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렸던 럭키우라라에서 고루시도 알로이스랑 만났다면 바뀌지 않았을까 라는 반응이 있어서 좀 놀라웠는데,

개인적인 견해론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아니 고루시라면 백번 양보해서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오르페브르는 알로이스 조상님이 와도 못고칠거 같다는게 주관적인 생각이다.


경마계에 오르페브르가 있다면, 승마계에는 뵈어만(Woermann)이라는 비슷한 또라이 혹은 천재가 하나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 말을 교정하는 것은 실패했다. 아니 말이 개선될 생각이 없었다.



들어가기 앞서 생전 뵈어만에게 붙은 별명은 왕좌의 악당, 어둠의 악마, 시한폭탄이며 일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 기수에겐 미친개. 그 외의 사람이나 말에겐 지옥에 온걸 환영한다 애송아.






뵈어만의 품종은 스웨덴 웜블러드다.

서러브레드에 아라비안, 트라케너 그리고 하노버리안이라는 희대의 교잡을 자랑한다.


영국 경마계의 전설인 히페리온과 같은 1930년대에 경마, 승마 통틀어서 이름 좀 날린 말들의 씨를 얻어 또 개량한 로열한 잡종이거든.

(히페리온보단 그 외손자인 니아크틱이 더 유명하려나?)


아무튼 1951년 스웨덴의 마장에서 태어난 뵈어만은 망아지때부터 이쁜 외모가 아까운 또라이의 싹수를 보여줬다.

지보다 더 나이 많은 말의 꼬리를 무는것은 애교고, 다른 망아지에게 줄 각설탕도 뺏어먹는 등 조교사와 관리사의 케어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쳤다고 한다.

근데도 승마기술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말들보다 더 빨리 배웠단 것 역시 천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1954년

스위스군은 마장마술에 쓸 말로 스웨덴 웜블러드가 적합하다 판단,

뵈어만을 포함한 스웨덴 웜블러드 무리를 대량으로 사온다.



그리고 뵈어만의 기수로 배정된,

전 스위스 기병대 소속이자 현 마장마술 기수였던 헨리 차마르틴(Henri Chammartin)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헨리의 이력을 간단히 요약하면,

1938년 20세에 스위스 기병대 소속이었고, 1952년 독일 아헨에서 열린 비공식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루키였다.


전에 소개한 네로의 기수였던 엘로이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그의 책을 읽고 그걸 실천하는등 엘로이스와 같이 나쁜 말은 없다는 주의였고,

동료 기수들은 그는 말을 기다리고 믿어준다며, 그의 인내심을 칭찬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었던 뵈어만은 헨리의 사상을 매우 부정하는 악마였다. 

아니 시험에 들게하는 사탄이었다.



뵈어만은 처음엔 순순히 헨리가 등에 타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훈련을 받는데...여기서 부터 이 악마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장마술 훈련중에도 가끔씩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당시 같이 받던 군사훈련중 다른 말에게 시비를 털지를 않나, 마을 도로를 건너는 과정에서 만난 시민들을 물거나 걷어차려고 했다.








헨리는 뵈어만이 아직 어리고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어 하는거라며 최대한 이해해주려고 했다.

동료들에게도 성격이 나쁜게 아닌 극단적이고 사실은 나를 못믿는 착한아이라고 엘로이스의 가르침을 신봉했다.


그래서인지 뵈어만이 자기를 떨구려고 하거나 로데오를 벌여도 재치있게 대응해주었다.

독일 비스바덴에서 열린 FEI 챔피언쉽에서 첫 데뷔 겸 1등을 성공적으로하고 수상도중 로데오를 벌였어도 말이다.





뵈어만의 마장마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으나 그에 비례해서 기행은 더욱 심해져갔다.

이 광증은 종종 경기 도중 튀어나왔고, 

경기는 중도에 로데오 혹은 투마(경기에 참가한 다른말들한테 시비털음) 심할땐 수상식이 관중과의 콜로세움으로 변질되곤 했다.

어느날은 밤 연습까지 온순했다 다음 날 아침엔 마구간에서 미쳐 날뛰며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면서 골드 쉽의 그것을 넘어서서 광증의 영역에 가까웠다.





이러다보니 

1960년 로마 하계 올림픽에선 헨리는 얘와 비슷한 시기에 배정된 울프 디트리히를 타고 나갔다.

울프 디트리히는 비록 배우는 속도는 뵈어만에 비해 느렸고 마장마술도 뒤떨어졌으나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엘로이스의 가르침을 긍정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얘한테 붙혀진 별명이 귀족, 신사일 정도로 순종적이고 착했다.


그리고 뵈어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차안에서 날뛰고, 이후 대회장에서 만난 압생트(소련팀의 그 말 맞다)를 걷어차려는 등 문제행동을 보였다.

비록 수상은 실패했지만 이후 승마대회에선 뵈어만과 울프 디트리히를 같이 끌고 나왔다.


올림픽이 끝나고 스위스 기수들 간의 뒷풀이 파티에서 뵈어만은 네 다리로 있는 시간보다 두 다리로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후 열린 승마 그랑프리에서 마장마술을 선보이던 중에 관객석에서 팔던 맥주상자가 실수로 경기장에 떨어지자 갑자기 로데오를 선보이는 등 여러문제가 발생했다.


이 이후 헨리는 경기 시작전 뵈어만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며 뵈어만을 진정시켰고,

광증이 보인다 싶으면 그냥 울프 디트리히를 타고 경기에 나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평균적인 마장마술 실력은 울프 디트리히가 앞서게 된다.

물론 이 꼼수는 1964년 하반기부터 승마대회 참가자 1인당 말 1마리로 바뀌면서 막힐 예정이었다.




어차피 1964년에 열릴 올림픽에서 헨리는 울프디트리히를 타고 뵈어만을 서브로 둘 예정이었다.








그리고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

이 대회는 전에 말했듯이 여러모로 놀라운 대회였는데, 모든 말들이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으로 디버프 잔뜩 처먹고 시작한 대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홈그라운드 이점을 가지고도 일본은 이후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승마 메달을 하나도 못딴다.)

그리고 헨리에게 불우하게도 이 디버프를 울프 디트리히가 직격으로 맞았다....


동료기수들은 이미 뵈어만의 광증을 곁에서 생생히 지켜본 경험이 있으므로,

자신들이 뵈어만을 탈테니 대신 왈드 혹은 스테판을 타라는 선의의 제안을 했다.

하지만 헨리는 뵈어만의 기수로서 직접 뵈어만을 책임지고 타기로 하고 대회전날까지 마지막 연습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뵈어만은 그 광증에 걸맞는 재능임을 증명하듯이 마장마술 개인 금메달과 팀 은메달을 따온다.





그리고 스위스의 영웅이 되어






















1964년을 끝으로 승마 은퇴 후 종마+마장마술 강사생활을 하게 된다.










대충 이 샛기가 올림픽 기간동안 벌인 사건들만 나열하면 이렇다.


비행기 타기 싫다고 사람들 발굽으로 걷어차기.

일본행 비행기에서 날뛰기.

동료말인 왈드와 울프 디트리히의 꼬리를 씹기.

말리려던 왈드의 기수 들이받기 시도.

연습중 로데오+두발로 서는 기행하기.

다른 선수들의 말이 보이면 걷어차러 가기.

경기 당일날 마주친 압생트에게 걷어차기 시도.

압생트의 기수 필라토브 깨물기 시도.

수상식이 끝나고 다른 말들+기수들에게 투우 간접 경험 선사.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또 날뛰고 부상.



금메달의 반동이라고 생각하면 싸긴 개뿔. 수틀리면 세계대전이 터질뻔했다.

뵈어만의 온갖 지랄을 경험한 헨리는 이 말만큼은 엘로이스가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동료기수들 역시 뵈어만이 언젠가 경기중에 크게 사고를 친다 판단하고 헨리의 결정에 동의했다.



물론 은퇴한 뒤 마방에서도 얄짤없이 지랄해서 관리사는 물론이고 다른 말들도 이 새끼 곁에 있는걸 피했다.

그나마 기수인 헨리한테 덜했지만 헨리가 없을땐 그야말로 폭군 그 자체였다 씨바.

그렇게 1971년에 병에 걸려서 고통스러워 하자 결국 안락사 당하고 사탄곁으로 돌아갔다. 





비록 다른 종목이지만 똑같이 말에게 시달린 기수가 있다는 것은 이케조에 아조씨에겐 다행이 아닐까?






ps. 오히려 울프 디트리히의 부마가 서러브레드인데도 착하고 순종적이었단 점은 여러모로 레전드.

ps. 근데 뵈어만의 자마들은 저런 광증없이 순했던것도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