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용 말들의 이야기를 하는 근데 왜 우마무스메챈에 통칭 '근왜챈'도 이제 7번째다.

그나마 말에 관한 글을 쓸만한 곳이 여기랑 갤뿐이라 아무튼 계속 쓴다.



(딱히 떠오르는 deep-임팩트 혈통 말딸이 없어서...)

딥 임팩트의 자마들은 영원히 딥 임팩트의 위광에 가려져 비교당하는 삶을 살 것이며,

만약 그들의 등에 탄 기수가 유타카라면 그가 세운 업적의 무게를 견뎌야 할 것이다.


말딸갤에서 자주 나왔던 이야기지만 말들에게 혈통이란 그들의 가치이자 꼬리표이며,

기수는 단순히 장식이 아닌 승리의 조건 중 하나이다.


이것은 단순히 경마만이 아닌 승마에도 통용되는 공식이며, 나름의 업적을 달성해도 혈통과 기수의 무게에 압사되는 말도 상당히 많다.



지금에서야 천재라는 평가를 받지만 당시엔 이 무게에 짓눌려 평가절하당해야 했던 말이 고갱 드 륄리(Gauguin de Lully CH)이다.




전에 소개했던 또라이 뵈어만과 같은 스웨덴 웜블러드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로오열한 잡종이다.


아무튼 고갱 드 륄리는 1975년 륄리 목장에서 샤갈과 가스파로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쪽다 수상이력은 없지만 그래도 스위스와 스웨덴에서 마장마술 대회에서 수상이력을 가진 말들을 배출해낸 혈통이다.


60년대 스위스의 기병대 장교 출신 종합마술 기수였던 한스 자콥 펀프쉴링(HansJakob“Hansjoggi”Fünfschilling)에겐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자신의 목장에서 승마계에 한 족적을 그을 말들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물론 동료들은 님 도랐? 이러고 말렸다.


그렇게 우리의 한스는 퇴직금과 채권까지 탈탈 털어서 샤갈과 가스파로나 같은 우수한 말들을 배출해온 혈통의 웜블러드들을 사와 륄리 목장을 시작했다.






다행히 한스의 판단대로 싹수가 보이는 망아지들 특히 고갱 드 륄리가 태어났다.

물론 이 목장에서 마주가 아무리 광고를 하고 혈통이 좋아도 이제 시작해서 아무 실적도 없는 애들을 누가 사겠냐....

다행히 그나마 이 양반이 선견지명 비슷한게 있어서 땅을 활용할 줄 알아서 목장에 말뿐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나무이자 다용도로 쓰이는 코카서스 전나무도 같이 키워서 ,나무를 팔아서 적자를 매꾸고 말들을 먹여 살렸다.

(좀 웃기겠는데 륄리 목장의 수입원 중 하나는 저 나무였다.)





아무튼 륄리 목장의 재정 상황은 아슬아슬했다.

비슷한 시기에 카리스마가 나중의 다이어트고 뭐고 생각없이 처묵처묵 하고, 그라나트가 전설을 세상에 증명하며,

스노우바운드가 쾌적한 더블린의 목장에서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예일대 출신 주치의의 관리를 받는 럭셔리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면,

고갱 드 륄리는 타마모 크로스 유년기 유럽ver 직전이었다.


한스도 대충 수틀리면 망아지들을 스위스 국립 목장에 팔거나 대여하면 돈을 벌 순 있는데...문젠 그럴 경우 얘들은 꼬추 커팅 즉 거세를 당한다.

그랬다간 진짜 미래고 뭐고 없다.


말을 광고하려면 어찌되었든 기수가 타서 실적을 내야하고, 뛰어난 기수일수록 실적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1981년에 한스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인맥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어떻게든 연줄을 통해 한 기수와 만남을 가지는데 성공한다.




그 기수는 스위스 승마 마장마술의 살아있는 70년대의 전설이자,

그 독일을 아닥시켰던 장본인 크리스틴 스투클버거(Christine Stückelberger)와 그녀의 스승 게오르그 발이었다.


일단 그들은 매우 빡쳐있던 상황이었다.

그라나트가 은퇴하면서 같이 은퇴하려 했다 어거지로 붙들린것도 나름 화가 나있었는데,

그라나트의 은퇴를 더 미뤄달라는 부탁과 제발 우리말이 재능이 있으니까 한번만 타서 홍보좀 해달라는 부탁을 왕창 받았기 때문이다.


한스도 저 홍보해달라고 온 사람들 중 한명이나 다름없었는데, 하필이면 이 고갱 드 륄리는 거세도 안했다.

게오르그와 크리스틴 입장에서 이 새끼가?!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스의 간절함이 닿은건지 아니면 크리스틴의 변덕이었는지 크리스틴은 륄리 목장으로 가서 고갱을 보기로 한다.

물론 크리스틴의 입장에선 당시의 고갱 드 륄리는 평범했다.

하지만 한스가 보여준 말들의 관리나 목장, 고갱의 걸음걸이부터 나름의 잠재력을 보았는지 6세의 고갱 드 륄리를 10년간 타기로 결정했다.

(물론 게오르그는 존나 빡쳤지만 한스의 간청+크리스틴의 설득 그리고 고갱 드 륄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납득해줬다.)





일단 고갱 드 륄리의 별명은 충견(Chien fidèle)이었을 정도로 애교많고 빠르게 배우고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었다.

다만 처음 훈련할땐 나름 민감한 편어서 숫말 특유의 미칠듯한 거침으로 명령을 안듣거나 그 피지컬로 훈육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행히 기수인 크리스틴에게 화를 내고 날뛰다 시범을 보이던 말에게 발차기를 얻어맞고 나름 교정되긴 했다.


85년 10세에 마장마술 대회에 공식적인 데뷔를 시작으로,

86년에 스위스 챔피언쉽 우승과 세계 마장마술 대회 개인 은메달과 단체 동메달을 수상했다.


다만 이 고갱 드 륄리는 기수인 크리스틴의 변호 겸 오피셜로 천재였지만

애석히도 현역 당시는 제목답게 의심과 끝없는 비교로 점철된 불운한 삶이었다.

고갱 드 륄리가 아무리 천재일지언정 그 천재를 둘러싼 이들은 전설이었던 만큼 세간의 비교와 평가절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단 앞서 말했듯이 이 고갱 드 륄리의 혈통은 굳이 따지면 명문에 속했다.

같은 혈통 출신 특히 현재의 유명도는 덜하지만 60년대 스위스 마장마술의 천재였던 왈드,



그리고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독일의 기린아 피아프(Piaff).

이 둘과의 비교는 피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물론 왈드와 피아프의 기수인 구스타프 피셔와 리셀로트 린센호프가 뛰어난 기수였긴 했다만...





이 고갱 드 륄리의 기수는 73년부터 전설을 써내려갔던 기수이자

84년에 말이 구린걸 어떻게든 기수빨로 커버쳤다는 찬사를 듣는 당대의 살아있는 전설 크리스틴이었다.

검증된 기수가 파트너인 이상 고갱 드 륄리가 이룰 업적은 기수덕 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전설을 같이 써내려간 파트너는





석류석 혹은 그라니로 불리운 결함이 있음에도 압도적인 마장마술을 선보인 그라나트였다.

고갱 드 륄리의 강사인 동시에 실질적인 전임이었는데, 그라나트가 은퇴하고 보인 시범은 현역인 고갱 드 륄리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마주인 한스조차 그라나트가 고갱 드 륄리에게 시범을 보이는 교육현장을 직접보고 

고갱 드 륄리가 너무 못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웃긴건 크리스틴이 오히려 고갱 드 륄리는 아직 젊고 가능성이 있다며 실드를 쳐줘야 했다.)







그리고 그 라이벌은 프랑스의 콜란더스(Corlandus)

이 녀석의 엄마는 그라나트의 전형제의 피를 이은 그라나트의 종손자나 다름없는 놈이고 그 혈통을 증명하듯 고갱 드 륄리보다 약 우세였다.





1987년

고갱 드 륄리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단체 은메달을 땄음에도 혈통, 기수, 전임자 그리고 라이벌이 이룩한 업적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는데

이를 더하듯이 로잔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까지 등장했다.





그라나트와 크리스틴에게 아닥당한 독일 마장마술은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조지 테오도레스쿠, 해리 볼트를 비롯한 명인들은 칼을 갈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었고,

마장마술계의 독일 왕조 재건이 8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정점은 니콜 업호프와 램브란트(Rembrandt)였다.


램브란트역시 어떤 의미에선 고갱 드 륄리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베스트팔렌 중에서도 명문, 유망주 기수인 니콜, 그리고 그의 외가 친척이자 스승이면서도 전년도의 금메달리스트였던 알레리치까지.


차이가 있다면 이 녀석은 그 업적들을 뛰어넘는 활약을 했고,

스위스 로잔의 마장마술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반대로 2위로 밀려난 고갱 드 륄리는 이젠 절대자의 무게에까지 짓눌려야 했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전에도 말했듯이 이 올림픽의 난이도는 지옥불이었다.

하지만 이 지옥불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진정한 실력을 증명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고갱 드 륄리는 특이하게 비행기 디버프따윈 안받았다.




그리고 운명의 날.

비교대상 이라 할 수 있는 램브란트는 개인, 단체 금메달을 양쪽 다 수상하며 절대자의 등장을 알렸다.

또한 라이벌인 콜란더스는 개인 은메달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라이벌이었다.


그럼에도 고갱 드 륄리는 개인 동메달과 단체 은메달을 가져옴으로서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하였다.

실력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갱 드 륄리는 그제서야 자신을 짓눌러왔던 짐들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전설 사이에 둘러쌓인 천재였을뿐 고갱 드 륄리는 결코 범재가 아니었다.

1988년 귀국 후 슈트가르트에서 알레리히, 콜란더스와 함께한 실내 마장마술 공연은 이들과 박빙이었다.






1989년

이 해에 고갱 드 륄리는 월드컵 은메달 이후 잠시 쉬었다.

정확힌 연습중에 갑자기 로데오를 해서 크리스틴을 낙마시켜서 척추뼈 4개를 골절시켰다.


당연히 이 고갱 드 륄리의 꼬추커팅은...당하지 않았다.

어차피 크리스틴은 슬슬 현역에서 물러나서 후학양성을 위해 은퇴할 생각도 있었거니와,

스스로가 그라나트의 죽음에 너무 슬퍼해서 대응을 못했다며 고갱 드 륄리를 변호해줬다.

(물론 90년에 은퇴하려다 또 예토전생 당해서 92년 대표팀하고 진짜 은퇴한다..)


물론 한스가 존나 잘못했다고 이녀석 커팅하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되려 놀라버린것도 있겠다만 암튼...

아무튼 쉬는동안 이놈을 가르칠 순 없으니 한동안 종마로서 6마리 정도 자마를 남겼다.


그리고 1990년 마지막으로 세계마장마술 대회 단체 동메달을 따는 것으로 15세의 고갱 드 륄리는 은퇴하고 종마생활을 한다.





(하렘물 찍고 있는 고갱 드 륄리)

고갱 드 륄리의 은퇴 후 말년은 종마생활이었고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현역시절의 저평가를 날린 시기기도 했다.


보통 승마에서 사용되는 말들은 자마를 많이 못남긴다.

경마용 숫말은 성공해서 은퇴후 최소 종마로서 왕성하게 자마를 남기는게 가능하지만, 

승마용 숫말은 아무리 성공해도 주로 거세 당하니까 이게 힘들다.


거세 당하기전 자마를 남기거나 그 전에 채취한 냉동보관 정액을 이용해서 인공수정하는데 이래서 생산률이 생각보다 떨어진다.

(복제까지 동원하는 이유가 있다.)

혹은 거세를 안당하더라도 은퇴하더라도 암말 포함해서 보통 16~17세에 은퇴하니 그 생산력은 뭐.......


전에 올렸던 압생트가 70마리로 이 정도면 많이 남긴 경우다.


아무튼 이 한스는 나름의 신념이 있었는데, 그건 좋은 말은 말이 만족하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난다는 지론이었다.

그래서 자연 목초지에서 암말들 무리에서 둘러쌓여 자마들을 호령하며 하렘물 찍는 그런 생활이었다.


애초에 승마에 쓰이는 말은 앵간해선 3살까진 부모랑 같이 뛰어놀게 시키는거기도 한데...

생각외로 생산량은 적었다. 애초에 크리스틴이랑 있을때 발정이나 그런걸 안드러내서 한스한테 얘 거세안시킨거 맞냐고 물었을 정도로 발정도 잘 안했다.

오히려 암말이 하기 싫어하면 안하는등 좀 독특한 성격이었는데도 인공수정까지 동원해서 약 259마리의 자마를 남길 수 있었다.

......거 새크리테리엇이나 딥 임팩트랑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인데 좀 봐줘라...


암튼 무리의 보스가 되어도 크리스틴은 각별했는지, 

자신을 보러 놀러온 크리스틴에게 개기려는 자마가 있으면 바로 들이받아 서열교육을 시키는 보스였다.


그나마 이 자마들이 나름 열씨미 활약을 해줬다.

대부분 승마대회에서 어느정도 고갱 드 륄리의 능력을 입증하듯이 나름 순위권에 들었고 그덕에 고갱 드 륄리는 오히려 당시에 저평가 되었다는게 현재 평가다.




1996년

목초지에서 뛰놀던 고갱 드 륄리는 목초지에서 대동맥 파열로 2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마들과 암말들은 그의 시체 곁을 지켰고, 이를 발견한게 놀러온 크리스틴 그리고 안내했던 한스였다.

생각해보면 요절이다만 그래도 행복한 말년일꺼다 아마도.


생전의 고갱 드 륄리는 과거의 그리고 동시대의 전설들이 이룩한 업적으로 짓눌린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 천재성을 자신의 업적으로서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로서 그 존재를 증명해내고 있다.







ps1. 자마들 중 군계일학을 고르면 플러트(Flirt)드 륄리랑 그레코(Greco)드 륄리인데 그덕에 얘네도 번식 좀 많이했다. 그덕에 스웨덴 웜블러드중 CH(스위스) 붙는 애들은 태반이 얘네..

ps2. 사실 콜란더스도 나름 당시에 저평가를 받긴 했다만 오히려 프랑스의 자존심 취급이었지 고갱 드 륄리 수준은 아니었다.

ps3. 나중에 한스가 크리스틴에게 고갱 드 륄리의 자마 몇마리를 선물했는데 한스도 숫말은 역시 아니다 싶었는지 얘네는 바로 커팅해서 왔다.