

이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는지 탔던 기수가 매우 부드럽다거나 절제된 조각 같다며 신기해했다더라.




그리고 1960년 로마 하계 올림픽에 세르게이 필라토브의 파트너(라 쓰고 본체)로 대충 개최 2년전에 결정된다.

필라토브는 1956년 스톡홀름 하계 올림픽에서 11위를 차지한 선수였다.


당시 소련당국은 올림픽 승마에서 높은 점수를 따는데엔 말의 비쥬얼도 중요하다고 판단.

일단 비쥬얼 스탯이 높은 압생트를 짝으로 지어준다.


문제는....


1. 승마는 웜블러드가 유리한데 아할테케는 핫블러드.

2. 루고브스키 마장의 훈련은 전문적이지도 않았음.

3. 그나마 한 훈련조차 아랍이 시범보이는 장애물 비월.

4. 그런데 나가는 종목은 마장마술.

5. 이 와중 바카라의 지랄맞은 성격도 조짐을 보이기 시작.(바카라가 서러브레드가 섞여서인진 모른다...)


물론 승마에 쓰이는 말이 7세 정도쯤 되면 앵간한 기술은 구사한다.

(보통 경마가 3~5세 정도가 전성기라 친다면 승마는 8~14세 정도가 전성기다)





문제는 이것도 어릴때부터 제대로 꾸준히 훈련을 받아야지, 

압생트는 본격적인 마장마술 훈련을 올림픽 시작 2년전인 6세부터 받아야 했다.


이런 소련식 급성주입식 성장교육을 받은 말이 앵간해선 스트레스로 마음속에 고루시를 품게되어,

기수를 지능적으로 엿맥인단 사실을 필라토브는 매우 자~알 알고 있었다.

(1956년은 필라토브의 미숙함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에게 엿을 먹은 것도 있었다.)







필라토브는 압생트가 마음속에 고루시를 품지 못하도록 자신의 지인인 세르게이 시르코(이하 세르게이)를 부른다.

세르게이는 충 50년 이상 소련 육군 기병대의 기마를 훈련시키던 사람이었고 바로 압생트의 훈련에 투입된다.


좋게말하면 강인한 성격의 변덕꾸러기, 대놓고 말하면 개썅마이웨이 지랄마의 조짐을 보이던 압생트였지만,

훈련때마다 필라토브가 직접 타고, 세르게이도 일일히 막대로 다리 자세를 교정하는 등 말만 고생하지 않고 

자기들도 동고동락하는 훈련방식 때문인지 우려했던 지랄마 사태는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959년에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내수용이었던 스파르타키아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스위스 장크트칼렌에서 열린 예선에서 당당하게 2등을 차지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그리고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개인 마장마술.

당시 금메달 후보마는 2관왕인 스웨덴의 레투알, 명가인 서독의 아스바흐, 주목받던 신예 스위스의 왈드에서 나오지 않을까 했다.


특히 압생트는 로마까지 오는데 다른 말들에 비해 스트레스를(마차-배-마차)받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압생트가 금메달을 수상한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관중들도 납득할만큼 압생트의 자태는 완벽했다고 한다.

'블랙 스완'이란 별명도 이때 미국 선수가 압생트가 아름답다고 붙힌 별명이 유래였으니 말 다했지.

(소련 신문엔 첫 우주비행 이후 쾌거라고 하던데 첫 금메달이니 그러려니 하자.)





(1960년 요제프 네커만과 아스바흐)

하지만 이후 있던 1961, 1963년 아헨 그랑프리에선 서독의 아스바흐에게 밀려 2등을 차지하게 된다.

기술은 압생트가 더 높게 받은 것도 있었지만 압생트가 중간중간 입을 벌리고 있었던게 감점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 설욕은 아스바흐가 1963년 그랑프리를 끝으로 은퇴함에 따라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선

마장마술 개인과 단체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이 64년은 여러모로 놀라운 대회였는데 모든 말들이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으로 디버프 잔뜩 처먹고 시작한 대회였다.





이후 그랑프리에선 유독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각국의 신예 웜블러드의 등장과 압생트로 나름의 훈련 노하우가 잡힌 구 소련의 신예인 이코르와 페펠에게 밀리고 있던게 컸다.

(그리고 당시 일반적이던 기차로 옮겨지는 방식을 지랄맞게 싫어했던 것도 있다고 함)





그리고


1968년 멕시코시티 하계 올림픽.


이미 웜블러드 판인 승마에 쟁쟁한 우승후보 이코르와 페펠이 버티고 있고,

비행기로 자체디버프 받고 가는 곳이 해발 2,300 미터라 산소도 부족함.

더군다나 이미 전성기는 지난 16세였던 만큼 압생트가 순위권에 들거란 생각은 아무도 안했다.



하지만


마장마술 개인전은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18점 차이로 4등

(금~은메달을 이코르랑 경쟁할 줄 알았던 페펠은 6위했다 이런...),

단체전은 은메달을 따는 마지막 저력을 보이고 은퇴한다.



이후 종마로서 여생을 즐기다 1975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대충 요녀석 자식이 70마리인데 이중 50마리는 아할테케 교배를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요청한것도 있고,

20마리는...음...이유는 모르는데 다른 유럽국가 요청으로 서러브레드나 뭐 이런애들이랑 교배한 것도 있다.


암튼 자식들 대다수는 얘가 좀 천재끼가 있어선지 그랑프리에서 이름을 날리긴 한다.

가장 닮은 애가 아바칸이라는 애인데 그랑프리 씹어먹다 모스크바 올림픽 전에 요절해서 얘가 압생트보다 뛰어나다 뭐라 할 순 없다만...






ps. 사실 이 압생트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건 스위스의 왈드(wald)임.

스웨덴 웜블러드인데 올림픽에서도 드물다는 7세 데뷔 이후 압생트랑 멕시코까지 아웅다웅한 놈이다.

(60 개인 은메달, 64 단체 은메달, 68 단체 동메달)



근데 승마사에선 왈드보단 왈드의 아버지인 드라반트의 먼 손자

1988 서울 하계올림픽 단체 은메달, 개인 동메달로 더 익숙할 고갱 드 륄리(Gauginn de lully)가 아무래도 수상이력이 더 많아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