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에서 G1을 우승하는 말이 손에 꼽고 3회 이상 우승이 드물듯이,

승마에서 올림픽 메달을 차지하는 말은 손에 꼽고 그 중에 메달을 2번 이상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금메달을 2번 연속으로 따는 넘사벽 업적을 세운 말들도 있기야 한다.

램브란트, 살리네로, 벨레그로 등등.


근데 얘넨 천재의 스탠다드 같은거라 그런건지 업적은 비범한데 삶은 좀 평범하다.

나중에 쓸진 모르겠다만 얘넨 정말 이야기가 심심하다. 아직 2마리는 살아있기도 하고.

(그나마 살리네로는 생중계로 사람들을 웃기게 하긴 했다. )





여기서 그나마 덜 심심한 일화를 지닌게 카리스마(Charisma)다.








카리스마의 품종은 말붕이들에게 매우 친숙한 서러브레드다.

정확힌 스포츠 호스라고 하는데, 스포츠 호스는 개뿔이고, 그냥 4분의 3 서러브레드에 4분의 1 웨일스 포니다.

(애초에 스포츠 호스자체가 특정 경기를 위해 자란 공통적 유형을 가진 말들을 걍 품종이랍시고 어거지로 정립한거다.)


카리스마는 1972년에 티라밍크와 플래닛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마인 티라밍크는 평범했다만, 플래닛은 저 장애물비월이나 폴로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일단 영국+영연방이 승마가 좀 후달리긴 하는데, 그래도 장애물경주 짬이 있는건지 장애물 비월이나 종합마술은 좀 선전하는 편이다.





아무튼 카리스마는 어릴적부터 두각을...드러내지 못했다.

아니 솔까말 그냥 평범했다고 한다. 1.2m 울타리를 넘어다니는 거랑 식성만 빼고.


좋게말하면 먹성이 좋다, 나쁘게 말하면 돼지 그 자체였다.

어미말의 젖을 먹고도 또 풀을 뜯어먹는... 뉴질랜드 오구리 캡 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그리고 훗날 이 말과 같이 뛸 기수인 마크 토드(Mark Todd)는,

당시 카리스마가 있던 농장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었다.


원래 경마 기수를 생각했지만 키가 1.87m라 경마는 접고 걍 장애물 비월과 종합마술 기수로 전환했다.

그래도 기술 하나는 끝내줘서 당시 시험치던 감독관이 

'이놈이 말타는건 다른 학생들한테 불공평하니까 젖소나 그런거 타고 해야한다.' 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집이 좀 가난한 편이라서 일단 졸업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농장일을 하면서 기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젊은이였다.





(90년대 사진인데 마크의 키가 큰편이기도 했지만, 카리스마는 그 나이대의 서러브레드 치고 올해 태어난 가장 작은 서러브레드로 기록될 정도로 작았다.)


1973년 

마크와 카리스마의 첫 대면은 매우 최악이었다고 한다.

카리스마의 마주인 농장주가 악덕이라 토드를 비롯한 일꾼들을 부려먹은것도 있었거니와,

마크가 아침 대용으로 먹고 있던 사과를 카리스마가 다가와서 처먹은 행동은 앞으로 있을 인연치곤 최악의 첫인상이었다.

어린건 둘째치더라도, 말이 사람의 음식을 가로챈다는건 이후 기수의 지시도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있었다.


이후로도 카리스마는 마크랑 동료들이 노가다 뛰고 식사를 할때 와서는 그걸 뺏어먹거나 구걸했고(졸졸 따라다녔다.), 마크도 걍 해탈했는지 나눠줬다.

(인터뷰에선 불쌍하게 쳐다보길레 동료들이랑 조금씩 샐러드를 모아서 나눠줬다고 한다.)

마크는 같이 노가다를 뛰던 친구(훗날 같은 대표팀 동료)에게 카리스마를 가리키면서 

'귀여운 말이지만, 식탐이 너무많고 작아서 대회는 못나갈꺼다.' 라고 설레발을 쳤다.



아무튼 1975~76년에 농장주가 마크와 노동자들을 열정페이로 부려먹다 마찰이 생겨서 지금까지 일한 몫을 받는 것으로 목장에서의 만남은 끝이났다.

(이 와중 농장주는 마크를 엿맥인단 심산이었는지, 검증도 안된 카리스마의 자마를 일한 몫 대신으로 줬다.)





아무튼 마크는 어찌저찌 학창시절 인맥으로 78년에 세계 선수권 대회 대표로 추천받아 나가면서 선수데뷔를 했다.

1980년에 영국의 장애물 비월 대회인 배드민턴 트라이얼에서 1등을 차지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루키가 된다.

(애초에 이 대회는 장애물 비월과 장애물 경주 고인물인 영국이 다 해먹는 대회인데, 뉴질랜드인이 우승했으니...)


반면 카리스마는 (심심풀이로 가르쳤다던)마장마술은 말아먹고, 장애물경주는 고사하고 장애물 비월과 종합마술에서도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농장주가 돈 좀 타먹겠다고 뉴질랜드 대표팀에 빌려주었고 이것이 두번째 인연의 시작이었다.



1983년

유명세를 얻은 마크는 좀 큰 농장에서 아직 어린 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앞으로의 대회에 타고나갈 말을 몰색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마크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팀에서 데리고있는 카리스마를 한번 제대로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지인의 전화였다.


실제 지인이 보내준 영상에는 카리스마의 체구에 믿기지 않는 실력이 찍혀있었다. 

자신의 예전 평가가 무색하게 만약 기수가 겁을 먹거나 괜한 지시만 안했어도 1등을 차지했다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게 마크는 2시간동안 운전하여 카리스마를 만나러 갔으나....

눈앞에 있는건 왠 살찐 털복숭이 조랑말이었다. 그놈의 식탐은 못고친거다.


마크는 카리스마를 타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인연도 있고 그래도 이왕 2시간 운전해서 온것도 있고 직접 타보니까 괜찮아서 데려가서 훈련을 시키기로 한다.



(88년인데 기수가 옆에 있는데도 먹는게 우선이다..)

정확힌 훈련이 아니고 다이어트가 주류였다.


전생에 굶어서 죽은 원한이라도 있는건지 먹는 양을 줄였더니 목장에 자란 잔디나 잡초들을 뜯어먹는건 기본이고,

마구간에 깔아놓은 지푸라기까지 먹으려 들다보니 지푸라기 대신 신문지를 깔아놓아야 했다.

심지어 같은 마구간에 있던 자마가 먹던 풀이나 각설탕도 기회만 있으면 겸상하려는 등 여러모로 전설적인 식탐이었다.

(물론 마크 역시 감량을 위해 다이어트를 계속 했다. 카리스마 혼자 고생한게 아니다.)


아무튼 카리스마는 고생끝에 겨우겨우 감량을 해내고, 

83년 뉴질랜드 전국 선수권 대회와 84년 영국 배드민턴 트라이얼에서 각각 1등과 2등을 차지한다.

이후 뉴질랜드에서 열린 제대회에서도 우승하는등 올림픽 출전을 위한 점수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1984년 LA 하계올림픽.

마크와 카리스마는 뉴질랜드 승마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당시 카리스마와 마크를 보던 관중 그리고 해설과 심사위원들의 첫인상은 딱 하나였다.

난쟁이가 거인을 태우고 있다. 

마크의 키가 1.8m인것도 있는데, 카리스마는 반올림으로 15.3hh(63인치)는 승마용 말 치고는 작은 크기였다.

가벼운 기수를 태우는게 말한테 부담이 안가거니와 다리가 긴 말이 유리한 승마에선 단점일 수 밖에 없었다.


실력을 의심친 않았지만 그래도 종합마술 특히 금메달은 어렵지 않을까 했다.




종합마술은 3일 동안 마장마술, 크로스컨트리(야외기승), 장애물 비월을 겨루는 종목인데, 

보통 이 종목에서 마장마술과 장애물 비월은 거기서 거기고 가장 중요한건 보통 크로스컨트리다.

(동 점수일경우 크로스컨트리에서 누가 더 빨랐느냐 혹은 덜 감점되었느냐 등등으로 판정함)


크로스컨트리는 언덕 또는 내리막길에 굵은 통나무로 설치된 장애물과 도랑, 둑 등이 있어 이것을 넘으며 주행해야 한다.

올림픽 승마종목중 여기서 가장 많이 사고가 터지고, 기수와 말 사이의 믿음 그리고 용기가 중요하다고 평가받는데,

어찌되었든 카리스마가 강심장인건지, 아니면 마크가 침착한건지 최단 시간내에 크로스컨트리를 완주했다.




장애물 비월 역시 짧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무실점으로 완주해낸다.

(마크의 다리가 가끔 장애물에 부딪히기 때문에 마크는 카리스마를 탈때 경마기수들 처럼 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2일차까지만 해도 미국팀인 카렌 스티브스와 벤 아서가 좀더 덜 감점되었는데,

마지막 3일차 장애물 비월에 벤 아서가 장애물에 다리가 걸려 넘어뜨려서 감점된 결과 마크와 카리스마가 종합마술 개인 금메달을 차지한다.


서구권 그중에서도 유럽과 미국이 독식하는 승마라는 장르에서 뉴질랜드 촌뜨기인 마크와 카리스마가 금메달을 차지했단건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그것도 난쟁이말과 거인기수(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뚱보와 멀대...)라는 전혀 안어울리는 이 한쌍은 더더욱.



하지만 이 카리스마의 마주인 농장주는 과거 자신 밑에서 일하던 농장 노가다꾼인 마크가

그것도 자기 말인 카리스마를 타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이 매우매우 띠꺼웠는지 카리스마를 다른 기수에게 팔아버리려고 했다.


근데 상대기수도 좀 착한편이었고, 당시 마크의 스폰서와 협작해서 마크의 스폰서가 그 기수에게 돈을 지불했고,

스폰서가 마크에게 카리스마를 선물로 줌으로서 카리스마는 마크의 농장 마구간에서 자마 및 손주들이랑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해피엔딩은...아직은 아니었다.


비록 영국 배드민턴 트라이얼과 벌리 트라이얼, 독일 루물렌 트라이얼 등등에서 3위권 내에서 들긴 했다만 몇몇 대회에선 입상을 실패했다.

정확힌 카리스마의 식탐으로 인한 무게 감량을 실패해버리니, 

마크가 몇kg을 대신 빼가지고 오히려 힘이 딸려 낙마하기도 하는등 여러모로 고생을 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은 승마선수들에게 좋은평은 못받았다.





오히려 역대급 난이도라는 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갱신한 무덤취급을 받는 대회였다.


가뜩이나 말이 비행기 타고오는 자체 디버프 걸리는 상황

흙은 뭘 깔아버린건지 잔디가 깔렸는데도 스탭이 꼬임+

9월인데도 후덥지근한 한국 특유의 여름날씨로 기수와 말 둘 다 지침+

관중들이 시끄러워서 되려 말들을 자극하는 등


환상적인 3단 디버프로 저기서 얼마나 성적을 꼴아박아도 이상치 않았는데, 

저기서 제공한 물을 마시고 어떤 말들은 배탈까지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특히 전성기 끝자락이라는 16세의 카리스마는...생각외로 말짱했다. 

하도 원정을 다녀서 그런건진 모르겠지만 비행기는 카리스마에게 그닥 디메리트가 아녔다.








식욕이 감퇴하긴 커녕 크로스컨트리를 위해 만들어진 고양 원당목장의 풀을 뜯어먹거나 물을 마시는 등

내장이 강철로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컨디션을 보였고, 기수인 마크 역시 딱히 걱정따윈 없었다.

애초에 걱정을 했다면 목장에서 방목을 안했을테니까.



마크와 카리스마는 종합마술 개인 금메달, 단체 동메달을 수상했다.

금메달 2관 그것도 뉴질랜드 출신 난쟁이와 거인이 일궈낸 일이라기엔 동화속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전통의 강호인 영국을 상대로 최소 감점으로 승부를 냈다는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1988년 카리스마는 은퇴 후 마크의 농장에서 지내게 되었다.

마크도 나중에 은퇴하긴 하는데, 나중에 쓸만한 선수가 없다고 대표팀에서 예토전생시켜서 굴려먹다 최근에 은퇴하고 현재 국제대회 심사위원을 맡고있다.

(나름 후배들에게 노하우 전수도 하고 이뤄놓은 업적도 있어서 기사작위도 받았다.)


아무튼 가끔씩 이벤트가 생기면 얼굴마담으로 나오기도 하고, 평상시엔 목장에서 다른 말들의 지도 혹은 우두머리 역할을 하면서 지냈다.

우두머리라기 보단 후손들의 작은 대부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마크를 보면 먹이를 줄때까지 졸졸 따라다니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2003년 

목초지에서 뛰놀던 카리스마는 견갑골 골절로 인해 안락사 되었고, 30세의 나이로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뉴질랜드가 난쟁이와 거인이 나오는 동화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당일 신문 헤드라인에 잘 나와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말이 죽다'라고.





ps1. 의외인점은 카리스마는 사람이 먹는 걸 뺏어먹어도 발구르기나 땅파기 등 사람의 서열을 아래로 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ps2. 얘도 일단 거세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승마용 말들처럼 거세되기 전에 정액채취+종마생활로 그 핏줄이 유지되고 있다.

가장 압권인건 마크의 목장에서 웰링턴 컵이랑 뉴질랜드 오크스 등 경마대회에서 활약한 놈들도 나오는데 걔네들도 요놈 핏줄에서 나왔단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